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무언가 마찰하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 안녕. …안녕하세요. ……. 오늘도 그림 그리고 있구나. …네. 십자가를 그리고 있어요. …십자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신부님. 뭐해요? ……. 응? 어제처럼 인터뷰하는 거야. …아뇨. 뒤에 있는 신부님 주머니에. 그거 뭐예요? ……. 난 모르겠는데. …그거 녹음기 맞죠. 한동안
겨울의 하얀 햇볕이 비산하는 어느 오후였다. 그늘 밑에 놓인 눈사람이 추위에 쪼그라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몸을 붙인다 한들 시간의 휘발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에델바이스는 동면에 들어간 것처럼 아주 깊은 잠에 빠졌기에 그동안은 비올라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에델바이스가 자는 동안 비올라의 잠은 도리어 부족해져 갔다. 비올라는 매일같이 그를
240419 38일째 부지런히 걸어서 외곽에 도착했었다. 그러니가 사흘 전에. 아무런 통제가 없어 잘못 도착한 건가 싶어 빙 둘러서 걸어보았다. 근데... 외곽이 이상하다... 통제도 없고 아무도 없다 너무 고요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지금 이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솔직히 두렵다… 비올라가 없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은 그런
※천주교적 소재를 담고 있습니다. 민감한 종교적 소재에 유의에 주세요. 또한 고증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다소 존재합니다. 창공에 찬란한 빛이 가득한 녹음의 계절이었다.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 지방에 있는 한가한 교구. 작고 고풍스러운 성당. 뒷마당에는 검은 사제복들이 햇볕에 걸려 펄럭였다. 에델바이스는 이 자그만 성당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
에델바이스 감염 69일째 .. . . . . . . . . . . . . . . .. . . . . . .
에델바이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불침번을 서고 있다. 입김이 푸른 균열을 만들며 뻗어나갔지만, 햇볕이 상냥해서 다행이었다. 주유소 주변을 빙 돌면서 무언가 달라진 것은 없는지, 그것의 흔적은 없는지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다행히 별다른 점은 찾지 못해 다시 주유소 건물 앞으로 가던 차였다. 잎사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델바이스는 소리가 난 곳을
250123 에델바이스 감염 63일째 에델바이스가 늦잠을 자고 있다 숨은 잘 쉬는데… 어제 너무 무리했나? …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조금 더 기다려볼까…… 일어나 멍청아
“언제봐도 네가 불 피울 줄 아는 건 신기해.” “하하하, 그냥 상식이랄까요?” “능숙하잖아.” “이건……” “아~ 됐고. 배고프다.” 늘 그렇듯 비올라가 에델바이스의 말을 잘랐다. 이들의 대화는 언제나 같은 방식이었다. 에델바이스는 그럴 때마다 조금 멋쩍어졌지만, 굳이 이어 말하지는 않았다. 나름의 배려였다. 해가 짧아짐에 따라 추위가 심해져
비올라는 포근한 이불 속에서 간만에 좋은 꿈을 꾸었다. 할아버지의 자늑자늑 연주를 듣는 듯한… 오감의 환희를 노래하는 듯한 그 달콤한 선율은 얼마 안 가서 깨졌다. 편안한 꿈속에서 무언가 싸한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영 떠나버릴 것처럼 굴던…… 눈이 번쩍 떠졌다. 비올라는 눈을 다 뜨기도 전에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짚어 확인했다. 온기가 없이
에델바이스 감염 7일째 에델바이스가 사라졌다 …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근처에 있는 경찰서에 들렀다. 지도라도 볼 참이었다. 앞으로 어디에 가야 할지 갈피를 붙잡기 위해서다. 규모가 큰 건물은 다 둘러봤는데 사람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으니 수상쩍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경찰서에는 인스턴트 커피 믹스나 간단한 다과가 있었고, 벽면에는 N시의 지도가 크게 붙어있었다.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한참
평소와 같은 나날이었다. 에델바이스가 이 학교로 전학을 온 지는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다. 에델바이스는 성실히 생활했으며, 평판도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무난하게 지내고 있던 차였다. 그러니까 어떤 특별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스한 가을 햇빛이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어느 날이었다. 에델바이스는 담임 선생님
241203 에델바이스 감염 12일째 . . . . . . . . . . . . . . 글쎄… 놀랍다고 해야 할지. 에델바이스의 감염 부위는 변이를 멈췄다. 이게 무슨 현
우연히 들린 공연장에서 콩쿠르가 열리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지정된 곡을 연주하는 참가자들. 악보를 충실히 따르는 해석들. 콩쿠르는 원래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한 참가자가 나왔다. 걸음걸이부터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는 무대 중앙에 서자마자 꾸벅 인사한 뒤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옅어지기도 전에 연주를 시작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순식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드디어 학교를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곧장 근처 마트로 향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길목마다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보니 더 와닿았다. 그러나 난장판이 된 길과는 달리 누구도 없이 한산했다. 이상하리만치… “이미 다들 어디론가 가버린 걸까요? 대피소라거나…….” “대피소에 간 거라면 다행이지….
꼭 살아남아
240319 7일째 그것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소리에는 그닥 예민하지 않으며 물과 햇빛을 좋아한다. 정말 식물같다… 생긴 것도… 그것은 발자국 대신 꽃을 남기는데 이것은 그것의 신경과 연결되어 있어 건드리면 그것이 달려들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그것을 피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밤. 대신 밤에는 그것의 꽃 향기에 의해 환각이나 두통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어느정도의 무기를 갖추었다. 비록 커다란 트로피일 뿐이지만… 상황이 그것밖에 허락해주지 않았다. 비올라 또한 이제 학교에 계속 머무는 것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둘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바닥도 잘 살피며 보건실 밖으로 향했다. “조심해서 따라오고 있지?” “네, 그럼요. 전 괜찮으니까 앞에 보세요.
해가 뜨긴 뜨는구나.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멸망해버릴 줄 알았는데. 그런 도피적인 감상부터 들었을까? 어쨌든 아침이 밝았다. 에델바이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비올라를 바라봤다.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제저녁을 대충 챙겼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조리실이라도 털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커튼을 살짝 젖혀 창밖을 봤다. 식물 같은 무언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