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거 왜 나가는 거예요?
드림 전력 5회 | 맛없는 요리 | 청려선
“소감이 어때요?”
“잠깐 타임이요.”
눈동자가 바쁘게 돈다. 스튜디오 바깥에서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으나, 지금 청려의 행동에는 설명이 필요했다. 까마득한 시절의 옛날 예능인 ‘만 원의 행복’이 단위를 바꿔 다시 나온 건지, 혹은 소속사에서 되지도 않는 자체 콘텐츠를 찍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니면. 아, 나 혼자 산다? 지인을 불러 요리를 대접하는 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보겠다는 건가? 허나 되도 않는 추측이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다. 말이 관찰 예능이지, 정말로 출연자의 모든 행동을 ‘관찰’만 했다면 작가진이 머리를 싸매고 이제 더 나올 것도 없는 ‘참신한 풍경’을 고심할 일도 없었을 테다. 눈을 아무리 굴려도 카메라의 붉은 빛은 보이지 않는다.
알고 있다. 정말 방송 콘텐츠였다면 청려는 이런 기획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려와 이름 한 번 엮어보겠다고 눈을 밝히고 있는 셀럽이 수두룩하다. 청려는 이런 패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팬덤을 살짝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인물 대신에 시청자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성의’ 제작진과, 단둘이, 수제 요리를 만들어주는 장면을 굳이 전파로 내보낸다? 패를 버리는 수준이 아니라, 제 손으로 태워서 손수 양잿물을 마시겠다는 심보나 다름없다. 하긴 팬덤이 들썩거리기는 하겠다, 의미가 좀 다르겠지만. 타임, 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게 청려는 이후로 먼저 입을 벌리지 않는다.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다음 행동을 기다릴 뿐이다. 짧은 한숨, 잠깐의 고개 젖힘. 마지막으로 주위를 훑고 손을 뻗었다. 내부만 검은 사기그릇 안에 말간 …….
“…….”
이게 뭐지?
“타임 끝. 잠깐 상황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었거든요.”
“머리는 다 굴렸어요?”
“아뇨, 아직. 근데 청려 씨의 대답이 필요해서요. ……이게 뭐예요?”
요컨대, 청려의 말은 단순했다. 곧 다가올 추석, 남들보다 이르게 시간을 사는 방송가에서는 절찬리 질타받던 아이돌 육상대회 대신, 요리왕으로 루트를 틀고 녹화 날짜를 잡았다는 것. 그리고 육상대회였다면 나가지 않았을 귀하신 몸이, 요리왕에 나가게 됐다는 정도였다. 예선은 삼 일 뒤. 주제는 자유란다.
“그래도 추석 특집이니, 관련이 있는 음식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만들어 봤어요. 떡국.”
“와……. 정말 맛있겠네요.”
떡국이었구나. 말간 국물 밑에 희끄무한 게 보인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떡이었나 보다. 썩 마음에 드는 반응은 아니었는지 청려의 표정이 심드렁하다. 기다란 손가락이 손수 숟가락을 밀어준다. 심사평을 미리 들어보고 싶은 건지, 혹은 ‘조금’ 요리를 못하는, 귀여운 우리 오빠. 정도로 나아갈 타책을 같이 찾아달라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침 공복이었다. 함께 죽자는 심보로 떡국 안에 요상한 걸 넣지 않은 이상, 먹고 탈이 날 일은 없겠지. 숟가락이 은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한번, 국물을 젓다가 사기그릇의 까만 내부가 디자인이 아닌, 김가루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 이게 산재 처리가 될까, 하는 생각을 또 한번. 고사를 지내듯 시간을 끌다, 끝내 떡 하나를 숟가락 위에 올린다. 떡 아래에 고인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몸을 숙이고 입을 벌린다. 미지근하게 덥혀진 숟가락을 입안으로 기울였다. 입안에서 생생한 자연의 맛이 감돈다. 이 떡국만 있으면 여름 피서도 필요 없다. 여기가 동해안이다.
“소금 쏟았어요?”
“안 넣었는데.”
“멸치 액젓?”
“국물용 멸치가 없길래, 레시피보다 좀 많이 넣었는데.”
1T가 뭔지 아냐고 물어본다면, 이 남자는 자존심이 상할까? 숟가락에 붙은 김자반-김가루가 아니다, 김자반이었다-을 깔끔하게 긁어먹고 식탁에 내려둔다. 갑으로 모셔야 하는 연예인과 제작진의 사이에서 어떤 말로 서두를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한참동안 침묵을 고수한 결과는 청려의 목소리였다. 별론가 봐요? 묻는 낯이 말끔해서 짜증이 난다.
“간 안 봤어요?”
“관리 중이라. 탄수화물에, 국물이잖아요.”
“…… 선택지를 줄게요. 일번, 지금이라도 출연이 어렵게 되었다고 거절한다. 이번, 청려 씨 대신 다른 멤버를 보낸다. 삼번,”
“내가 나간다는 상황을 전제한다면?”
“법무팀에 연락해서 사과문 받아둬요. 음식 가지고 장난친 거 아니고, 최선을 다했다는 뉘앙스로 보일 수 있게.”
하하. 청려가 맑게 웃었다. 웃으라고 한 소리가 아닌데 저렇게 웃는다. 한 숟가락에 입맛이 뚝 떨어지는 떡국을 노려보며 심각해지는 건 도리어 이쪽이다. 쓰읍. 아직도 가시지 않는 짠맛에 입맛을 다시다 몇 번 더 떡국을 휘저었다.
“아니면 좀 …… 더 쉬운 음식을 하시던지. 애초에, 왜 떡국이에요?”
“말했잖아요. 추석이라서 고른 거예요.”
“그러니까요, 떡국은 설날 아닌가?”
서로 침묵을 지킬 시간이 많았음에도, 오늘 하루 가장 조용한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콩이조차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숟가락을 버리고 옆에 뒤집어두었던 핸드폰을 집었다. [쉬운 추석 음식] [명절 음식] [쉬운 전 요리] 짧은 검색어를 몇 개 누르고, 스크롤을 내렸다. 자, 우리 동그랑땡을 해봅시다. 청려가 순순하게 앞치마를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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