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서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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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은 기억이 있다. 그 날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선명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 나오지 않는 목소리, 들이켜지지 않는 숨, 움직여도 아무런 반항도 되지 않는 미약한 꿈틀거림따위가. 어느 날은 그것이 소름이 끼쳐 숨이 막혔고, 어느 날은 내 목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목 안이 졸아드는 느낌이 났다. 어느 날은 세상이 다 무서웠고, 어느 날은 세상에
에카르트 에스 셀레스트 윈체스터는 피로했다. 태어나기를 영국의 후작위를 이을 사람으로 태어난 윈체스터는, 자신의 이름보다도 먼저 윈체스터 후의 후계자이자 후트샤 백작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졌으며, 윈체스터가의 공자로서의 처세를 배워야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보다도 먼저 배운 것은 가문에 대한 소개였으며, 사람간의 인간적인 정보다는 타인과 선을 긋고 자신
시작은 큰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학교와 가정에서 받는 교육을 제외하면 자주 바깥을 나돌아다녔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집에 남아있는 시간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혹은 내게 시간이 남는 것을 못 견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멍하니 있는 시간이 누군가가 계속 염원했을 시간이라는 것을 지워내지 못했기에, 나는 매 순간 할 일을 찾아 헤맸다. 어떤 날은 그것이
그 날은 비가 왔어요. 12학년이 되어 옮긴 교실은 항상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오늘은 바깥에 내리는 비를 머금어 눅눅하기까지 했죠. 같은 교실에 있는 아이들도 웃고 떠들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은은하게 퍼진 불쾌감은 나까지 알 수 있었죠. 그 뿐일까요, 나도 몸에 들러붙는 천들이 불쾌해 몇 번을 옷깃을 팔랑거렸는지 몰라요. 친구들 중에는 일부러 눅눅해진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