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게 뿜어내는 빛에 눈을 감았다가 뜨면 어느새 기숙사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감독생은 짐을 바닥에 내려두고 정신을 못 차리는 그림을 흔들며 흥분했다. “그림, 봤어?! 봤어?! 세상에, 샘 씨가 기숙사로 바로 옮겨주셨어!” “우, 우욱. 부, 부하… 흐, 흔들지 말라조…. 소, 속이……. 우욱!” 괴로워하는 그림의 등을 다급히 두드려주며 감독생은 작게 조
* 「오늘의 메뉴」 백미밥 참치 미역국 야채 스크램블 에그 참치 계란말이 소시지볶음 * “드디어… 돈을 모았어……!” 감독생은 담화실 소파에 앉아 책상 위에 올려둔 지폐를 보았다. 여기서는 마들이라고 부르던가. 이세계의 물가를 제 세계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지 몰라 지금 자신이 얼마를 모았는지 감이 오지 않았으나, 감독생은 순수하게 돈을 모았다는 점
나의 르나르, 괜찮니? 이런 때에 공책을 건네어 주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네가 걱정되어 어쩔 수가 없었단다. 영화연구회 소속인 우리 기숙사 후배들에게 들었단다. 빌과 싸웠다고 하던데. 후후, 정말 대단하구나. 동급생도 아니고 후배 중에서 그 빌 셴하이트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거다’
“좋아요, 다 됐습니다.” 제이드는 들고 있던 삽을 근처에 내려두고 손을 털었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늦은 오후. 고물 기숙사 뒤쪽에 나란히 서 있는 제이드와 아이렌의 앞에는 작은 나무가 심겨있다. 막 옮겨심은 탓에 젖은 흙과 마른 흙이 뒤엉겨있는 모양새는 썩 보기 좋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은은한 조명이라도 켜놓은 듯 밝았다. “도와줘서
* 24년도 생일 기념 연성 아무리 남에게 관심이 없는 이들이 가득한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라 해도, 플로이드와 아이렌이 얼마나 친밀한지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아니, 그건 단순한 친밀함으로 정의하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스러움의 의인화 같은 플로이드. 그리고 그런 플로이드가 무슨 짓을 하든 그저 어여쁘게 봐주는 아이렌.
* 트친과 하는 1년 장기 프로젝트(https://1yearcollabo2.creatorlink.net) 에 제출한 작품입니다. “선배, 이게 뭐예요?” 아이렌은 모스트로 라운지의 바(Bar) 테이블 위에 줄지어 놓인 병을 가리켰다. 불투명한 병에 붙은 라벨에 인쇄된 글자의 폰트가 고급스럽다. 음료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자 아래, 오두막과 농부로
* 드림 북스토어 합작 시즌3 제출작 “앗, 거기 두 사람! 잠깐 이리 와봐~!” 타박타박.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걷던 에이스와 듀스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멈춰 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자신들을 부르고 있는 건가. 주변에 보이는 게 손을 흔들고 있는 케이터 뿐임을 확인한 둘은 슬쩍 눈빛을 교환하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
* 약간 미래 시점(약 3년 후) 이야기입니다. 아이렌은 기본적으로 인맥이라는 걸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생물이다. 그건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한다고 하여서 그걸 마음이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을까. 도덕적 판단조차도 생리적 역겨움을 토대로 판단하는 인간의 뇌로 그런 짓을 하는 건 무리라고, 아이렌은 진심
* 24년도 트레이 생일 기념 글 “아이렌, 트레이 선배 생일선물 준비했어?” 아이렌은 속삭임이라기엔 크고 일반 대화라기엔 작은 목소리에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굴렸다. 대단히 은밀한 이야기라도 하듯 제 옆에 찰싹 달라붙어 말을 거는 에이스의 눈동자는 장난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자기 생일선물 이야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 묘하게 들뜬 고운
* 24년도 잭 생일 기념 글. “잭, 벌써 자?” 10월 11이 끝나기까지 3시간 정도 남았을 즈음. 자기 전 씻고 방으로 돌아가려던 잭은 복도에서 들린 목소리를 듣고 우뚝 멈추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아이렌인데. 그 녀석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밝은 대낮에 있는 거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잘 준비하는 밤인데. 제 귀가 잘못된 거기를 바라며
바람이 차가운 새벽. 말레우스는 습관적으로 고물 기숙사로 발을 옮겼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기숙사 건물 밖. 출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건 말라서 비틀어진 꽃이었다. 줄기부터 잎, 꽃까지 싱싱한 곳이라곤 없이 바싹 마른 꽃은 생기라곤 없었지만, 땅에서 올라온 찬 기운 때문인지 밤이슬이 맺혀 살짝 젖어있었다. ‘이건,
“그런데, 아기새우는 자유투도 못 하는 거야?” 플로이드가 던진 의문에는 조금의 악의도 없었다. 마치 오늘 아침 식사 메뉴를 묻는 것 같은, 순수한 호기심. 가벼운 잡담. 딱 그 정도의 질문이었지. 하지만, 저 물음에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분명 제가 끔찍한 몸치라 그런 게 아닐까. 왜, 도둑이 제 발 저린다 하지 않던가. 찔릴 게 없다면 흘려들
“아이렌 군, 그 상처는?” “예?” “거기. 손등의 상처 말이야.” 루크의 말에 제 양쪽 손등을 살펴본 아이렌은 작게 탄식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오른쪽 손등에 작은 생채기가 생겨있었다. 새빨간 선을 따라 눈동자를 굴린 아이렌은 분명 가볍게 손을 쥐었다 펴보았다. 다행스럽게 피는 나지 않았지만, 상처를 의식하니 어쩐지 따끔따끔해서 곤란했다.
이건 필시 다른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 나올 신호탄이었다. 리들은 그리 확신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크든 작든 저마다의 징조가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경우조차도, 따져보면 전부 그 나름의 징조라는 게 있었으니까. 다만 사람들은 모든 이유를 밖에서만, 혹은 안에서만 찾기 때문에 정확하게 징조
* 24년도 에이스 생일 기념 연성 9월 22일 오후. 모든 수업이 끝나고 종례까지 마친 교실 안.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렌은 제 앞에 불쑥 들어온 에이스의 얼굴에 멈칫했다. “아이렌, 내일 무슨 날인지 알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에는 장난기와 들뜬 열기로 가득하다. 새삼스럽게 상대가 참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든 아이렌은 가볍게 입꼬
‘아이렌은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을 탐구하고 즐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에이스나 듀스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영화와 공연 관람, 글쓰기, 사진 찍기, 게임, 요리와 미식, 전시회 방문, 그리고 아이돌 응원까지. 직접 몸을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것엔 다 흥미를 보이는 아이렌의 삶은 참으로 바빴다. 저 많은 취미를 돌아가면서 즐기고,
그래요. 이 안내문을 읽고 있다면 또 어떤 말썽꾸러기가 교칙을 어기고 온갖 소문이 무성한 고물 기숙사를 탐험하러 왔다는 거겠지요. 정말이지, 학원장으로서 가슴이 찢어집니다. 대체 우리 학교 학생들은 뭐가 문제라서 이렇게 종일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겁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울타리를 넘어 기숙사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이 안내문을 봐 버렸다면! 이미
* 창작 마법 학교(여학교)가 나오는 글입니다. 단언컨대, 명문 마법사 양성 학교인 코벤 유니버시티 칼리지는 창립 이래로 단 한 번도 얌전한 아가씨들을 위한 학교였던 적이 없었다. 지느니 죽는 걸 선택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제 고집대로 살아갈 소녀들을 위한 학교. 성격이 얌전할 수는 있어도 가슴 속에는 야망과 의지의 검을 품고 있는 이들을 위한
“선배, 어때요?” 빌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는 아이렌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가를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빌은 진지하게 제 모습을 찍은 사진을 확인하더니,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수고했어.” “휴…….” 이번에도 다시 찍자고 했다면 진짜 울어버리지 않았을까. 아이렌은 8번 만에 떨어
* 24년도 쟈밀 생일 기념 연성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건 어째서 그리도 즐거운 것인가. 놀라는 걸 좋아하는 이는 극히 드문데 놀라게 하려는 이는 이리도 많은 걸 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악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쟈밀은 오늘 하루 받은 축하를 곱씹어보며 한숨 쉬었다. ‘챙겨주는 건 고맙지만, 정신이 없군.’ 몰래 숨어있다가 튀어나와서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