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회할 짓만 저지른다.
그래서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너를 찾았다.
연 류화.
아무짝에 쓸모 없는 쥐.
류화.
친우들에게 그저 다정한 이.
화야. 나의 화.
…이건… 이상하기도 하지.
연 류화가 눈을 떴다. 조용한 방 안에서, 눈만을 몇 번 깜박이다가 그저 천천히 다시 눈을 감는다. 저번에 보았던 극단의 연극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기에. 어찌 저리 사랑을 하지,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정도로, 난 저리 살지는 못할 텐데. 이기적이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쥐라서. 비아냥거림이 연 류화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연 류화는 그리 좋은 이가 아니었기에, 그저 이러한 작은 변화에도 감정을 마구 잡아 흐트릴 수 있는 것이었다. 류화는 비틀렸고, 또 아둔하고, 눈 앞의 사정에도 그저 눈을 가리는 이였기에, 네가 나타났을 때에도 부러 모진 것들을 내뱉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하지도 않은 모진 말을 내뱉고, 창 밖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뱉고, 그럼에도… 그럼에도 너를 온전히 미워할 수가 없어서. 네게 있어서 무슨 일이 있겠지, 무슨 일이 있을 거야. 분명, 분명… 그리 생각했는데. 아, 지독하다. 지독해. 지독하고 지독해서 눈물이 나온다. 너만 생각하면, 나는 초라하고, 동시에 기대 따위를 품었던 여인이 된다. 세상은 그리 말한다. 첫사랑은 가슴 속에 묻어두라고, 첫사랑이 첫사랑인 이유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나는 너를 기억 속에 묻었다. 다시는 꺼내보지 않을 사랑스러운 상자 안에 넣어서, 자물쇠를 잠그고, 이따금 다시 보고 싶을 때 상자를 만지는 식으로.
연 류화는, 다정한 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 성질머리는 어찌나 더러운지 결국 타인을 향했고, 분노는 속에서 잔잔히 끓어올라 식을 줄을 몰랐다. 나는, 네가 생각한 연 류화가 아니다. 더욱이 추악하고, 자신을 밑바닥에서 저 수렁으로 집어 내리 꽂을 정도로 바랜 이다. 네들이 싫다. 네 종족이 싫다. 네 종이, 나한테 상처입히는 것들이 싫다. 등에 닿던 목각의 감각도, 손에 남아있는 자상도, 몸 군데에 자리한 흉들도 다 네들이 준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난… 네가 아니라 너를 이루는 것이 싫다. 싫어해야만 했다. 그래야, 너는 나를 욕하고ㅡ 손가락질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내가 너를 향한 것들을 전부 지울 수 있을 테니까. 그랬는데, 왜… 왜…
“ 왜 이제 와서, 왜… “
너는 나를 나의 화라고 부르고, 나를 류화라 부르고, 넌… 왜 나같은 걸 이리도 다정하게 불러주는지. 나는… 아직도 왜 네 그 나의 화, 라는 그 말 한마디에 이리도 흔들리는지.
그 순간 직감했다. 네가 기어이 나를 부숴내릴 것이라고. 아주 사랑스럽고, 동시에 고통스럽게.
네 갈피 없는 다정은 나를 부술 것이라고. 난 네 손에 이끌리며 알 수 있었다. 네 다정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구나.
넌 타인을 애정하는 이고, 난 타인을 원망하는 이로 남겠구나. 나는, 멈춰있고 너는 나아가겠구나.
평화랄까, 습격이랄까. 그런 것들에 연 류화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보고픈 이들 낯 한 번 더 보고 차라리 바다에 뛰어들 속셈이었다. 기억이 나? 바다, 네가 그리도 좋아하던 바다. 나도 가고 싶다고 했던 곳. 첫사랑 하나를 잊지 못해서, 그 사내를 기억할 수 있는 곳에서 죽고자 한 것도 전부 연 류화다. 그저, 그리 하고 싶어서. 한 순간이라도 너를 더 기억하고 싶어서. 자물쇠를 걸어 잠그겠다고 한 것이 고작 5년 전인데. 고 자물쇠가 풀리고, 난 너를 기억하고… 너는. 넌… 여전히 나를 그저 친우로만 생각하는 듯 싶었기에 다행이었다. 적어도 이리 망가진 여자를 품에 안으려는 사내는 없을 테니까. 흉하고, 항상 울고… 솔직하지 못하고, 또 동시에 타인의 애정을 확인받아서 살아가야 하는 이를 오롯이 애정해줄 이가 있을리가. 다들 중간에 도망갈 이만 존재하겠지. 그렇기에 친우로서 네게 남으려고 했었다. 널 다시 찾은 문 앞에서, 나는, 아직도 내 아이의 잔재를 쥐고 있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뭇거리다 들어간 나를 반긴 건 다름 아닌 너였어, 해야. 너만이, 나를 반겼어. 마치, 돌아갈 장소라도 된다는 것처럼. 봐, 것 봐.
하루가 지나고
해가 지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계절이 반복될 즈음.
나는 아이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정의내렸다. 도해 너를.
조용히 화는 해를 불렀다. 그 바닷가에서.
류화는 울었다. 둘만 남겨진 바다에서. 이른바 첫사랑이라는 감정의 토로였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립고, 사무치게 외로울 때 가장 생각나는 이가 사랑일까.
아니면 처음 느끼는 것들의 대상이 사랑일까.
만일 내가 아는 것들이 사랑이라면, 그리고 그 대상을 정리하라고 한다면.
지독하게 그립고, 보고 싶고, 평생 한 명에게만 미움받고 싶지 않은 이가 사랑이라면.
나는, 아마 10년의 기간 동안 너를 사랑했으리라.
연 류화는 도 해를 사랑한다.
그 누구보다 더욱.
너는, 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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