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생

식사를 합시다!

참치 미역국 上

쉼터 by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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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

백미밥

참치 미역국

야채 스크램블 에그

참치 계란말이

소시지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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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돈을 모았어……!”

감독생은 담화실 소파에 앉아 책상 위에 올려둔 지폐를 보았다. 여기서는 마들이라고 부르던가. 이세계의 물가를 제 세계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지 몰라 지금 자신이 얼마를 모았는지 감이 오지 않았으나, 감독생은 순수하게 돈을 모았다는 점을 기뻐했다. 감독생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림은 그가 기뻐하는 소리에 놀라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가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하품하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감독생은 그런 그림의 모습에 그간 돈 때문에 고생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그래, 고양이에게는 잘못이 없으니까. 잘못이라고 한다면 이런 세계에 끌려오게 된 자신, 혹은 이 세계로 자신을 부른 검은 마차 탓이겠지.

어느덧 자신이 ‘트위스티드 원더랜드’에 떨어진 지 반년하고도 몇 주가 더 지났다. 금방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학원장을 보고 감독생은 지금 와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버렸다. 그저 갑자기 사라진 자신에 대해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이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당장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만약 이 세계와 제 세계의 시간이 똑같이 흐른다면 그곳에서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 취급받고 있으리라. 시간이 다르게 지난다고 해도 문제였다. 이곳에서 몇 개월 살았던 탓에 자신은 그 ‘몇 개월 치 성장’을 이미 이루었던 터라, 돌아간다면 금방 위화감이 생길 것이다. 반대가 된다면 어떨까. 자신은 고작 이 세계에 몇 개월 있었는데 제 세계가 벌써 10년이고 50년이고 10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면? 그럼 이제 제가 있을 자리는 영영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돌아갈 가족도, 친구도. 새로 관계를 갖은 친구와 선배,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제 반쪽.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허망하게 또 새로운 세계에 버려지겠지.

감독생은 책상에 있는 돈을 가라앉은 눈으로 보았다. 드디어 돈을 모았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데, 갑자기 암울한 제 앞날을 생각하자 기분이 가라앉았다. 감독생은 이 이상 기분이 더 나빠지기 전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림을 뒤집어, 폭신폭신한 털이 뭉친 배에 제 얼굴을 묻었다. 잠에 빠져들락 말락 하던 그림은 갑작스러운 감독생의 행동에 놀라, 다리를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포기한 듯 맹한 얼굴을 하고 그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림의 말랑말랑한 젤리가 제 머리 위를 오가는 것을 한참 느끼던 감독생은 얼굴을 옆으로 옮겨, 그림의 옆자리에 누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림, 혹시 내일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거 있어? 돈을 모은 김에 기념으로 맛있는 거 해 먹자.”

“이 몸은 참치가 좋다조! 아니면 모스트로 라운지에서 먹는 것도 상관없구.”

“하하…. 모스트로 라운지는 안 되겠는데. 거기서 저녁 먹었다가는 모았던 돈이 금방 사라지고 말 거야.”

“후냐……. 그럼 참치가 좋다조.”

“참치, 참치구나……. 참치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더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파에 누운 감독생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감독생은 이내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옆에 같이 누운 그림은 감독생이 깰까 싶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종 감독생은 담화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고는 했다. 가계분지 뭔지, 매일 구매부에서 사고 나서 받은 영수증이나 학식을 먹고 나서 나오는 영수증, 자신이 사고 쳐서 나온 영수증을 모두 모았다가 노트에다가 붙였다. 한 번은 그게 뭔지 궁금해서 이게 뭔데 매일 쓰느냐고 물어봤더니, 감독생은 웃으며 이래야지 나가는 돈과 들어오는 돈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절약이나 돈을 모으기 수월하다고 했다. 돈을 모아본 적도 제대로 써 본 적도 감독생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된 그림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 감독생이 그런 거라면 그런 거였다. 그림은 가계부를 쓰는 감독생을 도와줄 만한 게 없었기에 그의 옆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언제나 기다려주고는 했다. 그때마다 기절하듯이 잠드는 감독생을 들고 방까지 옮기는 건 아무래도 고양이인 그림이 힘들었기에, 대신 춥지 말라고 담요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이번에도 잠든 감독생에게 덮어줄 담요를 가지러 가려고 소파에서 내려오자, 허공에서 두꺼운 담요가 떨어졌다. 그림이 접힌 귀를 탁탁 털며 고개를 들어보니 허공에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세 명의 고스트가 보였다. 단잠에 빠진 감독생을 깨울까 봐 그런 걸까, 그림은 작게 ‘고맙다조.’하며 이불을 들고 감독생에게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감독생 옆에 빈자리에 한참 서성이더니 이내 허리를 둥글게 말고 자리를 잡았다. 

소파에서 잠드는 감독생과 그림이 불편할까 싶어, 허공에 떠다니는 고스트들이 이따금 그들의 자세를 바꿔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감독생은 구매부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저를 붙잡는 이들이 있었지만 감독생은 오늘 일이 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빠르게 다리를 놀렸다. 그럴 때마다 지나치는 모두가 아쉬운 얼굴을 하며 저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오래 잡지는 않았다. 대신 다음에 꼭 시간 내달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무지성으로 ‘어어, 그래요.’ 하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선 지 구매부에는 학생이 많았다. 구매부를 구경하는 학생이나, 간식거리를 왕창 사 들고 샘에게 계산해 달라고 하는 학생이나. 계속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찾는 학생도 있었다. 감독생은 그런 학생들을 피해 구매부 안쪽까지 들어와, 계산이 끝난 학생이 돌아가는 틈을 타 샘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샘 씨.”

“오, 어서 오렴. 작은 도깨비 짱! 잘 지냈니?”

“그럼요, 샘 씨는 잘 지내셨어요?”

“니히힛, 그럼 물론이지! 가게에 있는 학생만 봐도 잘 지낸 거 같지 않니?”

과장되게 두 팔을 벌리고 짓궂게 웃는 샘을 보며 감독생 역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감독생의 어깨에 앉아 있던 그림 역시 샘의 모습에 작게 웃었지만, 다리를 삐끗해 감독생의 어깨에 떨어질 뻔하여 허겁지겁 다시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 과정을 보고 있던 샘은 감독생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래서 작은 도깨비 짱은 뭐가 필요할까? 이래 봬도 상품에는 꽤 자신 있단다.”

언제나 이런 식으로 속삭이는 샘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감독생은 울렁이는 가슴을 뒤로, 가지런히 모아둔 두 손을 모아 제 입가로 가져가더니 샘이 자신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따라 하며 말했다.

“저녁 재료가 필요해요.”

“그리고 참치캔도 필요하다조!”

그림 역시 감독생의 머리 위에 제 머리를 올려두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샘은 순간 가까워진 감독생의 얼굴에 당황한 것처럼 굴었으나, 그가 눈치채기도 전에 표정을 갈무리하고 전과 같은 익살스러운 얼굴로 감독생을 마주했다.

“배고픈 고양이부터 성장이 필요한 학생까지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이 In stock now! 말만 하렴, 이 샘의 미스터리 샵에는 없는 거 빼고 다 있으니 말이야.”

“어, 그럼…….”

감독생은 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머니에 넣어둔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어제 잠들기 전 그림이 참치를 먹고 싶다고 하기에, 그걸 사용한 간단한 저녁 준비를 해보려고 수업 듣는 와중에 몰래몰래 저녁 거리를 생각했다.

원더랜드에 와서 여러 가지 맛있는 걸 먹긴 했지만, 주로 서양식에 가까웠다고 해야 하나. 한식에 길들어버린 감독생은 슬슬 물리다 못해 속이 기름지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모든 요리가 서양식인 건 아니었다. 당장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느껴지는 기숙사의 모 부기숙장이 기숙사장을 위해 하는 요리를 보면 자신이 살던 세계나 이 세계나 식자재의 차이를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꽤 예전에 열린 학교 행사 중 하나였던 마스터 셰프 때만 해도 고추장을 사용하던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더라지. 그리고 여기서는 매운맛 파우더라고 부르는 거 같던데, 감독생이 보기에는 그건 고춧가루였다.

한식을 먹으면서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바로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된장이 아니던가. 이것만 있어도 대부분의 요리는 모두 할 수 있겠지.

감독생은 자신이 적은 메모지를 한 번 더 훑으며 생각했다. 오늘 저녁으로 할 메뉴는 쌀밥과 참치 미역국, 야채 계란말이와 참치 계란말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시지볶음이었다.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나오는 국과 반찬. 다른 반찬에 비해 만들기도 비교적 쉽고 아이부터 성인까지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특히 입맛이 어린이 같은 그림에게는 최고의 반찬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미역국에는 소고기가 들어가야 하는데, 국거리용 소고기를 살 수 있을지 긴가민가해서 참치로 재료를 바꿨다. 그림이 참치를 좋아하기도 하고, 참치를 넣어 끓이는 미역국도 제 취향에 맞았으니까.

감독생은 제 앞에서 경청하고 있는 샘을 향해 메모지를 읽어내렸다.

“자른 미역, 당근이랑 양파… 파랑 계란이랑 소금. 국물용 조미료하고 국간장, 다진 마늘, 비엔나소시지하고 파프리카랑……. 케챱이랑 올리고당, 그리고 설탕이랑 고추장이 필요해요.”

“잠깐, 잠깐. 작은 도깨비 짱, 미안한데 중간부터 못 들었어. 그 메모지 잠깐 주지 않을래?”

“아, 네.”

기계처럼 줄줄 외우고 있으니 중간부터 놓친 샘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읽어 내리던 감독생은 샘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더니 들고 있던 메모지를 내밀었고, 감독생의 머리 위에 있던 그림 역시 대체 뭘 만드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그의 머리를 앞발로 꾹꾹 눌렀다. 부하, 뭘 만드는 거냐구. 응, 우리 집에서 자주 먹던 거. 그게 뭐냐조. 만들고 나서 알려줄게. 작은 소리로 둘만의 이야기를 끝낸 감독생이 그림의 머리를 작게 긁어주며 웃었다. 감독생의 머리 위에서 그림의 기분 좋은 골골송이 들려왔고, 그렇게 몇 번 더 긁어주던 감독생은 메모지를 보고 바쁘게 가게 안쪽을 왔다 갔다 하는 샘을 보았다.

지금까지 점심, 저녁을 둘 다 학교 식당에서 해결하거나 운이 좋을 때는 하츠라뷸 기숙사에서, 혹은 모스트로 라운지에서 해결했기에 감독생이 머무는 낡은 기숙사에는 요리 재료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사려고 해도 사야 하는 재료가 은근히 많았던 탓에 감독생은 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 걱정되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지갑을 넣어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품 안 가득 짐을 들고 온 샘이 계산대 위에 쏟아부을 듯이 펼쳤다.

“일단 작은 도깨비 짱이 메모지에 적어둔 것 중 가게에 있는 것만 꺼내왔어. 한번 확인해 보겠니?”

“그러니까…….”

감독생은 계산대 위에 있는 재료를 하나하나 살폈다. 당근과 양파, 파랑 계란. 참기름이나 비엔나소시지. 파프리카와 케챱, 설탕과 소금. 그리고 고추장과 간장이 있었다. 감독생은 고개를 기울이며 계산대 위를 다시 살폈다. 그의 머리 위에 있던 그림 역시 감독생의 고개를 따라 몸을 기울였다.

“참치가 없는 거라구.”

“그림, 참치는 나중에 살 거야. …샘 씨, 혹시 참치캔도 살 수 있을까요? 한… 6개 정도?”

“후냣! 부, 부하! 그렇게 사다가는 돈이 거덜 날지도 모른다고!”

“후후. 그림, 걱정하지 마! 감독생의 지갑은 이제 옛날의 지갑이 아니라고! 참치캔 6개를 사고도 더 살 수 있다는 말씀!”

“부, 부하……!”

남들이 보면 겨우 저런 걸로 잘도 논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정을 알고 있는 샘은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짧은 촌극에 눈가를 콕콕 찍어냈다. 학원장이 어느 정도 감독생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애초부터 기숙사에 머물 수 있게 해주는 대신 먹는 거나 입는 것은 스스로 하라고 못 박아뒀다고 들었다. 이세계에 교복만 달랑 입고 빈털터리로 생활하게 된 감독생의 의식주 중 주가 해결됐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하루 24시간을 교복만 입고 생활할 수 있을 리 없고, 하루 세끼를 물과 먼지만 먹으며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그 부분을 감독생이 학원장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교복 한 벌과 한 달 생활비를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생활비라고 해봤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평균적인 보름 용돈쯤 되나. 심지어 감독생은 먹을 입이 둘이었고, 그 입을 가진 파트너는 하루가 멀다고 사고를 치는 바람에 생활비 대부분을 사고 청구 비용으로 나갔다. 그런 감독생이 돈을 모을 수 있게 된 건 비정규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켜주는 샘의 미스터리 샵과 모스트로 라운지 덕분이었다. 종종 감독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신세 한탄을 하던 것을 들어준 샘으로서는 지금 감독생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미역이랑 국물용 조미료는 안 보이네요.”

“국물용 조미료…는 없는 거 같네.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걸 사는 학생은 좀처럼 없어서 말이야.”

“그렇긴 하겠죠. …아, 그럼 미역이랑 다진 마늘은요?”

“다진 마늘은 없고 저번 마스터 셰프 때 사용하고 남은 마늘이 있어. …그래서 마늘은 조금 싸게 해줄게.”

혹시 누가 들을까 샘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감독생에게만 해주는 거라며 눈을 찡긋거리는 모습에 감독생은 말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작은 도깨비 짱이 찾는 미역이 이거 맞니?”

“어…….”

감독생은 샘이 내민 미역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소 자신이 미역국 재료로 사용했던 미역은 건조되어 물에 불려 사용하는 거였는데, 샘이 내민 것은 지금 당장에라도 바다에서 수영하고 있을 법한 물미역이었다. 미역에서 맡아지는 짠내에 그림이 몇 번 코를 킁킁거리다 얼굴을 구겼다. 부하, 정말 이걸 먹는 거냐조? 조금 불신이 섞인 눈빛에 감독생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찾는 미역이 이 미역이 맞는데, 사실 이 미역이 아니라 건조된……. 에잇. 감독생은 샘에게 건조된 미역이 따로 있느냐 물었지만 샘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없다는 뜻이다.

감독생은 물미역의 손질법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그것도 담아달라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국물용 조미료가 없다고 했죠. …그럼 다시마하고 건멸치, 건표고하고 대파… 건새우랑 건고추가 있나요?”

“물론이지! …작은 도깨비 짱, 뭘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재료가 정말 많이 들어가는걸?”

“하하…. 기숙사에 아무것도 없어서요. 아, 그리고 요리용 면보 있을까요? 작은… 제 손바닥 정도 크기로요.”

“어디 보자……. 안에다가 방금 주문한 재료를 넣을 거니?”

“아, 네.”

“그럼 작은 도깨비 짱의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면보를 갖고 와야겠네.”

크기 가늠을 위해 내민 감독생의 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잡은 샘은 그의 손바닥을 꾹꾹 눌러보며 말했다. 제 손바닥이 그렇게 작은 건가 싶어서 여전히 제 손을 잡고 있는 샘의 손을 보자, 거의 두 마디 정도 차이가 나는 크기에 혀를 내둘렀다. 감독생의 생각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한참 손을 주물럭거리던 샘이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금방 나왔다.

계산대 위에 진열되어 있던 것을 종이 가방에다가 포장해준 샘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전부 다 해서… 4,520마들이야!”

“와….”

“부, 부하…….”

가격이 많이 나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정말 많이 나오자 선뜻 지갑을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살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감독생은 덜덜 떨리는 팔로 지갑을 꺼내 들었고, 값을 치르려던 차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감독생은 제 이마를 한 번 치며 깜짝 놀란 샘을 향해 느리게 말했다.

“샘 씨…. 혹시 쌀 10kg도 있을까요……. 그리고 1단 도시락통 3개랑… 보온병 2개도요.”

“오…. 물론이지. 잠깐 기다려줘.”

그리고 감독생이 부탁한 것을 가져온 샘이 부산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다 해서 7,060마들이야. …다만 많이 사가는 서비스로 60마들은 빼줄게. 7,000마들만 주렴.”

“새, 샘씨…!”

마치 구원자를 만난 듯이 반짝이는 눈으로 샘을 올려다보았다. 샘은 겨우 60마들이라며 그렇게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며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이제 짐을 들고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짐이 많고 무겁다는 것이다. 구매부에서 제 기숙사까지 거리는 꽤 멀었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자신은 거울사를 이용할 수 없으니 꼼짝없이 이 무거운 것을 품에 안고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감독생은 결심했다는 얼굴로 한 팔에 쌀 10kg을, 다른 한 팔에는 종이 가방을 들었다. 자잘한 물건이 들어서 비교적 가벼운 가방은 그림을 주었는데, 아무래도 종이 가방의 크기가 그림만해서 땅에 질질 끌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끙끙 앓고 있는 감독생을 가만히 보고 있던 샘은 한쪽 입매를 올려 웃고는 제가 쓰고 있는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작은 도깨비 짱! 저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샘을 중심으로 커다란 빛이 내뿜어지더니 이내 감독생의 발밑에 커다란 마법진이 생겼다. 감독생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샘이 먼저 쾌활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목이 높은 나의 작은 귀신 짱에게 감사를! 다음에 또 오시길 기다리며 Good Luck!”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감독생과 그림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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