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호기심

디어 크로울리 드림

* 창작 마법 학교(여학교)가 나오는 글입니다.

 

 

단언컨대, 명문 마법사 양성 학교인 코벤 유니버시티 칼리지는 창립 이래로 단 한 번도 얌전한 아가씨들을 위한 학교였던 적이 없었다. 지느니 죽는 걸 선택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제 고집대로 살아갈 소녀들을 위한 학교. 성격이 얌전할 수는 있어도 가슴 속에는 야망과 의지의 검을 품고 있는 이들을 위한 배움터. 그곳이 바로 여기. CUC였지.

그러니까, 이런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얌전하고 조용한 것이 오히려 더 불안한, 소란이 당연한 장소.

그러나 어쩐지, 오늘의 소란은 평소와는 결이 달랐다.

 

“어라, 무슨 일이지?”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오후.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학원장실 앞을 지나가던 1학년 무리는 와글와글 모여있는 인파를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리본과 망토 안감 색을 보아하니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모여있는데, 대체 무슨 일이기에 모든 학년이 골고루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인가. 호기심 많은 신입생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자연스럽게 무리에 끼어들었다. 아직 오후 수업 시작종이 울리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사태 파악 정도는 하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소란인가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들의 등만 보이는 시야에, 1학년 세 학생 중 가장 외향적인 소녀가 근처 3학년에게 말을 걸었다. 웃음을 꾹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쭉 빼고 있던 선배는 후배의 질문에 눈을 빛내며 시선을 맞춰왔다.

 

“무슨 일이기에 이러냐고? 들어 봐, 학원장 애인이 찾아왔어.”

“예? 애인요?”

 

학원장의 애인이라니, 이건 무슨 소리지.

전혀 생각도 못 한 사건에 놀란 1학년은 입학식 날 처음 보았던 학원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셀라 링키. 코벤의 제3대 학원장이자 아주 먼 과거 이 학원에 재학했던 대선배이기도 한 그는 겉모습부터가 참으로 이 학교와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큰 키, 언제나 위풍당당한 표정과 자세, 호탕한 말투와 뛰어난 마법 실력. 그리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절로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카리스마까지.

때로는 지나치게 털털한 언행 탓에 본디 가지고 있는 서늘한 아름다움을 깎아 먹긴 하여도, 여장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제 학원장에게 애인이 있다니.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얘들아, 조용히 좀 해봐. 내가 도청 마법 걸어볼게.”

“선배, 그래도 되나요?”

“교칙에 학원장실을 도청하지 말라는 조항은 없잖아? 그럼 괜찮지.”

 

진실을 알게 된 1학년들이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이. 인파 맨 앞에 있던 6학년과 4학년의 대화가 들려온다. 보아하니, 학원장과 애인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한 선배들이 과감하게도 이셀라의 사생활을 침범하려는 모양이었다.

‘저래도 되는 건가.’ 아직 이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1학년들은 고학년생들의 대담함에 할 말을 잃었지만, 그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학원장의 연애 대상이 궁금하기도 했고, 항상 위풍당당한 이셀라가 애인 앞에서도 여장부처럼 굴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됐다!”

 

학원장의 방으로 향하는 출입구 앞. 마법으로 새까맣고 작은 원을 만든 6학년은 성공의 기쁨을 외친 후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그 자리에 모인 다른 학생들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함께 입을 닫았다.

가장자리가 일렁이는 까만 원은 5초 정도 소음만 내뱉는가 싶더니, 이내 벽 너머 방의 대화 소리를 그대로 토해냈다.

 

「크로울리. 너는 어떻게 나이를 그렇게 먹어도 그대로지?"」

「당신이 그런 소릴 하니 우습군요, 이셀라.」

「내가 뭐? 나는 쭉 어른스러웠다만.」

「어른스럽다고요? 당신이? 진심입니까? 당신 학생들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면서 웃을 겁니다.」

 

어라. 이건, 싸우는 중인 건가.

전후 상황을 모르고 듣는 대화만으로 평하자면, 아무리 보아도 좋은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다 큰 어른들의 사랑싸움이라니. 호기심 덩어리인 학생들에겐 참으로 자극적인 상황 아닌가. 원래도 조용하긴 했지만 이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적을 유지하는 학생들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까만 원만을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가서 물어볼까? 학원장이 얼마나 믿음직한지?」

「저는 좋습니다. 다들 제가 얼마나 좋은 책임자인지 말해줄 테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아닌 것 같던데. 내 듣자 하니, 학교 측 실수로 마법사도 아닌 여자애를 마차에 싣고 왔다지?」

「그건 제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적 오류입니다!」

「학원 시스템은 학원장이 관리하는 거 아닌가?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이지.」

 

하하. 호탕하게 웃는 이셀라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으으.’ 질렸다는 듯 소리를 삼킨 크로울리는 잠깐 말이 없더니,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전화로 먼저 물었던 그 건에 대한 대답은 안 해 줄 겁니까?」

「아, 그거 말이지. 그건…….」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아무리 분위기를 못 읽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 그걸 모를 학생은 이 코벤에는 없으리라. 영민하고 야망 있는 어린 마법사들은 마른침만 삼키며, 말끝을 흐리는 이셀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이 녀석들! 당장 교실로 가지 못해!」

“꺅!”

 

말도 안 될 정도의 큰 목소리가 뿜어져 나오며, 열심히 도청 임무를 수행하던 원이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린다.

아, 결국 들킨 건가. 진심으로 화난 건 아닌 듯 보이지만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요란한 음성에 놀란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귀를 막으며 흩어졌다.

 

“이런. 다들 호기심이 넘치는군.”

 

우르르르.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를 가만히 듣던 이셀라는 혀를 차곤 어깨를 으쓱였다.

단 한마디만으로도 학생들을 쫓아낸 이셀라를 귀를 막은 채 바라보던 크로울리는 작게 한숨 쉬더니,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냥 얌전히 쫓아낼 수는 없는 겁니까? 덕분에 이쪽도 귀가 터질 뻔했군요!”

“어느 세월에 저 말괄량이들을? 너도 내 카리스마를 본받는 게 좋을 거야.”

“저는 소리 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카리스마 있습니다.”

“아, 그러신가?”

 

킥킥. 장난스럽게 웃은 이셀라는 소리치느라 지친 목을 홍차로 적시고 크로울리의 모자챙을 톡톡 쳤다.

 

“뭐, 좋아. 나도 방학 때는 여유가 있으니 같이 가지.”

“초대한 건 저인데, 당신이 더 의기양양한 거 같군요.”

“그래? 그럼 좀 더 귀엽게 기뻐해 줄까?”

“……아니, 그건 진심으로 무서우니 사양하지요.”

“이 자식이?”

 

그렇게 학원장실에선 오늘의 제4차 말싸움이 시작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딩동. 방금까지 북적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 텅 빈 복도에 오후 수업을 알리는 수업 종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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