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미 씨가 이상형인데요, 주인님
결제는 소장용/ 메이드 알바하다 고죠에게 걸렸다!
전편!
01.
나나미 씨다.
그 애는 직원 휴게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나나미를 힐끔, 본다. 도쿄 소속 보조 감독 근무 3년 차. 고죠 직할 근무는 3개월 차. 주술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못 본 3개월 전에는 나나미 켄토를 제일 만나고 싶었다. 깔끔한 매무새, 단정한 어조, 차분한 눈매와 안정감 있는 태도. 소문의 나나미 켄토는 그 애의 이상형 그 자체였다. 3년 내내 나나미의 보조 감독 한 번만 걸려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바빠서 손발이 깎여나가는 시기에 그를 만나네.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 때문에 나나미를 제대로 볼 수도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 애는 나나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손끝이 아픈 건 옛말이다. 손끝에 테이핑을 한 상태고 이제는 아무런 감각도 안 느껴진다. 고죠 사토루 때문에 신경이 죽은 거지.
사건내용기록 발생일시 2024년...
"응?"
탁탁탁. 그 애는 아무런 입력도 먹히지 않는 노트북의 키보드를 계속해서 누른다. 아-. 자동 저장 10분마다 해놓게 해놓았는데 방금 쓴 건 날아갔겠다. 그 애는 문서 작성만으로도 쿨럭이며 부담스러운 열기를 뿜어내는 노트북의 전원키를 누른다. 강제 종료 시켰다가 다시 켜면 되겠지. 그 애는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마신다. 세월아 네월아 진행되는 재부팅 속도에 감탄하다 이내 뜨는 블루 스크린에 입을 쩍 벌린다.
"말도 안 돼."
나. 오늘 쓴 보고서 클라우드에 자동 저장 되게 해놓았던가. 그 애는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가 핸드폰을 들어 클라우드 앱을 확인한다. 아, 다행이야. 저장은 되어있어. 순간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점차 식는다. 그나저나 노트북 죽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2층에 있는 총무부에 비품 구매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시간이 조금 소요될 테니 일단 여분 노트북 수령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애는 멍하니 고개를 든다. 신문을 접은 나나미가 그 애를 빤히 본다. 넋을 잃고 있던 그 애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힌다.
"아, 감사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압니다. 고죠 씨 소속 보조 감독이시죠."
고죠의 이름이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하는구나. 남 위협할 때나 쓰일 줄 알았는데.
그 애는 고개를 연신 흔들며 핸드폰을 양손으로 움켜쥔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나미 켄토입니다."
알아요, 제가 당신 팬이거든요. 주술사 동경해보는 거 당신이 처음이에요.
"나나미 씨, 제가 정말 팬이에요. 만나 뵙게 되어...."
"일 안 하니?"
그 애는 허리가 잘린 말을 그대로 삼키고 입꼬리에 힘을 준다. 미소를 지은 그 애가 고개를 돌려 사탕을 입에 물고 선 고죠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다.
"유코, 보고서 작성 다 했어?"
"아니요, 지금 노트북이...."
"일도 다 안 했는데 노닥거리는 거야?"
나 이 사람 왜 좋아하지.
그 애는 잠시 고죠의 얼굴을 뜯어본다. 그래. 다 저 얼굴 때문이다. 이상형이 눈앞에 있는데도 눈길을 끄는 외모. 남의 취향 강제로 개조시키는 미모. 그 애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상태로 죽은 눈알만 굴려 고죠의 시선을 피한다.
"죄송합니다."
"응. 얼른 일하러 가봐."
고죠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애는 죽어버린 노트북과 텀블러를 들고 도망치듯 휴게실에서 벗어난다.
"뭡니까."
"그냥-."
나나미는 턱을 쥔 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고죠의 행동에 심기가 불편해진다. 제 직속 부하를 쥐 잡듯 괴롭히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저도 모르게 한없이 허리를 숙이던 그 애에게 감정이 이입되다 보니 안 그래도 아니꼬운 얼굴이 더 꼴 보기 싫어진다.
"직속 부하에게 너무 박하신 거 아닙니까."
"무슨 일이야, 나나미. 남한테 신경을 다 쓰고."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너무 멋지지?"
"......."
나나미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다. 저 인간은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다. 나나미는 접었던 신문을 다시 집어 든다.
"나나미-. 쟤가 팬이라고 해서 들뜬 건 아니지? 주술사로 살면서 팬은 한 명도 없었잖아. 물론 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여기 왜 오신 겁니까?"
"뭐든 처음이 기억에 남는다지만 쟤는 기억하지 마-. 첫 팬에 가슴 떨려서 특별한 의미 부여하는 나나미는 케붕이거든."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디가, 나나미! 곧 점심시간인데 밥 같이 먹자-."
"됐습니다."
됐습니다. 나나미가 신문을 곱게 접어 원래 있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휴게실을 나간다.
02.
나,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적성과 재능 모두 소유한 것 같은데? 미쳤다.
고죠의 밑에서 근무하다 보니 이것도 요령이 생겨 일을 마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오늘따라 유난히 빨리 작업이 끝나서 승인 받고 바로 제출했다. 오후 근무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았는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갈까.
도쿄 주술 고전에 큰 도서관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재학생과 졸업생을 모두 합쳐도 열 명이 안 될 거다. 고죠 직속으로 발령 나기 전에는 시간이 자주 남아 도서관에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희망 도서 신청도 아무도 하지 않아 매달 도서 신청 수를 채우는 건 그 애의 몫이었다.
이 시간에는 사서도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에 도서관에는 그 애 혼자 있다. 이 큰 도서관을 홀로 쓴다니. 눈만 뜨면 수다를 떠는 스와베 때문에 사람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절실하다. 그 애는 도서관 나무 문을 연다.
"어?"
그 애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나미를 본다. 자신 말고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그 애는 책장 사이를 누비며 자신이 마지막으로 신청했던 도서를 찾는다. 아, 찾았다. 그 애는 그새 먼지가 쌓인 책을 손으로 툭툭 털며 책상으로 걸어간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나나미의 맞은편에 앉고 싶었으나 저 사람도 휴식을 찾아온 곳일 텐데 방해하기는 싫어서 두 칸 떨어진 대각선 자리에 앉는다.
"도서관에는 자주 오십니까?"
"네? 네. 고죠 씨와 함께 일하기 전까지는요."
나나미가 먼저 말을 걸 줄은 몰랐다. 그 애는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대답한다.
"가끔 보았습니다. 도서 신청 목록에서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름만 적힌 장부 말이지?
"독서 좋아하십니까."
"네, 좋아하는 편이에요."
"제가 다니는 독서 모임이 있는데...."
"고전에요?"
너무 파격적인 이야기라 무심코 나나미의 말을 끊었다. 아차. 그 애는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고 조용히 나나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럴 리가요. 비술사들 모임입니다."
세상에. 이 사람도 혹시 고죠 사토루 과인가. 작업량이 적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독서 모임까지 다니는 거지.
"참석해보시겠습니까?"
"가도 돼요? 아. 혹시 모임은 언제...."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입니다."
와! 다행이야. 어쩌다 주말 추가 근무가 잡혀도 대부분 저녁 시간 전에는 끝나니까 별일 없으면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민폐가 아니라면 꼭 참석해보고 싶어요."
역시 첫인상부터 나랑 잘 맞을 줄 알았어.
"좋습니다. 그러면 모임 장소 앞에서 만나서 가는 걸로 하죠."
그 애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애는 발을 동동 구르며 상체를 낮추고 나나미에게 묻는다.
"혹시 점심 드셨나요? 안 드셨으면 제가 이 근처에서 제일 맛있는 샌드위치 사게 해주세요."
제가 이거라도 안 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거든요.
거절하려 입을 열었던 나나미가 그 애의 얼굴을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입니다. 대신 커피는 제가 사겠습니다. 나나미가 말한다.
03.
오다 주웠다며 자신에게 마카롱 세트를 내민 노바라에게 '에, 혹시 선생님 좋아하는 거 아니지?'라고 말했다가 제자의 경멸 어린 표정을 보았다. 응, 그래. 노바라는 선생님 안 좋아하는구나.
고죠는 마카롱을 한입에 하나씩 집어넣으며 고전 주차장을 향해 걸어간다. 곧 있으면 오후 근무 시작 시간이니까 그 애는 벌써 와있겠지.
"호밀빵은 이 근처에서 이 집이 제일 맛있어요."
고죠는 고개를 돌린다. 커피를 손에 들고 고전 입구를 지나친 그 애가 쉴 새 없이 쫑알거리고 있다. 딸기 쇼트케이크는 고전 후문에 있는 베이커리가 제일 맛있고 파르페는 정문 쪽 카페가 제일 맛있다고. 고전 근처 맛집 지도는 일급비밀이라면서 고죠에게는 말해주지 않던 내용이다.
와작. 고죠는 마카롱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킨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삐딱하게 선 고죠가 그 애를 부른다.
"유-코-."
"아! 고죠 씨!"
자신이 늦은 줄 알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와중에도 나나미에게 인사는 잊지 않는 그 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점심은?"
"방금 먹고 왔어요."
아-. 나나미랑 먹었다는 거지? 고죠는 웃는 얼굴로 그 애를 내려본다. 자신의 앞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길은 멀어지는 나나미에게 붙어있다. 음,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고죠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그 애의 턱을 엄지와 검지로 쥐고 자신의 쪽으로 돌린다.
"유코, 얘기할 때는 눈을 봐야지."
"아, 죄송해요."
"나나미가 그렇게 좋아?"
"네? 아, 제가 나나미 씨 팬이라."
"왜 좋아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질문이 많지. 그 애는 미심쩍은 눈으로 고죠를 본다. 이 사람, 지금 질투하나? 대답을 기다리는 고죠를 보자니 뱃속에서 보글보글 비눗방울이 터진다. 이 상황을 기꺼워하면 안 되는데. 모르는 척 넘겨야 하는데 욕망은 그를 더 부추기라고 재촉한다. 더 찔러서 질투에 눈이 먼 얼굴을 보라고.
"...이상형이라서요."
"뭐?"
고죠의 입가가 미세하게 굳는다. 그의 작은 표정 변화에 몸이 달뜨는 것도, 그걸 알아차리는 것도 달갑지 않다.
"유코의?"
"네, 뭐."
"넌?"
"네?"
"유코 말고 넌. 너도 나나미가 이상형이야?"
그 애는 입을 꾹 다문다. 얼굴로 열이 오르는 것만 같다. 너와 나 사이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날 끌어들여. 네게 중요한 건 유코잖아.
마음 같아서는 나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냐고. 너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고 따지고 싶지만 갑자기 집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애는 입꼬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점이?"
욕망에 못 이겨 제가 먼저 이 유치한 굴을 팠지만 지금은 파놓은 구덩이를 다시 덮고 싶다. 고죠가 그만 파고들었으면 좋겠어.
"곧 오후 업무...."
"말 돌리지 말고."
고죠 사토루가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이상형을 묻네.
"별거 아닌데."
"그건 내가 판단하는 거고."
"말투나 행동거지가 단정해서요."
"끝?"
"네."
"난 단정하지 않고?"
그 애는 입을 뻐끔거리다 이내 닫는다. 이 사람,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 건지 자각은 하는 걸까. 난 지금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애는 상체를 기울여 고죠와의 간격을 좁힌다. 이 대화는 유코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주인님은...."
"......."
"단정보다는 화려해요."
좋은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결국 네 이상형은 아니라는 거잖아."
"그게 중요한가요? 어차피 유코의 주인님은 주인님이신데."
말투가 조금 서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넌 유코의 주인이니 유코의 사정 따위는 관심 가질 필요 없지 않냐고. 그 애는 자신도 모르게 말에 감정을 실어버렸다. 그 애는 고죠의 눈치를 본다. 그냥 넘어가 줘.
"얘가 날 가지고 노네."
"......."
그 애는 입을 다물고 고죠의 시선을 피한다. 그 애는 마른침을 삼킨다. 고죠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래, 좋아."
일단은 후퇴. 봐줄게, 내가. 고죠는 말을 삼킨다.
"이제 일하러 가자."
고죠는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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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봐줘. 업보 쌓고 있는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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