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프 드림] 아모텐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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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혼혈왕자) 기준.
영화와 소설의 설정이 섞여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네빌 롱바텀과 팬시 파킨슨이 수업을 듣지 못합니다.
아모텐시아. 현존하는 사랑의 묘약 중 가장 강력한 물약.
표면은 진주와 같은 광택이 돌며 증기는 특징적인 나선 모양을 그린다. 이 물약의 가장 독특한 점은 그 향기로, 맡는 사람의 성애의 향을 띈다.
복용자는 투여자에 대한 강한 강박 관념과 소유욕을 느끼게 되며 그 효과는 거의 즉각적이다.
기숙사 곳곳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마지못해 책을 집어든다. '고급 마법약 제조'. 한숨을 쉰다.
"월요일부터 마법약 수업을 듣고 싶진 않았는데."
"뭐야. 너 마법약 좋아하잖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팬시가 솥에 책을 던져 넣는다.
마법약이 아니라 마법약 교수를 좋아한거지.
"마법약이야 좋아하지만 교수님이 바뀌었잖아."
호레이스 슬러그혼이 새 마법약 교수로 부임해 왔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로 자리를 옮겼다. 마법약 교수 사무실에서는 더 이상 지하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창 밖에서는 햇살이 비쳐 들어온다. 덤블도어가 슬러그혼을 구워삶을때 제시한 조건이 틀림없었다. '지하 사무실 대신 뽀송뽀송한 사무실'. 월급 인상이나 특별 디저트 제공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고. 내게도 별로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지하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좋아하고, 스네이프 교수님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지하실 냄새가 나니까. 불만이라면 여전히 마법약 수업을 빛 한 점 안 드는 지하 교실에서 한다는 점이었다. 이왕 교수도 바뀐 마당에 교실도 같이 옮겨주면 좀 좋아? 하여튼 덤블도어.
"이번 마법약 교수도 슬리데린이라던데 뭐. 어쨌든 우리한텐 잘 해주겠지."
하긴, 이상하리만치 잘 싸고 돌긴 하지. 팬시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솥을 든다.
"벌써 가려고?"
"성적 잘 받고 싶거든."
데스이터 안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도망다닌 사람이 덤블도어 곁으로 왔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테니, 그걸 알아내려면 눈도장이라도 좀 찍어놔야지.
"진짜 유난이네."
고개를 젓는 팬시를 뒤로 하고 교실로 향한다. 활짝 열린 문 너머에는 재료도 도구도 잘 준비되어있다. 게다가 여분 책과 솥까지. 노련하긴 하네. 꽤 괜찮은 교수였다는 말은 사실이었나보다. 근데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교실이길래 계절을 가리지 않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거야? 설계 도면부터 잘못됐던게 틀림없어.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오, 성실한 학생이군!"
부족한 머리숱에 꽤 서글서글해보이는 얼굴, 풍채 좋은 인상.
호레이스 슬러그혼.
"안녕하세요, 슬러그혼 교수님. 슬리데린 6학년생 에이프릴 슈라고 합니다. 제자가 되어 영광이에요."
"내가 할 말을 대신 하는군 그래. 만나서 반갑네."
그가 손을 내민다. 살짝 웃으며 악수한다. 무슨 일로 학교에 돌아오셨는지 순순히 말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이런 타입은 이리저리 잘 빠져나간단 말이야.
"오늘부터 바로 약을 만드나요?"
"그렇다네. 첫 날부터 실습이라니 좀 별나다 싶나?"
"아뇨, 그럴리가요. 제가 마법약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일부러 몽롱하게 말 끝을 흐린다.
"환상적이지."
"역시. 교수님이라면 그 매력을 알아주실거라고 생각했어요."
슬러그혼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법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자네도 마법약에 흥미가 많은 모양이군. 대대로 슬리데린에 마법약에 재능을 가진 인재가 많아. 안 그런가?"
"맞아요. 예를 들면... 슬러그혼 교수님이라던가."
대답을 들은 그는 껄껄 웃는다.
"참 슬리데린 다운 대답일세."
프릴은 슬쩍 웃더니 어깨를 으쓱인다.
"뱀의 매력이죠."
"간만에 아끼는 제자가 생길 것 같아 기분이 좋군. 아쉽지만 아직 수업 준비가 덜 끝났으니 나중에 다시 오겠나?"
"네, 물론이죠. 사실 교수님 뵈러 온 거였거든요. 이따가 수업 시간에 다시 뵐게요. 안녕히 계세요!"
미소로 화답해주는 그를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갈 곳이 없는데 어쩐다. 정처없이 복도를 떠돈다. 온갖 조각상과 그림들로 장식된 호화스러운 복도. 초상화는 말은 커녕 죄다 낮잠을 자는 중이다. 아침 잠이 많으시네. 어느덧 다리를 건너 연회장 앞이다.
"에이프릴? 여기서 뭐 해?"
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다.
"아, 네빌."
손을 반갑게 흔든다. 두 손 가득히 책을 든 네빌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설마 아직 점심 식사를 안 한거야? 식사 시간이라면 한참 전에 지났는데..."
프릴은 고개를 젓는다.
"수업시간까지 좀 남아서.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어. 너는?"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이야. 마법약 교과서를 좀 살펴 봤는데 내가 모르는 약초가 나오길래."
"요즘 시대에 이렇게 성실한 학생이 있다니. 그리핀도르에 10점."
네빌이 킥킥 웃는다.
"이런 정도로 상점을 줄 교수님은 없을 거야, 프릴."
"루핀 교수님이라면 주셨을걸."
"아마 아닐 것 같지만."
프릴은 뭔가 떠올랐는지 빙그레 웃는다.
"보가트 수업 때가 정말 재밌었어."
"나도. 루핀 교수님이 그런 요청을 하실 줄은 몰랐거든."
할머님의 옷을 입은 스네이프 교수님.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모습이었다. 교실 전체가 웃음소리로 덮히자 놀라서 어쩔 줄 모르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던 독수리 모자의 교수님은 지금도 생생했다. 보가트긴 했지만 말이다. 제 차례가 돌아왔을때도 쓸까 수십번을 고민했지만 결국 포터의 차례에서 끝나버렸던 수업.
"그 소식이 스네이프 교수님 귀에 들어가서 트집거리가 되기 전까진 그랬지."
네빌의 대답에 프릴은 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흘깃흘깃 안색을 살핀다.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을 네빌도 눈치챈 모양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마법약 수업을 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젠 괜찮아. 마법약 교수님도 바뀌었고, 수업 빼는 거야 자유잖아."
"그렇긴 하지. 나도 머글 연구를 안 들으니까."
"그거 빼곤 다 들어? 대단한걸."
네빌은 꽤 놀란 표정이다.
"그럴 리가. 사실 여러 개를 뺐어. 머글 연구랑 천문학이랑 산술점."
"너라면 점성술도 뺄 것 같았는데."
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 놈의 예언 때문에 뺄 수가 없었단다.
"맛보기로 좀 구경하고 싶었어. 솔직히 신기하잖아? 그야말로 동화책에나 나오던... 참. 넌 머글 동화책을 안 봤댔지."
가끔 프릴은 네빌이 순수혈통 마법사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제 기숙사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오만한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까.
"지난번에 네가 알려준 건 읽었어. 신데렐라랑 또, 뭐였더라? 과일 잘못 먹었다가 잠들어버린 공주 얘기."
"백설공주?"
"그래! 맞아. 무슨 과일이었지? 레몬이었나?"
머글 동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친구의 잘못된 지식은 한계가 없다. 어이가 없는 듯 작게 웃음을 띄운다.
"사과였지. 레몬이었으면 잠은 커녕 쉴새없이 게워냈을걸."
복도 옆 교실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벌써 수업 시간인가? 옆을 돌아보자 네빌이 하얗게 질려 있다.
"교과서 안 가지고 왔어... 나 기숙사 좀 들렀다 갈게!"
허둥지둥 책을 안고 사라져가는 네빌을 보자니 여전히 괜찮지 않구나 싶다. 슬러그혼은 책 없다고 기숙사 점수를 깎진 않을 텐데. 대체 스네이프 교수님은 왜 그렇게 네빌을 싫어하신걸까? 물론 네빌이 솥을 몇 개씩이나 터트려먹긴 했는데... 생각을 말자. 이런 고민은 슬러그혼 구워삶기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아. 찬찬히 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 우선 트릴로니. 언제 예언을 뱉을 지 모르니 항상 예의주시한다. 더불어 가능하다면 예언의 전체 내용을 알아볼 것. 하지만 이건 별로 보고하고싶진 않은걸. 어차피 본인은 기억도 못할텐데. 그리고 슬러그혼. 왜 돌아왔는지, 덤블도어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이게 제일 문제네. 트릴로니야 대충 분위기만 맞춰줘도 어느 정도 정보가 나올 것 같은데 슬러그혼은 아니란 말이지. 하아. 한숨을 내쉰다. 갑자기 풍기는 지하실 냄새에 코를 의심한다. 머리는 정신이 없지만 몸은 이미 교실 앞이다. 교복을 입은 동급생들이 교실을 서성인다. 어디 보자. 맥밀란, 포터, 그레인저, 위즐리... 포터가 수업을 듣는다니. 보고할 일이 하나 더 늘었잖아. 앞의 셋은 그렇다 쳐도 위즐리는 용케도 O를 받은 모양이네. 통과 못할 줄 알았는데... 교실을 둘러보니 아직 네빌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빈 탁자에 솥을 올려두고 대충 빈 곳에 선다. 책상 위에는 정체불명의 약이 네 개나 줄지어 보글보글 끓고 있다. 한 발짝 다가가려는데 쿠당탕! 소리가 울려퍼진다. 놀라서 쳐다보자 네빌이 솥을 쥔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으, 아프겠다.
"네빌, 괜찮아?"
"응. 괜찮아. 너무 서둘렀나봐."
네빌은 살짝 빨개진 얼굴로 먼지를 툴툴 털고 일어난다. 하기야 민망함이 더 크겠지. 아직 교실에 말포이는 없다. 팬시도. 같은 기숙사 애들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학년 첫 날부터 하게 되다니. 씁쓸한 마음에 입술을 꾹 누른다. 네빌이 솥과 책을 들고 일어서자마자 녹색 망토를 두른 무리가 학생들을 밀치며 들어온다. 납시셨네, 오늘도.
"뭐야, 롱바텀. 거치적거리지 말고 비켜."
또 괜히 시비지. 프릴은 고개를 저으며 끓고 있는 솥으로 시선을 돌린다. 끓인지 꽤 된 것 같은데. 무슨 약이지? 증기 모양이 좀 특이한데...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이제 수업을 시작해도 되겠죠?"
슬러그혼의 말에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많아 봐야 15명 남짓한 학생들이 책상을 둘러싸고 있다. 학생이 이게 다라고? 정말로? O.W.L이 어렵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자, 그럼... 여기 놓인 약이 보이나요? 여러분들의 흥미를 끌 만한 마법약을 가져왔답니다. N.E.W.T 과정이 끝난 후라면 만들줄 알아야 하는 것으로 말이죠. 아직 만들어본 적은 없겠지만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봤을텐데. 혹시 아는 사람?"
아모텐시아겠죠.
"가장 강력한 사랑의 묘약인 아모텐시아입니다."
옆자리에 선 헤르온느가 손을 들고 답한다. 역시 모범생이야.
"아주 정확하군! 진주빛 광채를 보고 알아봤나요?"
"네. 나선형으로 피어오르는 증기도 함께 더해서요."
슬러그혼은 몹시 감탄한 표정이다. 당연하겠지. 6학년 최고의 학생인걸. 헤르미온느는 이내 슬러그혼의 요청에 따라 아모텐시아의 특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약은 어떤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지금 제게는 갓 베어낸 풀 냄새와 빳빳한 양피지 냄새,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다. 아마 특정인을 지목하는 향이 났나 보다. 프릴도 흥미가 끌리는 모양인지 몸이 슬슬 앞으로 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슬러그혼의 눈에 띈 모양이다.
"슈 양도 아모텐시아 향이 궁금한 모양이지? 한 번 맡아보려거든 그렇게 해요."
앗, 젠장.
"감사합니다 교수님."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고 살짝 솥으로 다가간다. 증기가 피어오르는 솥 가까이에서 숨을 살짝 들이쉰다. 이상한데. 도서실 책 냄새, 갓 세탁한 세탁물 냄새, 젖은 꽃이나 딸기 크림 같은 향이 희미하게 나긴 하지만 교실 냄새에 묻혀서 도저히 제대로 느껴지질 않는다. 두어 번 반복해봐도 마찬가지다.
"죄송하지만 교수님. 지하실 냄새가 너무 심해서 다른 냄새가 잘 느껴지지 않아요. 어렴풋하게 꽃 향기나 딸기 향이 나긴 하지만..."
"오, 이런. 후각이 예민한가보군 그래. 지하 교실의 단점이지.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는 말아요. 예민한 후각은 마법약 제조에 필수적인 능력이거든."
프릴은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난다. 뭐야, 큰일 날 뻔 했네.
이후의 수업은 별 다른 일 없이 진행됐다. 단 한 사람이 이상하리만치 완벽한 약을 만들었다는 점을 빼고는 말이다. 슬러그혼은 액체 행운이라 불리는 펠릭스 펠리시스를 상품으로 내걸고 살아있는 죽음의 약을 만들어보라고 했고, 그 누구도 연분홍빛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잘리지 않는 콩을 억지로 썰어가며 책에 적힌 제조법을 충실히 따른 제 것도 짙은 보라색에서 더 이상 변하질 않았다. 그런데 얼핏 봐도 딴길로 샜던 포터의 약이 책에 나온 것과 똑같은 분홍색이라니. 심지어 그레인저도 성공하지 못한 약이라고. 프릴은 해리의 솥에서 끓고 있는 약을 쳐다보다가 슬러그혼과 눈이 마주친다. 슬쩍 웃어보이곤 수업이 끝나자마자 냉큼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다. 망했군. 대체 왜 색이 그 모양이었지? 아무래도 스네이프 교수님께 도움을 받아야겠어. 마법약이라면 도가 트신 분이니까 뭐든 문제점을 짚어 주시겠지.
"슈!"
생각이 끊긴다. 뒤를 돌아본다.
"왜, 팬시."
목소리에 귀찮음이 묻어나온다. 또 뭐가 궁금해서 이러실까.
"아까 아모텐시아, 무슨 냄새가 난 거야?"
"너도 들었잖아. 지하실 냄새가 하도 심해서 약 냄새는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니까."
"지하실 냄새는 커녕 물 비린내도 안 났거든? 오전시간 내내 슬러그혼이 문 열어놓고 환기한게 헛짓이 아니었다는 증거지. 변명하지 말고 말해봐. 대체 뭐였길래 말을 안 한거야? 누구 향수 냄새라도 맡았어?"
"뭐?"
머릿속이 하얘진다. 교실 냄새가 안 났다고? 그럼 내가 맡은 건?
"슬리데린 반장으로서 진짜 궁금하니까 빨리 말해봐. 혹시 모르잖아. 내가 이어줄 수 있을지."
"이만 가 볼게, 팬시. 오늘 마법약 망쳐서 심란하거든."
"하여튼 진짜 유난이야!"
팬시는 못견디겠다는 듯 쏘아붙이고는 슬리데린 무리로 돌아간다. 향수라니. 아모텐시아에서 말포이 향수 냄새라도 난 모양인가보다. 쟤도 참 한결같네. 그래서, 마법약 교실에서는 지하실 냄새가 안 나는데 나만 맡았다 이거지. 내 아모텐시아가 지하실 냄새를... 당연히 그렇겠지. 스네이프 교수님 사무실은 여전히 지하에 있으니까! 그건 전혀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렇지만! 내가 그걸 교실 전체에 들리게 떠들어댔다니! 멀린이시여! 프릴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듯 고개를 미친듯이 흔들어대다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어차피 아무도 몰랐잖아."
물론 대부분은 어지간히 말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고 있다고만 생각했을 터다. 그 상황에서 깐깐하기 그지없는 사감 교수를 누가 떠올리겠는가.
"하..."
벽에 기대어 선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얼핏 느끼기에도 화끈거린다. 미쳤어, 미쳤어. 그걸 자그마치 열 다섯 명 앞에서 말하다니. 미쳤어! 얼굴을 묻고 한참을 서서 웅얼거리더니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뭘 어쩌겠어. 아무도 몰랐을텐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손등을 얼굴에 얹어본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된 모양이다.
"가자, 가. 여쭤봐야지."
복도를 거닌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얼굴에 도는 새빨간 빛이 옅어졌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출처: https://miyeokayeah.tistory.com/45 [빛과 어둠 그 너머]
-티스토리에 썼던 걸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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