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팔사
카발라 사무소의 탐정 오르와 그의 조수 트리니티. 신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시작으로 둘의 삶이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의 사이에 단테라는 인물까지 끼어드는데….
셋이 돌아와 있었을 때는 어느새 주변이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오르가 익숙하게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오자, 거실에서 왼쪽 손목을 쥐고 있는 하르피아가 보였다. 아무래도 금색 손목시계를 막 푼 참인 듯했다. 오르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뒤에서 두 사람이 밀려 들어왔다. 그에 그는 휘청이며 간신히 벽을 잡은 채 발을 내디뎠다. “꽤 늦게 들어
“어이, 탐정님! 무사한 거지?” 짙푸른 머리를 한 이가 손을 흔들었다. 오르가 인상을 찌푸린 채 그 너머를 보려 애쓰고 있자, 그를 제치고 누군가 튀어나왔다. 레몬과 같은 머리 색…. 트리니티였다. 울먹이는 얼굴로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트리니티의 모습에, 오르는 저도 모르게 멈췄다. 그런 그와 다르게 옆의 이브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트리니티가 팔을
머리가 지끈거린다. 몸과 정신이 하나가 아닌, 둘로 나뉘어 따로 노는 듯한 기분…. 통증이 밀려온다. 공허로 잠긴 바닷속에서 끌어올려지는 듯한 감각이 자꾸만 깊이 잠드는 것을 방해했다. 꼭 죽음과 가까워진 듯한, 아니. 죽은 건가. 머리가 다시 한번 크게 울렸다. 어디에 세게 맞기라도 한 듯한 욱신거림과 함께. 지금… 잠깐. 여기가 어디지? 오르가 눈을 떴
트리니티가 어색하게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일부러 펌을 해 구부러진 머릿결을 따라 손가락으로 꼬고 풀기를 몇 번 반복하다, 손을 내려놓으며 오르를 흘긋 쳐다봤다. 트리니티는 일단 마저 산책할까요, 하며 오르의 눈치를 짧게 살폈다. 그가 작은 숨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트리니티는 다시 먼저 앞으로 나아가며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몇 분을 걸으니 거리의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길이 치솟는 새빨간 폐허. 그 속에서 드문드문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것이 소름 끼쳤다. 트리니티는 눈앞의 광경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본 적 있는 듯하면서도 처음 보는 느낌. 미묘한 기분에 속이 울렁거렸다. 뭘 하고 있었길래 내가 이런 곳에…. 그 전의 기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
쿵. 아이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는 소리가 울렸다. 아야야, 하는 소리와 함께 금발의 아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구불거리지 않는 머리를 지닌 아이, 트리니티는 잠시 그러다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의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트리니티는 어색하게 그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눈에 띄게 곱슬한 머리를 지닌 그는, 밀밭과 같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사적인 이유로 아카데메이아에 가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어릴 때 졸업하고 나서는 의뢰 때문에만 갔던가?” 트리니티가 혼잣말하듯 말을 걸자, 오르는 잠시 그를 흘긋거리곤 답했다. 그렇지. 그가 짤막하게 답을 내놓자, 트리니티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오르를 쳐다보다가 말았다. 그 뒤로 둘은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몇 번 와 본 적 없는 거리는 제법 낯설게
며칠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잡다한 얘기를 나누는 일이 없었으며, 서로 눈을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이따금 단테가 분위기를 띄우려 농담을 할 때면 사무소의 온도가 더욱 낮아지는 듯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단테가 던진 농담에 답 대신 돌아온 것은 오르의 준비는 다 했냐는 질문이었다. 그의 물음에 트리니티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단
“얘기는 다 끝난 모양이네?” 단테의 물음에 오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서 그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쳤다. 그는 얼굴을 귓가에 가까이 댄 채 오르에게 속삭였다. 트리니티가 많이 화난 것 같으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나중에 화 좀 풀어 주라며. 앞으로 의논 좀 하라는 말을 덧붙이자, 오르는 그 말을 흘려들으며
잠깐의 부유감과 이후 발이 땅에 닿았다. 단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에스카를 향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런 순간이동기 같은 편리한 게 있으면 그때도 쓰게 해 주지 그랬어? 단테의 말에 에스카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사정이 있었다. 그는 짧게 답하며 잠시 앞서 나갔다. 가볍게 주변을 훑어 보고 온 그는 적의 수가 너무 많다며 고개
“쉿.” 핏기가 덜 마른 듯 분홍빛을 띤 은은한 보라색 머리의 여성이 제 입가에 검지를 갖다 대었다. 그가 생긋 웃자, 왼눈 아래의 점이 눈에 띄었다. 머리와 다르게 선명히 분홍색을 띤 눈은 다정하면서도 소름 끼쳤다. 오르가 뒤로 주춤 물러나자, 트리니티 또한 고개를 돌렸다. “탐정님, 갑자기 왜 그러세….” 트리니티가 소리를 삼킨 비명을 질렀다. 여성은
“자, 도착했습니다. 아가씨들.” 단테가 여유롭게 차를 세우며 웃는 얼굴을 내비쳤다. 오르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그런 대사는 어디에서 배워 온 거지? 단테는 차 키를 손가락에 끼운 채 돌리며 눈을 피했다. 뭘 그렇게까지 짜증을 내시나. 자, 얼른 내리라고. 지금 안 내리면 다시 돌아간다? 오르는 이마를 짚다가 문을 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두
처음으로 ‘신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끝낸 후로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특별한 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작게는 물건을 찾아 달라는 의뢰가 오거나, 때때로 사람을 찾아 달라는 의뢰가 오기도 했다. 그렇게 자잘한 의뢰서가 쌓여 갔다. 단테는 그러한 의뢰서들의 목록을 점검하고 있었다. 지갑 찾기, 커플링 찾기, 미아 찾기…. 단테가 소파에 누운 채 목록을
드르륵…. 오르가 관 뚜껑을 살짝 옆으로 치웠다. 이내 관 전체가 순식간에 금빛으로 물들며, 오르의 손까지 영역을 뻗었다. 그는 간발의 차로 손을 떼어 제 손을 움켜쥐었다. 다행스럽게도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오르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온전히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것도 잠시, 뚜껑이 옆쪽 벽면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벽에 박히며
중심부에 다다르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모두가 오르의 빠른 발걸음에 맞춰 걸으니 원래 걸렸어야 할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단테는 도착하자마자 숨을 몰아 내쉬며 근처에 주저앉았다. 오르는 그런 단테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트리니티는 잠시 그를 지켜보기는 했으나, 이내 오르를 따라다녔다. 단테는 문득 억울해진 듯 투덜거리다 관두었다
틱, 틱…. 몇 번의 마찰음 끝에 불이 피어올랐다. 오르는 고개를 숙여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홧홧한 연기가 입안을 맴돌았다. 이윽고 연기를 내뱉자, 트리니티가 연기 아래로 다가왔다. 그리 다가오며 지은 표정은 의문에 찬 표정이었다. “탐정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해서요. 그래서 말인데, 여기 주변이라도 둘러볼까 봐요. 그러면 기억이 좀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카발라 사무소는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 준다. 때로는 애착품을, 때로는 반려동물을. 때로는… 사람을. 사무소가 찾지 못하는 것은 없다. 받은 의뢰마다 반드시 성공한다. 물론 찾을 수 ‘없는’ 상태의 것은 제외하고. “…라고 적을까요, 탐정님?” 트리니티가 주황빛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올라간 눈매가 꼭 신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