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세상은 멸망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지구라는 행성의 이름으로 치환된다. 오랫동안 존재해온 별인만큼 멸망의 속도는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온이 올라가고, 숲이 부서지고, 강이 밑바닥 깊은 곳으로 갈라졌다가 바다가 하늘까지 덮을 만큼 넘실거렸다. 눈보라와 비바람이 인류가 만든 것들을 으깨고 후려치고 걷어찼다. 잠잠해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