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싫] 필링필링

1.3 그는 위기의식과 눈치라곤 없는 사람이다

스푼의 상담사

망상요람 by Z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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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늦었다. 차트 정리에 열중하던 타냐는 10분이 지나서야 지금이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쩐지 아까 똑똑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라니···. 핸드폰을 보니 ‘쇼핑하고 갈 테니까, 늘 먹는 곳에 먼저 가 있어!’라는 내용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얼른 챙기고 나가봐야겠다 싶었던 타냐는 허둥지둥 지갑과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밖에 나간 타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묘한 일을 하는 나가 일행을 마주했다.

“혜나야? 사사 씨? 나가 군?”

“어, 타냐 언니? 빨리 이쪽으로 와. 쉿!”

“응? 응.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스푼에서 제일 야성적인 인물을 관찰하는 중.”

“아, 서장님?”

“응! 언니도 같이할래?”

겉보기엔 같이 움직이는 세 사람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어딜 보나 혜나와 혜나에게 휘둘리고 있는 남자 두 명이다. 타냐는 어색하게 웃어주고는 자신도 혜나의 말에 따라주기로 했다. ‘오늘은 간단히 샌드위치로 해결할게요. 점심 든든히 먹고 이따 봐요.’ 문자까지 보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한다.

뭐, 원래 타냐는 가끔 혜나의 장난에 진지하게 어울려주는 경향이 있었다. 아마 들켜도 다른 여사원들은 이해해주겠지. 매번 같이 점심을 먹는 멤버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타냐는 혜나의 뒤를 따랐다. -서장님의 동생이라 그런지 정말 앞만 보고 가는구나···.

다나를 비롯한 스푼의 여사원들은 옷 가게에 들어가 있었다. 아, 서장님 표정 썩어들어간다. 타냐는 쇼핑하는 데 끌려가서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다나를 보며 쿡쿡 웃었다.

“근데 굳이 야성적인 인물을 관찰하는 이유는 뭐야?”

“뭐긴. 나가 오빠가 너무 감이 없어서 그렇지.”

하하, 나가가 어색하게 웃었다. 타냐는 그런 나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럴 수 있지. 타냐 역시 눈치 없고 위기감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본 바가 있는 사사가 묘한 눈으로 타냐를 바라보았다. 타냐는 그런 시선을 느끼고 무안하게 웃었다.


과거의 어느 날, 스푼의 상담실로 의문의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타냐 앞으로 오는 편지였는데, 하루 이틀 간격으로 쏟아지는 선물과 편지들에 곧 모두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타냐는 나름 스푼의 유명 인사여서,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기 때문이다.

소문의 내용은 간단했다. 타냐에게 하루 이틀 걸러 편지와 함께 선물이 오더라. 어느 날은 꽃다발, 어느 날은 초콜릿, 어느 날은 타냐 취향의 책···.

“아, 그거요? 뭐 이상한 건 없고, 그냥 순수한 선물 같더라구요.”

그 대답이 결정적이었다. 어색한 듯 웃어 보이는 타냐의 표정이 언뜻 수줍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가 타냐쌤에게 반해서 선물 공세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의견에 힘이 실렸고, 당연히 모두가 상대를 궁금해했다.

“에, 누군지 몰라요?”

“네···. 어디서 봤는지도 모르겠고, 이름도 편지에 적혀 있어서 알았어요.”

“연락처는?”

“아, 적혀 있어서 선물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내봤는데···. 텐션이 너무 높아서 조금··· 답을 미루고 있어요.”

“와, 밀고 당기기? 타냐쌤 제법인데요?”

“언제 이렇게 컸담···.”

여사원들이 꺄악 거리며 조언을 해주었다. 타냐는 그런 게 아닌 것 같다며 손사래를 치는데도 쇼핑 계획부터 잡기도 했다. 타냐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분위기가 싫지는 않지만, 조금 곤란하다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래, 그저 그런 연애담이었다.

···사사가 복도에서 고민에 빠진 타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든 이리야?”

“아, 사사 씨. 음···. 저한테 선물 보내던 분께 어떻게 답장을 쓸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타냐는 그렇게 말하며 택배 박스를 흔들어 보였다.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찰칵 소리가 나는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찰칵? 사사는 박스 안에서 금속 스치는 일이 뭐가 있나,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식기 세트를 보내지 않는 이상 그런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불안한 예감이 든 사사는 무례를 무릅쓰고 타냐에게 물었다.

“바도 대?”

“아? 네. 그러고 좀 도와주실래요? 이런 선물은 좀 그런 것 같아서.”

“···???”

그리고 사사가 본 것은 사랑을 맹세하는 혈서와 피가 묻은 커터칼, 그리고 배송이 잘못됐는지 깨져있는 액자였다. 심지어 잘 나가지도 않는 타냐가 식사를 위해 외출했을 때 찍은 것으로 보이는 도촬 사진까지 있었다.···스토커? 사사는 잠시 생각하다, 곧 경악했다. 이런 선물이 오기 시작한 게 한 달 전이다. 그 말은 곧 타냐가 한 달 동안 스토킹을 당해왔다는 소리다!

“이, 이거 스도커 아나?”

“네. 하지만, 뭔가 성장환경에 문제가 있는 분 같아서 얘기를 좀 들어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자해라니···. 저한테 이렇게 과하게 의존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음, 과하면 신고할 생각이긴 한데.”

아직 좀 더 두고 볼까요? 아냐아냐 그거 아냐 덜대 안대.

사사는 다급하게 타냐를 막아서고, 그전의 편지들을 받아냈다.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내용에, 뒤로 갈수록 도촬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타냐는 뭔가 사정이 있다면 듣고 판단하고 싶다는 둥의 얘기를 했지만, 죄 위기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었다. 사사는 그대로 택배 상자를 들고 서장실로 날랐다. 타냐의 스토커 사건이 스푼 건물에 쫙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사는 그때 타냐가 다나와 대화하던 내용을 똑똑히 기억한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다그치는 다나의 앞에서 꿍얼거리던 타냐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위기의식이 없어? 스토커 새끼가 곧 찾아간다고 난리를 치는데! 당장 방 빼고 사원 숙소로 들어오든가 해!”

“아니, 처음엔 말로 잘 타일러보려고 했거든요···. 안 그래도 심해지면 곧 신고할 생각이었어요.”

“처음부터 틀려먹었다곤 생각 안 해?”

“처음엔 그렇게 심각해질 줄 몰랐어요···.”

다나가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낸 이후부터는 학습했는지, 스토커를 그냥 넘기지 않게 되기는 했지만(그렇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구멍 난 위기의식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종종 위험 상황에 빠지고선 '아직 괜찮다'며 충격받은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기 일쑤였다.

사사는 가끔 타냐를 볼 때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물주머니가 생각났다. 그만큼 허술하고 말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타냐에게 깊은 흉을 남겼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딘다 갠차나?”

“네?”

그래서 한 번은 물어보았다. 이번엔 타냐를 납치까지 했던 스토커가 막 잡힌 참이었다. 타냐는 어깨에 담요를 쓰고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넌 괜찮다고 대답할까?

“납치는 좀, 무서웠는데···. 사정을 들으니까 또 불쌍하더라구요.”

“?!”

“아, 물론 그렇다고 용서받을 짓을 했다는 건 아니에요.”

사사는 아직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타냐가 신기했다. 분명 충격받았을 텐데, 애써 괜찮다는 듯이, 그렇게 웃고 있었다. 그래, 괜찮다는 듯이, 이해해야 한다는 듯이···. 이것은 거의 자해와 다름없는 배려였다. 애초에 한 점의 기대도 없어야 가능하기까지 한. 하지만 당시의 사사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

“그냥, 그 사람도 제때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본 거예요. 전 이제 진짜 괜찮아요.”

추운지 입김을 흘리며 흐리게 웃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미소라, 사사는 반사적으로 손수건을 꺼냈지만 타냐는 맑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사사는 타냐가 지나치게 무감하고 위기감이 없다고만 생각했지만, 순간 틀렸나 생각했다. 아니 틀린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히 뭐가 다른 건지는···.


어느새 스푼의 여사원 일행은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타냐를 비롯한 네 명도 밥을 먹으며 다나를 지켜보았다. 위기도 절정도 없는 결말로 끝날 것 같은지, 나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딱히 야성적이거나 육감을 발휘하는 부분은 못 찾겠는걸.”

“-아앙?”

···그리고 그런 나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나는 시비가 걸렸다. 타냐는 나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비가 걸리는 다나에게 작게 감탄했다.

“불량 학생들과 시비 붙는 건 이미 숨 쉬는 것과 같은 경지에 올랐다지.”

“혜나야, 진지하게 말하니까 진짜 같잖아···.”

“이제 야성적으로 패는··· 훈육하는 모습을 지켜보자.”

“이제 육감과는 상관없지 않을까?”

나가 일행은 불량 학생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 다나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타냐는 잠시 빠져나와 계산을 했다. 어차피 서장님은 평소처럼 잘하실 테고, 늘 보던 싸움 구경이라 별로 새롭지도 않았다. 속으로 다나를 단단히 믿고 있는 타냐는 여유롭게 카드를 돌려받고 문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에 푹 젖은 다나가 얻어터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 무, 무슨 일이에요? 왜 서장님이 맞고 있,”

“타가 무를 뿌디고 디나가서 화가 나셧나바.”

“아···.”

그럼 안 되잖아! 타냐는 다나 옆에서 응원하는 여사원들을 봤지만, 큰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히히후 호흡 같은 건 놀리는 거로밖에 안 보여···. 주먹에 맞아 코피까지 터진 다나를 본 타냐는 안절부절못하다 그대로 뛰쳐나갔다.

“···니들 뭐하ㄴ, 타냐?”

“서장님, 괜찮아요?”

“···어.”

“이제 됐을 거예요. 힘내세요!”

타냐는 다나의 까진 손을 한 번 잡아주고 다시 바람같이 퇴장했다. 깃털이 앉았다가 간 듯 가벼운 접촉이었다. 그러고는 원래 제자리라는 듯 여사원들에게로 돌아갔는데, 여사원들한테서 언제 나왔느냐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그에 타냐는 미안하다며 쏙 파묻혀 버렸다. 능력은 쓰지 않았음에도 웃음소리가 낭랑했다. 다나는 잠시 헛웃음을 뱉었다.

“···야, 붙어보잔 거야 말잔 거야? 별 기생오라비 같은 게 입만 살아서 큰소리치더니, 여친 데려와서 연애질이냐? 뭐, 응원받으면 이길 것 같냐···.호옹ㅇ이!”

“고맙다.”

“네? 아뇨, 이게 제 역할인데요! 그 보다 피나셨는데, 괜찮으세요?”

너무 심각해 보여서. 여기 손수건이요. -어, 그래. 고맙다.

상황은 허무하고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서장님은 다혈질인 점이 최고 약점인 것 같아. 평생 화 한 번 내본 적이 없는 타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타냐 기준에서 다혈질이 아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냐 씨, 다나 씨?”

“아, 오수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가끔 여기서 점심 드시잖아요. 그래서 들러봤는데.”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타냐는 환히 웃으며 오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사이에 다시 일어난 불량 학생이 타냐 곁에 서 있던 다나에게 시비를 걸었지만, 오수가 입김(마약)을 한 번 부는 것으로 진정한 뒤 스푼의 사원들의 인도를 받으며 사라졌다. 서장님이랑 난 특기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라고, 타냐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게 잠시 불량 학생에게 정신이 팔린 타냐의 관심을 돌린 것은 오수가 내민 봉투였다.

“저번에 다 봤다고 들은 것 같아서, 이거 드리려고 찾았어요.”

“앗, 이거 ‘헤니투스’ 다음 권이잖아요. 대여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타냐 씨나 저나 공공 기관을 이용하는 건 좀 힘드니까요. 사실 이 책도 이호형이 사다 준 거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고, 다나는 손을 훠이훠이 내저으며 나가 일행을 돌려보냈다. 타냐 곁에도 스푼의 여사원, 의료반 소속의 레인만이 남았다. 다음에 또 연락해서 보자는 둥의 얘기를 하던 타냐는, 그제야 시간을 확인했다.

“우리 타냐쌤, 신나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오수 씨, 전 시간이 돼서요, 다음에 뵈어요. 그리고 서장님···”

“안 그래도 오수는 내가 데려다줄 거니까 너희 둘은 얼른 돌아가.”

“넵~”

짧은 시간이지만, 무척이나 즐거운 점심시간이었다. 타냐는 책 봉투를 들고 가만히 미소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레인이 그 곁을 따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스푼의 여사원들 사이에서 타냐의 연애 사정은 언제나 핫이슈였다. 나름 귀여운 막내(혜나를 제외하고)이기도 하고, 워낙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갓 입사할 때는 한창 연애 중이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봐 온 레인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타냐는 눈치를 죽 쒀버린 것이 분명하다.

“이야, 타냐쌤, 오늘도 오는 길에 커피 받았어?”

“네···. 이젠 슬슬 부담스러워서 보답이라도 준비하려구요.”

“에이,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데이트 한 번이면 되지 않을까?”

“네? 그분이 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요?”

“···”

대쉬는 실패했으며,

“앗, 데이트는 잘 다녀왔어?”

“데이트요? 저희 그냥 연극 보러 다녀온 건데···.”

“그게 데이트 아냐?”

“에이, 마틴 씨가 주변에 시간 맞는 친구가 없어서 부른 건데요. 그냥 같이 놀다 온 거죠.”

썸은 우정이 되었다.

심지어 입사 전부터 사귀고 있던 애인은 두 달 만에 나가떨어졌다.

“타냐쌤, 애인이랑 싸웠어?”

“싸운 건 아니고···. 우디가 저한테 화가 났나 봐요.”

“저런··· 뭐 하다가?”

“아니, 친구랑 여행 간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자기만 진심인 것 같다고···.”

“···혹시 그 여행 여자랑?”

“네? 어떻게 아셨어요? 소꿉친구랑 둘이 다녀온다고 하더라고요.”

맙소사···. 레인은 탄식했다. 보살인 건지, 아니면 그만큼 애인을 믿는 건진 모르겠지만 타냐의 대답이 잘못되었단 건 알겠다. 연애 기간 중의 모든 갈등 절반은 다 이런 식이었다. 타냐는 화 한 번 내지 않지만, 눈치가 없어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그런 타냐의 애인은 그걸 버티기에 너무 예민한 사람이었다.

결국, 타냐의 애인은 그 소꿉친구라는 사람과 바람이 나버리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그때도 타냐는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타냐쌤은 화도 안 나?”

“네? 왜요?”

“아니, 그놈이 먼저 바람피운 거잖아.”

“하지만···. 제 잘못도 있는걸요. 우디 입장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외로웠을 법도 하고. 물론 바람은 무례했지만 어쩔 수 없죠.”

-전 아직 좋아하는걸요. 행복하길 바라면서 보내줘야죠.

타냐는 힘없이 웃으며 술을 삼켰다. 보살인지, 포기가 빠른 건지. 그래서인지 타냐는 한 번도 다디단 사랑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고작 사랑을 준 만큼 받아오는 것도 못 하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늘 손해 보는 사랑을 해왔던 타냐의 러브스토리를 들으며, 레인은 질린 얼굴을 했다. 이걸 들은 게 자기 혼자뿐이라 다행이라 여기며. 아마 다른 여사원들도 다 함께 들었다면 그날부로 타냐의 철통방어에 들어갔을 것이다.

어쨌든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스푼의 여사원들은 타냐에게 소개팅 어때? 미팅 가볼래? 같은 권유들을 계속해보고 있었다. 타냐에게 고백해오는 스푼의 사원들은 아예 썸을 포기한다. 타냐가 썸이라고 자각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냐는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어떻게 상담을 이끌어가는지 모를 노릇이다.

그래, 타냐는 눈치는 쥐뿔도 없으면서 남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도가 텄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 자기혐오, 무기력, 우울함, 분노, 슬픔과 같은 것들을 날카롭게 캐치하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스푼에 있어서는 최적의 상담사였다.

상담사가 아닐 때에도, 고민거리들을 그렇게 잘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레인은 가끔 타냐가 사실은 다 눈치를 채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타냐는 모든 순간에 너무나도 진심이었다. 차라리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르는 거라는 게 믿길 정도로···.

뭐, 그래도 요즘은 오수 씨랑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 같던데~ 서장님도 끼어 있고. 어떻게 되려나?

레인은 상담실로 돌아와 책부터 살피는 타냐를 귀엽다는 눈길로 따스히 바라보고는 곧 시선을 돌렸다. 이제 슬슬 업무시간이었다.

-과연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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