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브] 移染
코메트님 리퀘
*코메트님 리퀘
*승천 아스 x 스폰 칼리
*오타 감안해주세용.
"하, 자기. 또 어딜 가있는거야."
도대체 이게 며칠째야? 남자가 입술을 가볍게 짓씹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신경질 섞인 손길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구겨버렸고,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의자의 손잡이가 우그러진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이 급하게 다가와 그가 어지럽힌 공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가득찬 사용인. 그러니까, 스폰의 손놀림을 보아하니 이런 일이 익숙하면서도 주인을 향한 공포가 느껴졌다. 현재 자르 저택의 주인은 스폰들에게 썩 좋은 주인은 아니었다. 물론 그라면 이 정도로 친절한 뱀파이어 로드가 존재한다니 이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이죽거리거나, 지하에 있는 두개골한테 물어봐야하지 않겠냐며 비아냥거리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 스폰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르 저택의 안주인이 사라진 것이다. 평소에도 이따금씩 그런 말을 하고는 했지만, 실제로 부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스폰들에게 물어봐도 그닥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에게 진실을 숨길 수 없으니 아마 그의 배우자. 칼리오페가 알아서 단속을 한 것이겠지. 그는 날카로운 눈을 치켜뜨고는 그가 자주 시간을 보내었던-무려 배우자인 자신보다도 더!- 온실로 방향을 틀었다.
**
"흐음."
이국에서 온 다양한 화초들로 꾸며진 온실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배우자를 애정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이 아스타리온은 상단에서 내놓은 진귀한 풀들을 전부 사다가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칼리오페가 원하던 것하고는 조금 달랐지만, 분명 그는 자신에게 떠맡겨진 자연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주렁주렁 걸린 덩굴 식물들과 가운데에 위치한 연못을 지나, 거대한 나무가 자리잡은 안쪽으로 더 깊숙하게 걸음을 옮긴다. 저가 선물했지만 마치 칼리오페를 빼앗긴 것 같아서 이 온실에 자주 걸음을 하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온실을 투과하는 강한 햇빛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잠시 멈춰서서, 만족스러운 짐승과 같은 미소를 짓던 그가 마저 이동한다.
자르 저택의 주인이자 하이 홀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인 아스타리온의 입장에서. 장인이 한땀한땀 꿰맨 가죽구두와 은색 자수가 박혀있는 바짓단에 풀물이 드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다. 괜히 풀숲을 헤치는 손길을 거칠게 휘두른다. 칼리오페는 온실의 관리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확인하거나 정 안될 때에야 스폰에게 기초적인 것들만을 부탁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탁 그의 구둣코에 무언가 부딪힌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물건에 흠집을 낼 뻔한 그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크기가 작은 펌프스였다. 아름답게 수가 놓아진 것을 보아하니, 이건 그가 칼리오페에게 선물한 수 많은 컬렉션 중 하나였다.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은 한 짝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눈높이에 오는 나뭇가지에 걸린 그것의 은색 자수가 태양빛에 비춰 반짝였던 탓이었다. 그가 걷는 속도를 높인다. 평소 귀족적이지 못한 것에 질색을 하던 그가 경박하게 뛰고 있었다. 평소에도 창백했던 낯빛이 더욱 어두워진다. 꼭 흙에 다시 파묻힌 것만 같이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에 차이는 풀과 시야를 가로막는 덩굴들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마치 온실 전체가 아스타리온을 칼리오페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차마 이것들을 전부 태워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를 몹시 언짢게 만들었다.
"..."
이내 큰 덩굴 하나를 뽑아내려 할 때, 코끝에 익숙한 향기가 닿았다가 빠르게 흩어진다. 그가 고개를 돌려 향기가 나온 곳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르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과 들꽃이 즐비한 공간이 그의 시야에 가득 들어찬다.
**
"흠흠~"
언더다크의 어둠보다도 짙은 검정색의 머리카락이 그의 몸짓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린다. 흘러내린 머리 장식이, 반쯤 풀린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그 우아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워터딥에서 들여온 값비싼 원단으로 만든 드레스는 그의 취향에 맞게 자연의 상징물이 금실로 새겨져 있었다. 세련된 드레스의 끝이 풀과 꽃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었지만 그것조차 조화롭게 보이는 상황에 아스타리온은 그저 펌프스 한 켤레를 두 손에 쥐고 그의 기이한 스텝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맨발이 풀을 밟으며 높이 박차오르지만 지면에서 나는 소리는 사붓거리기만 한다. 하이 홀에서 유명한 무용수도 따라해내지 못하는 몸짓은 오랜 세월을 칼리오페가 쌓아온 삶의 기록이기도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펌프스를 들고 있는 자르 저택의 주인과 눈이 마주친다.
"아스타리온?"
칼리오페에게 이름을 불리자 아스타리온이 퍼뜩 정신을 차린다. 이른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비슷한 눈동자가 그의 차가운 피부를 덥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칼리오페에게 다가간다. 순간적으로 감정적인 말을 먼저 내뱉을 뻔했지만 그는 점잖을 떨며 그에게 펌프스를 내밀 뿐이었다. 자르 저택의 안주인이 이런 곳에서 무엇 하고 있는 거야? 그의 말에 칼리오페가 조용히 고개를 기울인다. 신도 벗어던지고... 머리 장식도 다시 정리해야하잖아. 칼리오페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가 조심스럽게 그와 시선을 맞춘다. 분명 따스한 빛을 머금은 눈동자이지만 그것은 용광로의 불꽃같은 열기를 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밤 하늘에 떠있는 만월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순간 칼리오페가 눈꼬리를 휘며 미소짓는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리 와."
"당신도 같이 추자."
뭐, 뭐? 차마 그가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고 칼리오페는 아스타리온의 손을 잡아당긴다. 한 켤레의 펌프스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남자는 여자에게 잡힌 손을 풀지 못한다.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하나의 춤이 되는 거야. 어려워할 것 없어. 결국 남자는 여자와 두 손을 맞잡는다. 고급스러운 드레스 끝에 풀물이 든 것처럼 그의 바짓단도 점점 연둣빛으로 물들어간다. 아스타리온은 자신의 손에 올려진 연인의 손을 맞잡고는 한참을 그의 스텝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온실을 비추는 빛이 약해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