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브아스] 밤바다
갯님 리퀘
*라스 x 아스(비승천)
*갯님 리퀘입니다.
*오타 감안해주세요.
쏴아-
어두운 밤에 바라보는 바다는 사람의 마음을 한층 가라앉힌다.
낮에 생동감 넘치던 도시는 모습을 감추고. 모두가 잠에 든 이 시간에야 불 수 있는 풍경은 고요하고 또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고. 라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 물론 발더스 게이트의 밤이란 게, 그리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선 살인이 일어나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그가 뇌 속에 자리잡은 올챙이를 없애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던 것처럼. 그래도 여유가 없던 그 때와는 다르게 적어도 지금은 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라스는 슬쩍 챙겨온 와인으로 입술을 적신다. 그가 떠나기 전에도 이곳은 발더스 게이트였고, 아마 그가 죽은 뒤에도 그것은 바뀌지 않을테지. 술이 들어가니 몸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살살 불어오는 짠내 섞인 공기와 적당한 알코올은 사람의 기분을 보다 감상적이게 만든다. 분명 그가 지금 자신을 본다면 멍청한 얼굴이라며 한 소리를 할 것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청승맞게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그래. 이런 목소리로- 그의 시야에 익숙한 인영이 들어온다. 날카로운 눈매와 창백한 얼굴. 보통 사람보다 낮은 체온의 손바닥이 그의 얼굴을 살포시 잡아든다. 살살 부는 바람이 남자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나부끼게 만든다. 라스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잘생겼다.
"뭐?"
"내가 본 뱀파이어 중에 제일 잘생겼어."
라스의 말에 아스타리온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고 놓아준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옅게 상기된 뺨과 살짝 힘이 풀린 녹빛 눈동자를 바라본다. 평소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잠시 몇 달전에 일어난 일을 떠올린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을. 라스와 처음 만났던 그 곳, 노틸로이드의 잔해 사이에서 그에게 단검을 겨누던 때. 그가 살아온-생존해온-세월에 비교하면 티끌과 같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이 끝내 멈춰있던 아스타리온의 시간을 다시금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제 손아귀에 잡혀서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있는 남자는 그것에 아주 큰 일조를 했고. 하-
아스타리온은 라스의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는 그에게서 술병을 빼앗아 들고 그것을 마셔본다. 시큼털털한 적포도주. 언젠가 마셔봤던 기억이 있는데... 티플링들과 함께 보낸 어느 날의 파티를 기억한다. 설마 그때 쟁여놨던 걸 아직도 들고다니는 건 아니겠지...? 그가 의심에 찬 눈초리로 째려보자 라스가 슬쩍 그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인다. 하아. 여전히 더럽게 맛없네. 그가 작게 중얼거리면서도 한모금 더 마시자, 라스가 그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삶에 여러가지 변화가 찾아온 것처럼 이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처음보다는 조금 더 순해졌나? 그땐 좀 지쳐보였지. 그것도 나름 내 취향이었지만...
아스타리온이 조금 뜸을 들이다가 라스의 뺨을 쥐고는 살살 쓰다듬는다. 난 이게 더 맛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는 입을 맞춘다. 술에 적셔진 촉촉한 입술이 맞닿는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녹빛 눈동자에선 놀람과 당황이 보이지만 이내 그것은 열기로 바뀐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축축한 살덩어리가 밀려들어온다. 라스의 단단한 팔이 그의 허리를 감싼다. 그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뜨끈한 혀가 더듬는 것이 느껴진다. 아- 그가 눈을 크게 뜬다. 질척하게 그의 혀를 감싸는 것에게서 익숙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난다는 걸 깨닫는다. 라스의 눈을 쳐다보자 모른 척, 마저 입을 맞춰온다. 그 모습이 얄궂으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아스타리온은 눈꺼풀을 내렸다.
**
"그래서, 자기. 진짜 뭐하고 있었어?"
"...그냥 밤바다 구경?"
라스의 어깨에 기댄 아스타리온이 물어보자 그가 대답한다. 그 시선 끝엔 언더다크의 구덩이만큼이나 어두운 밤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다. 귀를 기울여보면 촤아아- 하는, 파도가 바위에 부셔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뭔가 특별한 것 없는 발더스 게이트의 모습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평온하다. 그건 자신을 덮혀주고 있는 뜨거운 체온 때문일까? 그의 곁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더 이상 희생자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도시의 어둠에 나 자신을 내던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속이 텅빈 것 같기도 해.
"그래도...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라스와 같은 것을 눈으로 쫓은 그가 작게 중얼거린다.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바다는 마치 와인잔에 담긴 포도주와 같아 보인다. 나 자신이 만약 마개가 땋인 포도주였다면 그 잔을 흔들고 있는 것은 카자도어였을까. 어쩌면 자신의 기도에 답하지 않은 수 많은 신들일지도. 그가 생각에 잠겨있자 라스가 그의 어깨에 슬쩍 팔을 두른다. 그가 쳐다보자 하는 말이라고는 추울까봐- 그 말에 아스타리온이 입술을 살짝 삐죽인다. 기분은 좋지만 뭔가 티내고 싶지 않아질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아스타리온은 그를 바라본다. 아주 오래 전에 빼앗긴 잔을 그의 손에 다시 쥐어준 사람이다. 바보같이 자신같은 언데드를 신뢰해주고 피를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 그렇다면 그 바보같음에 구제당한 자신 또한 거기서 거기인 사람이겠지. 끼리끼리 만나서 다행이네. 그가 미소지으며 이죽인다. 발더스 게이트의 밤바다가 이렇게 편안할 줄이야.
"좀만 더 있다가 들어갈까?"
라스가 아스타리온에게 속삭이듯 말하자 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토록 강하게 타오르던 붉은 눈동자가 마치 배부른 짐승처럼 온순해보인다. 약 200년만에 찾아온 휴식기 아닌가. 이제는 좀 쉴때도 되었지. 그리고... 가능하면, 그가 잃어버린 자신의 것들을 되찾는 시간을. 그의 바로 옆에서 같이 보내고 싶다고 라스는 생각한다.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새로운 도시에 방문하고, 어딘가에 묻힌 유물을 찾아보고, 언더다크에도 찾아가봐야지. 그가 동의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미약하고 심장은 보다 느리게 뛰고 있지만 내가 그에게 모자란 것을 채워줄 수 있으니까. 그거면 된 것이라고. 라스는 그저 그것만을 바랬다. 고향의 밤바다를 너와 함께 즐길 수 있어 다행이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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