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을 가득 담아서, 러브 빔!
결제는 소장용/메이드 알바하다 고죠에게 걸렸다!
빻았음
전편!
01.
"알아들었어?"
"넵."
???
일단 반사적으로 대답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 애는 성가시다는 표정의 고죠를 힐끔 보고 서류 더미를 안고 되돌아간다. 중간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기는 했는데 눈치상 보고서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뜻 같다. 애초에 자신의 포지션이 그거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사고 치기 전에 이지치 선배한테 한 번 물어보고 해야겠다.
"아, 그건 제가 마무리 할 보고서입니다. 후배님께서는 앞으로 고죠 씨와 동행해서 보고서를 전담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지치는 말을 삼킨다. 네에? 덜떨어진 표정으로 반문하는 그 애를 보며 안경을 검지로 올린 이지치는 손목시계를 든다.
"3분 뒤에 고죠 씨 임무 일정 시작인데 첫날부터 늦으면 많이 화내실 겁니다."
"네에. 넥?"
그 애는 눈을 크게 뜨고 벽시계를 본다. 아니 고죠 사토루는 아까 날 안 붙잡고 뭘 한 거야? 일부러 이런 거지? 엿 먹으라고! 그 애는 꾸벅 인사를 하고 복도를 달려간다.
02.
"할 만하지?"
"...넵."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네.
그 애는 웃는 얼굴을 고수하며 고죠에게 대답한다. 대답도 듣지 않고 핸드폰을 하는 걸 보니 그 애의 대답이 필요한 말은 아니었던 듯 하다.
그 애는 고죠의 옆에 서 있다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조경석 위에 노트북을 올린다. 고죠는 하루에 특급 임무를 분 단위로 나누어 소화하고 있다. 그가 하루 근무 시간은 하루 수면시간 및 식사 시간을 대충 계산한 8시간을 제외하면 960분. 20분 내로 임무가 끝나니 중간에 농땡이 치는 걸 잡아 온다 어쩐다 쳐도 보고서를 하루 40여개 작성해야 한다. 그 애가 고죠의 태도를 비아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 애는 노트북을 펴 오늘로 18번째인 보고서를 작성한다. 고죠 사토루는 최근까지 보고서까지 홀로 소화했단 말이지? 그게 말이 되나. 그 애는 굽혀 앉은 다리가 저리든 말든 계속해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오늘치 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하면 내일의 자신이 좆된다.
고죠는 벤치에 앉아있다가 그 애를 내려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근무 시간 안에 일을 전부 끝내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 애는 고죠가 자신의 근처에 서 있다는 것 조차 인지 못 한다.
"벤치에 앉아."
"네?"
"거기 그러고 있지 말고 벤치에 앉으라고."
그 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는다. 고죠는 벤치 옆에 다리를 굽히고 껄렁하게 앉아 음료를 마신다. 고죠 사토루가 자신의 인간관계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한다는 건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인가. 고죠의 사소한 행동에 감동할 때가 아니다. 그 애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고서를 작성한다.
03.
"어서 오세요, 주인님! 따로 찾으시는 메이드가 있으실까요?"
이 바닥도 이제는 레드 오션이라 하다 하다 24시간 영업도 한다. 밤 9시까지 고죠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퇴근한 후 카페로 출근했다. 그 애를 대체할 다른 직원이 생길 때까지 근무하기로 했고 그 애의 사정을 고려한 점장이 야간 근무로 스케줄을 조정해주었다. 고죠 사토루만의 유코짱이 되겠다고 했으면서 이래도 되냐고? 물론 안 된다.
"따로 없으시다면 유코가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매번 비슷한 패턴이다.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하루의 안부를 묻고 귀엽고 달콤한 디저트들을 찬양하다가 그들의 잡담을 들어준다. 이 카페에 자주 찾아오시는 손님들은 가끔 유코의 안부도 묻곤 한다.
"유코짱은 오늘 하루 어땠어?"
"조금 지쳤는데, 주인님 만날 생각에 행복했어요-."
존나 지쳤다.
그 애는 광대가 보드랍게 올라오게 웃는다. 이러면 조금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가려지니까. 딸랑, 차임벨 소리가 들린다. 유코의 안색을 살핀 손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떡해, 유코짱.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있을까?"
"말씀이라도 감사드려요, 주인님. 역시 유코를 생각해주시는 건 주인님 뿐이세요."
손님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 애 앞으로 케이크를 내민다.
"단 걸 먹으면 조금 힘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주인님을 위한 케이크인걸요."
"내가 유코에게 주었으니 유코를 위한 케이크야."
그 애는 포크를 들고 녹차 크레이프 케이크를 푹 찔러 입 안에 넣는다.
어서오세요-, 주인님. 따로 찾으시는 메이드가 있을까요?
다른 이들의 자본주의 친절 모드가 이제는 어색하지도 않다. 아, 이 녹차 케이크 정말 맛있네.
"유코짱을 찾고 있는데."
와작. 그 애는 포크를 문다. 이 목소리, 건방진 어조, 한 곳을 바라보는 주변인들과 이 위화감. 큰일 났다.
"음? 유코짱-. 주인님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면서 이러기야?"
성큼성큼 다가온 고죠가 그 애와 맞은편 손님을 번갈아 바라본다. 와, 큰일 났다. 지명도 끝장난 건 뒷전이고 이 가게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 점장님 딸랑구 올해 대학 간다고 했는데. 가게 망하면 어쩌지.
"주인님! 유코는 지금 접객 중이라 괜찮으시다면 제가...."
"난 유코를 보러 온 거라."
보러 온 게 아니라 죽이러 온 거 같은데.
그 애의 난감한 얼굴을 본 단골이 검지로 그 애의 손등을 톡톡 두드린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유코짱. 나도 이만 가야겠어."
"주, 주인님! 제가...."
"괜찮아. 다음에도 유코짱을 만나러 올게."
중년 여성이 빙긋 웃으며 그 애에게 손을 흔든다. 그 애는 애써 웃으며 손님을 배웅한다.
"이제 나 좀 볼까, 유코짱. 유코짱 인기가 너-무 많아서 그 주인이 된 내가 다 황송할 지경이야."
말 한 번 진짜 얄밉게 하네.
"고죠 씨."
"주인님. 유코짱, 잊었어?"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그 애는 발갛게 색을 덧그린 볼이 돋보이도록 보조개가 푹 파이도록 웃는다. 옆구리에 달고 다니던 귀여운 사과 모양 메뉴판을 든 그 애가 살랑살랑 오늘 입은 잘 익은 사과색의 원피스를 보여주기 위해 고죠 사토루 앞에서 한 바퀴 돈다.
"저 오늘 어때요, 주인님?"
있지, 난 오늘 내 항마력이 높을지 네 항마력이 높을지 겨루기로 했어. 난 네가 오늘 날 찾아온 걸 후회했으면 좋겠어.
"너무 귀여워, 유코."
"...주인님! 이번 주는 사과를 사용한 디저트를 테마로 하고 있어요-. 괜찮다면 유코가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그래-."
그래. 나도 네가 이 정도에 나가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
"유코는 사과파이를 추천해 드려요. 사과파이 위에 올려진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너무 향긋하고 달콤하거든요."
"유코처럼?"
질 거 같아.
"네-, 주인님. 그럼 사과파이로 드릴까요?"
"그래-."
그 애는 삐걱거리며 뒤돌아 케이크 진열장으로 간다. 어째 고죠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기분인데. 이러다 본전도 못 찾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 애는 조각난 사과파이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푹 퍼서 올린다. 얇게 자른 사과로 귀를 만들어 아이스크림에 꽂은 후 파란 초콜릿으로 눈코입을 그려준다. 그 애는 초콜릿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불곰을 얹은 사과파이를 고죠 사토루 앞에 내려놓는다.
"짠-. 주인님만을 위한 유코의 특제 사과파이랍니다-."
"음-. 특이하네-."
"주인님, 제가 식사를 도와드려도 될까요?"
돈을 바른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묻자 고죠 사토루가 고개를 까딱하며 턱짓한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눈치다. 그 애는 포크로 아이스크림 곰의 눈을 파 파이에 얹은 후 파이를 조각내 고죠 사토루의 입가에 내민다. 자, 네 눈알처럼 새파란 눈이야.
"주인님, 아-."
그 애의 행동에 고죠가 눈썹을 비튼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고죠의 행동이 기꺼워 뱃속이 다 간지럽다. 보글보글, 뱃속에서 희열이 터진다.
"주인님, 유코 팔다리가 아파요. 혹시 유코의 행동이 불편하신가요?"
불편하겠지. 무릎을 굽힌 채 테이블에 찰싹 달라붙어 뭉개진 곰탱이를 먹으라고 내미는데.
"유코짱. 팔다리가 아프면 내 무릎에 앉을래?"
고죠가 입을 벌려 그 애가 내민 파이를 먹는다. 포크를 든 그 애의 손이 잘게 떨린다.
"죄송해요, 주인님. 가게 규정상 신체 접촉은 금지되어있답니다."
"넌 이 카페의 유코가 아니라 내 유코잖아."
왜 이래. 나랑 근로 계약서 썼냐고. 신체 접촉 허용한다는 내용이라도 있냐고.
"유코 너무 부끄러워서...."
"딴소리 그만하자. 시간 아까워. 너 누가 겸업하래?"
"......."
처음부터 딴소리를 시작한 건 고죠였다.
"뭐, 아직 계약서도 안 썼고 돈도 안 받았으니까 네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야?"
없지않아 그런 마음도 있었다.
"투잡 뛰는 걸 보니 오늘 일이 할만 했나 봐?"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는 알아? 당장 옷 갈아입고 나와. 가게 앞에 차 대고 있을 테니까."
고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가게를 나간다. 아니, 가더라도 계산은 해주고 가야지! 그 애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유코...."
"민폐 끼쳐서 죄송해요. 저 분 계산서는 제게 달아주세요."
"걱정 말고 얼른 가봐."
정말 점장님은 천사야. 그 애는 축 늘어진 어깨로 탈의실에 들어간다.
04.
고죠 사토루 직업이 선생님이라서 그런가.
"너 한 번 들키고 나서도 가서 일하는 건 뭐야. 겁이 없는 거야, 멍청한 거야?"
"......."
"이미 고전 내에서 네 인사 배정은 내게 옮겨졌는데 계약서 아직 안 썼다고 마음대로 해?"
"......."
"그럴 시간에 차라리 보고서나 작성해."
훈계가 길다. 그 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핸들을 쥔 고죠의 손을 본다. 고죠는 말을 하면 할 수록 화가 치미는지 운전이 점점 거칠어진다. 나 그만 내리고 싶은데.
"너 집 때문에 이러는 거라며."
"아, 네에. 집 문제도 있고...."
"그럼 당분간 내 집에서 지내."
뭐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직은 계약기간이라 지낼 곳이...."
"어차피 일도 많아서 퇴근도 힘들 거니까 내 집에서 지내라고. 그게 서로 시간 절약되고 좋잖아."
앞으로 일을 죽을 때까지 시키겠다는 선전포고인가.
"하지만...."
"하지만, 뭐. 내가 널 건들기라도 할까 봐?"
그 애는 입에 힘을 주고 입꼬리만 올린다. 안하무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사람 멘탈 터는데 타고난 재주를 가졌다.
"고죠 씨는 걱정 안 되세요? 제가 고죠 씨 잡아먹으면 어쩌려고요."
"네가 날?"
고죠가 코웃음 치니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그를 희롱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온다.
"헛소리 말고 지금 당장 내 집으로 가."
"제가 무슨 소라게예요? 짐을 등에 얹고 다니는 줄 아시는 거 같은데, 저도 살림살이라는 게 있거든요."
"살림살이 뭐. 정장 몇 벌, 신발 몇 개, 세안 도구?"
고죠 사토루가 혹시 내 집 왔다 갔나.
"그냥 새로 사. 지금 집은 사람 불러서 정리할 테니까."
"새로 살 돈도...."
"내가 너한테 사라고 하겠어?"
마침 정장도 다 헌 참이라 사준다니 감사한데 정말 성질난다. 어쩌다 고죠 사토루한테 걸린 거지. 나름대로 고전 내에서 조용하게 잘 지내고 있어 만족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핵 인싸 슈퍼스타 눈에 걸려서 할리퀸 영화 찍고 싶지 않았다고.
그 애는 한숨을 참으며 차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다. 고죠가 손을 뻗은 이상 모든 일은 고죠 마음대로 돌아갈 거다. 얌전히 순응하는 게 그나마 덜 피곤하다. 그 애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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