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대화

2) 가끔은 어둠이 빛의 역할을 하기도

빛과 어둠 by 명원
4
0
0

Main. 소고기미역죽, 검은깨죽

sub. 홍시


한동안은 일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이런 일상의 장점은 내가 평소에는 누리지 못할 희귀한 것이지만, 반대로 단점 또한 명확하다. 이 꿈같은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것. 그래도 첫눈이 온다고 즐거워하는 너를 보니 아주 조금만 더 안주해보기로 한다. 두껍게 입으라고 말해도 말 안 듣고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치고 나온 네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잠깐 보다 들어갈 테니 상관없겠지. 신나서 움직이는 입술이 애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릴 때 기억을 이야기하며 들뜬 네게 맞장구를 쳐주며 제 추억도 이야기해본다. 그렇게 있으니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고, 이제는 추운 듯 덜덜 떨며 들어가자고 말하는 너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온다. 두 명분의 찬공기가 집안을 감싸고 도는 듯하다. 얼른 간단하게 씻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나른해져 졸음이 밀려든다. 옆에 누운 너도 마찬가지인지, 벌써 고른 숨소리가 들리기에 그 숨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눈을 감아본다.

*

아침은 언제나 순식간에 찾아온다. 두껍지 않은 커튼 사이로 드는 빛에 눈을 뜨면 며칠간 머물며 익숙해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 잠든 너를 깨우려 손을 뻗으니 제법 열감이 느껴져서, 네 이마에 손을 올려 온도를 확인한다. 제법 뜨겁다. 아무래도 몸살이구나 싶어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니 어제 나갈 때 옷을 제대로 챙겨 입었으면 좋으련만. 안 그래도 감기기운이 있는 듯 기침을 자꾸 하더니. 일단 약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싶어 찾아보지만 웬일로 약도 상비되어 있지 않다. 평소같으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사다뒀을 텐데. 결국 임시방편으로 차가운 물에 수건을 적셔 네 머리에 먼저 올려준 뒤,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선다. 근처 약국에서 감기약과 다 쓴 상비약 몇 가지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문을 연 죽집이 보여 소고기 미역죽을 하나 포장하고, 슈퍼에 제철이라고 들어온 홍시도 몇 개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다가가 깨우려 하니 네가 ‘두일아……’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플 때 찾는 사람이 나라니. 너도 참. 묘한 얼굴로 너를 바라보다 조심스레 흔들어 깨운다.

“아야, 일어나봐라. 죽이랑 약 사왔응께 먹고 자라.”

정신을 못 차리는가 싶던 네가 겨우 정신이 든듯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면 상을 가져와 네 앞에 펴고 사온 소고기 미역죽을 꺼내 덜어낸 그릇과 수저를 네게 건넨다. 아직 뜨끈한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죽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난다. ‘좀 먹어라. 먹어야 약도 먹지 않겄냐.’ 내 말에 겨우 한 술 뜨기 시작하는 널 가만히 지켜보다 제 몫으로 사온 검은깨죽도 한 술 뜬다. 고소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이 꽤 나쁘지 않다. 종종 아플 때가 많은 너이니, 오늘 사온 죽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겠구나 생각하며 평소보다 조용히 식사를 이어간다. 몇 술 못 뜨고 내려놓은 네가 누우려 하기에 약은 먹고 자라며 먹다말고 일어나 감기약과 해열제를 챙겨먹인다. 쓰다며 인상을 찌푸리는 네게 홍시는 먹을 수 있겠냐 묻자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껍질을 까 접시를 받쳐 숟가락과 함께 쥐어준다. 죽을 먹던 것과 달리 홍시는 제법 잘 먹는다. 사오길 잘했네. 비틀거리는가 싶다가도 중심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다 자신도 마저 식사를 하고, 네가 다 먹고 옆으로 밀어둔 홍시 그릇과 함께 뒷정리를 한 후 약기운에 다시 잠든 너를 지켜본다. 역시, 눈을 감고 있으나 뜨고 있으나 다 알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불을 고쳐 덮어준 뒤 방의 온도를 조금 더 올린다. 자고 일어나면 제법 괜찮아져있길 바라며.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