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가득 담아서, 러브 빔! 🌈🔫
결제는 소장용/겸업 불가 보조감독 드림주. 메이드 카페에서 알바하다 고죠에게 걸렸다!
빻았음.
01.
비상시 무조건 소집, 유동적 근무 시간, 제한되지 않은 업무량, PTSD 오는 환경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별로인 이 직업을 선택한 건 오로지 높은 수당 하나였다. 이놈의 주술판 졸업 후 당장 때려치울 거라고 입이 마르고 트도록 말하고 다녔는데 졸업 후 그 애는 손쉽게 자본주의에 굴복했다. 몸은 고돼도 돈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돼."
그 애는 자신의 떡락한 가상화폐의 가치를 보고 멍하니 입을 벌린다. 분명히 나 올해 운 좋다고 했는데? 여기 몰빵하기 직전에 일부러 행운 술식 술사에게 웃돈 주고 기도 받아왔는데?
탁. 그 애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고개를 돌려 누런 벽지에 붙어있는 달력을 본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100일 후면 이 바퀴벌레 소굴과의 계약기간이 끝난다. 1, 0 으로 이루어진 어딘가에 흩뿌려진 자신의 500만엔은 석 달 뒤 이사 갈 집의 계약금이었다.
"그래, 묻자."
그래, 지금 팔면 그냥 휴지 조각이다. 언젠가 사용할 가상화폐, 그냥 묻어두자. 몇 년 더 바퀴벌레랑 동거하면 돼.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마트에서 마감 세일하는 식자재만 골라서 최대한 소식하면 된다. 그 애는 급한 대로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한다. 이 집의 계약기간을 좀 더 늘리고 싶다는 말을 전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이 쓰레기 같은 집이 왜 이렇게 잘 나가."
이미 입주하기로 한 사람이 있어 곤란하다는 대답이었다. 고전의 임직원 기숙사 모집일은 이미 두 달은 지났다. 신청하고 싶으면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혹시 지금 들어갈 수 있냐고 문의 해보기는 하겠지만 아마 원하는 답변은 안 올 거다.
그 애는 자신의 집안을 둘러본다. 집은 야근을 마치고 들어와 눈만 붙이는 공간이라 짐도 거의 없다. 계절별 정장 몇 벌, 세안 도구, 침구 하나. 몇 없는 가전제품이랑 컨버스 두 개. 그래. 최대한 중고로 팔아버리고 당분간 캡슐호텔에 묵자.
"사람을 서랍장에 집어넣으면서 숙박비 대체 무슨 일이야?"
하루에 3천엔? 이런 식이면 1달 치 월세방 가격인데? 그 애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든다. 졸업과 동시에 사인한 근로 계약서에 겸업 금지라는 항목이 명시되어있다. 사인하기 전에 계약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봐서 안다. 이 미친 일정을 가진 보조 감독 일을 하면서 겸업을 어떻게 하냐고 쓸데없이 잉크 낭비만 한 항목이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시급 제일 높은 알바가...."
장기 파는 것 말고, 마약 운반도 말고, 살인 청부도 말고 가장 일반적인 아르바이트 중 시급이 제일 높은 거. 그 애는 어플을 통해 이력서를 집어넣는다. 채용하겠다는 답변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밤은 아무 생각 없이 두 다리를 쭉 뻗고 자기로 했다. 그 애는 잠이 들기 전 메신저의 상태 메시지를 바꾼다.
떡락도 락이다
02.
도쿄 소속 보조 감독 근무 3년 차. 진급은 한 번도 못 했고 고전 명물인 '사시스'는 본 적도 없으며 아직 친해진 직장 동료는 없다. 타인과의 거리감은 여전히 그 애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등바등 구르며 겨우 친해진 학창 시절 동기들은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되돌아간 지 오래다.
그 애는 홀로 구내식당의 테이블 하나를 독차지 한 채 점심을 먹는다. 평소 조용한 구내식당에 작은 소란이 인다. 그 애는 구운 팽이버섯을 입에 넣고 씹으며 고개를 돌린다. 어? 고죠 사토루다.
진짜 크네.
그 애는 심드렁한 감상을 내뱉는다. 같은 나이대 여성 치고 큰 키인 그 애는 어디 가서 키로 위화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고죠 사토루를 보자니 그가 거인처럼 느껴진다.
고죠 사토루가 구내식당에는 왜 와? 이런 거 먹으면 두드러기 난다고 할 것 같은데. 그 애는 팽이버섯을 삼킨다.
"이지치-. 내가 널 데리러 와야 해?"
아, 이지치 선배 잡으러 왔구나. 얼마 전, 폭발적인 업무량을 가진 고죠 사토루를 보조하기 위해 고죠 소속 보조 감독 몇몇을 뽑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중 하나가 이지치 선배인가 보네. 그 애는 밥을 먹다 말고 냅다 일어나 고죠를 따라나서는 이지치를 안쓰럽게 생각한다.
"아, 이 사이에 버섯 다 끼었어."
팽이버섯은 식감도 맛도 좋지만 치아 사이에 작은 버섯들이 눈치 없이 제 몸을 욱여넣어서 문제다. 고죠 사토루와 이지치는 그 애의 머릿속에서 별 감흥 없이 사라졌다.
03.
"미친, 합격."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그 애는 핸드폰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고개를 숙인다. 나 낯가림 심한데 잘 할 수 있을까. 나 대문자 I인데.
지잉-.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그 애는 고개를 든다. 그 애가 가진 가상 화폐의 가격이 더 떨어졌다는 알림이 온다.
"오-. 더 떨어질 나락이 있다니. 잔말 말고 출근해야지."
그 애는 입꼬리를 딱딱하게 올리며 애써 웃는 얼굴을 만든다.
04.
"어서 오세요, 주인님🩷"
내가 못 할 줄 알았다. 이렇게 부드러운 파스텔톤 옷을 입고 상냥한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주인님 따위 못 할 줄 알았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반사적으로 주인님 소리가 입에서 술술 빠져나왔다.
"유코가 사랑을 가득 담았어요-. 부디 입맛에 맞으시면 좋겠어요, 주인님-."
유코가 누구냐고? 빨간 체크무늬 원피스에 크림색 앞치마와 머리띠를 한 내 가명이다. 유코라는 귀여운 닉네임이라니. 사실은 불사신 용가리, 같은 야쿠자 별명으로 하고 싶었다.
"다음에도 유코를 꼭 지명해주세요, 주인님!"
그 애는 문가에 서서 손을 흔든다. 테이블을 정리하던 그 애는 딸랑이는 문소리에 고개를 들고 활짝 웃는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저어, 이곳 딸기 크레이프 케이크 포장하러 왔습니다."
"...네에! 유,코가 이쪽에서 포장 도와드릴게요, 주인님!"
미쳤다. 이지치 선배가 여기 왜 있지. 그 애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주인님 소리를 내뱉으며 케이크 진열장으로 걸어간다. 그러고 보니 여기 크레이프 케이크 맛집이다. 지금 고죠 사토루의 심부름을 온 건가?
"얼마나 포장해드릴까요?"
"..홀 케이크 가능할까요."
"네에. 바로 포장해드릴게요. 편한 곳에 앉아계시면 유코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이지치가 당황한 듯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안경을 고쳐 쓴다. 그 애는 웃는 얼굴로 딸기 홀케이크를 케이크 상자에 넣는다. 카페 규정대로 귀여운 홍보지에 자신의 이름을 쓴 그 애는 자신과 눈도 못 마주치는 이지치에게 다가가 케이크 상자를 내민다. 음-. 죽고 싶어.
"준비 됐습니다, 주인님-. 혹시 유코가 더 해드릴 일이 있을까요-?
"...아니요, 감사합니다."
"다, 음에도 유코를 지명해주세요!"
어색한 얼굴의 이지치에게 그 애는 밝은 목소리로 손을 흔든다. 이지치가 나가자마자 그 애는 주방으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점장을 부른다.
"점장님! 저 딱 5분만! 5분만 쉬게 해주세요!"
"...흡연 구역은 건물 뒤편이야. 냄새 안 나게 탈취제 꼼꼼하게 뿌리고 와."
"네? 네!"
담배 말리는 표정이었나? 그 애는 풍성한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가 얼마 멀어지지 않은 이지치를 불러 세운다.
"선배! 선배님! 이지치 선배님!"
이지치가 커다란 눈으로 뒤돌아본다. 그 애는 숨을 헉헉 몰아쉬며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 리본을 떼어낸다.
"선배님 제발 못 보신 걸로 해주세요, 네? 저 곧 있으면 집도 없어서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게 될 지경이에요."
그 애는 주머니를 뒤진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사탕 몇 개와 카페 무료 음료 쿠폰 몇장이 다다. 그 애는 그거라도 이지치 손에 움켜쥐여주며 간곡하게 부탁한다.
"불쌍한 중생을 구원하는 셈...."
"알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꾸벅. 그 애는 허리를 숙인다. 이지치는 주변을 살피며 됐으니 그만하라는 말을 전한다. 그 애는 허리를 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앞으로 이 카페 케이크 포장하실 일 있으시면 미리 전화주세요. 제가 먼저 포장해놓고 있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이지치가 먼저 인사를 하고 뒤돈다. 그 애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숨을 고른다. 갑자기 이벤트 난이도가 급상한 기분이다.
05.
메이드 아르바이트 일주일째. 푸딩에 시럽을 예쁘게 올리는 법도, 생크림으로 원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그 애는 오늘따라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리본을 불만스럽게 쳐다보다가 초인종 소리에 활짝 웃으며 뒤돌아 선다.
"어서 오세요, 주...님!"
그 애는 자신의 양손을 꽉 모아쥔다. 190이 넘는 장정이 부드러운 조명을 지나 카페 내를 살핀다. 그 애는 주변을 돌아본다. 왜 지금 접대 중이지 않은 메이드가 자신 하나 뿐이지? 그 애는 활짝 웃으며 손님에게 다가선다. 어차피, 저 인간은 내가 고전 소속인지 인간은 맞는지 관심도 없을 거다. 보나 마나 케이크나 먹으러 왔겠지.
"주인님, 따로 찾으시는 메이드가 있으신가요?"
"어. 유코짱을 찾는데."
커다란 손이 반으로 접힌 카드를 내민다. 이지치가 케이크를 사 갔을 때 그 애가 카페 규정에 따라 집어넣었던 서명 카드. 그리고 이지치 손에 쥐여준 무료 음료 쿠폰이다. 그 애는 덜덜 떨리는 입술로 웃는다.
"저를 찾아와주셨군요! 기뻐요, 주인님!"
"내가 너 같은 하인을 둔 적이 있었나?"
"...네?"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춘 그가 웃는 얼굴을 들이민다. 그 애는 허리를 간신히 꼿꼿하게 유지한 채 웃는 얼굴로 남자를 본다.
"너, 나 알지?"
"죄송해요, 주인님! 유코가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님의...."
"나 몰라?"
"......."
알아, 고죠 사토루.
그 애는 점점 딱딱하게 굳는 얼굴을 억지로 늘려 웃는다.
"속상하게 해드려 죄송해요, 주인님. 대신 유코가 사랑을 가득 담아 파르페를 만들어드릴게요!"
무료 쿠폰 가져왔으니까.
고죠가 그 애를 빤히 보다가 제 마음대로 빈자리에 앉는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 애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자기야, 저 이케멘 아는 사람이야?"
"저는 아는데 아마 저분은 절 모르실 거예요."
아마도.
점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그 애를 본다. 그 애는 주방장이 내민 파르페에 초콜릿 시럽으로 고죠 사토루가 좋아하기로 유명한 산리오 캐릭터를 그린다. 진짜 저 인간 무슨 생각인 거지. 그 애는 파란색 초콜릿 비즈로 캐릭터에 눈알을 박아넣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유코가 직접 그린 파르페예요!"
"에-. 나 시나모롤 별론데."
뭔 헛소리야. 네 핸드폰 키링에 시나모롤 달려있잖아.
"아아! 죄송해요 주인님. 따로 원하시는 캐릭터가 있으실까요?"
"그런 건 유코짱이 생각해야지-."
"아-. 유코는 쿠로미를 좋아해요-. 유코가 귀여운 쿠로미 초콜릿 크레이프 케이크를 가져다드려도 될까요?"
"그래, 유코짱-."
진짜 고죠 사토루 왜 저래?
그 애는 턱 끝까지 넘어오는 위액을 애써 삼키며 케이크 진열장으로 걸어간다. 쿠로미가 뭐야. 악마를 그려주고 싶다. 고죠 사토루한테 악마도 아까운 것 같아.
다 알고 온 게 분명하다. 그냥 윗선에 고발해버릴 것이지-사실 안 그래 줘서 고맙다-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난리야? 대체 자신에게 뭘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 애는 쿠로미의 삼지창을 그려 마무리 지은 후 고죠의 테이블로 걸어간다.
"짠-. 어때요, 주인님?"
"유코짱-. 뭔가 부족한 거 같아."
"네에?"
"유코짱이 사랑을 가득 담아줬으면 좋겠어. 왜, 그런 거 있잖아, 러브 빔."
뒤지고 싶나.
"아! 유코가 주인님의 마음을 몰랐어요. 그럼 시작합니다!"
아-. 내가 이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충분히 잘 에둘러 거절할 수 있는 걸 속절없이 하는 이유는 고죠 사토루가 내뿜는 위화감 때문이다. 괜히 쫄아서 흑역사를 만들고 있어.
"전부 받아 줄 수 있지? 계속 사랑해-! 너와 함께 있으면 러브 빔! 멈추지 않아!"
그 애는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며 고죠에게 내보인다. 영혼이 정수리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대체 이 노래 누가 만든 건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이야-, 유코짱. 내게 러브 빔을 쏴줄 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어.
"유코짱. 주술 근로 규정에는 겸업을 금지하고 있어."
"......."
이 새끼 진짜 뭐지. 그럼 처음부터 말하지 그랬어. 왜 시킬 거 다 시켜놓고 이제 와서 이래.
"이지치한테 들어보니까 사정 딱하게 됐더라."
사정 딱한 사람한테 이래?
"보조 감독 잘리면 정말 길거리 나앉게 되잖아. 내가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보고서 전담할 친구가 필요하거든."
"아-."
그러니까 그 노예를 자처하라는 거지?
"...주인님! 될 수 있다면 유코가 그 일을 꼭 맡고 싶어요-."
"정말 그래 줄 거야?"
고죠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고죠를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이 탄식을 내지른다. 아니 얼굴의 반을 가렸는데 왜 감탄해. 입술만 봐도 존잘인지 아닌지 알아?
"그럼 유코, 이 일 그만둘 거지?"
"네?"
"돈이 부족하면 내가 더 줄게."
"그건 좀...."
뒤가 구린 것 같아서 싫다. 그 애의 표정을 살피던 고죠가 검지로 탁자를 두드린다.
"그럼 이건 어때? 나만의 유코를 해줘."
고죠가 손가락으로 파르페 병을 두드린다.
"나를 위해 파르페를 만들고, 케이크를 자르고, 날 기다리는."
뭐라는 거야, 진짜.
그 애는 주변을 돌아본다. 어떡해, 프러포즈인가 봐. 헛다리 짚어도 어떻게 저런 결론을. 이 인간은 그런 거 안 해요. 천상천하유아독존. 저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누구랑 같이 못 산다고.
"어때, 유코?"
고죠가 핸드폰을 꺼내 행정처에 전화번호를 누르고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 애는 힐끔 핸드폰을 본다.
"좋아요, 주인님!"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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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진지한 두더지
우와 집귀신님이다!!! 포타에서도 잘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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