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창백한 푸른 점

동런

0.

 

집에 돌아가고 싶어.

 

왜?

 

거기엔 네가 없잖아.

 

악의 없는 말투로 고백하며 인준은 안경다리를 접어 안경집에 집어넣었다. 곧이어 피곤한 듯 두 손등이 눈두덩을 문지른다. 날렵해진 턱선과 각질이 일어난 선 고운 입술이 흐릿한 시야에 들어찼다 사라지고, 손은 단정히 이불자락 위로 도로 놓인다. 그 위에 푸르게 자리 잡은 점. 동혁은 그 희끄무레한 손등을 멀거니 쳐다보다 눈꺼풀을 닫았다. 웅웅거리는 소음과 함께 돌아가는 에어컨의 냉기가 고요히 가라앉은 어두운 집 안으로 방 밖에서 꺾여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들어찼다. 부유하는 먼지를 들이마시며 동혁은 생각했다. 저게 거짓말이 아니면 어떡하지.

 

동혁과 인준은 서로에게 실루엣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사랑했다. 새벽과 밤의 사이. 몇 시간 안 되는 그 틈바구니는 특히나 동혁에게 있어 애틋했는데, 불을 켜 놓았을 때는 어디를 어떻게 괴롭혀도 인준이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준은 어둑한 가로등 불 아래에 숨듯이 누워 살을 맞댈 때만 동혁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응, 응, 하고 막히는 소리도 냈다. 동혁은 그럴 때마다 저보다 품도 키도 조금씩 더 작은 인준이 아기 같다고 감히 느꼈다. 동혁은 소름이 오른 팔뚝을 거칠게 쓸며 매트리스 위에서 꿈질꿈질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피부에 남은 땀이 완전히 휘발된 뒤 찾아오는 한기가 익숙지 않았다. 몸을 섞은 뒤에 끌어안고 뒹굴지 않은 지가 얼마나 됐더라. 한참을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을 인준이 마침내 부스럭대며 옆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혁은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인준은 동혁의 등에 등을 기대고 매트리스 위에 눕는다. 가볍고 또렷한 무게와 팔락이며 흩어지는 머리칼이 느껴졌다.

 

에어컨이 다시금 웅웅 울었다. 샛노란 가로등 불빛이 두어 번 깜빡이고 밤벌레가 창문에 타닥 부딪혔다. 동혁은 잠시 망설였다가 천천히 돌아누웠다. 숨결이 인준의 목덜미에 쏟아졌다. 뒤통수에서 풍기는 익숙하고 따뜻한 샴푸향. 미동 없는 몸. 열린 채 방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캐리어가 먼빛으로 보였다. 동혁은 머뭇거리며 손을 든다. 어깨를 감싸 쥐고 토닥인다. 인준은 고요하더니, 느리게 꿈지럭거리며 그대로 동혁의 품에 파고들었다. 동혁은 인준의 어깨에 눈두덩을 묻은 채 깊고 애타게 숨을 들이쉰다. 드디어 손을 뻗어 마른 상체를 느리고 힘있게 끌어안는다. 인준은 저를 단단히 가둔 동혁의 오른손을 겹쳐 잡아다가 제 왼쪽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동혁은 선명히 튀어나온 뼈 아래로 차분하게 울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인준의 검지를 매만졌다. 차갑고 축축했다.

 

 

1.

 

둘은 갓 스무 살이 되던 겨울에 처음 만났다. 그닥 건전한 루트는 아니었다. 수능을 말아먹고 정시 원서 접수 기간을 눈물로 보낸 뒤 재수를 하기로 막 결정한 참이던 동혁은 새벽 다섯 시에 강남의 한 이자카야에서 술과 피곤에 쩔어 룸 구석에 젖은 휴지처럼 박혀 있다가 인준에게 걸려 부엌 한구석의 라꾸라꾸에 던져졌다. 무시무시한 표정과 꾹 다물고 있던 입, 힘이라곤 없게 생긴 팔다리 때문에 질질 끌려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던져질 줄 알았는데. 기합 한번 없이 늘어진 몸을 들어올려 이불 위에 내려놓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옮겨지는 내내 자는 척하다 진짜 잠들어 버린 이동혁은 몇십 분 뒤 눈을 뜨자마자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여기가 어디냐, 왜 저를 길바닥에 내버리지 않으셨냐 황송한 목소리로 물었다. 황인준은 마른수건으로 설거지를 마친 식기들의 물기를 닦으며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 이 날씨에 길거리에 내놓으면 얼어죽으실까 봐서요.

- 아……. 감사합니다.

- 택시 타셔야 되면 한 시간 뒤에 할증 풀리고 첫차도 삼십 분 남았어요. 일곱 시에 가게 문 닫을 거니까 있다 가세요.

 

친절함을 가장한 싸늘한 말씨. 아 예. 동혁은 무안해진 얼굴로 꾸벅 고개 숙이고는 근데, 하고 말문을 뗐다.

 

- 너는 가출 청소년이니.

- 뭔 소리야 미친 새끼.

 

말투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던 한심함이 경악으로 바뀌는 것은 순간이었다. 인준은 손에 들린 걸 던지듯 내려놓으며 빡친 얼굴로 냅다 동혁을 돌아봤다. 동혁은 찔끔했으나 감상은 바뀌지 않았다. 이런 데서 일하기엔 좀 많이……, 어려 보이는데. 인준은 익숙한지 한숨을 쉬었다. 스무 살이고 삼촌이 여기 사장이야. 알바 중이야. 툭 대답하며 익숙한 손길로 담배를 꺼내 무는 얼굴. 잘 쳐줘 봐야 고등학생 정도로 어리게 생긴 얼굴에 위태롭게 문 담배는 어색하달 정도로 튀었다.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시선도 안 준 채 툭 던진다.

 

- 안 피워.

- 어?

- 가오야 그냥. 이 동네 이상한 사람 너무 많아서.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러자마자 인준은 동혁을 팍 흘겼다. 그게 이동혁이 첫 번째로 본 황인준의 찌푸린 얼굴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웃음이 났던 것을 기억한다. 인준은 순순히 동혁이 내민 손을 맞잡아 흔들었으면서도 타임 할증을 요구했다. 너 때문에 퇴근도 못 하고 뭐냐 이게. 청소비 내놔. 너 몇 살이야. 딱 봐도 민증에 잉크 안 말랐을 것 같은데. 동혁은 히히 웃으며 실토했다. 응 나도 스무 살. 이동혁이야. 인준은 별말 없이 옷깃을 집어 들어올렸다. 거기 고정된 명찰에 황인준,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동혁은 그날 청소비를 상납하는 대신 서툰 손길로 인준의 마감을 도왔다. 테이블 닦다 물컵을 열 번 정도 떨어뜨리고 빈 술병도 하나 깨긴 했지만. 뭐 이런 알바를 해본 적이 있어야지, 나 이래 봬도 요리는 꽤 해, 그렇게 변명해 가면서. 인준은 한숨을 푹푹 쉬며 동혁을 밀어내고 뒷수습을 했다. 너 저리로 꺼져 있는 게 더 도움 될 것 같애,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타박하면서. 그러는 동안 내내 불도 안 붙인 담배를 잘근거렸다. 어쨌건 둘은 일곱 시가 되기 전에 나란히 가게 문을 잠그고 거리를 걸었다. 뜨는 해를 배경 삼아 근처 24시간 국밥집에서 콩나물국밥을 퍼먹었다.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연신 앓는 소리를 하는 동혁에게 그럼 그렇게 퍼마셨는데 머리가 안 아픈 게 정상이냐고 타박했던 인준은 콩나물 한 가닥을 문 채 멍청하게 저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둘은 종종 만났다. 삼월이 되기 전까지 동혁은 인준이 일하는 가게에 혼자 찾아와 바 테이블에서 몇 시간을 눌러앉아 있곤 했다. 인준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기를 보는 동혁을 앞에 두고 익숙한 손길로 사만 원짜리 준마이 뚜껑을 따며 생각했다. 이 새끼 아무래도 집이 잘사나 보다. 그때 할증이고 뭐고 택시 태워 보낼걸.

 

- 번호 좀.

- 갑자기?

 

이동혁이 황인준을 보러 네 번째로 가게에 온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가게가 바빴고 인준의 한쪽 귀에 꽂힌 인이어로는 끊임없이 지직거리는 소리로 오더가 들어왔다. 동혁은 나무 꼬치를 입에 문 채 휴대폰 화면을 들이민 자세 그대로 미동 없다. 인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동혁을 쳐다봤다.

 

- 나 곧 지옥으로 잡혀가걸랑.

 

거기선 핸드폰 못 쓴대. 나중에라도 연락하게. 동혁의 눈썹이 팔자가 된다. 그러고 보니 삼월이 되면 기숙사형 재수학원에 들어가 꼼짝없이 십일월까지 잡혀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것도 같다.

 

- 나 전화기 없는데.

- 엥.

 

아 진짜 구라치지 말고. 동혁은 웃어넘기려 했다가, 인준의 얼굴에 떠오른 곤란한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진짜구나 너. 그러고는 더 캐묻는 대신 테이블 위의 커피색 냅킨을 한 장 뽑아 들었다. 주문지 쓰라고 놔둔 모나미 볼펜을 집어 들더니 거기에 숫자를 꾹꾹 눌러쓴다. 이거 내 번호. 나중에 폰 사면 저장해 알겠지. 문자도 한 통 넣어주면 더 좋고. 인준은 그걸 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쑤셔 넣었고, 동혁의 앞에 놓인 빈 접시를 차곡차곡 챙겨 주방을 향해 돌아섰다. 매정하긴, 나 진짜 잡혀가는 건데. 뒤에서 투덜거리건 말건 애써 무시한 채로.

 

인준이 동혁에게 두 번째로 인상을 쓴 건 그로부터 일 년하고도 삼 개월이 지난 유월의 첫날, 날이 막 후텁지근해지던 어느 저녁의 지하철 안이었다. 사람들이 한차례 쏴아아 빠져나가고, 꼭 그만큼의 사람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2호선 사당의 약냉방칸 교통약자석 바로 옆. 콧잔등을 구기고, 눈을 두어 번 비비더니 인상을 팍 찡그린 채 저를 향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가온 사람이 인준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동혁은 꽤나 놀랐다. 얼마나 놀랐냐면, 만원 지하철 안에서 어! 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가 사람들의 짜증 섞인 시선을 한방에 모아 버리는 바람에 기껏 가까이 다가온 인준이 그대로 등을 돌려 도망칠 뻔하게 만들었을 만큼. 겨우 진정한 동혁이 몸을 한껏 웅크려 사수했던 귀한 좌석을 포기하고 일어섰다. 그 자리엔 무거운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멘 대학생 하나가 엉덩이를 들이밀고 잽싸게 앉아 숨을 돌렸다. 동혁은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며 인준이 있는 쪽으로 몸을 비집어, 너 황인준 맞지? 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는 척을 했다. 흰 마스크 위로 나른함과 짜증을 반씩 담고 저를 응시하던 눈이 아주 약간 커졌다. 이름까지 기억하네, 작은 중얼거림이 들린 것도 같았고. 동혁은 반색을 하곤 진짜 오랜만이다 이게 몇 년 만이냐, 안 그래도 뭐 하고 사나 궁금했다 넌 나 안 궁금했냐 주절주절 떠들어 놓고도 모자라 몇 마디 더 붙이려다가, 마침 다음 역이 서초였으므로 다급하게 내려야 했다. 나 본가가 여기야, 학교도 2호선이라 근처에서 자취하는데 번호 그대로야 연락해, 다다다 쏴붙이듯 제 할 말만 남기고.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인준은 그때 사람들 틈에 끼어 지하철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동혁의 밝은 갈색 뒤통수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역시 집이 잘사나 보네. 그리고. 좋은 학교 다니나 보네.

 

그날 밤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나 황인준. 네 글자 덜렁 적힌 메시지를 받자마자 동혁은 망설임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은 세 번 이어졌다. 여보세요, 하는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동혁은 누워 있던 침대에서 그대로 한 바퀴 굴렀다. 설렘을 굳이 감추지 않은 목소리로 폰 샀네, 하고 첫마디를 건네자 어 하는 건조한 대답이 들려왔다. 너 아직 거기서 일해? (어.) 나 저번에 갔었는데 너 없던데. (나 오픈부터 자정까지로 바뀐 지 좀 됐어. 수요일 목요일엔 다른 가게 나가.) 그럼 내일 일찍 가면 있겠네. 금요일이니까. (…….) 나 가도 돼? (오든가.) 인준은 말끝에 또 마시고 뻗지는 말라는 말을 빠르게 덧붙이며 전화를 뚝 끊었다.

 

그날 동혁은 오픈부터 자정까지 내내 바 테이블에 앉아 일하는 인준을 구경했다. 가게는 이태원에 2호점을 낸 지 두 달 정도 되었다고 했다. 인준은 지점 매니저 명찰을 달고 있었다.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원래도 야물던 손이 더 야물어졌다. 사람 많은 금요일이었음에도 사장은 인준을 삼십 분 일찍 퇴근시켰고 둘은 새벽 두 시까지 구석에 나란히 앉아 술을 퍼마셨다.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동혁에겐 쌓인 이야기가 많았고, 인준에겐 생각보다 웃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준은 예상보다 술을 잘 마셨고, 저가 옆에 앉을 때부터 이미 알딸딸해 하다가 결국엔 반쯤 만취한 동혁을 챙겨 가게를 나섰으며, 둘은 그날 인준의 집에서 날이 샐 때까지 뒹굴었다. 그리고 아침에 나란히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집 앞 해장국집에서 마주 앉아 감자탕을 퍼먹었다. 분명 예상 못했지만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 인준아.

- 왜.

- 책임질게.

- 꼴랑 한 번 잤다고?

- …… 한 번이 아니었잖아…….

- 하룻밤이면 한 번으로 쳐.

- 그래도.

 

됐어 새꺄. 그러고 싶으면 나중에 제대로 고백을 해. 후드 모자를 눌러쓴 인준은 까치집 머리에 대충 볼캡을 얹은 채 죽상을 하는 동혁을 꿍 쥐어박았다. 잘생긴 얼굴로 해도 모자랄 텐데 자신감 있다? 그렇게 놀렸으면서, 인준은 멀끔해진 행색의 동혁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미는 노란 꽃다발을 보자마자 말을 잃었다. 왜 불러내나 했더니 이거였니. 나 자다 나와서 꼴이 엉망인데. 지만 멀쩡하면 다야. 요즘 꽃도 비싸던데, 자기만 한 시커먼 남자애한테 고백하면서 누가 저렇게 제 몸만 한 꽃다발을 사 오냐고, 아무튼 배려심도 없고, 제멋대로고, 아무튼 저 애는, 아무튼……. 입에 맴도는 수많은 말을 눌러 삼킨 인준은 꽃다발을 받았다. 긴장한 탓에 머릿속이 새하얘진 동혁은 꽃다발을 꼭 쥔 인준의 손등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엉뚱한 말을 뱉었다. 왜 멍이 들었냐 거기……. 마찬가지로 얼어붙은 인준은 뚝딱거리며 대꾸했다. 이거 점이야…….

 

동혁은 인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얼굴을 가리는 손등을 잡아 창백하고 푸른 점 위에도 입술을 내렸다. 떨리는 숨이 햇살처럼 뜨거웠다.

 

 

2.

 

둘은 동혁의 차에 나란히 앉아 밤거리를 가르며 질주하는 일을 좋아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뚜껑을 열고 달렸기 때문에 귀를 쌩쌩 스치는 바람 소리가 천둥처럼 컸다. 아무도 없는 동작대교의 초입에서 부아앙 부앙 소리가 나게 액셀을 밟으면 인준은 식겁해 안전벨트를 쥔 채 동혁을 퍽퍽 치곤 했다. 그러나 동혁이 속도를 조금만 줄이면 인준은 곧장 두 팔을 벌려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안았다. 넌 왜 이렇게 불량하게 놀아? 인준이 그렇게 악질러 물으면 동혁은 뭐가 불량해? 하고 황당하단 듯이 소리높여 되물었다. 방탕하고! 불량하고! 너 아주 별로야! 별로야 이동혀억! 황인준은 소리 지르다 말고 제풀에 웃음이 터져 깔깔 웃어댔고, 동혁은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하려다 말고 그 애의 옆얼굴에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인준의 집에 가까워질 때쯤엔 해가 떴다. 아침 햇살이 너무 비쳐 들어온다 싶으면 차 뚜껑을 덮었다. 외부 소음이 말끔하게 차단된 비싼 차 안에서 인준은 안전벨트에 얼굴을 기대고 아기처럼 침 흘리며 졸았다. 동혁은 제 입을 틀어막은 채 사진을 백 장 정도 찍은 뒤 인준의 턱을 조심히 닫아주었고, 집에 도착해서도 깨지 않으면 그냥 저도 운전석에 앉은 채 냅다 잤다. 여름엔 에어컨을, 겨울엔 히터를 끄지 않은 채로.

 

- 돈이 썩어나냐?

 

푹 잘 자고 일어난 인준이 선사하는 등짝 스매싱은 덤이었다. 불판 위에 올린 오징어처럼 몸을 오그라뜨리며 아파한 동혁은 담 번에 꼭 깨울게, 약속했으면서 늘 같은 짓을 반복했다. 아무리 혼나도 푹 잘 자는 황인준을 제 손으로 깨우고 싶은 마음은 별로 생기지 않았다.

 

- 나 사실 중국인이야.

- 뭐래.

 

진심이야? 동혁은 습관처럼 쿠사리 먹이려다 말고 식겁해서 되물었다. 인준이 언젠가 휴대폰 번호를 물어봤을 때와 똑같은 얼굴을 했기 때문이다. 여권 보여줘? 인준은 잔뜩 졸아든 버섯전골에 콸콸 물을 붓고, 냄비를 올려둔 버너의 불을 키우며 어이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아니면 뭐, 중국말로 대화해줘? 그럼 믿을래?

 

- 해 봐.

- 你世上最傻的家伙.

- 와 미쳤네.

- 대체 뭐가.

- 아니 너 이거 진심으로 장난이야 진짜야?

- 그니까 여권 보여주냐고.

- …… 진짜구나.

 

이제야 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말을 잇지 못하는 동혁을 슬쩍 흘긴 인준이 스테인리스 국자를 들어 전골 냄비를 휘저으려다가, 그대로 놓쳤다. 땡그랑 소리가 왁자지껄한 술집 소음 사이를 찢고 울렸다. 야야 너 손, 하고 저도 모르게 소리친 동혁과 당황한 인준은 동시에 허리를 숙여 손을 뻗었고 동혁이 조금 더 빨랐다. 동혁은 인준의 손을 지나쳐 떨어진 국자를 주워 든 뒤 손을 크게 흔들어 이모님을 불렀다. 새거 새거. 손에 든 걸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요청한 뒤에는 둘 다 말이 없다. 동혁은 제 눈을 쳐다보지 않는 인준을 가만 들여다보다가, 테이블 위로 손바닥을 펴 내밀었다. 인준은 주저하다 시선에 못 이겨 오른손을 내준다. 한눈에 봐도 보일 만큼 발발 떨리고 있다.

 

- 그냥.

- …….

- 긴장돼 가지고…….

 

아 진짜 쪽팔리게. 나지막하게 성질낸 인준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혁은 별말 없이 인준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쓸었다. 불안한 듯이 움직이는 눈동자. 다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을 가볍게 적시는 혀. 창밖 노란 가로등 빛이 쏟아져 부서지는 인준의 옆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 인준아.

- 왜.

- 바보 똥꼬야.

- 뭐래.

- 귀여워.

 

일루와. 뽀뽀 한 번 하게. 장난스럽게 얼굴을 들이밀자 질색하고 피한다. 동혁은 웃으며 잡은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 손가락이 소심하게 꿈지럭거렸지만 곧 잠잠해졌다.

 

 

원래 이름은 뭐야?

 

황런쥔.

 

런쥔이.

 

…….

 

…….

 

인준이라고 불러줘.

 

 

인준은 이후 가타부타 설명을 붙이지 않았고 동혁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동혁은 인준이 어째서 한국에 왔는지, 왜 혼자 사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태어난 나라가 다른 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쟤가 저렇게 한국말을 잘하는데, 한국에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나도 있는데. 때문에 그날 이후로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이동혁이 할 수 있는 건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황인준의 집에 가는 것. 인준이 깨지 않게 몰래 조심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냉장고를 체크하는 것. 잠든 인준의 팔뚝을 쓸어 보고 차가우면 에어컨 온도를 올려 주는 것. 동혁이 물을 올릴 때쯤 인준은 깼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잠깐 횡설수설하다가 동혁을 확인하고 나서는 잠 묻은 목소리와 또렷한 한국어로 몇 시야 하고 물었다. 동혁은 네 시 넘었어, 일어나, 대답하며 그제야 따각따각 칼질을 시작한다. 인준은 응 하고 대답한 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그대로 십 분가량 더 잤다.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동혁에게 이불째 들려 화장실 앞에 눕혀지고 나서야 겨우 비척비척 일어나곤 했다. 너 이러다 양치도 시켜 달라고 하겠다? 동혁이 인준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 주며 어이없어하면 인준은 여전히 졸린 눈으로 칫솔을 문 채 웅얼웅얼 반박했다. 자세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동혁은 생각했다. 해 달라고 하면 당연히 해줄 수 있는데.

 

수저를 놓고 물을 뜨는 것만이 인준의 담당이었다. 인준은 하이볼과 츄하이를 맛있게 말기, 동그란 틀에 넣고 얼린 얼음을 작은 조각칼로 예쁘게 다듬기, 새우 꼬릿살 살려서 껍질 까기 같은 것들을 잘했으나 한 끼 든든히 밥을 차려 먹는 데는 서툴렀다. 다행히도 그건 동혁의 전문 분야였다.

 

- 넌 집이 어디야?

 

동혁이 하루 자고 가고, 이틀 자고 가는 걸 반복하다가 아예 인준의 집에 눌러앉은 지 이 주쯤 됐을 때였다. 동혁은 인준의 물음에 별 동요 없이 숟가락을 쭙 빨았다. 나 그냥 근처에. 인준은 별 대답이 없었다.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동혁은 한숨을 쉬며 패를 깠다. 엄마 아빠랑 싸운 지 좀 오래됐어. 아버지 사업 때문에 집에 사정이 좀 있어서. 입학하고 한 학기 집에서 살다가, 너 만났을 때쯤 해서 아예 집 얻어서 나왔어. 근데 그 집도 알고 계셔서 별 의미가 없네. 나는 너네 집이 편해. 인준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가만히 웃으며 손을 뻗어 동혁의 머리를 박박 헝클었다.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화해해. 꼰대 같은 조언을 건네면서. 난 울 부모님 다 중국에 있거든. 얄미운 목소리로 약올리는 인준의 얼굴을 마주한 동혁은 항변하려던 걸 관뒀다. 인준은 거짓말을 할 때면 진심으로 웃지 못했다. 그게 명확하게 티났다.

 

동혁은 종종 인준이 자다가 콱 죽어 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건 조금의 악의도 담기지 않은 감상이었다. 사실 동혁의 말엔 늘 악의가 없었다. 인준은 어이없는 말투로 너 두고 죽긴 왜 죽어, 하고 대답했으나, 그 대답을 듣자마자 저에게 달려드는 그 애의 상체를 온몸으로 받아 끌어안으며 방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말 속에 겹겹의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 데도 안 가. 잠만 곱게 자고 일어날 거야. 왜 이럴까 또. 타박하듯 약속하는 인준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동혁의 손이 마른 복근이 잡힌 배를 가만가만 두드리면, 인준은 벗어나려고 꿈질거리다 말고 그 손에 깍지를 껴 단단히 마주 잡았다. 조금의 다한증, 조금의 수족냉증. 처음 입을 맞추고 살을 맞대고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구태여 손만은 잡지 않으려던 인준의 이유. 동혁은 조심스럽게 와 닿는 그 냉기와 습기를 사랑했다. 그게 사랑 같았다.

 

 

3.

 

저녁을 먹다 말고 조금 다툰 참이었다. 자꾸 진상이 늘어나 힘들어지는 가게 일 이야기를 하다가, 동혁이 넌지시 거길 관두고 다른 일을 하는 건 생각 안 해 봤냐 물었던 게 화근이었다. 꼬아 들을 말도 없었는데 인준은 왈칵 성을 냈다.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집에 가는 내내 동혁은 별말 없이 인준의 뒤를 따라 걸었고, 늘 그랬듯 들어가는 길목에서 대문을 잡아 주었고, 현관문이 닫히기 무섭게 제 멱살을 낚아채 입술을 부딪치는 인준의 마른 등을 감싸 안아주었다. 그러나 투정 부리듯 몰아붙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이 이불 위에 널브러진 인준을 일으켜 물을 먹인 동혁이 군데군데 젖은 시트를 벗겨내고 그 위에 마른 몸을 도로 조심스레 뉘었다. 새 이불을 끌어다 몸 위로 덮어주자 보들거리는 이불 시트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훅 풍겨 올라왔다.

 

- 귀화하면 안 돼?

- …….

 

인준은 모로 누운 채 대답하지 않았다. 세탁기에다 시트를 쑤셔 박고 돌아온 동혁은 인준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나란히 몸을 눕히며 드러난 목덜미의 맨살에 쪽쪽 입술을 댔다. 귀화 시험 후기 찾아봤는데 어렵다더라. 나랑 같이 공부해. 넌 말도 잘하고, 똑똑하니까. 또 뭐든 금방 배우는 애니까……. 응? 나랑 한국에서 오래오래 살게. 안 불안하게. 인준은 가만 듣고 있다가 나직하게 물었다.

 

- 넌 뭐가 그렇게 쉽냐.

 

매사 뭐가 그렇게 쉬워서……. 뒷말은 입안에서 사그라들었다. 인준은 이불에 묻어두었던 손을 힘겹게 들어올려 제 눈두덩을 두어 번 꾹꾹 눌렀다. 그러더니 동혁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몸을 뒤집는다. 저에게 빈틈없이 붙은 몸을 마주 껴안으며 입을 벌린다. 동혁은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밀고 들어오는 인준의 혀를 마주 핥았다. 곧 달뜬 소리가 대화 대신 작은 방 안을 채웠다. 그게 대화를 끝내는 가장 좋지 못한 방식이었다는 걸 동혁은 알았어야 했다. 그때, 더 늦기 전에, 알았어야 했다.

 

불콰하게 취한 채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남자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경찰차 뒷좌석에 밀어 넣는 젊은 경찰의 표정은 무료했다. 동혁은 피 흐르는 팔을 붙들고 전봇대에 기대앉은 채 연신 씩씩댔고, 인준은 파리하게 질린 낯으로 경찰이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하며 동혁의 손을 꽉 쥐고 곁에 붙어 앉아 있었다. 막 동이 터 햇살이 희붐하게 비쳐 들어오기 시작한 가게 앞 보도는 깨진 술병과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으로 너절하고 섬뜩했다.

 

- 같이 서로 좀 가셨다가, 간단하게 진술 좀 해주시죠.

- 아 옙.

- 얘 병원, 병원부터 좀. 이거 꿰매야 할 거 같아서요.

- 괜찮아. 근데 혹시 같이 가도 돼요? 얘 최초신고잔데. 목격자고.

- 예, 신고해 주신 분도 가셔야 돼요. 저 뒤차 타시면 됩니다.

- 다행이다.

 

인준아 타자. 동혁은 일어서서 인준의 손목을 당긴다. 인준은 멈칫거리다가 반쯤 마른 핏자국으로 끈적한 동혁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랬으면서 나중에 전화로 하면 안 될까요, 작게 물었던 것도 같은데. 동혁은 모른 체 인준의 손을 더 꾹 쥐었다. 나 경찰서 무서워. 잠깐 들렀다가 병원 같이 가주라. 응? 다정하게 어르는 목소리에 인준이 결국 버티던 다리에 힘을 풀고 동혁이 끄는 대로 걸음을 뗐다.

 

이 동네 이상한 사람들 많아서. 동혁은 경찰차 뒷좌석에 앉은 채 언젠가 인준이 툭 던지듯 건넸던 말을 다시금 기억해 낸다. 습관적으로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문 채 잘근대는 인준의 파리한 옆얼굴을 흘끗 넘겨보고 눈을 꾹 감는다. 왜 근무 시간을 오후부터 자정까지로 바꾼 건지 알고 있었다. 전에도 취객을 막으려다 이런 일이 있었고 의자 다리에 찔려 다칠 뻔했다고 그랬지. 그 일 이후로 올나잇 땜빵은 다신 안 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분명 약속했는데. 인준에게 화낼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속에서 자꾸 부아가 치민다. 동혁은 화를 티 내는 대신 인준의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차 안에서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하고 쏘아붙이는 경찰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불 안 붙였다는 변명 대신 죄송합니다 하고 작게 대답하는 인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 황런쥔 씨 나 알죠.

 

동혁은 받아든 새 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단단히 잡아 누르다 말고 인준을 돌아보았다. 지구대 책상 앞에 동혁과 나란히 앉아 목격자 진술서를 쓰던 인준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얼어붙은 채 동혁에게 물과 수건을 가져다준 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뒷모습이 어쩐지 위태로웠다. 사복 차림의 중년 경찰은 반가운 얼굴로 짧게 깎은 뒤통수를 쓸어 만지며 아는 체를 했다. 맞네. 아유 반년 전에 만나고 처음이죠? 더 잘생겨지셨어 어떻게.

 

- 서에 한 번 오랬는데 왜 안 왔어요. 접때 만난 뒤로 집에 한 번 더 찾아갔었거든, 내가. 근데 고새 이사를 가셨더라고.

- 아. 예.

- 뭐, 숨은 건 아니죠?

- …….

- 그래서 여권은.

 

찾았어요?

 

동혁은 인준이 형사를 따라 안쪽 조사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오 분이면 된다던 둘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고 깊지 않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짜증 나게도 잘 지혈이 안 됐다. 수건이 온통 척척하게 피로 젖어들 때쯤 동혁은 결국 경찰에게 등을 떠밀려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보내졌다. 피가 많이 나서 그렇지 엄청나게 다쳤다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세 바늘이나 꿰맸다. 동혁은 출혈이 많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붙들려 수액까지 한 병 꽉 채워 맞은 후 제 발로 병원을 걸어나왔다. 경찰서에 간 게 아침이었는데 벌써 오후였다.

 

인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퇴원했어? 나 아직 경찰서야. 집에 가 있어. 동혁은 그 메시지를 보고 화면을 끈 휴대폰을 주머니에 콱 쑤셔 넣었다가,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 도로 꺼내 답장을 보냈다. 한 시간쯤 있다가 앞에 가 있을 테니까 아무 때나 나와. 한숨도 자지 못한 채였고, 하루가 다 가도록 속에 넣은 것도 없어서 허기도 졌다. 동혁은 근처 국밥집에서 끼니를 때운 후 가게로 향했다. 근처에 주차해 둔 차를 끌고 다시 경찰서로 운전해 갔다. 인준은 해쓱한 얼굴을 하고 지구대 문 앞에 쭈그려 앉은 채로 동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싸움은 얼굴을 마주함과 동시에 수순처럼 일어났다. 서로에 대한 걱정으로 포장한 날 선 말들이 몇 차례 오가더니 기어이 언성이 높아졌다.

 

- 왜 나서냐고, 그러니까.

- 거기서 내가 안 나서면 누가 나서는데.

- 넌 내가 좆밥 같애? 알아서 한다고 말했잖아 분명히.

- 준아. 하……. 있잖아 나는. 내가 팔뚝 찢어지고도 이런 말 들어야 되나 싶고……. 좀 짜증 나려고 그래. 그만하자. 어?

- 이동혁. 너 한 번씩 이럴 때마다 진심 밥맛이거든? 내가 여태 저기서 일하면서 한두 번 이랬을 거 같애? 네가 뭘 아는데.

- 그만하자고.

- 너 일 안 해봤다면서. 일상이야, 이런 거. 왜 네가 나서서 나를 자꾸 우습게 만드냐고. 내 기분은 생각 안 하고, 어?

 

인준의 지적 중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동혁은 돌 것 같았다. 깨진 술병을 휘두르는 취객 앞에서 이 애를 가로막고 섰던 용기도, 지금 치미는 분노도 전부 짙은 사랑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더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뱉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말이 곧장 입 밖으로 튀어 나간다. 막을 수 없다. 불가항력이었다.

 

- 그래서 내가 진작에 그딴 가게 그만두라고 했잖아!

- 뭐?

- ……,

- 뭐라 그랬냐, 지금?

- 아니, 그러니까.

 

실수했다는 직감 정도는 동혁에게도 있었다. 순식간에 자존심이 짓밟혀 잔뜩 상처받은 눈을 앞에 두고도 뻔뻔하게 밀어붙일 용기 따윈 없었다. 인준은 입을 다물고 입술을 씹는 동혁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성큼성큼 걸어 지나쳤다. 동혁이 붙잡으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차에 타라고, 차에 타자고, 같이 가자고 말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길로 강남경찰서에서부터 집까지 걸었다. 동혁은 삼류 드라마처럼 차를 경찰서 앞에 버려두고 인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저물녘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밤이 되어서야 동네에 접어들 수 있었다.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소리만 드문드문 울리는 집 앞 골목에 도착했을 때, 인준은 멈춰 섰다. 세 발짝쯤 뒤에서 따라 걷던 동혁도 화들짝 놀라 멈췄다. 인준은 숨을 두어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더니, 무언가를 마음먹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러나.

 

동혁은 인준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냅다 도리질쳤다. 가라앉은 얼굴로 운을 떼려던 인준의 눈이 커졌다. 그대로 주저앉는 몸을 따라 시선이 내려간다. 무릎을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웅크린 동혁의 동그란 머리통 위로 샛노란 가로등 빛이 쏟아져 내렸다. 두 시간을 눌러 참은 부름은 울음과 동시에 터진다.

 

- 인준아.

- 응.

- 미안해.

 

동혁은 혼이 난 어린애마냥 울었다. 걷는 동안 정신이 들었던 탓이다. 제가 병원에 들렀다가,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았다가, 밥까지 먹고 여유롭게 저를 데리러 가는 동안 황인준은 내내 지구대 조사실에 짐짝처럼 앉아 사정 모를 조사를 받으며 떨었으리란 사실이 두려울 만큼 뼈저리게 와 닿았다. 하루를 꼬박 떨어져 있었으면서, 그것도 연인을 경찰서에 둔 채였으면서, 제 감정부터 여과 없이 들이밀어 결국 상처 줬다는 사실 또한 그랬다. 미안해서 죽고 싶었다. 무슨 일이었냐, 대체 왜 하루를 꼬박 잡혀 있어야 했냐, 중간에 밥은 먹었냐, 이제 와 뻔뻔하게 물을 수도 없었다. 인준은 묵묵하다가 두 걸음 걸어 동혁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잔뜩 풀죽은 머리통을 가만 끌어안고 들썩이는 어깨를 느리게 다독였다. 괜찮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인준은 중국으로 갈 거라고 통보했다. 그날부터 당장 짐을 싸기 시작했다. 동혁은 그 결정에 인준의 의사가 개입되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인준의 핸드폰에는 세 시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인준은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화드득 놀라며 전화를 받은 뒤 알아듣지 못할 중국어로 짧게 통화한 뒤 끊기를 반복했다.

 

“헤어져.”

 

인준은 동혁의 앞에 선 채로 못 이길 전투에서 선제공격을 하듯이 말했다. 이로써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열 번이 넘었다. 서로 슬슬 한계임을 실감하던 차였다. 옷가지가 들어찬 인준의 캐리어 안에 핫팩과 신라면 몇 봉지를 꾹꾹 밀어 넣던 동혁은 잠시간 먹먹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가 단호하게 인준을 올려다보며 싫어, 대답했다. 헤어져. 싫어. 헤어져. 싫다고 했잖아. 인준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엉망이 된 방 안을 한 번 휘 돌아보고, 제 머리칼을 짜증스레 헝클다가, 결국 움켜쥐었다. 그러고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동혁은 그 와중에도 그러지 말라고 말리려 손에 든 걸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대지 마. 비명처럼 씹어뱉은 인준은 도망치듯 두 걸음 물러났다. 인준을 붙잡으려던 동혁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방황하다 힘없이 떨어졌다. 인준은 아주 두려운 것을 피하듯 연신 뒷걸음치다 벽에 부딪혔다. 세게 박은 날개뼈가 아렸다. 동시에 물음이 터진다.

 

“왜 안 헤어져?”

“못 하는 거야.”

“왜 못 헤어지냐고!”

“너는!”

 

너는. 어떻게 그래? 너 헤어질 수 있어 나랑? 진짜야? 내 눈 보고 똑바로 말해봐 인준아. 동혁은 이를 악물고 쏟았다. 짧둥한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참았으나 결국 폭발하듯 걸어 제게서 멀어지려 안간힘을 쓰는 인준에게 다가섰다. 진심이면 얼굴 봐. 내 얼굴 보고 말하라고 황인준. 화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 어린애 같은 고집.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려 따라오는 얼굴. 어금니를 악문 인준이 결국 분에 찬 얼굴로 동혁의 두 어깨를 있는 힘껏 밀쳤다. 이동혁이 황인준에게 처음 당한 거부였다. 동혁은 불시에 기습당한 사람의 모양으로 저항도 못 한 채 허우적 밀려났다. 넘어질 듯 휘청거리는 동혁의 머리 위로 인준의 악지르는 소리가 폭격처럼 때려 박혔다.

 

“넌 네 생각만 하지.”

 

네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만 알고, 내가 얼마나 너를, 내가, 너, 그래서 우리 안 헤어지면 어쩔 건데. 어쩔 건데 동혁아? 나 다시는 한국 못 와. 너 중국 올 거 아니고, 오면 안 되고, 미쳐 가지고 와도 나 못 찾아. 나 휴대폰도 없고 주소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아니? 있어도, 새로 생겨도 안 알려줄 거야. 너 존나 싫어. 싫어 개새끼야! 나한테 어떻게 너를 사랑하라고 그럴 수가 있어. 나한텐 아무것도 없는데. 진짜 너무한 거야. 이걸 어떻게 계속하라고 할 수가 있어, 이걸 어떻게…….

 

인준이 숨을 몰아쉬었다.

 

“네 사랑이 어땠는지 알아?”

“…….”

“산사태, 눈보라. 쓰나미, 홍수, 그런 거. 못 막는 거.”

“야, 황인준.”

“재난 같았어.”

 

알아들어?

네가 날 사랑하는 게 무서웠다고.

도망칠 데 없는 피난민이 된 거 같았다고 동혁아.

 

또박또박 발음하는 인준의 눈이 벌겠다. 동혁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야트막하게 호흡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인준아. 건네지 못한 원망이 입속에서 녹았다. 애써 독한 얼굴로 말을 맺던 인준은, 무력하게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무너져 내리는 동혁의 표정을 보고, 그 눈을 마주하자마자, 엉망진창으로 깨져 버리고 말았다. 가장하던 날 선 얼굴이 온통 일그러진다. 그 너머가 애초 폐허였다는 사실을 동혁은 알았다. 그게 이제야 보였다.

 

“동혁아.”

“응.”

“나 가기 싫어.”

 

나 중국 가기 싫어···.

 

인준은 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울던 애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울었다. 동혁은 그 애가 겁이 많다는 걸 알았다. 두려운 단어들을 한국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하나하나 미리 배우고 왔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이동혁을 원망하기 위해 그 단어들을 처음으로 발음해 보았다는 것만은 몰랐다. 알 수가 없었다. 황망해진 채로 어깨를 끌어당겨 포위하듯 꽉 안았다. 손끝에 떨림이 옮아 바들댔다.

 

떨리는 손가락이 동혁의 등을 감싼다. 이윽고 부서져라 끌어안는다. 동혁은 마른 몸에서 점점 크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느끼며 인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애를 사랑해서, 그걸 멈출 수가 없어서, 그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황인준은 중국으로 돌아간다. 가서는 황런쥔으로 살게 될 것이다. 며칠간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으나, 동혁은 제 몸만 한 캐리어 손잡이를 쥔 인준이 신발장에서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는 동안 말을 잃었다. 나가려는 인준을 신발장에 세워 두고 그 앞에 웅크려 풀린 끈을 매주는 데 십 분이 넘게 걸렸다. 인준은 덤덤한 얼굴로 동혁의 머리카락을 장난치듯 매만졌고, 동혁은 헛도는 손끝을 죽어라 노려보며 다리에 쥐가 나도록 버텼다. 밖에서 경적이 몇 번이나 빵빵 울리고 나서야 인준의 두 쪽 운동화 위에 매듭이 두 번이나 들어간 리본이 완성됐다. 하여튼 별 희한한 걸 잘해요. 인준은 웃음 묻은 목소리로 그렇게 칭찬하고는 허리를 숙였다. 동혁의 머리꼭지에 쪽 입을 맞추고는 살 내린 뺨을 손바닥으로 쓱쓱 쓸어준다. 나 이제 갈게.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하면서.

 

동혁은 그 손을 잡아내려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잘 정돈된 손톱과 마디 끝에 박인 굳은살에도 차례차례 키스했다. 마지막으로 손등의 창백하고 푸른 점 위에 입술을 내렸다. 뜨거운 숨이 자꾸만 물기를 머금었다.

 

 

4.

 

날짜 : 2023年 9月 7日

이름 : 黃人俊 황인준

보내는 곳 : 주소는 몰라요

010-XXXX-XXXX (이동혁)

 

대사관 당직실에 짐을 풀었어.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살다 갔는지 서랍 속에 몽당연필이랑 찢긴 자국이 많은 메모지 뭉텅이가 있었어.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구에게 편지를 썼을까. 어차피 전해질지 안 전해질지도 모르는 편지를, 무슨 마음으로 썼을까. 일단 난 아직 괜찮은 거 같아. 여긴 좀 춥고 아주 편안해. 나 혼자밖에 없고, 모두 나를 딱딱하고 차갑게 대하거든. 그래서 너한테 너무 안기고 싶은데, 웃기지, 너를 이런 데서 다시 만나기는 죽어도 싫어. 짐 들고 집에서 나오는 그 순간부터 그랬어. 사실 네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거 진심이었어. 그건 약간 죽고 싶다는 말이랑 비슷한 정도로 모순적이었지. 너는 그걸 몇 번이고 들어 삼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혁아.

 

한 번도 한 적 없는 이야긴데 있잖아. 엄마는 한국인이었대. 난 그거 하나만 알고 진짠지 가짠지도 모를 주소 하나 덜렁 든 채로 비자도 없이 밤배를 탔어. 강남이 부자 동네인 것도 여기 와서 알았어. 사실 폰도 가게 사장님 명의야. 좋은 분이셔. 신세 많이 졌어. 월급도 현금으로 받았으니까 당연히 오랫동안 안 들켰지. 엄마 찾기는 너 만날 때쯤 때려치웠어. 또 모르지. 사실 여기 온 목적이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엄마가 아니었을지도. 난 날 때부터 외로움이랑 같이 컸고 그게 되게 억울했거든. 그냥 걔한테 그럴싸한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너 때문에 다 망했지만.

 

동혁아. 우리 참 사랑했지.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프게 사랑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난 한국에서 살아남기만도 바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너를 만나서 사랑씩이나 했을까. 얼마나 사랑했는지랑 얼마나 많은 걸 줄 수 있는지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 얼마나 많은 걸 가졌는지랑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할 수 있는지도 아주 많이 다르고. 내 스물부터 스물넷은 팽팽하고 치열했는데 너랑 있을 때면 느슨해졌어. 그건 네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지, 동혁아. 그걸 알아서 나는 내내 슬펐어. 나는 너를 위해 거의 모든 걸 포기했는데도 너보다 훨씬 덜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게 미안해서.

 

있잖아. 나 요즘 손등이 아파. 가게 일 때문은 아닌 것 같아. 관둔 지가 몇 달인데. 누가 멍들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점이라고, 못 믿겠으면 눌러보라고 그러곤 했었는데. 이제 거길 그렇게 누르면, 아픈지 안 아픈지 확인할 정도로 누르면 욱신거려. 그러니까.

 

아프지 않은 곳을 자꾸 상처라고 부르면 그렇게 되는 건가 봐. 너는 나를 아주 소중히 다뤘지. 난 그게 왜 이렇게 아팠을까. 네 다정은 왜 자꾸 멀쩡한 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을까.

 

내일이면 출국이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숨어 산 지 사 년이 넘었으니 적어도 몇 주는 구금될 거래. 운이 나쁘면 감옥에 가려나. 풀려나면 열심히 돈을 벌 거야. 그리고 한국에 올 거야. 이번엔 비자를 받아서 당당하게. 책을 사서 공부할래. 시험을 볼게. 도와주지 않아도 할 수 있을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보다 내가 한국말 더 잘하는 거 같으니까. 불러줄 사람 없는 런쥔이라는 이름 대신 인준이로 살 거야. 황런쥔을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는 나라에서 오래도록 숨 쉴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면 있잖아.

 

그땐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적어 봤자 넌 열심히 사랑하며 날 기다리겠지.

你世上最傻的家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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