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모란
친구로 생각한다고, 조용히 그 말을 곱씹는다. 어쩌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환한 빛을 갑자기 마주한 사람처럼 눈을 조금 찡그렸다가, 금세 평소의 표정을 되찾는다. 괜히 너와 대화하고 있노라면 이런 이질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환하게 반짝이는 빛을 가까이서 보다 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것처럼, 너 같이 빛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보다 보면 꼭
V.B의 성은 좁고 견고했다. 그는 그 성에서 평생을 자랐으며, 성에게 지켜지고 성을 지켰다. 성은 'B'이기도 아집이기도 했으나 결국은 V.B 그 자체였다. 그러니 성의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V.B에게 B도, V도 남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존재를 정의하는 단어를 하나씩 걷어낸 후에 남는 것은 고작 구멍난 외롭고 초라한 인간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