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빔
유료

주인님, 어디까지 해도 돼요?

결제는 소장용/ 메이드 알바하다 고죠에게 걸렸다!

전편!

01.

"쇼코. 얼굴에 담배 연기 뿜지 말라니까."

"미안. 네 얼굴 보니까 절로 나오네."

후욱, 쇼코가 게토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자 게토가 미간을 좁힌다. 그 애는 고죠 옆에서 조용히 따라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뭐지, 여기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데. 기존쎄만 모인 것 같은데.

쇼코는 고죠 옆에서 눈치 보며 졸졸 따라오는 그 애를 보다 그 애의 정장 바지 골반부분에 희게 드러난 천을 본다. 쇼코는 담배케이스에 담뱃불을 지져 꽁초를 집어넣고 그 애의 얼굴을 빤히 본다. 표정을 보니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쇼코는 그 애의 손목을 잡는다.

"우리는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무슨 얘기?"

"네가 알아서 뭐하게."

네가 알아서 뭐하게. 고죠를 밀어낸 쇼코가 그 애와 찰싹 붙어 걸어간다. 오늘 처음 만난 데다가 가벼운 인사 이외에는 나눈 대화도 없는지라 그 애는 바짝 긴장하고 쇼코를 따라간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바지 골반부분 옷이 터져서 그런 거거든."

"아."

아. 그 애가 자신의 바지를 내려본다. 고죠가 이 옷을 버리라고 잔소리 할 때 버렸어야 했나. 아까워서 그냥 입었더니 천이 다 헤졌다.

"갈아입을 옷은?"

"없어요."

어쩌지. 정장 재킷으로 가려지지도 않는데. 그 애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일단, 의무실로 가자. 내 옷 빌려줄게."

"아, 감사합니다."

한 두 번 거절할 줄 알았는데 바로 받아들이네. 쇼코는 심드렁하게 그 애를 쳐다보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02.

"유코. 옷 사러 가자."

"진상 그만 떨어, 고죠."

아무래도 키 차이가 있다 보니 쇼코의 치마는 그 애에게 짧다. 고죠는 엉덩이 밑으로 조금 내려온 치마를 보며 검지로 머리를 긁는다. 저래서 앉을 수나 있어?

"옷은 세탁해서 가져다드릴게요."

"그래-."

생각보다 짧아서 당황했지만 그래도 속옷이 보일 정도로 터진 바지보다 훨씬 낫다. 그 애는 허벅지에 달라붙는 고죠의 집요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꾸벅 고개를 숙인다.

"고죠 씨, 저는 그럼 보고서 제출하러 가겠습니다."

"그러고 간다고?"

그 애는 자신의 옷차림을 정말로 신경에 거슬려 하는 고죠를 빤히 보다 시선을 돌린다. 어쩐지, 요즘 거리감이 애매해지는 것 같다. 고죠 본인이 그어놓은 선을 자꾸만 발로 문질러 흐리는 느낌.

"유코, 잠깐만."

고죠가 그 애를 불러 세운다. 그 애는 목 끝까지 잠근 점퍼의 지퍼 끝을 잡는 고죠를 보며 입술을 깨문다. 고죠가 자신의 점퍼를 벗어 그 애의 허리에 감아 꽉 묶는다.

"이래서 사무실 의자에 앉을 수나 있겠어, 유코?"

고죠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말한다. 이 사람 정말로 짜증 난 모양인데. 그 애는 고죠의 시선을 피하며 말없이 고개를 숙인 후 사무실로 향한다.

'그러다가 둘 중 하나가 감정이 생기면요?'

'그때는.'

'.......'

'그걸로 끝.'

고죠 사토루라는 달콤함에 못 이겨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동참했다. 그 애는 작은 호감을 더 이상 발전시킬 생각이 없고 예기치 못한 고죠의 감정 변화로 이 관계가 생각보다 빠르게 허물어지는 것도 싫다. 그 애는 당장 고죠를 떠날 감정적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없으니까.

유사 연애만 하자고 제안하는 정신 나간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이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까. 높은 확률로 관계를 마무리 지으려고 할 것 같다. 고죠 사토루에게 감정이 진득하게 얽힌 관계는 성가시고 귀찮을 뿐이니까.

그 애는 언제나 그래왔듯 모른척할 생각이다. 타인의 어중간한 호감 따위, 이쪽에서 티 내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니까. 되도록 고죠가 그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면 좋겠다. 더는 고죠 사토루가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03.

이지치는 곧 진행할 임무의 간략한 내용을 보고하며 애써 시선을 돌린다. 고죠 사토루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하면서 말을 듣는 일이 거의 없다. 대부분 보고를 들으며 동시에 핸드폰으로 다른 일을 처리하니까.

"그래서 세 명의 피해자 모두...."

이지치의 당황한 마음과 달리 보고는 막힘없이 진행된다. 이지치는 보고가 시작됨과 동시에 누가 말을 하든 그 애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고죠의 행동을 무시하기로 한다. 고조의 시선을 눈치채고 불편해하는 그 애의 얼굴도.

"...이상입니다."

"빨리빨리 끝내자-."

오늘 비가 와서 그런지 기분이 축축 처지네. 고죠가 덧붙여 말한다. 기분이 축축 처진다는 사람 치고 꽤 즐거운 얼굴로 그 애의 얼굴을 봤지만. 이지치는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기어를 옮긴다.

04.

새벽. 잠에서 깬 그 애는 억지로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 결국 이불 밖으로 나온다. 슬리퍼를 직직 끌며 거실로 나오자 주방의 불이 켜져 있다. 기름 냄새와 감칠맛 나는 익은 토마토 냄새가 난다. 주방으로 다가가자 아일랜드 식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커다란 믹싱볼에 스파게티를 가득 담아 먹고 있는 고죠가 보인다.

"...그렇게 배고파요?"

"응. 너도 먹을래?"

워낙 칼로리 소모가 많은 사람이라 식욕도 왕성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새벽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는 건 처음 본다. 그 애는 고죠의 권유에 고개를 내젓다가 포크를 들고 고죠 앞에 선다.

"고죠 씨가 만든 거예요?"

"응."

의외네. 요리 같은 거 못할 줄 알았는데. 그 애는 스파게티를 둘둘 말아 입안에 넣는다.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스파게티를 씹으며 그 애의 반응을 살피던 고죠가 그 애의 탄성에 피식 웃는다.

"너무 맛있다."

"너도 옆에 앉아."

그 애는 고죠의 옆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믹싱볼에 포크를 집어넣는다. 아침에 얼굴 볼만하겠는데.

"요리 뭐 뭐 할 줄 알아요?"

"대부분?"

이 인간 요리도 잘 하는구나.

"그럼 주말에 시금치 파스타 해 먹을까요. 시금치 세일하던데."

"좋아."

그 애는 핸드폰 메신저에 온 마트 판촉지를 보며 말한다. 고죠와 번갈아 가며 믹싱볼에 포크를 넣기도, 어쩌다 보니 동시에 집어넣기도 하며 둘둘 말은 스파게티를 먹다가 문뜩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든다. 오래된 연인의 모습 같다는, 그런 쓰잘머리 없는 생각.

그 애는 포크를 빼서 식기 세척기에 집어넣는다.

"그만 먹게?"

"...네. 아침 얼굴이 걱정돼서요."

"부어도 예뻐."

음. 그 애는 눈을 굴려 고죠의 시선을 피한다. 고죠가 손을 뻗어 엄지로 그 애의 입가를 훔친다.

"...잘 먹었습니다."

"양치하고 자, 유코."

"네, 아빠."

그 애가 고죠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욕실로 향한다. 욕실 거울에 반사되는 양 볼이 붉게 변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05.

"왜 사진은 안 된다는 거야? 그거 한 번 같이 찍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죄송해요, 주인님. 카페 방침상...."

"됐어. 말만 주인님이라 부르고 내가 애걸복걸하네."

탁. 남자가 메뉴판을 던지듯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 애는 메뉴판을 조심스럽게 빼서 가슴에 꽉 끌어안는다.

어쩌지, 죽이고 싶어.

남자가 귀여운 곰돌이 포크로 케이크를 푹푹 찍으며 투덜거린다. 그 애는 곰돌이 포크로 남자의 볼을 뚫는 상상을 하며 입꼬리를 올린다.

"주인님! 속상하시죠? 주인님의 상한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유코가 정성을 다해 구운 쿠키를 가져다드릴게요-."

그래. 네 상한 마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가 만든 쿠키가 천배 만배 더 아까워.

"그것 보다, 유코."

훅, 남자가 유코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긴다. 생각보다 강한 악력에 유코의 입꼬리가 떨린다.

"가게 끝나면."

말하지 마.

"나랑 사진 찍어줄 수 있어? 가게 밖이니까 괜찮지 않아?"

요코의 사진은 모조리 고죠 사토루의 소유인지라 그건 어렵겠다.

"끝나고 오늘 뭐 해?"

위험한데. 그 애는 점액을 내뿜는 민달팽이 같은 남자의 얼굴을 내려본다. 남자가 손목을 움켜쥐는 바람에 새하얗게 변한 그 애의 손에 점점 감각이 없어진다. 힐끔, 곰돌이 포크를 본 그 애가 밝게 웃는다.

"남자친구랑 집에 가요. 유코, 요즘 남자친구랑 깨 볶는 중이거든요-."

"애인 있었어?"

"네, 주인님-.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기 전에 잠깐 찍으면 되잖아."

"넹? 유코 남자친구는 이미 여기 있어요-."

그 애가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킨다. 남자가 그 애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백발의 남자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남자친구는 유코가 너무 좋아서 한시도 떨어질 수가 없대요-."

"...이만 가볼게."

"아쉬워요. 다음에 다시 찾아주세요-."

고죠의 얼굴을 보자마자 꽁무니를 내빼는 걸 보자니 입안이 쓰다. 그 애는 남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펴며 테이블에 올려진 곰돌이 포크를 빤히 본다.

"저 사람 명줄 한 번 기네."

그 애가 중얼거린다. 그 애는 한숨을 내쉬며 고죠의 앞으로 걸어간다. 고죠가 손을 뻗어 그 애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다.

"부었는데."

"그냥 포크로 찍을 걸 그랬나."

"그러게. 찍는 김에 입도 찍으면 좋겠더라."

고죠의 말에 그 애가 낄낄 웃는다. 고죠 성격상 중간에 끼어들 줄 알았다. 대신에 조용히 그 애가 할 수 있는데까지 지켜보더라. 그 애가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다가갈 수 있게.

"병원 갈까."

"그 정도는 아니에요. 냉찜질 하면 괜찮을 거 같아요."

그 애의 말에 고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그나저나, 우리 깨 볶는 중이구나."

"아니에요?"

고죠의 말에 그 애는 유코의 얼굴로 대답한다. 애인 발언을 물고 늘어질 줄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사랑스럽구나, 나."

"네에, 주인님. 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예요."

"그 관용표현, 주로 자식한테 써서 기분 이상한걸."

알게뭐람.

"나, 유코가 너무 좋아서 한시도 떨어질 수 없어?"

고죠가 그 애의 양손을 잡고 엄지로 손가락 끝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또 끼 부리네, 이 사람.

"맞잖아요, 주인님. 우리 24시간 내내 붙어있는데."

그 애가 허리를 숙이고 고죠와의 거리를 좁히며 말한다. 빙긋 웃는 고죠의 눈에 장난기가 서려 있다. 어디 한 번 재롱을 떨어보라는 표정. 저 도발에 발끈하는 자신이 싫어진다. 좀, 참아봐!

"유코는 주인님이 너무 좋은데."

"알아-."

뭘 알아. 요동치는 감정을 주먹으로 터치고 싶은 심정이야.

그 애가 그대로 무릎을 접고 자세를 낮춰 쭈그려 앉아 고죠를 올려본다. 고죠는 양발을 뻗어 그 애의 발 옆에 발을 딛는다. 자신의 다리로 그 애의 짧은 치마가 허벅지 중간까지 밀려올라간 걸 가린다. 고죠의 행동의 의도를 알아챈 그 애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네가 내게 하는 행동은 독점과 모양이 비슷해 보이는데. 

'그냥 이대로, 유코랑 즐겁게 지내고 싶어'

대체 '이대로'라는 건 어디까지야? 왜 네 감정을 무시하는 것도 버거운데 내 감정으로 허덕이게 만들어?

"주인님, 입 맞춰도 돼요?"

"뭐?"

"유코는 뽀뽀 좋아해요."

그 애가 웃으며 눈을 치켜뜬다. 그 애는 조용히 고죠의 대답을 기다린다.

처음처럼 네가 선을 그어줘. 어디까지 되는 거고 어디서부터는 안 되는 건지.

쪽, 고죠가 등을 말아 자세를 낮춰 그 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짧게 맞댄다. 입술의 촉감도, 체온도, 부피감도 그 짧은 사이에 모든 게 너무 선명하게 느껴진다.

"유코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래. '유코'는 입맞춤도 괜찮다는 거지?

"유코. 무슨 생각해?"

이쯤되니 감정적으로 혹사 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

아까 그 남자가 아닌 고죠 사토루의 머리에 포크를 꽂아야 하는 거 아닐까. 그 애는 이 버거움마저 황홀하게 느껴진다. 그 애는 고죠가 그러쥔 자신의 손을 내려본다. 자신이 이 손을 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요."

그냥 이대로 모든 걸 결정하지 않은 채 고죠 사토루의 집이 아닌 내 집으로 숨어버리고 싶다. 그를 내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중이니까.

"뭐야-. 그래. 집에 얼른 가자."

그 애는 고죠를 올려보며 대답한다. 네. 집으로 가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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