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최 제플린
서문 사람은 왜 글을 쓰는가? 창조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창조란 무엇인가? 온전히 새로운 것만이 창조라 칭해질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새로운 것이 지나치게 많다고 칭해질 법한 세상에 살고 있다. 모방은 태초부터 배움의 시작이었다. 표절은 지리멸렬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진 자들의 것이었으며, 패러디는 감히 재치를 가지지 않으면 손에 쥘
1. 굴러가게 하는 것. 진보는 마치 역사라는 길을 굴러가는 묵직한 수레라고 할 수 있겠다. 수레, 그렇다. 이 악동같은 수레는 움직이지 않을 때면 한참이나 진창에 빠진 것처럼 멈춰 서다가도, 어느 순간 내리막길을 만나거나 새 바퀴가 달리게 되면 다리 여덟 개 달린 말처럼 빠르게 달리는 것이다. 그러니 수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퀴라고 단언한다. 때
항구도시에서 온 시인 이 즈앙이라는 청년은 마르세이유 출신이었다. 그의 조부는 그 유명한 '마르세이유 파이앙스', 그러니까 정교한 장식이 덧입혀진 도자기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으니 출신 성분은 부르주아라 할 수 있겠다. 간혹 우리는 성분과 성질에 대해 헷갈리게 되는데, 성분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어떤 사회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만일 즈앙에게
그라스의 불꽃 작은 격자무늬의 창과 허름한 문 뒤쪽으로 무엇이 보이는가? 만약 당신이 파리에 있다면 그것은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는 늙은이가 될 수도 있고, 만약 당신이 루앙에 있다면 잔 다르크의 성화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수사일 수도 있다. 허나 그라스에서는 정제된 장미의 영혼이 담긴 아름다운 향수병과 히아신스의 달콤한 냄새, 금작화, 오렌지
보르도의 회의주의자 그 이름과 같이 넓고도 광활한 지롱드 강을 발원지 삼아 흐르는 가론 강이 구불구불한 몸을 틀어 비껴가는 도시 하나, 그 이름은 보르도였다.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비껴가는 것, 강가의 변두리에서 태어난 악동이 하나 있었으니 그 이름은 대문자 R, 평원을 품은 남서부의 소년이었다. 가론 강과 도르도뉴 강이 그 매서운 등을 돌려 갈라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