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죠유지] 비원
시부야사변 이후, 옥문강에서 나온 사토루가 현실을 직면하는 이야기
“다들 오랜만이네?”
출장이라도 다녀온 듯 천연덕스러운 인사다. 사내의 경망한 음성이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쿠기사키는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한쪽 눈을 아무렇게나 벅벅 문질렀다. 봉인을 당해놓고도 사람이 변하질 않느냐며 한 소릴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멀찌감치 뒤에 서 있던 메구미는 그렇게 쉽게 변할 위인이 아니라며 말을 거들었다. 이제야 겨우 모였다는 느낌이다.
사내의 봉인을 푼 주역인 유우지는 그대로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몇 번이고 그려왔던 상상 속에선 곧바로 달려들어 어서 오라고 반겨주었는데. 예상과 달리 발이 떨어지질 않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일관 중인 사내를 보고 있자니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계속 경직되어 있던 몸이 겨우 이완되는 느낌. 그와 동시에 커다란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또록 굴려졌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흘려보낸다.
“어라, 다 울려버렸네.”
미소를 잃지 않은 채인 사토루는 여유롭게 걸어가 눈앞의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고생 많았다고, 고맙다고 하자 그 말이 신호탄이 되기라도 한 양 사내의 어깨가 빠르게 젖어 들어간다. 줄곧 이 온기가 그리웠다. 언제나 다정히 어루만져주는 손길도, 매번 기쁜 말을 들려주는 목소리도. 헤아릴 수 없는 밤들을 홀로 넘기면서, 당장 제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얼마 만에 안겨보는 것인지 모를 품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제 죽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눈물.
사토루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고, 그저 선생님이자 연인인 자신이 돌아온 게 감격스러워서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온몸으로 반겨주는 아이가 사랑스러워 그사이 단단해진 듯한 등을 보드랍게 다독여주었다.
“보고 싶었어, 유우지.”
“응, 나도. 나도, 선생님.”
그리곤 너무나도 당연히, 계속해서 함께일 거라 생각했다.
자신만의 몽상이었단 걸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우지의 사형 날짜가 잡혔다.
그렇게 됐네. 가볍디 가벼운 감상이었다. 제 목숨줄을 잡아 비틀어 끊겠다는데 어쩜 이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기가 차서 실소를 터트렸던가.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수순이다. 유타의 도움으로 사형을 위장했던 것도 이미 들통난 지 오래였다. 당장에 할 일이 있으니 죽을 수 없어 도망쳤을 뿐, 사형 자체를 거부할 생각은 일절 없었다.
자신은 살인자니까 죽는 게 당연하다. 재판장에서 만났던 사내는 제 잘못이 아니라고 일러주었지만, 고마웠지만, 전부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자신이 약했던 탓이니까. 좀 더 강했더라면, 제어할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사토루의 해방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날아온 상층부의 연락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일 처리가 빠르다고는 생각했던 것 같다. 주술계에서 자신은 정말이지 빨리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구나. 새삼 제 존재 가치가 밑바닥이라는 걸 곱씹는다.
일주일간 신변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며 통보받았고, 다음 주에 집행이 이뤄진단 뜻임을 눈치챘다. 일주일이나 시간을 주다니. 예상보다도 괜찮은 취급이다. 하필 전화를 받을 때 메구미가 옆에 있었던 지라, 얼결에 가장 먼저 알리는 꼴이 됐다. 드문드문 흘려들은 통화 내용을 믿고 싶지 않았는지, 메구미는 부러 제게 물어왔다. 무슨 이야길 한 거냐고.
어떻게 말해야 할까. 눈앞의 꽉 그러쥔 주먹이 애처롭게 부들거려 고민이 됐다. 찰나의 고심 끝에 간단하게 이야기하자 메구미는 감정을 드러내며 격분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한 유우지는 괜찮다며 그를 달랬다.
죽으란 소릴 들은 주제에 누굴 달래는 거냐고 메구미는 벌건 눈을 한 채로 말했다. 그에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제 죽을 수 있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유우지는 말갛게 웃어 보였다. 진심으로 안도하는 듯한 미소에 메구미는 무어라 할 말을 고르지 못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사토루와 유우지가 이 문제를 두고 대화하게 된 것은 감격의 재회 다음 날. 나온 직후 대강의 상황 파악은 마쳤지만,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며 메구미를 불러 면담 자리를 만들었다. 말이 좋아 면담이지, 사실상 자신이 없을 때 유우지가 어떠했는지를 묻기 위한 구실이다.
“메구미도 정말 고생 많았어- 힘들었지.”
“누가 냉정하지 못하게 붙잡히는 바람에 고생 좀 했죠.”
“와아, 직구.”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옥문강 안은 해골이 가득한, 아무리 봐도 지옥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주술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실없는 생각을 잠깐 했던가. 살아있는 이라곤 자신뿐이었던 그 안이 퍽 심심했던지라, 역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이곳이 몇 배는 더 좋았다. 나와보니 함께 대화할 이들을 여럿 잃은 상황이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다. 옥문강에 갇힌 직후, 내부 파악을 마치고 나서는 바깥 상황을 몇 번이나 상상했다. 머리 굴리는 것 말곤 그다지 할 것도 없는 공간이다. 몇 번이나, 몇 차례나 바깥의 형세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국엔 해내 줄 거란 믿음이 있지만, 자신이 없는 한 절대적 승리는 불가능하다. 여러모로 곤란하고, 큰일이며, 아마도 몇 명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 중엔 이름만 겨우 들어본 이도 있을 거고, 어쩌면 소중한 동료가, 은사가, 아끼는 제자가 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엔 익숙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나와서 전해 듣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믿을 수 있었던 동료이자 후배가, 자신의 몇 안 되는 이해자 중 하나였던 은사가.
여러 감정이 스쳤다. 추회와 답답함이 뒤섞인 그 어드메.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순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마음이 든다는 건. 제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꽤 있구나, 하는 판국에 맞지 않는 생각을 잠깐 했다. 푸르렀던 봄에 배웠던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감정.
이건 오롯이 자신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며, 개인적인 기분을 제자 앞에서 드러낼 순 없다. 교편을 잡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선생으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세워온 철칙 중 하나다. 안대로 얼굴이 반쯤 가려지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기분과 상반되게 사토루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내걸렸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대뜸 메구미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맥을 끊었다. 솔직히 말하면 놀랐다고 할까. 메구미가 이야기를 듣다 말고 끊는다는 건 드문 일이다. 말을 한 귀로 흘려들은 다음 무시하는 쪽이니까. 어두운 안색과 잔뜩 골이 오른 표정. 메구미의 반응을 보아하니 심상치 않은 상황임이 분명했다. 애써 올렸던 입꼬리가 맥없이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대체 중요한 게 뭐길래 이러는 건가.
“이타도리랑 대화는 했어요?”
“아, 어제 정신이 없어서. 데려다주기만 하고 얘기는 제대로 못 했네.”
“…그래서 그렇게 태평했구만.”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메구미.”
사토루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보다도 더 굳어진 얼굴로 메구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유우지랑 관련된 건가. 차가운 음성으로 되묻자, 메구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무심결에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분지를 정도로.
“이타도리 그 녀석, 이제 죽을 수 있겠다고 했어요.”
“뭐?”
“사형 날짜가 잡혔다고요. 당장 다음 주. 그 녀석은 순순히 받아들였고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유우지가 그래?”
“네. 제 말은 안 들으니까 선생님이 어떻게 좀 해주세요.”
지금은 그게 먼접니다.
드륵, 소리와 함께 메구미가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사토루는 불현듯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 익숙하게 단축번호 1을 꾹 누른다. [유우지] 간결한 글자가 화면에 띄워지고, 명랑한 목소리 대신 통화 연결음만 한참을 울린다. 지금 듣고 싶은 건 이딴 게 아닌데.
망할. 연결되지 않고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 버리는 전화가 맘에 들지 않는다. 오늘 임무라도 있었나? 보폭이 넓은 덕에 안 그래도 빠른 사토루의 걸음에 점차 가속이 붙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유우지가 이상했다. 초조함에 잇새로 입술을 아무렇게나 짓뭉개면서 사토루는 전날을 곱씹었다.
‘유우지랑 더 있고 싶은데, 할 일이 많아서 오늘은 무리네. 아쉬워-’
‘아무래도 그렇겠지. 내일 얘기해! 나도 할 말 있고.’
‘할 말? 뭐야! 나 궁금해서 못 가.’
고전으로 돌아온 건 날이 바뀌기 직전인 늦은 시각. 밤이 깊어 우선 아이들은 기숙사로 보내고, 마지막으로 유우지를 데려다주며 방문 앞에서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물리적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옥문강 안과 달리, 바깥은 이미 몇 달이나 흘러있었던 지라 따지고 보면 간만의 재회가 맞았다. 얼마나 제 연인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묘하게 가라앉은 유우지가 신경 쓰였지만, 실컷 운 탓에 지친 모양이라고 넘겨짚었다.
할 말이 궁금하다고 떼를 쓰자 유우지는 웃으며 별일 아니라고 했고, 대답 대신 사토루에게 고개를 숙여보라고 했다. 순순히 허리를 굽히자 제 양 볼을 붙잡고는 가볍게 입 맞춰주었다. 먼저 스킨십을 해 오는 일이 드물던 아이라, 사토루의 눈이 휘둥글하게 떠졌다.
‘…뭐야, 유우지. 가지 말라는 뜻?’
‘잘 자고 내일 보잔 뜻이네요. 얼른 가.’
‘와, 냉정해-’
이렇게는 못 갑니다. 불퉁 튀어나온 입으로 투덜거리자 유우지는 웃으며 제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얼른 가란 뜻의 완곡한 표현.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뒤돌아 기숙사를 빠져나왔던 게 고작 하루 전의 일이다. 이렇게 바로 사형 날짜가 잡혔다고?
스쿠나의 그릇을 없애려고 계속해서 기회를 노렸던 상층부. 그들에게 시부야 사변은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다. 본인의 부재로 인해 유우지는 한꺼번에 열 개의 손가락을 삼켰고, 일시적으로 육체의 주도권을 뺏겼다. 그사이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건 구두로 보고받아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학살은 스쿠나의 소행이며, 손가락을 열 개나 먹인 주령의 탓이자, 더 깊이 파고들자면 봉인 당해버린 자신의 탓이다. 사사로운 추억에 흔들려서 일순간 움직이지도 못한. 애초에 본인이 옥문강 속에 처박혀 자릴 비우지만 않았어도 유우지가 그렇게 될 일은 없었을 터였다.
거는 족족 죄다 불발. 사토루의 통화 목록에 [유우지]가 쌓여간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모를 음성 사서함 안내음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사토루는 상대를 돌려 이지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두어 번 울렸을 즈음 곧바로 통화가 연결됐다.
“이지치.”
[네, 고죠 씨. 무슨 일이세요…?]
“유우지 오늘 일정 뭐야.”
분명 걷고 있었는데, 연결되지 않는 통화가 이어질수록 불안이 커져 어느샌가 달리고 있었다. 사내의 뜀박질이 멈춘다.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유우지의 기숙사 방문 앞. 불과 몇시간 전에 왔던 곳이다.
[유우지 군은 오늘 오프네요.]
이지치의 대답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고 세차게 문을 두들겼다. 낡은 목재 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멀리서부터 타박타박 소리가 들려와 움직임을 멈춘다. 문에서 떨어트린 자신의 주먹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다. 이게 불안하다는 감정인가.
“엣, 선생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유우지를 붙잡은 채로 방 안에 들어섰다. 쾅 닫힌 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어깨를 꽈악 붙잡았다. 이렇게 세게 잡으면 유우지가 아플 텐데, 머리가 뒤죽박죽이라 힘을 풀어야겠단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려앉은 손은 미약한 떨림을 동반하고 있었다. 얼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못 들은 거라고 확인받고 싶었다. 날 진정 시켜줘, 유우지.
“유우지.”
“왜 그래, 선생님.”
“내가… 이상한 걸 들었는데.”
“아.”
사토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우지의 입에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그 ‘이상한 거’란 게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한 눈치였다. 평소보다 차분한 모습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진다. 어쩐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왜 뭐냐고 물어보지 않는 거야.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유우지?”
“우선, 전화 안 받아서 미안.”
“못 받은 게 아니라 안 받았다고?”
“아, 음. 그게…. 오늘 말하려곤 했는데, 막상 전화가 오니까 놀라서.”
그래서 안 받았어. 미안.
사과와 함께 유우지는 멋쩍게 웃었고, 사토루는 대답으로 이을 말을 고르지 못해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상하다. 모든 걸 정리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자신의 연인이.
유우지의 처분에 대해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당장 봉인되어 있을 때도 자신의 아집으로 사형을 막고 있었으니,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시부야 학살 건에 대해 보고받은 후에는 썩은 귤들과 딜을 하기로 맘먹었다.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선택지를 만들어 머리를 굴렸다. 그중 몇 가지의 그럴듯한 제안도 마련해놨고, 안 그래도 얘기할 자리를 만들어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 수많은 선택지 중에 유우지가 죽는다는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선생님 나는, 죽어야 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어.”
“유우지가 한 일이 아니잖아. 그건….”
“아냐, 내가 한 거나 다름없어. 내가 약하지만 않았어도 없었을 일이야.”
“이제 내가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이 있으니까 죽을 수 있어.”
그런데 지금, 아이의 입에서 죽음을 바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유우지에게 본인은 주술사이기 전에 사람을 죽인 살인자인 것이다. 스스로가 정의 내린 순위는 너무나도 확고해 아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토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제 연인의 확고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우지는 가만히 손을 뻗어 사토루의 양손을 끌어다 가볍게 그러쥐었다. 따뜻하다. 제 손에 내려앉은 온기가 너무나도 따뜻해서, 상황에 맞지 않게 안도감이 들고 만다. 한껏 경직되어 있던 어깨가 느슨하게 내려앉는 것이 느껴진다. 맞닿으면 안정되는 손길. 떨어지면 불안정해지고 결국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작금의 관계에서 약자를 고른다면 단언코 자신이다.
이제 죽을 수 있다는 단호한 음성이 너무나도 아프다. 비수가 되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심장에 내리꽂힌다. 사토루가 가슴께의 통증을 느끼고 있을 때, 유우지는 그를 잠깐 들여다보고는 다시금 입을 떼었다.
“선생님이 사라지고서야 알았어. 나는 선생님의 보호 아래 살고 있던 거구나 하고. 항상 내색 않고 지켜줘서 몰랐던 거야, 내가.”
“계속 보호해줄게. 이제 어디 안 갈게. 그러니까….”
“선생님.”
단호한 음성과는 상반되게 올곧게 시선을 맞춰오는 눈동자는 다정했다. 멍하게 눈을 마주 보다 문득, 사토루는 자신의 호흡이 가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와 동시에 뺨에 물기가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멀건 액체가 볼을 지나, 턱을 타고 흘러 바닥에 원을 그리며 톡, 톡 떨어진다. 아마 자신은 울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입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울어본 기억이 없어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치는 방도도 모른다. 막을 새 없이 샘솟는 눈물들을 그저 가만히 흘려보내기만 한다.
으흑, 윽, 흑. 단말마의 몸부림이라도 치듯 추악한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이자, 온화한 손길이 사토루의 볼에 내려앉았다. 전혀 가늘지 않고 투박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두렵다.
이 손이 언젠가 온기를 잃고 차갑게 식어버릴지도 모른단 것이.
“나 좀 죽여줘.”
그 다정한 눈빛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아이는 나지막이 내뱉었다. 맑은 호박색의 눈동자가 더이상 삶을 영위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게나 끔찍한 말을 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다. 아이의 다정함이 폭력이 되어 휘둘러진다. 그 공격을 아무렇게나 받아내며 사토루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 좋아해, 하고 사랑스럽게 호를 그리던 입술이 이제는 죽여달라 말해오고 있다. 이렇게 평온한 표정으로 죽음을 요구하게 되기까지 아이는 수없이 많은 밤을 눈물로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 밤들을 혼자 보내게 둔 건 자신이다.
아이가 지나온 밤들을 뒤따라가듯 사토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지옥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두 발이 내딛어진 여기가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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