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운명의 저울질

시부야사변 후, 1년이 지난 시점

Adore U by 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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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한 달빛이 커튼 틈새로 스미듯이 비친다. 지금이 새벽임을 대충 짐작하며 반도 뜨지 못한 눈을 한 채로 옆자리를 더듬거렸다. 매끈한 이불만이 손바닥에 감긴다. 옆에 있어야 할 아이가 없다.

“유우지?”

당황한 그의 시야로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여 안도한다. 다행이다. 여기에 있어. 일순간 불안에 경직됐던 몸이 풀리는 걸 느끼며 유우지를 주시했다. 시선의 끝도 알 수 없게 그저 허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 가슴께가 답답히 내리눌리는 듯하다.

어딜 보고 있는 건지. 그 눈에 무얼 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은 말들이 앞다투듯 피어오르지만 내뱉지는 않는다. 대신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놓인 아이의 손에 제 손가락을 겹쳤다.

내 쪽을 봐줘.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을 대신하듯 짐짓 겹친 손에 무게를 실었다. 그제야 마주 봐주는 눈에는 공허함이 담겨있어서, 사토루는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묻는 대신 다른 말을 고르기로 했다.

“일찍 일어났네.”

“응. 눈이 일찍 떠져서.”

“그럼 더 자자. 이리 와.”

그리 말하며 옆을 팡팡 치자, 유우지는 별수 없단 듯 웃으며 도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푸석한 눈을 한 채로 사토루의 머리칼을 한참이나 어루만진다. 아무래도 다시 잠들 마음은 없어 보인다. 사토루는 아이의 수면을 종용하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가만히 손길에 집중했다.

눈이 일찍 떠졌다는 유우지의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악몽에 한참을 시달리다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한 거겠지. 말하지 않아도 어림잡아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달리 묻지 않고 그저 품 안의 아이를 세게 끌어안는다. 악몽의 내용은 언제나 똑같으니까. 유우지는 사내의 품에 안겨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끔찍했던 할로윈, 그날의 시부야. 그때의 꿈을 꾸고 나면 눈을 감았을 때 펼쳐지는 암흑조차 무서워 도로 잠들 수가 없다.

1년도 더 된 일이다. 허나 그날부터 유우지에겐 매일이 반드시 걸어야만 하는 가시밭길이었다. 날붙이 위를 맨발로 끝도 없이 나아가는 감각. 기계적으로 임무를 나가고, 주먹을 휘두른다. 존재 가치를 증명하듯 주령을 퇴치하는 하루, 또 하루. 유우지의 눈이 안광을 잃고 어둠에 잠긴 지는 오래되었다. 다시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싶다. 사토루는 그리 생각하며 아이의 눈꺼풀 위에 짧게 입 맞추었다.

유우지가 지금까지 삼킨 손가락은 1년 전과 마찬가지로 15개. 고전에서 현재 세 개의 손가락을 더 보유하고 있지만, 상층부에선 남은 두 개를 다 모으고 난 뒤 한꺼번에 삼키길 지시했다. 사형은 그 이후에. 스쿠나에게 ‘또’ 몸을 뺏기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른 처사였다. 그릇을 향한 상층부의 신뢰가 바닥을 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전에도 딱히 있지는 않았겠지만.

유우지는 그 지시에 별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두 번 다시 스쿠나에게 몸을 뺏기고 싶지 않으니까. 또 통제하지 못해 사람을 죽이게 되는 건 싫다. 남은 손가락을 전부 삼키고도 육체의 주도권을 뺏기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적실한 것은 아니다.

녀석의 악함은 시부야 때 재차 절감했다. 이제는 본인의 선악조차 따질 수 없게 되었다. 경계가 흐릿하게 살살 지워진 느낌이다. 어쨌거나 녀석이 학살을 일으킬 수 있도록 몸을 빌려준 건 자신이니까. 약했기 때문이다. 좀만 더 강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몇 번이나 뇌까리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사람을 실컷 죽여놓고 버젓이 살아있다. 한낱 살인귀로 머무르고 싶지 않아 무던히 노력했지만 본질은 바꿀 수 없었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은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다. 외려 전보다 더 많은 걱정과 신경을 제게 부어주고 있다. 노바라를 볼 때마다 그녀의 한쪽 눈에 씌워진 안대가 제 탓 같고, 메구미를 볼 때마다 언젠가 스쿠나가 나타나 해를 끼칠까 겁이 나는데도.

유우지는 예전보다 더 자주, 많이 웃게 되었다. 음울한 속내를 감추기 위한 비책이었다. 실은 억지로 끌어 올린 입꼬리는 파들거리고, 밥을 먹고 나면 토역감이 몰려와 구역질이 난다.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자각은 있지만, 구태여 막으려 하진 않는다.

아마도 영원히 씻을 수 없을 살인에 대한 죄책감, 스쿠나를 향한 혐오, 육체의 주도권을 뺏겼던 자신을 향한 분노. 새카만 감정들이 뒤엉켜 덩어리지고 차올라 숨 쉴 공간조차 없게 한다. 이따금 목을 억죄어오는 감각에 숨을 가삐 몰아쉬고 있자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제 모습에 혐오감이 불쑥 밀려든다.

나만, 나만 죽었어야 했는데.

수많은 이들을 악몽보다도 끔찍한 현실에 던져놓고 잘도 살고 있다. 지금도 안전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의 품속에 안겨있다. 살결에 맞닿아오는 온기는 제게 안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유우지.”

“응?”

“사랑해.”

차츰 상념에 좀먹히고 있는 아이를 알아차렸다. 이럴 땐 맥을 끊고 생각을 환기시켜야 한다. 자꾸만 저편으로 넘실거리며 떠내려가는 아이를 붙잡아 본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자신만 생각해달란 이기적인 마음을 담아 속삭였다. 유우지는 갑작스런 고백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띄우는가 싶더니, 이윽고 작게 웃으며 나도 하고 짧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직은 손끝에 아슬하게나마 잡혀주는 것이 고맙다. 답례라도 하듯 통통한 볼에 마구 입맞춤을 남긴다.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뺨을 쓸어내리며 이런 아이가 죽음을 바란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사토루는 다시금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힘없는 웃음을 볼 때마다 불안함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이 손을 놓쳐버리면 어떡하지.

최강이라 일컫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신은 너무나 많은 인연을 잃었다. 더 이상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미연에 부탁까지 해두었던 아이다. 품에 안은 연인이 날아가기라도 할 듯 팔에 한껏 힘을 실으면서, 사토루는 아이가 다시금 삶을 희망해주길 바라며 묵상에 잠겼다. 믿는 거라곤 그저 자신뿐이었던 사내의 서투른 기도였다.

하지만 바램과 달리 유우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에 사고를 좀먹히게 되었다. 다시 삶을 희망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다 끝내고 싶다. 지금 당장 죽어버릴 수만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잠들기 직전까지 매일같이 되뇌었다.

허나 그런 주제 좋은 마지막이 제게 허락될 리가 없다. 끊임없이 주령을 퇴치해서 가치를 증명하고, 죽인 사람의 수보다 많은 이들을 살려 그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야 하며, 남은 손가락을 모두 삼켜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이타도리 유우지의 올바른 죽음은 그것뿐이다.

 


 

스스로 정의 내린 ‘올바른 죽음’에 하루라도 빨리 다가서기 위해, 유우지는 무리해서 임무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웃어넘기기만 할 뿐, 달리 일을 줄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특히 스쿠나의 손가락이 있을지도 모르는 특급에 상응하는 건은 반드시 직접 도맡으려 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찾아내서 삼키고 마무리 짓는 것까지 전부.

유우지의 등급 심사는 무기한 연기 상태. 하지만 이미 1급에 준하는 실력이란 것은 상층부도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임무를 배정받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특급에 달하는 주령을 퇴치한 경험도 여러 번인데다가, 상층부의 입장에선 유우지가 임무에서 죽더라도 하등 상관없으니까. 아마 여러모로 괜찮은 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우지!”

의무실 문이 부서질 기세로 벌컥 열렸다. 쇼코는 놀란 기색도 없이 구석진 창가를 가리켰고, 사토루는 그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을 디뎠다. 걸음이 멈춤과 동시에 얼굴이 한껏 구겨진다. 또다.

“하…….”

기어이 또 현장에 몸을 내던진 모양이었다. 미동도 없이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얼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거즈와 밴드. 시선을 떨궈 아래를 살펴보면 주먹이 가장 큰 무기인 유우지답게 양손과 가슴팍, 허리에 붕대가 휘감겨 있다.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사토루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보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토루가 임무에 간섭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유우지의 연인이기 이전에 특급 주술사이며, 고전에서 교편을 쥐고 있는 선생이다. 매일같이 할당되는 임무의 급까지 하나하나 체크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걸 아는데도 화가 난다.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지킬 생각조차 없는 아이에게도.

“다친 곳은 많지만, 전체적으론 경상에 가까워. 저번처럼 몸에 구멍이 난 건 아니니까 안심해.”

“하나도 안 웃긴데, 쇼코.”

“미안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이타도리는 나한테도 귀여운 제자니까. 쇼코는 그 말과 함께 곧 깨어날 거라며 자리를 피해주듯 의무실을 벗어났다. 사토루는 붕대가 둘둘 감긴 손을 한참이나 매만졌다. 잠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할 새라 최대한 힘을 빼고 살살. 작지 않은 아이의 손이 사내의 큰 손에 숨겨지듯 덮인다.

차라리 이렇게 숨겨두고 싶다. 어디에 가둬두면 적어도 다칠 일은 없지 않으려나. 하지만 유우지라면 벽을 부수고도 남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이라도 한 듯이 사토루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한없이 가벼워 나오자마자 허공에 스러지는 웃음엔 갈 곳 없는 원망이 뒤섞여 있다.

“유우지는 정말 너무하네….”

무리한 임무에는 자연스레 부상이 뒤따른다. 덕분에 유우지는 쇼코에게 치료받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부분이 경상이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중상인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의 잦은 부상으로 인해 사토루가 의무실에 드나드는 일 또한 빈번해졌다. 근접전에 강하고 온몸이 곧 무기인 유우지의 전투 방법은 부상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걸 아는데도 이렇게나 화가 나는 이유는, 유우지가 현장에 몸을 내던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새근대는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토루는 어느 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있지, 선생님.’

‘응.’

‘주술사는 주력으로 죽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맞아?’

‘…맞아.’

난데없는 질문은 꺼림칙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연유로 튀어나온 의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뜸을 들인 후에야 어렵사리 대답했다. 목구멍 끝에 말이 턱 걸린 듯한 감각. 겨우 짧은 긍정의 답을 돌려주는 게 전부였다. 그 순간에도 유우지는 섬뜩한 말을 내던진 장본인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낯빛이었다.

‘왜인지 물어봐도 돼?’

어째서인지 다음을 알려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쳐 주는 걸 좋아해 질문받을 때마다 즐겁게 대답하는 편임에도. 언젠가 느꼈던 불길한 기운에 다시금 사로잡혔다. 제 직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언젠가 이 순간을 복기하게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의 대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선생이고 아이의 물음에 답을 줘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안 그러면 저주가 될 수 있어서. 근데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나.’

‘그렇구나. 그럼 내 처형은 주술사가 해야만 하는 거네.’

아이가 다음으로 이을 말이 무엇인지 눈치챈 사토루는 다른 얘길 하자며 말을 끊었다. 그에 유우지는 사내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는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속내에 답답함이 그득하게 들어차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모양인지 쥐고 있던 손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진다. 황급히 아이를 살피니 눈을 반쯤 뜬 채로 자신을 보고 있다.

“엇…. 선생님이네.”

“유우지! 괜찮아?”

“그러엄. 멀쩡해.”

이 꼴을 하고선 잘도 멀쩡하다고 한다. 사토루는 상처 없는 아이의 왼쪽 뺨을 꼬집는 것으로 투정을 대신했다. 볼을 꼬집히고도 유우지는 연신 웃는 낯으로 일관했다. 선생님 일은 다 끝났냐는 둥, 오늘 저녁엔 라멘이 좋겠다는 둥,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유우지가 양 손뼉을 부딪쳤다. 붕대가 잔뜩 감겨 있는 탓에 짝 소리 대신 둔탁한 마찰음이 의무실 안을 울렸다.

“맞아, 오늘 임무에서 손가락을 찾았어.”

“…스쿠나의?”

“응. 그럼 설마 사람 손이려고.”

유우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고, 사토루는 웃지 못했다.

19번째의 손가락. 그렇다는 건.

“하나만 더 찾으면 되네.”

“유우지.”

“응?”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거야?”

낮게 가라앉은 물음에 아이는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대답을 이었다.

“응. 알고 말하는 거야.”

여전히 어둠을 집어삼킨 그늘진 호박빛이 맞은 편의 사내를 마주했다. 바다를 품은 것처럼 아름다운 눈동자가 파도치듯 흔들린다. 사토루가 동요하고 있다. 태풍의 눈 안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어지러운 주술계에서도 여유로 일관했던 그 고죠 사토루가. 아이의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이의 사형이 코앞이다. 곧, 유우지가.

사내의 동요를 눈치챘음에도 유우지는 고집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 처형은 꼭 선생님이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유우지를 어떻게 죽여…….”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해.

사토루의 입에서 무너지듯 대답이 밀려 나왔다. 유우지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듯 손을 뻗어 옷자락을 부여잡는 손길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작년의 사토루에게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이던 가을의 초입인, 아마도 할로윈으로부터 한 달 전 즈음. 당시엔 손가락을 5개밖에 삼키지 않았을 때라 사형은 먼 미래 같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몰아치는 임무를 감당해내며 이러다 사형당하기 전에 죽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죽는 건 무서우니까 살고 싶다고, 당시엔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죽는다면 올바르게, 많은 이들 앞에서.

‘선생님. 내가 손가락을 다 삼키면 바로 사형이야?’

‘그렇게 둘 생각은 없지만, 아마도 위에서는 그러라고 하겠지.’

‘집행은 누가 해? 내가 고를 수 있나.’

‘고를 수 있다면 누구로 하고 싶은데?’

‘역시 선생님이 좋아! 다른 사람은 싫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자. 물론 죽을 일 따위는 없게 하겠지만! 나 최강이고.’

‘든든하네에.’

당시의 대화를 떠올린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사형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게 있다면 처해진 상황과 마음가짐 정도. 당시의 사토루는 사형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유우지를 지킬 자신이 있었으니까. 애초에 ‘손가락을 모두 삼키고 사형’이란 말도 당장 아이를 살려보고자 상층부를 상대로 내걸었던 제시책이다.

물론 다 삼키고 나더라도 집행하게 둘 생각은 없었고, 보다 훌륭한 주술사로 성장시켜 아이의 능력을 보여줄 계획이었다. 주술사는 언제나 인력난이고, 유우지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으니까. 필요가치를 증명해 아이를 쉬이 건드릴 수 없도록 만들 요량이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구원받을 준비가 된 아이이니 자신이 손만 뻗는다면 당연스레 맞잡아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시부야에서의 밤. 그날부로 유우지에겐 죽음에 대한 열망이 뿌리를 딛고 자라났다. 뿌리는 손쓸 틈도 없이 자라나 깊숙이 박혀 아이와 한 몸이 되었다.

유우지는 더이상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이를 끌어올릴 방도는 없다. 일전 경험으로 얻은 배움. 현실을 깨닫고 이내 형용할 수 없는 절망에 휩싸인다.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무력감은 퍽 메스꺼웠다.

“사실 옷코츠 선배한테 날 처형해달라고 속박을 맺을까 했는데.”

“뭐?”

“그건 역시 아닌 것 같아서. 마지막은 선생님이랑 함께이고 싶어.”

“유우지.”

“이기적이어서 미안해.”

유우지는 말을 마치며 웃었고, 사토루는 웃지 못했다. 우선 아이가 속박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작년, 옷코츠가 사형 집행인을 자처하며 상층부와 속박을 맺었던 일은 전해 들었다. 그때 알게 된 걸까. 유우지를 지키기 위해 부러 그 먼 곳까지 찾아가 유타에게 부탁했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다. 지나온 선택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부탁이야.”

유우지는 평소에 부탁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따금 생각할 정도로. 그런 아이가 거의 처음이라 해도 좋을 만큼, 드물게 한 부탁이 이런 거라니. 사토루는 허탈한 듯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해에 따른 ‘속박’은 주술에 있어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며, 한 번 맺은 이상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서약이다.

 

“나랑 속박을 맺자. 선생님.”

 

연인을 죽일 것인가, 다른 이가 죽이게 놔둘 것인가.

이제 운명을 상대로 가장 잔인한 저울질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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