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런 별무생

[동런] 별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시나요? (7)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미친 여름은 시간이 지날 수록 기세등등하게 위세를 떨쳤고 우리는 점점 파김치인지, 파절임인지 아무튼 말라 비틀어져가는 야채가 되었으며 뺨을 타고 흐르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날씨가 이 지경이 되자 학교도 방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 고등학교의 방학은 그냥 한여름부터 가을 전까지의 기간을 일컫는 말일 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어제 본 애들이 오늘도 등교했다는 얘기다.

“아, 더워…….”

“버텨.”

“가위바위보 해서 생일 제일 빠른 사람이 교무실에서 에어컨 켜고 오기 하자.”

“그거 다른 선생님이 발견하면 아무 소용 없는 거 아냐?”

“1초라도 시원하게 있고 싶어. 이거 고등학생 학대야.”

지독한 더위에 모두가 헛소리를 해댔다. 심지어 수업하고 있는 선생님도 제정신이 아닌 듯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말을 또 했다. 교실 안에 남자애들 땀냄새가 진동을 했다. 끔찍하다. 이런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끔찍하다. 이동혁은 결국 괴성을 지르며 교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이동혁을 신경 쓰지 않았고 결국 이동혁은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방학 보충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 사실 거짓말이다. 전기세를 걱정하는 천국은 없겠지. 6평 남짓한 원룸에서는 에어컨을 24시간 동안 틀어도 전기세가 5만원도 안 나온다고 그러던데 그래도 무서워서 틀 수 없었다. 전기세는 후불이잖아. 엄마는 코딱지 만한 돈 아끼려다가 더위 먹어서 쓰러지지 말고 에어컨을 틀라고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선풍기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더니 나만 에어컨을 켜고 시원하게 지내기가 미안했다. 그래도 너무 더우니까……. 최대한 나 자신과 타협해서 에어컨은 딱 30분만 제습으로 틀어놓고 29분에 울리는 알람을 끄면서 몸부림을 치다가 31분에 겨우 껐다.

“괜히 몸부림 쳤어.”

에어컨을 끄자마자 더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 시원함을 만끽하고자 얌전히 누워서 꼼짝도 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이동혁이었다.

“왜…….”

[어이, 이동혁 마누라. 왜 이렇게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아직 집에 안 갔어?]

“집이 더워서……. 왜 전화했어? 중요한 거 아니면 빨리 끊어. 핸드폰까지 뜨거워지면 나 못 살아.”

[집 주소 불러. 에어컨 켜주러 갈게.]

농담끼가 다분한 목소리였지만 이동혁은 정말로 우리집에 와서 에어컨을 켜고 누워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알려줘도 이동혁한테는 절대 안 알려줘야지. 왠지 알려주면 우리집 벨튀할 것 같다.

“어. 끊을게.”

[야, 잠깐. 잠깐. 진짜 끊으려는 거 아니지? 오늘 별똥별이 다이빙하는 거 구경할 거라며. 명당에서 보고 싶지 않아?]

이런 미친놈.

“꼭 명당에서 보고 싶어. 명당이 아니면 안 돼.”

수화기 너머로 이동혁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이 웃거나 말거나 나는 간절하게 애원했다.

“이번 유성쇼를 놓치면 다음 유성쇼는 372년 뒤랬어. 다시 태어나야 볼 수 있단 말이야. 이번 한 번만 도와주라.”

[서방님, 부탁해요. 라고 해봐.]

“야. 끊어.”

[…… 는 말은 농담이고, 이따가 8시 30분쯤 학교 앞에서 보자.]

“그래.”

녀석이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얼른 전화를 끊었다. 기대감에 심장이 콩콩콩 뛰었다. 뜨거워진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수도권에서도 유성쇼를 관람할 수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유튜브에서 유성쇼와 관련된 영상을 보고 나니 더욱 설레었다.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약속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 게 있으면 늘 그렇듯, 시간이 유독 느리게 흘러갔다.

집에 있어봤자 할 일이 없어서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다. 7시가 돼도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일몰이 시작되자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사위가 어두워졌다. 선생님들의 퇴근 시간도 훌쩍 지난 학교 앞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심심해진 나는 교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노트에 낙서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핸드폰을 아예 가방에 넣고 몰두하고 있는데, 노트에 사람 모양으로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동혁이 떨떠름한 얼굴로 노트를 보고 있었다.

“왔어? 인기척 좀 내지. 깜짝 놀랐다.”

“야. 반경 500m에서도 들리게 쿵쿵 걸어왔는데 네가 못 알아챈 거야.”

“웃기지 마, 진짜.”

“웃기는 게 아니라 나는 사실을 말한 거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이동혁의 말을 무시하면서 노트와 연필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보니 어느새 8시 30분이 지나 있었다.

“저녁 먹고 가자. 나 저녁밥 안 먹었어.”

“저녁?”

이동혁이 따라오라는 듯 먼저 걸었다. 학교 인근 편의점 방향이었다. 나는 영 미심쩍은 눈으로 이동혁을 바라보았다.

“빨리 먹을 수 있어? 9시 34분에 절정이라고 했단 말이야.”

“런쥔아. 너는 내가 뭘 못하는 걸 본 적 있어?”

“너 세계지리 못하잖아.”

“어. 그러네.”

이동혁과 나는 또 싱거운 소리를 해댔다. 매일 매 순간 이러는데 매번 질리지 않고 재밌는 게 신기했다. 저녁을 안 먹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둘이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하나씩 먹었다. 컵라면을 다 먹고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나는 삼각김밥을 양손에 들고 호호 불면서 그에게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어? 티 났냐?”

“너 원래 힐 말 있으면 눈을 못 보고 계속 딴 얘기만 하잖아. 뭔데 그래?”

이동혁은 긴장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 건지 아무튼 심경이 제법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동혁은 습관적으로 손톱 옆의 거스러미를 뜯으며 아무 말도 안 하다가 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물었다.

“런쥔아. 너……. 혹시 미대 갈 거야?”

“아니?”

내가? 미대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동혁이 나보다 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야?”

“어. 내가 거길 왜 가?”

“아니, 나는 아까 네가 그림 그리고 있길래……. 근데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진짜 못 그렸길래 솔직하게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 이거 혹시 나 멕이는 거냐? 그림 못 그려도 취미로 그리고 싶을 수 있는 거지.”

“아. 진짜 다행이다. 마음이 개운해졌어. 속이 다 시원하네.”

이동혁은 개운하다 못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걸 그냥 확 젓가락으로 이마를 한 대 때릴까 했지만 너무 좋아 보이는 얼굴이라서 참았다. 조금만 덜 행복해 보였어도 젓가락으로 저 동그란 코를 꼬집어버리는 건데. 이동혁은 실없이 웃으면서 달걀 껍질을 까곤 내게 내밀었다.

“그럼 기영이랑 시현이한테 나 건들지 말라고 한 것도 사실 아니지?”

“그건 진짠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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