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shing UP Daisies
You're flower that's stick in my grave
혼자는 외롭다. 하지만 여럿이 있는 것 또한 행복은 아니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가족 덕분에 나는 이제껏 혼자인 편이 편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돌연 사라졌고 실종된 아버지를 방치한 채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가정폭력 전과범인 어머니와 그녀의 고향인 미국 땅에 내려왔다. 남편을 잃은 과부의 비탄과 분노가 오로지 나를 향했지만 그리 어려운 삶은 아니었다. 물론 이방인의 삶은 때때로 쉽지 않았다. 모순적이지만 그럼에도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온전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인생을 바쳐 일궈낸 것들을 모래성 무너뜨리듯 쉽게 포기했으니. 두 번 다시 상공에 뜰 수 없다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통보를 받았으나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아하니 네가 날 불사로 만든 셈이겠다. 그러나 네가 없는 빈 집은 관짝과도 같았고 네 이름이 새겨진 자랑스러운 상패나 신분을 특정하는 정복이 걸려있는 덕에 그리움으로 곯은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네 생사가 궁금해 미칠 지경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 문자 메시지 함에 보여야 할 네 이름이 보이지 않고 은퇴한 군인의 심리치료사만이 상위에 보였다. 그때마다 나는 네 생각이 나 네가 구비한 타이레놀을 복용했다. 그 약이 상심의 격통을 진정시킬 수 있어 우울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의사의 소견 없이도 처방받을 수 있으니 끼니보다 진통제를 더 자주 챙겨 먹게 되었다.
그래. 혼자는 외로워.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네가 알지는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해가 저물어가면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클럽이 즐비한 밤의 골목에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입을 맞추었고 다음 날이 찾아오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서 과음과 약물 남용으로 자해를 일삼고 밤이 되면 또 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래도 성에 차지 못했는지 종국에는 네 형을 집에 불러들였다. 우발적인 행동이었지만 변명이 되진 않겠지. 나는 네가 알듯 먼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다. 옅은 금색의 머리카락이 비누에 달라붙어도 너는 의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시선을 사로잡는, 쿼터백을 연상시키는 너를 쏙 빼닮은 훤칠한 낯은 일시적으로 공허한 마음을 충족시켰다. 관계를 맺는 도중 나는 네가 남기고 간 옷가지에 코를 틀어박은 채 몸을 내어줬고 네 형은 군말 없이 납득했다. 네 체향에 뒤엉킨 머릿속은 온통 네 생각 뿐이었다.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게 방향을 잡아주던 네 손길이나, 군말 없이 왼편에 서 나를 이끌고 시선보다 손을 잡는 것을 선택하는 너를. 내 이름을 부르던 네 부드러운 목소리를 줄곧 떠올렸다. 너를 닮은 낯선 이에게 닳은 몸을 드러냈으나 그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뒤돌아 나가는 네 형에게 네가 보고 싶으니 조금 더 있다 가라 한 것은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내심 이 헛짓거리를 들키길 바랐다. 그래서 네 형이 즐겨 입던 겉옷을 쇼파에 걸치고, 쉽게 보이는 곳에 상처를 남기고, 테이블 위에 보드카 두 잔을 올려둔 채 정리하지 않았다. 그러니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고 피인지 와인인지 알 수 없는 검붉은 액체가 턱과 목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셨을 때 웃음이 흘렀다. 보이는 것이 네 뺨이 아니라 90도 꺾여 보이는 구두 굽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네가 집에 돌아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으니까. 피가 모자라 어지러웠지만 자세를 고쳐잡고 일어나 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네 손을 움켜 쥐었다. 너 없는 삶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네가 시키는 건 뭐든 할 테니 용서해 줄래? 마음 속으로 한 말인지 실제로 내뱉어진 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이마 아래로 계속 피가 떨어져 바닥을 적실 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정복에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네가 눈에 띄었고, 너도 그랬었다고 했지. 긴장감 없는 내가 싫다던 너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고 나 또한 우리는 함께할 수 없을 거라 떠들어놓고 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린 더 이상 같은 곳을 향해 올라갈 수는 없지만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는 있었다. 커피숍에 마주 앉아 타피오카 펄의 식감이 어떻다느니, 미니 골프와 볼링 중 어떤 것이 더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는지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녹이고, 차를 끌고 마음이 이끄는 곳을 찾아가 본넷 위에 함께 누워 별을 바라보다 온전한 밤이 찾아오면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답지 않게 관계를 정의하려던 나에게 너는 무엇이든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 혼자 잠자리에 누울 때면 종종 그때가 떠올랐다. 더는 네가 내 생각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가치 없는 사람이 되어 네 흥미가 식은 것만 같았다. 한 번 가져봤으니 이제 버려질 것도 같았다. 눈 하나로는 널 갖는다는 수지가 맞지 않았을까. 네게 반대쪽 눈을 내어주거나 내장이라도 뜯어 바치면 네가 날 돌아봐 줄까. 네 눈동자에 더 이상 사랑은 없고 인생이 좆돼버린 나를 동정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진 않을까.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바라보려 해도 너의 등 뒤에 내려앉은 밤빛에 시야가 녹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맥없이 들어 올려지는 손에 은반지가 끼워지고, 눈동자는 네게 향한 후 다시 손으로 내려온다. 그 손은 네 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곧 새로운 계급장이 달릴 정복의 옷깃을 만졌다. 반지는 크기가 조금 작네. 뺄 수 없게 된다면 오히려 그걸로 좋아. 네가 영관으로 임관한다는걸 알았으면 꽃이라도 사다 둘걸. 네가 결혼하자고 할 줄 알았다면 궁상맞게 혼자 술 마시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음식과 샴페인으로 근사한 저녁을 차려두고 얌전히 기다릴걸. 목덜미에 타인의 흔적을 남기지 말걸. 반쪽짜리 시선은 네 손을 향했고 그대로 네 약지에 똑같은 모양의 반지를 끼워 넣는다. 핏물에 젖은 금속은 보다 쉽게 들어갔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네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나도 너와 결혼하고 싶어. 매일 너와 온 집안에서 다 벗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 다른 누구도 아닌 온전히 너와 단둘이 위로하고 위로받는 삶을 살고 싶어. 내 인생의 전부를 가져갔으니 이제 네가 나의 전부가 되어줘. 날 망가뜨리고 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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