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척점, 교차점
엘리디부스 × 빛의 전사 드림글
FF14 엘리디부스 × 빛의 전사(중원 휴런 여성) 드림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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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디부스와 베르니체는 많이 닮아 있었다.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나 바람 같은 것. 서로가 서로의 대척점이었고 지금도 어떠한 지점에서는 여전한 대척점에 있는 서로지만, 과거 함께 했던 순간을 공유하거나 개인의 옛 추억을 상대에게 들려주는 등 자주 함께 하고는 했다.
물론 그런 것은 다른 고대인들과도 마찬가지였지만, 두 사람만의 특이점이 하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별로 집중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응. 미안해.”
“괜찮아. 이야기는 언제든지 나눌 수 있어. 자, 너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토록 좋아하던 14인 위원회의 이야기에도 집중하지 못할 정도라면, 보통 고민은 아닐 텐데.”
책장 앞에 있다가 마치 엘피스에서 처음 만났던 때처럼 말하며 천천히 걸어온 그는 베르니체 앞에 앉았다. 문득 그때를 떠올리며 살풋 웃으니 그 또한 미소지었다.
“이제야 표정이 좀 밝아졌군. 이제 말해 봐.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지?”
“오늘 기가스족이 코이나트 재단 조사지를 습격했다고 해서 격퇴하러 갔었어. 그런데 그 중 하나가 그러더라. ‘하늘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싶다’고…….”
“하늘로 오르는 계단?”
“크리스탈 타워를 말하는 거야. 그게 기가스족에게는 하늘로 가는 계단이라고 전해지나 봐. 그래도 일단 사람들이 다친 상황이라 쫓아내고 난 후에 기가스족과 협력해서 크리스탈 타워 주변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그게 가능했다면 그렇게 갈등할 이유도 없었을 거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 순간 네 말이 생각나더라. ‘쓰러뜨릴 상대의 사정 따위는 굴레가 될 뿐’이라고 했던 거……. 기억해?”
엘리디부스는 아무 말 없이 베르니체를 보고 있었다. 베르니체는 그를 보며 언제나 짓는 미소를 짓고서 말을 이었다.
“기가스족은 체격과 힘 면에서 우리 인간들보다 뛰어나. 그리고 그런 전설이 전해져온다는 것은 그들 또한 우리처럼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소리지. 그래서 이야기라도 나눠볼 수 없냐고 했지만, 불가능하다고 하다더라.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고, 합의점을 찾고, 함께 조사한다면 분명 모두가 행복한 결말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한 발 나아가는 것조차 어려운 걸까. 왜 인간은 계속 싸우고 갈등하는 걸까…….”
“……하.”
그녀의 말을 들은 엘리디부스가 웃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에 조소와 비웃음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싸늘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것 봐.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고 했잖아? 타협할 수 있다고 깎아내리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 스스로를 기만할 뿐이지. 너희 인간은 항상 그래 왔어. 한순간의 맹약은 오래 지나지 않아 버려지고 짓밟히지. 아무리 네가 뛰어난 영웅이라 한들, 현 인류의 본질은 바꿀 수 없다.”
그동안 잊고 왔던 아씨엔 엘리디부스로서 돌아온 부정할 수 없는 대답에 베르니체는 그저 미소만 지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씨엔이기만 한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야. 하지만 네가 먼저 나아간 한 걸음은 누군가가 뒤따라오고, 네가 제안했던 방향이 당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시도하지. 그렇다면 언젠가, 그것은 네가 바라던 길이 될 수도 있어. 반드시 좋은 결말만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서 모든 결말이 불행하지는 않다고 네가 증명했잖아. 네가 확신할 수 없다면, 내가 확신하지. 네가 걸어온 길이, 네가 만들어낸 모든 길이 내게는 꽤 골칫거리였거든.”
“다른 누구도 아닌 네 말이니까 부정할 수도 없네.”
가장 최악의 적이었기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 미소짓고 있던 그가 몸을 등받이에 편히 기대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기가스족 중 누군가도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는 이를 먼저 찾아보도록 해. 모든 기가스족이 그렇게 난폭한 태도는 아닐 거야.”
“응. 그럴게.”
“나는 현 시대의 조정자가 아니야. 하지만 네게 조정자의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리 할 수 있어. 네 동료들 사이에서 답을 내지 못하겠다면, 모든 의견을 가지고 내게 오도록 해. 기꺼이 힘을 빌려주지. 너의 조정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내기였잖아.”
적대한 자로서 격려하고 베르니체는 생각으로 그친 것을 입밖으로 내어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등을 밀어준다. 그에 그치지 않고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의견이 있거든 제3자로서 공정한 판단을 내리고 조언해주는 것.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였다.
베르니체는 에메트셀크와 라하브레아, 두 휘틀로다이우스의 격려와는 다른 격려를 해주는 이를 보며 살짝 웃었다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그는 ‘쓰러뜨릴 상대의 사정은 굴레가 될 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엘리디부스. 하나만 물어봐도 돼? 민감한 질문이면 대답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말해 봐.”
“혹시 너도 ‘쓰러뜨려야 할 상대의 사정’때문에 망설인 적이 있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엘리디부스가 말했다. 당연하지 않겠느냐, 고.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고, 많이 고민했다. 현인류가 우리와 가까워질 때마다 그들의 사정 또한 눈에 들어왔지. 섞여있으면 그들의 이야기 또한 들을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엘리디부스야. 더 이상 이 시대에 내가 필요치 않다 해도 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에, 그것들을 떨쳐냈어. 그러기 위해 테미스라는 나 개인도 모두 떨쳐내야 했지.”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그가 다시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걱정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너도 그렇게 해야 할 때는 그렇게 하도록 해. 너는 늘 모든 걸 끌어안으려고만 하거든. 더 나은 결과를 찾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놓친 것과 빠져나간 것에 미련을 가져. ‘다른 선택을 했으면 달랐을까’ 하고. ……네가 그 당시에 내린 선택이 네게는 최선이었을 거야. 위안을 삼을 것이라면 차라리 그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 타협할 수 있었다,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위안은 너 스스로의 신념 뿐 아니라 타인의 신념마저 깎아내리는 행위라는 걸 기억해.”
“응. 노력해 볼게. 그럼 이제 가 봐야겠다. 라하브레아가 기다릴 거야.”
“벌써 그렇게 됐나? 좋은 밤 보내.”
대의사당에 있는 그의 사무실과 연결된 에테라이트가 있는 복도 끝까지 마중해준 엘리디부스와 거주용 건물의 복도가 빛에 가려졌다. 그 빛이 걷혔을 때는 더 찬란한 빛을 품은 깔끔한 사무실이었다. 그가 아모로트를 향해 품은 모든 사랑과 그곳에서 느꼈던 모든 기쁨을 새겨넣은 듯한 그 공간은 오히려 그렇기에 슬픈 공간이었다. 방 안에서 보는 거리는 그녀가 봐 온 어떤 장소보다도 찬란한 태양이 내리비치고 있지만, 정작 나가면 그곳은 차갑고 습한 공간일 뿐이니까.
그곳을 조용히 둘러보던 이가 그 방을 떠났다.
그러자 태양이 사라진 밤이 찾아오듯, 찬란함이 사라지고 적막한 푸름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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