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어떤 형태의 축하

세벡 지그볼트 드림

* 23년 세벡 생일 축하 글.

세벡은 자신을 위해 꾸며진 파티장을 보며 코 밑을 문질렀다.

작년까지는 늘 가족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했지만, 올해부터 3년 정도는 이렇게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과 생일을 보내겠지. 부모님과 형제의 축하를 수화기 너머로 들어야 하는 건 조금은 서운한 일이었지만, 이런 파티도 싫은 건 아니었다. 비록 혈육은 없어도, 말레우스와 릴리아가 함께 있는데 나쁠 게 뭐가 있겠나.

 

“세벡, 그건 뭐야?”

 

파티장 소파에 앉아 받은 선물들을 정리하던 세벡은 어느샌가 제 뒤에서 쑥 고개를 내미는 멜로드 때문에 흠칫 놀랐다.

대체 언제 여기 온 건가. 축하인사와 선물 전달이라면 아까 교실에서 하지 않았나.

기척도 없이 나타난 반 친구를 유령 보듯 훑어본 세벡은 들고 있는 종이봉투를 열어 내부를 보여주었다.

 

“아이렌 그 녀석이 줬다.”

“아, 정말? 이야, 신경 많이 썼네.”

“……그런가?”

“응. 그 커피 브랜드, 비싼 곳이거든.”

 

아무래도 유행에 민감하고 마실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까. 멜로드는 종이봉투에 있는 제품 로고를 알아본 모양이다.

세벡은 스틱형 포장으로 된 커피는 어떻게 타야 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하던 감독생의 얼굴을 떠올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에는 늘 사소한 걸로 아웅다웅하곤 했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을 진지하게 축하해 주던 아이렌의 모습은 다소 낯설었었다.

 

“이건 그렇게 쓰지 않은 커피라서, 연습용으로 좋다고 하더군. 이걸로 혀를 단련해서 언젠가는 말레우스 님과 커피를 마셔보라고 했다. 그 여자답지 않은 꽤 기특한 선물이지 않나.”

“하긴, 세벡은 블랙커피 못 마시니까.”

“흥! 아직 못 마시는 거다! 곧 마실 수 있게 될 테니, 두고 보라고!”

“그래. 기대할게. 하하하.”

 

생긴 것과 다른 상대의 입맛에 소리 죽여 웃은 멜로드는 은근슬쩍 옆에 앉더니, 자연스럽게 세벡의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찰싹 달라붙는 그 행동에 세벡은 황당하다는 듯 눈만 깜빡이다가, 한숨과 함께 몸을 조금 옆으로 기울여 미약하게나마 거리를 벌릴 뿐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일이 닿지 말라 잔소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오늘은 생일이라 기분이 좋으니, 늘 하는 어깨동무 정도는 봐줄 수 있었다.

멜로드는 웬일로 소리치지 않는 세벡을 신기하다는 듯 보다가, 늘 그랬듯 친근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제 인터뷰 하러 가지?”

“그렇다. 인터뷰 후에는 버스데이 로드를 날아가지.”

“세벡의 빗자루,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네. 인터뷰어는 이미 봤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과연 누가 인터뷰어로 올지…….”

 

말레우스나 릴리아가 인터뷰어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누가 와도 상관없다. 굳이 따지자면 귀찮게 굴지 않을 사람이 오길 바라고 있긴 하지만, 가장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대상이 여기 있는 걸 보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바로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단정한 얼굴에서 누군가를 떠올린 세벡은, 그제야 중요한 사실을 물어왔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냐?”

“응?”

“선물은 이미 줬지않나? 더 줄 게 남아있나?”

 

세벡은 구석에 밀어 둔 선물 더미에서, 상대가 준 선물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까 교실에서 전달받은 멜로드의 선물은 다름 아닌 남성용 기초 화장품이었다.

‘그 말레우스 드라코니아의 심복(心腹)이라면 외견에도 신경을 써야지. 물론 세벡은 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다니긴 하지만, 사람은 피부에 따라 인상이 많이 달라지거든. 그러니 도움이 될 거야.’

그런 말을 하며 건네주었기 때문일까. 세벡은 그 선물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이상 뭔가 더 받을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혹 아니었던 건가.

상대가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왔다고 생각하는 세벡은 상대를 의심 반 호기심 반의 눈으로 보았지만, 돌아온 건 유쾌한 웃음과 마주 닿는 뺨뿐이었다.

 

“세벡도 참, 우리가 이유가 있어야 만날 관계야~?”

“윽, 이게 무슨 짓이냐! 떨어져라! 네 놈은 대체 뭐가 문제냐!”

“우리 사이가 친밀한 게 문제라면, 나는 문제아 할래.”

“헛소리 작작 해라!”

 

‘하하하!’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듣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세벡이 있는 힘껏 밀어내는 덕에 종잇장처럼 힘없이 내팽개쳐지는데도 그저 좋다고 웃고 있는 그는 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벡.”

“뭐냐, 인간!”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태어나 줘서 고마워.”

 

툭 던지듯 가볍게 꺼낸 축하 인사에, 세벡은 저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오늘 지겹도록 들었고, 오늘이 아니더라도 매년 들어왔던 말이다. 그러나, ‘태어나 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는 제법 낯설었다. 자신을 낳은 부모도, 피가 이어진 형제도 아닌 존재가 저런 축하를 해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흘리듯 말한 이 상황이 가벼울 뿐이지, 멜로드의 표정은 꽤 진지하지 않은가.

장난스러움이 싹 빠진 따뜻하고도 차분한 미소에 어쩐지 속이 간질간질해진 세벡은 결국 시선을 피해버렸다.

 

“으, 으음. 그래. 고맙군.”

“고맙긴 뭘. 나, 오늘 모스트로 라운지 담당이라 밤까지 바쁘거든. 그래서 더 얼굴 못 볼지도 모르니까 한 번 더 축하해 주러 온 거야.”

 

‘그런 거였나.’ 들리지 않게 대꾸한 세벡이 슬쩍 다시 눈을 맞추었다.

멜로드는 자신을 보는 황록색 눈동자를 향해 눈웃음 지어 보였다.

 

“인터뷰 잘해. 버스데이 로드 비행은 못 볼지도 모르지만, 사이스에게 녹화해 달라고 부탁해 놨으니 녹화본으로 볼게.”

“……그 정도 여유도 없나?”

“나도 어찌 될지 잘 모르는 상황이라서 말이야. 그럼 이만.”

 

한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인사한 멜로드가 인파 속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세벡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 급우를 멍하니 보다가, 더는 상대가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하던 일을 마저 할 수 있게 되었다.


 

“세벡, 꽤 멋지게 날았잖아?”

“흠! 당연하다! 말레우스 님에게 누가 될 비행을 보일 수는 없지!”

 

버스데이 로드를 날고 온 세벡은 인터뷰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제 모습을 지켜봐 준 트레이에게 나름의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럼 나도 슬슬 돌아가도록 할까.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세벡.”

 

딱딱한 화법의 후배를 그저 귀엽게 봐주는 트레이는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막 뒤돌아선 그는 또 다른 후배를 발견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

 

“트레이 선배, 여기 계셨어요?”

“음? 아, 모건.”

 

같은 과학부 소속이자 폼피오레 기숙사의 2학년생. 그리고, 멜로드 터빈의 형.

모건 터빈은 세벡과 트레이를 번갈아 보다가 선배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혹시 날 찾았던 거야? 오늘 인터뷰어로 선택되어 늦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는 못 들었어요.”

“이상하네, 루크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는데.”

“아…….”

 

모건은 뜻 모를 반응을 보이며 어색하게 웃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선배를 찾고 있었던 건 아녔어요. 세벡 군에게 생일 선물을 전해주러 온 거라.”

“그래? 그럼 같이 돌아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

 

트레이를 정중한 인사로 보낸 모건은 준비해 온 들고온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동생의 반 친구에게 다가갔다. 평소엔 실버나 멜로드를 통해서 잠깐 인사할 뿐, 이렇게 단 둘이 대화할 일은 없기 때문일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세벡 군, 생일 축하해.”

 

아무리 멋쩍어도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 모건은 슬그머니 준비해 온 선물을 내밀며 상대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선물을 받은 세벡은 멋쩍음을 감추고 의젓하게 행동했다.

 

“감사를 표하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실용적인 걸 골랐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어차피 미학을 알고 분려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폼피오레 사람들이라면 쓸데없는 선물을 주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그리 생각하는 세벡은 굳이 선물을 열어보기보다는, 아까 전 상대의 동생과 있었던 일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응?”

“혹시 파도의 반도에서는,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축하 인사가 보편적인가?”

 

그런데, 제가 뭔가 물으면 안 되는 걸 물은 걸까.

갑자기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모건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아니.”

“그런가. 음.”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아니, 멜로드 터빈 그 녀석이 그런 말을 해주어서. 그쪽 고향에서는 보편적 인사인가 했다.”

“그랬구나.”

 

자초지종을 들은 모건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세벡이 저 질문을 했을 때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강이나마 예상한 모양이었다.

‘뭐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상대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낀 세벡은 혹 제가 말실수를 한 건 아닐까 고민했다.

아까보다 더 어색해진 분위기 속. 먼저 입을 연 건 모건이었다.

 

“우리 집에선 그런 식으로 축하하긴 했어.”

“그런가?”

“정확하게는, 나만 자주 들었던 말이었지만.”

“……그건 무슨 소리지?”

 

그때. 세벡은 문득 깨닫고 말았다.

멜로드는 늘 자신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고, 귀찮을 정도로 친한 척을 하며, 자신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정작 자신은 상대에 대해 아는 게 그다지 없다는 것을.

어째서 터빈 가의 형제들은 그렇게 유난히도 사이가 좋은지, 방학이 되면 모건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만 멜로드는 학교에 남아 인어 선배들과 지내는지. 세벡은 그 모든 걸 두 눈으로 봤음에도, 원인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수다스럽기 그지없는 멜로드는, 다른 이야기는 몰라도 절대 저것들에 대해선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세벡은, 모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었다.

 

“매년 생일. 우리 부모님은 나한테 태어나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어. 너 같은 아들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며, 날 낳은 게 다행이라고 했지.”

“…….”

“그런데 멜로드에게는, 생일상은 똑같이 차려줄지언정 그런 말은 안 해줬거든. 그래서, 머리가 좀 큰 후부터는 내가 멜로드에게 그 말을 해줬어. 나에게 있어서 멜로드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고 없어서는 안 되는 동생이었으니까.”

 

후우, 하고 긴 한숨을 내뱉은 모건의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타인에게 가족사를 말하는 건 멋쩍은 일이라 생각하는 건지, 그는 영 표정이 편해 보이질 못했다.

 

“아마 멜로드는 정말로 너를 축하해 주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던 걸 거야. 그러니까, 이상하게 듣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어.”

“아니, 으음.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조금 특이한 축하 인사라고 생각한 것뿐이지.”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제 동생이 오해받지 않았다면 그걸로 충분한 걸까. 모건은 부드럽게 웃고, 트레이가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비운 모건의 얼굴은 꼭 도망자의 것과 같았다. 세벡은 그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져 받은 선물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 녀석, 대체 뭐지.’

 

멜로드에게 그 축하 인사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어째서 두 형제의 부모는, 제 자식들에게 각각 다른 축하를 건낸 걸까.

깊게 파고들어선 안 될 것 같은데도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 궁금증에, 세벡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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