춤추는 사람 그림

백업 by 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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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시마 / 코우시노

소설 셜록홈즈 ‘춤추는 사람 그림’과 그라다나 셜록홈즈 시즌1의 ‘춤추는 인형’ 편을 차용함. 18세기 영국 배경.

내 맘대로 설정. 중간중간 내용 수정, 추가함.


 “어머, 이부키씨. 오셨어요?”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하노는 2층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한달음에 달려 현관으로 향했다. 이부키는 현관에서 옷매무새를 잠깐 다듬는 듯 하더니 하노의 얼굴을 보곤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다녀왔어요.”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이부키를 웃는 상으로 바라보던 하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헉, 홀딱 젖었네요.”

 “마차를 잡느라 20분이나 빗속에 서 있어야 했거든요.”

 “이러다가 감기 걸리겠어요.”

 하노는 이부키가 비에 젖은 코트를 벗는 것을 도왔다. 이부키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빗물을 털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에이, 하무씨 저 알잖아요. 병도 피해가는 남자 이부키.”

 손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과장된 몸짓을 하는 이부키에 하노는 풋, 하고 사람 좋게 웃어보이더니 이부키에게서 외투와 모자를 받았다.

 “바싹 말려야겠네요.”

 하노는 그렇게 말하곤 이부키에게 한번 더 싱긋 웃어준 후 그대로 뒤로 돌아 2층으로 향했다. 이부키도 그런 하노를 잠깐 보다가 몸을 돌려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비가 오고 있어 쌀쌀한 바깥과 달리 안은 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훅 느껴졌다. 벽난로에 장작이 타들어가며 타닥, 타닥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마는 난로 앞에 그가 자주 앉는 의자를 끌고 와 앉아있었다. 이부키는 그런 시마의 뒷통수를 잠깐 쳐다보다 곧 입을 열었다. 

 “시마, 나 왔어.”

 “어, 이부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시선을 타들어가는 장작에 고정시킨 시마는 약간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이부키는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얼굴을 찌푸리더니 시마에게로 성큼 성큼 다가섰다. 

 “이번에는 또 뭐야, 모르핀? 아님 코카인?”

 이부키는 화가 난 듯 낮은 목소리로 묻더니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그는 시마의 팔을 낚아채듯 들어올리고서 시마의 소매를 걷었다. 시마의 흰 팔뚝이 드러났다. 이부키의 기민한 눈이 그 팔뚝을 빠르게 훑었다. 이부키는 곧 놀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야, 주사자국이 없네?”

 “오자마자 사람 의심부터 하지 말라고.”

 시마는 이부키의 손에서 팔을 빼내더니 툴툴거렸다. 이부키는 의외라는 듯이 시마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야, 시마. 당연히 내가 나간 사이에 나쁜 거에 손 댔을 줄 알았는데.” 시마는 지나치게 가까워진 이부키의 얼굴을 손으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거야 최근들어 일이 없었잖아. 보통 그럴 때 시마는 무기력하게 코카인이나 들이키려고 하지. 옆에서 재재하는 아이쨩이 없으면!”

시마는 황당하다는 듯 잠시 이부키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고서 그에게 대꾸했다. 

 “그럼, 좀 더 생각해봐. 논리원칙을 적용해서.”

 집게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훈계하듯 말하는 시마에 이부키는 “에 오자마자 잔소리라니!”라고 잠깐 푸념하다가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그러다 곧 깨달은 듯이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시마는 지금 기분이 좋다. 그 말은 시마가 사건을 의뢰 받았다는 뜻이다. 오! 시마, 사건이야?”

 이부키의 말을 듣고서야 시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빙글 돌아 화사하게 웃는 이부키의 쪽을 바라보았다.  시마는 빙긋 웃으며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부키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인 것 같아, 파트너?”

 종이를 받아 든 이부키는 잠깐 그것을 바라보더니 금방 입을 열었다. 

 “에, 시마. 이건 그냥 애들 그림 이잖아?”

 이부키는 종이의 뒷면을 확인하고서 다시 우스꽝스러운 상형문자가 그려진 쪽을 보았다. 

 “그렇게 생각해?”

 “그게 아니면 대체 뭐겠어?”

 “코우노도리 사쿠라씨가 궁금해하는 게 바로 그 점이야. 그 수수께끼의 그림은 일찌감치 우편으로 배달 됐고, 코우노도리씨는 곧 온다고 했어.”

 이부키는 잠자코 시마의 말을 듣고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 곧 입을 열었다. 

 “코우노도리 사쿠라를 인명사전에서 찾아봐야겠네.”

 “내가 이미 찾아봤어. 페르소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야. 여기서는 좀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고.”

 “사쿠라, 라면 벚꽃 인가.”

 이부키의 말에 시마는 무슨 상관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부키는 말을 이었다. 

 “뭔가 좋은 사람일 것 같은데.”

 “아직 만나지도 않고서 그걸 어떻게…” 시마는 그렇게 말하다 말고 창문쪽으로 다가섰다. 그는 목을 쭉 뻗어 밖을 내다보고서 말했다. 

 “음, 확실한 건 곱슬머리에 갈색 코트를 입고 있을 것 같네.”

 “그걸 시마가 어떻게 알아?”

 이부키가 놀라 시마를 쳐다보자 시마는 씩 웃더니 말했다. 

 “그거야 직접 봤으니까.”

 시마는 창문에서 고개를 돌리더니 서둘러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의자에 올려두고 자켓을 걸쳤다. 이부키는 방문을 열고 잽싸게 나간 후 노크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코우노도리가 있었다. 약간 놀란 듯 보이는 코우노도리에 이부키는 씩 웃어보이더니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코우노도리씨, 비가 오니 어서 들어오시죠.” 

 “아, 감사합니다.”

 코우노도리는 고개를 한번 숙여 인사한 후 이부키의 안내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방안을 살짝 둘러보았다. 문 근처에 서 있던 시마를 발견한 코우노도리는 다정한 기색으로 미소짓더니 손을 건네 악수를 청했다.  

 “코우노도리 사쿠라입니다.”

 “시마 카즈미 입니다.”

 “아, 그럼 이쪽 분은 분명 이부키씨 이겠군요.”

 코우노도리의 말에 이부키는 그에게로 손을 내밀며 화답했다. 

 “네, 이부키 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여기 앉으시죠.”

 시마, 이부키와 차례로 악수를 나눈 코우노도리는 시마가 권한 의자에 앉으려다가, 이부키가 살펴본 후 탁자에 놓아 둔 이상한 기호가 쓰여져 있는 종이에 시선을 보냈다. 그는 그 종이에 대한 의견이 퍽 궁금한 듯 보였지만 잠자코 의자에 앉았다. 시마가 그런 코우노도리를 흘깃 보더니 입을 열어 물었다. 

 “미리 보내주신 그림을 봤습니다만, 줄지어 춤추는 사람의 그림 같던데요. 어린아이들이 장난 친 그림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런 괴상한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가 뭡니까?” 시마의 질문에 코우노도리는 약간 곤란하다는 식의 미소를 짓더니 곧 대답했다. 

 “시마씨, 제가 이 그림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여기 온 것은 제 아내 때문이에요. 아내가 이 그림을 죽도록 무서워 하고 있습니다. 아무말도 없이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눈을 보면 얼마나 겁에 질려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를 찾아오게 됐습니다.”

 코우노도리는 차분히 말을 시작했지만 아내의 이야기가 나오자 약간 언성이 올라가더니 조금 흥분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그것을 깨달았는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흥분을 가라 앉히며 말을 이었다.

 “혹시 시모야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작년에 두분께서 일을 도와준 덕에 곤란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는데요.”

 “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부키는 그때의 일이 기억났는지 싱긋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하지만 시모야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페르소나 동료들도 시모야의 일이 잘 해결되어서 마음을 놓았고요. 시모야가 두분께서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셨는지 입이 마르도록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두분의 이름이 생각나더군요.”

 코우노도리의 말에 이부키가 싱글벙글 웃으며 시마를 바라보았다. 시마가 그런 이부키를 힐긋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 이부키는 눈을 찡긋 하며 웃어보였다. 시마는 얼굴을 찡그리는 듯 묘한 표정으로 화답하고선 다시 코우노도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예,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코우노도리씨, 그럼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십시오. 사모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요?”

 “사소한 이야기라도 좋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전부 도움이 되거든요.”

 이부키는 몸을 앞으로 쭉 빼곤 무릎에 손을 올려 턱을 괴었다. 시마는 탁자에 올려두었던 수첩을 집어들어 코우노도리가 하는 말을 메모할 준비를 했다. 코우노도리는 그의 길고 섬세한 손을 불안하게 잡았다 놓았다 하며 말했다. 

 “음… 저는 일생을 더비셔에서 살았습니다. 라이딩 소프라고 매트록에서 가까운 곳이죠. 제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제 존재를 모르셔서 고아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계시던 병원의 의사분-지금은 원장님이 되셨습니다-께서 후견인이 되어주셨고요. 원장님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전 의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결혼은 안 할줄 알았어요. 3년전 런던으로 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원장님께서 병원에 일손이 부족하니 함께 일해줄 수 없냐 부탁하셔서 런던의 페르소나에서 일하게 되었거든요. 그 병원에서 산과의로 일하고 있는 제 또래의 미국인이 있었는데, 이름이 시노미야 하루키였습니다. 시노미야는, 음. 시마씨, 이부키씨. 여기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내가 걱정되어 여기에 상담하러 왔지만, 훌륭히 일하고 있는 아내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여기서 제가 하는 이야기는 셋의 비밀로 하고 다른 곳에서 말하지 않아 주실수 있으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저희는 의뢰인의 바램을 가장 우선시 하고, 모든 사건은 비밀 유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시는 말씀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 약속드립니다.”

 “꼭 비밀로 해드릴게요.”

 이부키는 결의에 찬 얼굴을 하고서 코우노도리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둘의 말에도 코우노도리는 여전히 망설여지는지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 결국 말을 이었다. 

 “예, 그렇게 말해주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그럼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시노미야는 같은 산과의 였기 때문에 동료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있어서 시노미야가 사실 오메가이지만 베타로 본인의 형질을 숨기고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제 아내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시노미야는 실력좋은 의사고, 그건 오메가든 아니든 관계없는 일입니다. 또한,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오메가라고해서 직업에 차별을 두고 평생 누군가의 품 아래 갇혀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메가라도 능력이 있다면 충분히 사회를 위해 일할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아, 말이 다른 곳으로 빠졌군요. 어쨌든 당시의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지라 전 시노미야의 비밀을 지켜주고 그가 오메가라는 것이 들키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그렇게 사이가 가까워졌고, 금방 저는 시노미야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시노미야씨는 쭉 런던에서 살며 페르소나에서 근무했던 건가요?”

 시마는 코우노도리의 말에 감명받은 듯 눈을 반짝이는 이부키를 무시하려 애쓰며 그렇게 물었다. 코우노도리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아뇨. 런던에서 몇년정도 살았다고 하더군요.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돌며 그들의 출산을 돕던 걸 저희 병원의 코마츠라고 하는 분이 스카웃해서 페르소나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영국으로 오게된 건 영국의 의학 논문을 읽고서 영국의 의학기술이나 방식이 마음에 들어 방문했다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저는 시노미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다행히 그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는 비밀로 하고 등기소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죠. 런던 근처의 조용한 시골에 신혼집을 마련했습니다.”

 “멋지네요.”

 이부키의 말에 코우노도리는 다정하게 미소짓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한 후 말을 이었다. 

 “두분은 미국에서 온, 내력도 잘 모르는 오메가와 그렇게 결혼한 제가 이해 안 되실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노미야를 만나보시면 알겁니다. 시노미야는 단호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시노미야는 그 점에 대해 아주 솔직했고, 결혼 전에도 몇번이나 재고할 기회를 주었죠. 결혼 당일, 시노미야는 불안해하더니 마차에서 내리기 전 저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쿠라. 잘 들어. 내가 하는 말은 전부 진심이야. 너를 정말 사랑해. 그렇지만 넌 우리가 만나기 전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저는 ‘괜찮아. 궁금하지 않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말에 시노미야는 잠깐 미소지어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습니다.

‘나와 결혼하면, 좋은 아내가 될게. 부끄럽지 않은 아내가 될거야. 나는 아주 불쾌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어. 그 사람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싶어. 솔직히, 그 과거는 고통스러워서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 내 말을 믿고 앞으로도 내 과거에 관해서는 절대로 알려고 하지마.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넌 페르소나로 돌아가고, 난… 며칠 전에 어느 대학에서 괜찮은 제의를 받았어.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거야.’

저는 기꺼이 그 조건을 따르겠다고, 절대 그를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말했죠. 그리고 제가 한 약속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그렇게 2년간 행복하게 살아왔어요. 하지만, 한 달전 약간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아내 앞으로 미국에서 편지 한통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받는 이에 엘시(elsie)라고 적혀 있어서 잘못 온 편지인가 싶었지만 그 뒤에 휘갈긴 글씨로 아내의 이름이 적혀있더군요. 미국 소인이 찍힌 걸 보았을 때 시노미야가 미국에 살 때의 별명이나 옛이름인가하고 잠깐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편지를 건네주었어요. 시노미야는, 내색하진 않았습니다만, 창백해져서는 편지를 대충 살피더니 불 속에 그냥 던져 버렸습니다.”

 “편지를 읽지도 않고 태웠다고요?” 이부키가 놀란 듯 말하자 코우노도리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상한 일이었죠. 하지만 미국은 묻지 않기로 약속한 과거의 일이니 저는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시노미야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요. 그렇지만 그 때 이후로 시노미야는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어요. 늘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시노미야가 저를 믿어주고,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던다면 좋겠지만 저는 어찌할 바가 없었습니다. 그저 유심히 그를 살피는 수밖에는 없었죠. 음, 아주 이상한 일은 지금부터입니다.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저는 누가 어느 창틀에다가 제가 보내드린 편지에 있는 그림과 같은, 춤추는 사람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 마을의 아이가 장난을 쳐두고 간 것이라 생각해 저희 집에서 가끔 놀다가는 아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만, 그림에 대해 아는 아이는 없더군요. 저는 그걸 물로 씻어내고 저녁시간에 지나가듯 그런 일이 있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노미야가 아주 심각해지더니 앞으로 그런게 있으면 자기한테 꼭 보여달라 하더군요. 그러고 일주일간은 아무 일도 없다가, 어제 아침에 정원 의자에서 이 그림이 또 발견됐습니다. 마침 당직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노미야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자, 눈에 띄게 동요했습니다. 거의 넘어질뻔 해서 제가 부축해 침실까지 데려다 주었죠. 시노미야는 당직때문에 피곤해서라고 말했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자명했습니다. 잔뜩 긴장해서는 두 눈에 공포의 빛이 선연하더군요. 시노미야가 너무 힘들어해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 편지를 드렸고, 일이 끝나는데로 이곳으로 오게 된겁니다.”

 코우노도리는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해 보였지만 특유의 안심시키는 듯한 목소리로 꽤 조리있게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의 태도는 솔직하고 부드러웠고, 표정에서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묻어나왔다. 그는 얘기를 끝마치고서 다정하지만, 걱정이 어린 눈을 하곤 시마와 이부키를 바라보았다. 시마는 중간중간 수첩에 내용을 메모해 가며 최대한 집중해 코우노도리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이내 생각에 잠겼다. 잠깐 침묵이 흘렀고, 이부키는 얌전히 시마를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시마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코우노도리씨, 가장 좋은 건 부인께 간곡히 말해서 사정이 어떻게 된 건지 들어보는 게 아닐까요?”

 코우노도리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시마씨, 약속은 약속입니다. 시노미야가 제게 말하고 싶다면 얘기 할겁니다. 제가 비밀을 말해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저는 아내와 약속을 했고 그걸 끝까지 지킬 겁니다. 다만 아내가 너무 괴로워 하고 있기 때문에 남편 된 도리로써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것 뿐입니다.”

 “그러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몇가지 질문 드릴 것이 있는데요.”

 시마는 그렇게 말하고선 수첩을 잠시 뒤적거렸다.

 “먼저, 주변에서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가요?”

 “아뇨.”

 “지내고 계신 곳은 조용한 고장일 것 같은데 낯선 얼굴이 보이면 소문이 나겠지요?”

 “예. 근처라면 그럴 겁니다. 하지만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는 가끔 관광을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곳 농부들은 숙박객을 받기도 하고요.”

 “네 감사합니다. 분명 조사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시면 경계를 늦추지 마시고 또 그런 그림을 보게되면 똑같이 그려서 보여주세요. 그리고 근처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진 않았는지도 한번 확인해보시고요. 혹시 새로운 일이 생긴다면 다시 방문해주십시오. 아직 증거가 적고 상황도 막연한 터라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이것 뿐일 것 같네요. 만약 어떤 급박한 일이 발생한다면 당장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가십시오.” 시마가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코우노도리도 일어나 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바깥으로 나가는 코우노도리를 이부키가 뒤따라 배웅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시노미야씨를 잘 돌봐주세요.”

 현관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말하는 이부키에 코우노도리는 화사하게 웃었다. 

 “예 물론이죠. 덕분에 훨씬 든든해졌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손님의 배웅을 마친 이부키가 방으로 다시 들어오자, 시마는 방의 커다란 칠판 앞에 서서 의뢰인이 남기고 간 그림의 형상을 옮겨 그리고 있었다. 시마의 뒤에서 그것을 유심히 보던 이부키는 이내 입을 열었다. 

 “어떤 암호인 건 확실한 것 같아.”

 “분명히 의미가 있어. 그렇지만 임의대로 만든거라면 해독할 수 없어. 하지만 반대로, 어떤 체계가 있다면 분명 그 의미를 알 수 있을거야. 내가 말해준 그 암호 해독 논문 읽어봤지?”

 “에…아직 다 못 읽었어.” 

 이부키는 시마의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보면 볼수록 더 어려워. 하지만! 시마가 열심히 읽었으니 괜찮아.”

 “하아?”

 “시마는 해독 담당, 이부키는 응원 담당하면 되지.”

 이부키의 말에 시마는 뭔가 말하려 몸을 돌렸다. 시마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부키는 펄쩍 뛰어 방의 문을 열더니 서둘러 바깥으로 나가며 말했다. 

 “잔소리 마인 시마! 나는 하노씨한테 차라도 부탁할게, 키쿄대장님도 오신 것 같으니까!”

 시마는 황당한 듯 이부키가 나간 문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하곤 이내 칠판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이부키가 방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차주전자와 찻잔이 두개 올려진 쟁반을 든 채였다. 그는 등으로 밀어 조심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코우노도리씨 말이야, 좋은 사람이야.”

 “어?”

 이부키의 말에 골똘히 칠판을 바라보고 있던 시마가 고개를 들었다. 

 “다정하고, 사려깊고 또…”

 “부인을 엄청 아끼는 것 같더라.”

 “맞아! 막 꺄꺄 우후후의 냄새가 나더라고.”

 “그러니까, 꺄꺄 우후후라는 거 대체 뭐냐고” 라며 투덜대는 시마를 지나쳐 이부키는 근처 쇼파에 늘어지더니 한탄하듯 말했다. 

 “분명 코우노도리씨는 신혼집으로 돌아갔겠지… 나도 공기좋은 시골에서 꺄꺄 우후후 하고싶다.”

 “그, 소위 뀨릇한 사람이랑?”

 시마는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뀨릇’을 강조하며 말했다. 시마의 말에 이부키는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맞아! 시마도 잘 아는구나? 시노미야씨는 뀨릇한 사람일까… 뭔가 얘기를 들어서는 뀨릇보다는 멋진 사람일 것 같아. 키쿄대장 같은…”

 허공에 손짓하며 웅얼거리는 이부키에 시마는 건조하게 “너, 나름 뀨릇 철학이 있구나.” 하고 말하더니 다시 칠판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부키도 쇼파위에서 몸을 돌려 칠판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어쨌건, 더 많은 메세지가 필요해.”

 시마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둘은 다른 일을 하다가도 이따금 칠판에 적힌 기이한 사람의 그림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했고, 이따금씩 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으나 별 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주가 지났다. 시마가 오후에 막 외출을 하려던 이부키를 불러세웠다.

 “이부키, 지금은 나가지 않는 편이 좋겠어.”

 “에, 왜?”

 “방금 코우노도리 사쿠라씨에게서 전보가 왔거든. 저기 춤추는 사람 그림 기억하지?”

 시마는 보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더니 손으로 칠판 쪽을 가리켰다. 이부키는 시마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그림을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1시 20분에 리버풀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어.”

 “엑, 그러면 얼마 안 남았네. 그 전보 방금 전에 도착한 거잖아. 사쿠라씨, 엄청 서두르고 있나봐.”

 “전보를 보니까 그 사이에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던 모양이야.”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코우노도리는 금방 베이커가에 도착했다. 그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과 피로에 젖은 눈을 하고서 하노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맞이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이부키에게 하노가 수근대며 말했다. 

 “의뢰인분 얼굴이 말이 아니네요. 엄청 피곤하신가봐요.”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제가 도와드려야죠!”

 “하하, 이부키씨라면 분명 잘 해결해주시겠죠. 저는 홍차라도 타서 올게요. 그럼 파이팅!”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친 이부키가 안으로 들어오자 코우노도리는 이미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부키를 보고선 미소를 짓고 고개를 까딱여 인사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솔직히, 괜찮은 상황이라고는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는 그걸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는 게… 게다가 아내는 그것 때문에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지경입니다. 문제가 없는 것 처럼 행동하지만 제 눈 앞에서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습니다.”

 “차 좀 드세요.”

 코우노도리의 말이 끝나자, 타이밍 좋게 하노가 찻잔과 주전자를 올린 쟁반을 들고서 들어왔다. 문 근처에 서 있던 이부키가 그녀에게서 쟁반을 받아 들었다. 그녀는 나가며 코우노도리에게 힘내라는 듯 사람 좋게 웃어보였고 코우노도리도 그에 화답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부키는 쟁반을 앞 탁자에 내려놓고서 코우노도리에게 차를 건네며 물었다.

 “일이 끝난 후 바로 오신건가요?”

 “네. 당직 근무가 있어서, 최대한 빨리 오려고 바로 전보를 치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좀 피곤 했는데, 감사합니다.”

 코우노도리는 홍차를 한모금 마시다가 무언가 생각 났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제가 급하게 말씀을 드려서 혹시 다른 일이 있으셨는데 방해한 건 아니지요?”

 “아닙니다. 그보다, 부인은 아직 아무말도 없으신가요?”

 시마의 말에 코우노도리의 표정이 짐짓 심각해졌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서 말했다. 

 “예, 아직은. 몇번이나 말하려고 망설이는 듯 했습니다만 결국은 말문을 열지 못하더군요. 아내가 털어놓고 말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애썼지만, 방법이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뭔가 알아낸 것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이부키씨. 저는 두분의 조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춤추는 사람 그림을 몇가지 더 모아왔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제가 바로 그자를 봤다는 겁니다.”

 “그림을 그린 자를?”

 “그렇습니다. 그자가 그림을 그리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모든 일을 순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여기를 다녀간 뒤, 다음 날 아침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새로 그려진 춤추는 사람 그림이었습니다. 그건 창고의 검정색 문틀 위에 분필로 그려져 있었지요. 그 그림을 그대로 베껴왔습니다.”

 코우노도리는 코트의 안 주머니에서 수첩을 하나 꺼내더니 그 사이에 끼워둔 종이 한 장을 펼쳐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 새로운 그림이군요. 계속 말씀해주시죠.”

 시마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림을 바라보다 다시 코우노도리쪽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그렇게 말했다. 

 “저는 이걸 베껴두고 그림을 지워버렸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 아침에 새로운 그림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그걸 베낀 겁니다.” 코우노도리는 종이를 한 장 더 꺼내 역시 탁자 위에 올렸다. 

 “사흘 뒤에 그림을 그려둔 종이 한장이 더 발견되었습니다. 정원의 테이블 위에 조약돌로 눌러놓았더군요. 바로 이겁니다. 보시다시피 두번째 것과 같은 그림이지요. 이제 그림을 그리는 현장을 목격한 순간에 대해 말씀드릴 때가 된 것 같군요. 새벽 두시 경이었습니다. 저는 긴급 수술에 호출을 받고 페르소나로 갔다가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현관에 코트를 걸어두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거실쪽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어떤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맞은편 창을 바라보았습니다. 밖이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뭔가가 창고의 그늘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시커먼 형체가 낮게 포복해서 창고 모퉁이를 돌아가더니 문 앞에 쪼그리고 앉는 모습이 보였지요. 그걸 더 가까이서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다가가는데,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시노미야가 실내복 차림으로 나타났습니다. 시노미야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내게 이제 왔느냐며 묻더니 어서 들어와서 자라고 재촉하더군요. 저는 바깥에 누군가 있는 것 같으니 확인하고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시노미야는 길고양이일거라며 신경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역시 그런 장난을 치는 사람을 확인해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창을 가리고 서 있는 아내를 부드럽게 밀어내고서 밖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시노미야가 제 어깨를 잡았습니다. 시노미야가 언뜻 창밖을 봤는데,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 어깨를 쥔 시노미야의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시노미야는 곧 입을 열었습니다.

 ‘사쿠라, 우리 여행이라도 갈까? 잠깐 멀리 갔다오자.’

 그렇게 말하는 시노미야의 표정은 창백했고, 간절해보였습니다. 저는 그 말에 당황해 입을 열었지만 아내의 표정을 보고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시노미야…’하고 이름을 불렀을 뿐입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고, 곧 시노미야는 그런 간절한 표정은 지은 적 없다는 듯 지친 기색으로 그냥 해본 말이라며 잊어버리라 말했습니다. 그리곤 한번 더 정원 쪽을 흘깃 보더니 몸을 돌려 다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당장 나가서 창고 주위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이미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다 그런 아내를 두고 차마 밖으로 나가지 못하겠더군요. 결국 그날은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확인해보니 창고의 문짝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벌써 두번이나 등장한 그림이었습니다. 또한 이 짧은 그림도 아래에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코우노도리는 다시 종이 한장을 꺼냈다. 시마는 그 종이를 건조한 눈길로 힐끗 봤다가 이내 놀란 듯 자세를 바로 하고서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내 시마가 입을 열었다. 

 “이걸 처음 그림에 붙여서 그려놓았던가요, 아님 뚝 떨어진 곳에 그려놓았던가요?”

 “처음 그림과 떨어진 곳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시마는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코우노도리를 바라보았다. 시마의 눈빛에서 그가 퍽 흥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는 간신히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 시마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이부키가 말했다. 

 “어, 그럼 계속 말씀해주세요.”

 “이제 더 이상 말씀 드릴 내용은 없습니다. 저는 분명 그자의 정체와 그 이상한 그림 신호의 의미도 알고 있는 것 같은 아내가 자꾸 일들을 숨기는데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시노미야는 솔직한 사람이고, 그런 그가 뭔가를 제게서 숨기고 있다면 그건 저를 걱정해서일거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게 분명하니까요.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마는 곰곰히 생각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여기 런던에서 계신 곳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지요?”

 “예, 많이 멀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차를 타야합니다.”

 “혹시 런던에서 하루 이틀정도 머무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오늘 안으로 돌아가야합니다. 밤에 시노미야를 혼자 둘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먼저 퇴근하는데, 저녁에는 같이 집에 있자며 아닌 척 불안해 하더군요.”

 “부디 코우노도리씨가 힘이 되어주세요.”

 “물론 그래야지요.”

 이부키의 말에 코우노도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코우노도리씨가 여기 머물수 있다면 같이 댁으로 내려 갈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옳은 말씀이십니다. 일단 그림은 여기 맡겨두시고 돌아가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댁을 찾아뵙고 사건에 대해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마의 말에 이부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시마쪽을 바라보았다. 이부키는 코우노도리가 가져온 종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테이블과 시마를 번갈아 곁눈질 하다가 코우노도리가 코트를 집어 들고 자리를 뜨려하자, 허둥지둥 그에게 향했다. 

 “아, 배웅은 괜찮습니다.”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부드럽게 말하는 코우노도리가 밖으로 걸어나갔다. 이부키는 문 밖으로 고개를 쭉 빼곤 “조심히 가세요!” 하고 인사한 뒤 문을 닫았다. 시마는 의자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두드리다, 이부키가 문을 닫자마자 벌떡 일어나 종이를 들고선 칠판 앞으로 향했다. 그는 칠판에 코우노도리가 새로 가져온 종이의 그림을 전부 베껴 그리더니 팔짱을 끼고서 그것을 노려보았다. 이부키는 그런 시마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뭔가 알아낸거야?”

 “영어 알파벳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가 뭔지 알아?  내가 읽어보라고 했던 논문에 따르면, 그건 <E>야.”

 “E?”

 “이걸 봐. 여기 칠판 이쪽에 적어둔게 이번에 코우노도리씨가 들고 온 암호중 하나인데, 두개의 <E>사이에 3개의 글자가 들어 있는 단어가 있지. 그게 뭘까?”

 “음… <EAGLE(독수리)>?”

 이부키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시마는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가, 이부키의 뻔뻔한 표정에 말을 잃곤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상황을 생각해봐. 시노미야씨가 그림을 그린 범인에게 가려는 코우노도리씨를 막아선건 자명하지. 그건 범인을 안다는 거야. 이 사건들이 시노미야씨의 과거와 관련 있다는 것도 뻔히 보이는 사실이고.”

 “그래서…?”

 “코우노도리씨가 예전에 말했던 편지 기억해? 그 편지의 겉봉에 써 있었다던 이름을 생각해봐.”

 시마의 말에 이부키는 인상을 찌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 곧 고개를 들었다. 뭔가 깨달은 듯 이부키는 눈을 크게 뜨고선 시마를 쳐다봤다가, 분필을 들고 칠판에 글자를 적어나갔다. 

 “시마…! 이거라면 나머지는…!!”

 “이제 암호를 해석하는 것도 시간 문제지.” 둘은 잠깐 서로를 바라보다, 곧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서둘러 그림들을 해석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두시간동안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여러장의 종이에 그림과 문자를 가득히 그려넣었다. 작업은 조금씩 진척되었다. 둘은 난관에 봉착했을 때는 한참이나 서로 이야기해가며 내용을 수정했고, 성과가 있을 때는 손을 마주쳐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다. 마침내 둘은 영어와 그림이 뒤섞인 종이를 들고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럼,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내야겠네.”

 “미국인 일 테니까, 아마 하무씨가 알고 있을 지도 몰라.”

 “그럼 내가 물어보고 올게!”

 이부키는 흥분한 얼굴을 하고서 손살같이 방을 나섰다. 시마는 그런 이부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얘기가 조금 길어지는지, 시간이 꽤 흐르고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이부키는 방으로 돌아왔다. 

 “좀 늦었네?”

 “응, 이것 저것 많이 들었어. 남은 거 정리는 다 끝난거야?”

 “거의. 손에 있는 건 뭐야?”

 “아, 코우노도리씨에게서 편지가 왔더라고.”

 “방금 온거면 집에 도착하고서 거의 바로 부쳤나본데. 어디 확인해보자.” 코우노도리의 편지에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벤치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바로 동봉한다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긴 그림이 있었다. 그걸 본 시마는 그들이 암호를 풀어나갔던 테이블로 향해 그림을 올려놓곤 서로 번갈아 보며 그림을 대조해보았다. 둘은 그 기괴한 그림 띠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불현듯 놀란 표정을 짓고선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의 얼굴에는 근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무씨가 에이브 슬레이니라는 사람에 대해 뭐라고 말했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카고에서 가장 위험한 악당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이부키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지고 심각해졌다. 이부키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시마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코우노도리씨의 집으로 가야해.”

 “빌어먹을. 마지막 기차 시간이 이미 지났어.”

 시마는 기차 시간표를 들춰보더니 테이블을 손으로 내리쳤다. 시마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내일 첫 기차를 타고 바로 그쪽으로 가자.”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텐데.” 이부키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침이 되자마자 서둘러 기차를 탄 둘은 역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 

 “어? 이부키씨, 시마씨! 오랜만입니다. 사건을 조사하시러 온건가요?”

 “코코노에! 오랜만이야.” 반가움도 잠시, 코코노에의 입에서 나온 ‘사건’이라는 단어에 둘은 금새 심각해졌다. 이부키가 뭔가를 묻기도 전에 코코노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런던에서 온 의사는 못 보셨나요? 코우노도리씨는 몰라도 서두른다면 시노미야씨는 아직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코코노에의 말에 이부키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빛이 스쳤다. 시마는 숨을 들이마시더니 코코노에에게 말했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려고 온건 맞지만, 거기에서 일어난 일은 전혀 몰라. 괜찮다면 같이 이동해도 될까?”

 시마의 말에 코코노에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그의 옆에 함께 있던 순경에게 몇 마디를 하더니 둘을 마차로 안내했다. 

 “말한 것처럼 코우노도리씨와 시노미야씨가 총에 맞았어요. 하인들 말로는 부인이 남편을 쏘고 자살했다고 하던데, 아직 조사중입니다. 그런데 사건 때문에 온 게 아니라면 이쪽에는 무슨 볼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두분 지금은 사립탐정 일을 하고 계시니까…코우노도리씨나 시노미야씨가 뭔가 의뢰를 하셨던 거에요?”

 코우노도리의 말에 이부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본 전 직장의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완전히 낙담하여 별로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코코노에만 당황하여 어찌 할 줄도 모르고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저택으로 향하는 마차에는 드물게도 내내 침묵이 흘렀다. 그들이 탄 마차가 오는 걸 보고서 그쪽으로 달려온 진바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시마! 이부키! 진짜 오랜만아닌가? 아마 둘이 경찰을 그만두고선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사건이 발생한 건 겨우 오늘 새벽 세신데, 어떻게 벌써 런던에서 소식을 듣고 여기까지…”

 진바의 말에 코코노에는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두분은 이런 일이 생길거라고 예측하고서 사건을 막을 생각으로 여기 왔다고 하더라고요.” 코코노에의 말에 진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차를 물리고서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진바는 의아한 얼굴로 셋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코우노도리의 의뢰를 받았던 거면 우리는 모르는 증거를 갖고 있겠군. 사람들 말로는 둘의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해서, 의아하던 참이었는데.” 정원을 가로질러 걸으며 대강의 이야기를 들은 진바의 말에 이부키가 답했다. 

 “저희에게 있는 증거라곤 춤추는 사람 그림 뿐이에요.” “그림이요?”

 이부키의 말에 코코노에가 난색을 표했다. 

 “그건 차차 설명할게요. 음… 진바씨, 저희는 이 사건을 같이 조사하고 싶은데 혹시 괜찮을까요? 그게 어렵다면-”

“아, 그건 괜찮고 말고. 너희랑 같이한다면 우리도 좋지.”

 시마의 말에 진바는 호쾌하게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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