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루마 히로미 드림

[주술회전] 나의 사랑스러운 서브

히구루마 히로미 드림

  • BL드림입니다

  • 이름 있는 고정 드림주

  • 드림주 공 x 히구루마 히로미 수

  • Dom/Sub 버스입니다

  • 서브인 척 하는 돔 드림주/돔인 척 하는 서브 히구루마 히로미

  • 한국어 명령어

  • 명령어로 쓰는 단어에 따라 명령의 강제성이나 명령받는 사람의 부하가 커진다는 날조 설정


이 세상에는 돔과 서브, 그리고 뉴트럴이라는 역학의 구분이 있다. 어떤 기준으로 돔과 서브가 정해지는 것인지는 아직도 불명이었다. 2차 성징기 때 성별에 따라 몸이 발달하는 시기에 어떤 역학에 속하는지 결정되고, 그 후에는 각자의 역학에 맞춰 정기적으로 플레이를 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플레이는 말 그대로 돔과 서브가 취향에 맞는 ‘놀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개념으로,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플레이로 해소하지 못하면 여러 증상의 컨디션 부진이 나타났다. 그 정도가 심하면 서브는 착란과 탈진을 동반하는 서브 드롭 상태에 빠지고, 돔도 명령이나 시선의 조절이 어려워져 무차별적으로 명령을 내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날의 재판은 평소보다 오래 걸렸고 그만큼 공방도 격렬했다. 히구루마는 자리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는 척 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제일 마지막에 법정을 나왔다. 이젠 익숙해진 그 모습에 시미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히구루마를 따라갔다. 그리고 법정 로비로 나오자 히구루마는 지긋지긋하단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시미즈. 미안하지만 잠깐 여기서 기다려 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시미즈를 로비의 의자에 앉히고 짐을 맡긴 히구루마는 그대로 정문을 나갔다. 그가 한쪽으로 방향을 꺾어 사라지는 걸 확인한 시미즈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오는 입구를 주시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5분도 되지 않아 법정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험머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정문 제일 가까운 자리에 멈추었다. 험머에서 내린 남자는 시미즈를 보자마자 거침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원근법이 잘못되었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남자였다. 굵은 목을 감싸고 있는 스터드 박힌 가죽 목걸이가 그가 파트너가 있는 서브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시미즈 씨. 히구루마 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안녕하세요, 마유 씨.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으셨어요.”

 

시미즈가 가리킨 방향을 본 마유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자동차 열쇠를 넘겼다.

 

“차에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 안 끝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느긋한 걸음으로 히구루마를 찾아 건물 옆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시미즈는 아까의 히구루마를 꼭 닮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험머에 올라탔다.

 

 

 

건물 옆, 그림자가 들어 냉랭하고 인기척이 없는 곳에 히구루마가 서 있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 있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히구루마 선생님.”

“...이리 와.”

 

히구루마는 마유의 존재를 인식하자마자 명령했고 마유는 거기에 복종했다. 히구루마의 앞에 가서 그를 마주하고 서니 지체없이 두번째 명령이 날아왔다.

 

“무릎 꿇어앉아.”

 

담배꽁초로 지저분한 아스팔트 바닥이었지만 마유는 양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정좌한 채 히구루마를 올려다보았다.

 

“히구루마 선생님...”

 

다시 히구루마를 부르는 그는 나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서브 스페이스에 들어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짧게 가쁜 숨을 내뱉던 히구루마는 그 표정을 보고 마유의 목걸이에 손가락을 넣어 우악스레 잡아당겼다. 팽팽해진 목걸이에 목이 조여지면서 마유의 숨소리가 불규칙해졌다. 목걸이를 잡은 손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몸이 조금씩 흔들리고 산소부족으로 얼굴색이 변해갔다. 히구루마는 마유의 입가에 침이 흐르기 시작할 때야 손을 멈추었다. 기침을 하며 어떻게든 숨을 고르려는 모습에 히구루마는 들고 있던 생수를 마유의 머리 위에 쏟아버렸다.

 

“히구루마 선생님...”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 겨우 정신이 들었는지 다시 히구루마를 부른다. 목이 졸려 괴로웠을 텐데도 그의 얼굴엔 여전히 나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돌아가자.”

“네!”

 

그러고선 주인을 따라가는 개처럼 히구루마를 따라갔다. 법원을 출입하고 주차장을 오가던 사람들은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는 마유를 힐끔거리거나 거리를 두려고 멀리 돌아갔다. 그중에 히구루마와 마유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또인가, 하면서 고개를 젓거나 내심 비웃으면서 지나갔다.

히구루마는 돔이지만 다른 돔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약한 편이라 돔 성질의 검사들이나 증인들을 상대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흘린 시선이나,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재판에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으레 파트너를 불러 내 간단하고 거친 플레이로 흥분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한 뒤 돌아간다. 법원은 바뀌고 목격자는 바뀌지만, 여러 의미로 좁은 업계였다. 히구루마의 플레이에 대해서 법조계에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마유가 험머 뒷좌석 문을 여니 히구루마가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마유는 손수건으로 물기를 대강 닦고 난 뒤 백미러 너머로 시미즈를 보면서 어디에 내려주면 될지를 물었다. 시미즈를 사무실 앞에서 내려준 마유는 오늘은 먼저 들어가자면서 히구루마를 태운 채 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집은 사무실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였다. 마유는 현관문을 닫자마자 아직 신발을 벗고 있는 히구루마에게 속삭였다.

 

“히로미.”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상냥하게, 어루만지듯이 귓가에 속삭여지는 이름에 히구루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유가 히로미라고 부르는 건 플레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갈아입고 거실로 나와. 알겠지?”

 

소리 내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이럴 때의 히로미는 귀엽구나. 흐뭇하게 생각하다가도 방에 돌아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귀엽지만 저럴 때 제일 불안한 상태인 걸 알고 있었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플레이를 해야 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더니 반팔과 반바지로 갈아입은 히구루마가 방에서 나왔다. 그러면서도 바로 마유에게 다가오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방 근처에 서 있었다. 마유는 웃으면서 히구루마에게 명령했다.

 

“히로미, <이리 와>”

 

그다지 힘이 실리지 않은 명령이었다. 하지만 히구루마는 그 명령만으로도 살짝 들뜬 얼굴을 하고 마유의 앞에 섰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히구루마는 서브였고, 마유는 돔이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 서브인 건 큰 약점이 될 수 있었기에 마유는 히구루마에게 자신이 서브인 척하겠다고 제안했다.

남들 앞에서 히구루마는 지배적이고 거친 성향으로 파트너에게 다소 폭력적인 플레이를 하는 돔이었다. 그렇지만 마유에게 히구루마의 플레이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오늘 이만큼 힘들었다고, 나중에 잔뜩 칭찬하고 케어해 달라고 조르는 행동이었고 그런 의미가 되도록 마유가 직접 가르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몸에 배게 만들었다. 히구루마가 거칠면 거칠수록, 돔에게 플레이와 보상을 요구하는 서브가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서브였다면 당장이라도 스페이스에 들어갈 정도로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마유가 히구루마를 행복하게 해 줄 차례였다.

 

쭈뼛거리면서 시선을 피하는 히구루마에게 곧장 다음 명령이 내려졌다.

 

“<앉아>”

 

그러면서 가리킨 곳은 마유의 허벅지 위였다. 서브를 비호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마유는 히구루마를 무릎 꿇게 하거나 바닥에 앉게 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명령대로 다리 위에 앉으니 마유가 히구루마의 자세를 고쳐 몸에 얼굴을 기대게 하고 허리에 팔을 올렸다. 히구루마는 옆으로 앉아 소파에 발을 뻗고 최대한 마유에게 밀착했다. 반팔과 반바지만 입고 밀착하는 건 조금이라도 더 체온을 느끼고 싶어 하는 히구루마의 버릇이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 히로미.”

 

명령이 아닌 단순한 질문이었다. 히구루마는 대답하지 않고 마유의 품에 파고들었다. 편안하게 풀려있던 표정이 다시 굳어버리는 모습에 마유는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히로미. <말해 줘>”

 

오늘은 이것저것 명령하고 잔뜩 칭찬해 줘야겠네. 세 번째의 명령에 히구루마가 졸음과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상대한 검찰 측 사람이 돔 성향이었는데.”

“응, 그래서?”

“신문 때 자꾸 시선을 보내서... 힘들었어...”

 

히구루마는 국선변호사 일을 하면서 돔에게 피해를 입은 서브들이나, 자기도 모르게 명령을 내리거나 시선을 흘려 고소당한 돔들의 변호를 맡는 일이 많았다. 검찰이나 기자 중에는 피고인이나 변호사가 서브인 경우에 시선이나 명령으로 압박하거나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돔인 경찰이 서브인 용의자에게 거짓 진술이나 자백을 강요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돔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선이나 명령에 대한 컴플레인 한번 없는 히구루마는 돔/서브 역학에 관련된 사건이 끊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증인들이나 피고인이 서브라 압박하려고 시선을 보낸 것이 히구루마에게 영향이 온 거겠지.

 

“그런데도 중단하지 않은 거야? <잘했어>, <착해>, <굿 보이>”

 

마유가 연거푸 칭찬의 말을 쏟아내니 히구루마의 나른한 표정에 조금씩 웃음이 섞였다. 이 사랑스러운 사람과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한 팔로 그를 꼭 끌어안아 밀착한 채, 어떻게든 한 손으로 차고 있는 목걸이를 벗었다. 쓸려서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에몇 개인가 가느다란 딱지와 흉터가 눈에 띄었다. 마유는 그 목걸이를 정중한 손길로 히구루마에게 채우고 장난스럽게 양손을 얼굴 옆으로 들어보이며 웃었다. 히구루마의 표정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히로미, 이제 밥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줄까?”

“밥보다 자고 싶어. 같이 자줘.”

“그래. 자러 갈까? <일어나> 침실로 가자.”

 

명령대로 일어서서 침실로 가는 히구루마는 스페이스에 가까운 상태로 가볍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행여 비틀거리다가 부딪치지 않게 어깨를 감싸 안고 이동했다. 마유는 먼저 침대에 누워 아까와 같은 명령을 내렸다.

 

“히로미, <앉아>”

“응.”

 

히구루마는 침대 가에 앉았다. 그 모습에 과장되게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번에는 좀 더 명확하게 지시했다.

 

“아냐, 히로미. 여기에 앉는 거야.”

 

마유가 손으로 가리킨 건 자기 배였다. 히구루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까처럼 마유의 배 위에 앉았다.

 

“그래, 착해. 그럼 히로미, 이제 <누워>”

 

히구루마가 마유의 몸 위에 누운 채 눈을 감았고, 마유는 히구루마와 함께 이불을 덮었다. 두 사람의 몸이 맞닿아 있으니 이불 안이 금방 따뜻해졌다. 좋은 냄새가 나네, 오늘 심리 준비 힘냈구나,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어. 항상 의뢰인들을 위해서 애쓰고 대단하네, 히로미는. 연거푸 칭찬하면서 쓰다듬어 주니 점점 히구루마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히로미.”

“응…?”

“오늘 사건 다음 심리는 언제야?”

“그건 왜...”

“그땐 내가 같이 가서 방청객으로 참여할게. 시작 전에 나에게 명령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도 좋지 않을까?”

 

어차피 히구루마가 어떤 명령을 내리고 거친 행위를 해도 마유에게는 아무 영향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구루마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자청해서 서브 역할을 하고 있었다. 히구루마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하는 서브로 복종욕도 피학욕도 높지 않다. 그와 동시에 확고한 자아와 신념이 있는 개인이었다.

그런 히구루마가 법정에서는 의도적이던 무의식적이건 돔에게 시선을 받는다. 돔의 위협 이전에 개인의 의사와 존엄을 무시하고 굴복을 강요하는 행위로 연결되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이 싫다. 그런 시선을 보내는 돔도 싫다. 거기에 저항할 수 없는 서브인 자신도 싫다. 자존심도 자존감도 깎여나가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마유는 자신을 남들 앞에서 복종시키고 학대하게 해서 히구루마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있었다. 그런 상태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걸로 자신을 충족시킨다. 그렇게 된다. 그럼 가장 가까이에서 히구루마를 직접 복종시킬 수 있는 나를 남들 앞에서 공격할 수 있다면? 히구루마는 부정하겠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예전보다 서브 드롭에 가까워지는 빈도도 줄었고 플레이 때 호전되는 속도도 빨랐다. 다행이었다. 다행이었지만.

 

“마유.”

 

딴생각하고 있었더니 히구루마가 이름을 부르며 옷을 잡아당겼다. 좀 더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에 마유는 행복하게 웃으며 히구루마를 꼭 끌어안았다.

 

“<착해>, <훌륭해>, 난 히로미가 이렇게 조를 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더라.”

 

한 손을 깍지끼어 잡고 풍부하지 않은 어휘에 최대한의 상냥함을 담아서 칭찬했다. 다행히 히구루마는 금방 잠들었다. 표정도 평온하고 숨소리도 고른 것을 확인하고 마유도 눈을 감았다.

 

 

 

 

 

일주일 후 마유는 법원의 주차장 구석에서 들어오는 차 한대 한대를 주의 깊게 살폈다. 미리 조사한 정보대로 그가 찾는 차는 심리 시간보다 훨씬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마유는 불을 붙이지 않은 채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케이스 안에 넣고 차 문을 잠그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만, -- 검사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당신은...?”

“아, 맞네. <닥치고>, <따라와>”

 

체격은 크지만 웃는 얼굴인데다 일견 비굴해 보일 정도로 정중하고 힘이 없는 목소리로 물어보니 경계가 덜했을까. 남자는 마유의 시선과 명령에 거부하지 못했다. 마유는 뒤따라오는 남자와 함께 주차장을 나와 바로 옆의 공원으로 들어갔다. 마유는 적당한 곳에서 의자를 찾아 앉은 뒤 아까 케이스에 넣었던 담배를 꺼냈다. 여전히 불은 붙이지 않은 그것을 입에 문 채 명령했다.

 

“<무릎 꿇어>”

 

쿵, 하는 소리가 날 정도의 기세로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같은 돔이라고 해도 시선의 레벨이나 순수한 기량에 차이가 나면 마치 서브에게 명령하는 것 같은 영향이 있었다.

 

“난 너 같은 게 싫어. 사람을 유죄라고 찍어놓고 몰아가지 않나, 무능한 주제에 돔이라고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지 않나.”

“어, 어...”

 

영문도 모른 채 명령대로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는 마유의 말에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용히 해를 넘어서 닥치란 명령을 받은 남자는 바람 새는 소리만 낼 뿐 의미가 있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미 다 조사했어. 서브인 변호사나 증인들이 너한테 시선을 받고 힘들었다는 증언이 쏟아지던데.”

 

마유는 멀겋게 가라앉은 눈으로 남자를 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왜 히로미 같이 좋은 사람이 서브로 태어나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이런 놈은 돔으로 태어나서 내 소중한 서브를 힘들게 하는 거지. 힉힉거리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보니 저도 모르게 시선을 흘린 듯 안색이 파래져 있었다.

 

“아... 안 되겠다. 못 참겠어.”

“어.”

“<누워서>, <굴러>”

 

남자가 가방을 놓고 눕더니 마유가 턱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굴렸다.

 

“어차피 힘에 눌릴 놈이 왜 힘을 쓰고 다녀? <반대쪽으로 굴러>”

 

깨끗하던 정장이 구겨지면서 흙먼지가 묻었다. 마유는 담배 필터를 씹으면서 몇 번 더 남자를 제 자리에서 구르게 하거나 일어섰다가 다시 눕게 하는 걸 반복하다가 휴대폰의 알람 소리에 멈추었다.

 

“음... 슬슬 약속시간이네.”

 

히구루마와 약속한 시각이었다. 마유는 지속적으로 시선과 명령을 받아 입에 거품을 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보고 웃었다.

 

“플레이로 후처치를 할 수 있는 거랑,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뿌리 뽑는 건 별개니까... 너 같은 놈들을 치우고 치워도 사라지지 않는 게 안타까울 뿐이야. 그럼 이걸로 마지막이다. <죽은 척>”

 

남자의 눈이 돌아가며 흰자만 보이게 된 채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마유는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케이스에 넣고 일어났다. 한 대 피우고 싶었지만 히구루마 앞에서 담배 냄새를 풍길 순 없었다. 언제나 히구루마를 소중히 하면서 그가 불쾌해 할 요소를 전부 배제하는 게 돔으로서 마유가 원하는 거였다.

돔/서브 3항목

 

히구루마 히로미

복종욕 레벨 1, 승인욕 레벨 5, 피학욕 레벨 2

칭찬받고 싶어하는 서브. 복종욕도 피학욕도 일반인 이하로 특히 복종욕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마유

Glare 레벨 5, 지배욕 레벨 5, 가학욕 레벨 5, 비호욕 레벨 측정불가

비틀린 방식으로 히구루마를 비호하는 돔. 히구루마가 자기 방식에 길들여지면 다른 돔과 플레이하기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배욕을 채우고, 히구루마가 서브인 걸 알게 된 돔이나, 법정에서 시선으로 압박하는 상대들을 명령과 시선으로 최대한 괴롭히는 걸로 가학욕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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