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

[아스타브] 幻想

오둘님 리퀘

망상기관차 by 큐리
26
0
0

*오둘님 리퀘

*승천 아스 x 스텔라(타브)

*오타 감안해주세요.


"...그런 하느니만 못한 보고를 들으려고,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선물해준 줄 알아?"


자르 저택 내부를 관통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린다. 하이 홀의 평범한 귀족 가문보다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집무실은 주인의 욕구를 반영하듯 도시 내부에서도 구하기 힘든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값비싼 목재로 만들어진 책상을 강하게 내려친 남자는 손에 잡히는 잉크병을 던져버린다. -쨍그랑 그 소리에 주변에 대기한 사용인들의 눈동자에 익숙한 공포감이 드리운다. 사용인, 정확히는 뱀파이어 스폰인 그들은 끝없는 삶이라는 허황된 꿈을 손에 넣기 위해 이곳에 흘러들어 왔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이 삶을 선택했다는 거지. 나를 섬기겠다고. 스스로 본인의 운명을 내던진 것 아닌가? 그런 놈들을 잘 써먹어주겠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야? 남자는 자신의 잔뜩 찡그린 인상을 필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귀족의 탈을 쓰는 것도 그럴 값어치가 있는 놈들에게나 통하는 것 아니겠나? 그의 눈치를 보던 스폰 중 하나가 그에게 손수건을 내민다. 그러자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든 남자는 손에 묻은 잉크를 닦아내고는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의자가 움직이는 와중에도 끼익하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남자는 집무실 중앙에 걸려있는 초상화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자신에게 보고를 올린 스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주인은 지금 자리에 있나?"


"..."


"뭐, 당연히 그렇겠지."


남자가 가볍게 손짓하자 스폰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 몇은 집무실을 정리하고 몇 명은 그의 옷매무새를 만져준다. 하지만, 그를 따라 문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없다. 스폰들에게 자르 가문의 안주인은 너무나 어려운 존재였다. 첫 번째로 감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도는 것을 주인께서 싫어하셨고, 두 번째론 그가 스폰들을 불편해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발더스 게이트의 새로운 뱀파이어 로드께서 원하는 것은 전부 해주겠다며 매달리는데-적어도 스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리라-어째서 거부하는 것인지. 그들은 저택의 안주인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옷에 묻은 잉크병의 유리 조각을 털어낸 스폰이 집무실 이곳 저곳을 장식한 그림을 바라본다. 그래도 스폰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면, 그는 그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것이었다. 한 때, 도시에서 유명했던 자나스 가의 화가보다도 더.



**



자르 저택의 주인에게는 안타깝게도 현재 스텔라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와 영원을 약속한 이후로 이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스텔라는 웬만해선 자신의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저택 안에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답을 알지 못했다. 물론 알려는 노력이 충분했는지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해봤자, 쓸데없이 입만 아프지. 아무튼 스텔라는 작업실을 빠져나와서 지금 저택의 지붕 위에 올라와있었다. 소드 코스트의 하늘을 가득 채운 저 달과 같이,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과 그 눈동자는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띄었지만. 그나마 한 밤 중을 선택한 것이 스텔라의 마지막 친절이었다. 백에 가까운 머리칼과 작업할 때 착용하는 가벼운 원피스는 알록달록한 염료로 본연의 색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그의 오른손엔 지금도 붓이 들려있다. 구하기 힘들다는 진주 가루가 섞인 흰색 염료가 붓에 가득 머금어져, 바닥을 적실 정도로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스텔라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신다. 지금 자신의 작업실은 엉망 그 자체였다. 만약 저택의 주인이 본다면 분노에 찬 고성이 건물 전체를 울리리라. 그는 높이 솟아있는 달을 바라본다. 아직 완전한 구체는 아니었지만 그 옅은 빛에도 스텔라는 해방감을 느꼈다. 무책임한 짓거리를 했다는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옛적에 루멘에서 그의 꿈을 짓밟았던 것에 한을 풀기라도 하듯 정신없이 그림에만 몰두했다. 아니, 사실 그렇지 않으면 숨 쉬는 것 조차 힘이 부쳤다. 탐욕스럽게 저택을 채운 스폰들을 마주하기만 해도 몰려드는 답답한 감정에, 자신을 가둬놓지 않으면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다. 이제는 자르 저택의 주인이 된 연인을 바라보는 것은 더 곤욕스러웠다. 사랑의 잔재가 남아있어 더 그러했겠지. 뜨겁고 미지근한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얼굴에 묻은 염료 때문에 바닥에 떨궈진 눈물은 색을 담고 있다. 아주 지독하게 검은 색이었다. 모든 색이 섞이면 결국 까만 구정물이 되버리는 것처럼. 그가 선물한 새로운 삶은 스텔라의 심장을 재만 남도록 태워버린 것 같았다.


"-!"


아, 드디어 발견했나보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배에 있는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웃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강한 감정일 줄은 몰랐는데. 타샤의 끔찍한 웃음에 걸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스폰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부러 멀리한 보람이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방 전체를 염료로 도배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으니까. -물론 재미도 있었고- 저택의 주인은 자신의 위치를 금방 알아챌 것이다. 전부 예상한 일이었다. 그는 붓을 들고 쭈그려 앉아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을 그린다. 언젠가 둘이 같이 보았던 그림자 저주를 받은 땅의 하늘을 떠올린다. 그리고 서툴게 사랑을 고백하던 남자를 추억한다.


얼마나 그렸을까,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귀에 익은 고함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떼를 부리는 어린아이와 같다. 그는 고개를 들고 저택의 주인을 쳐다본다. 남자는 화가 나는 것을 넘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염료가 덕지덕지 묻은 모습을 멀거니 바라본 붉은 눈동자가 그의 것과 마주한다. 스텔라가 왼손에 쥐고 있던 염료통을 들어올린다. 저택의 주인이 그것을 따라 쫓아간다. 언뜻 본 그의 입술은 무언갈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스텔라는 염료통을 부러 놓친다. 바닥과 인사한 그것이 터지듯 사방에 하이얀 빛이 범람한다. 남자의 입꼬리가 일그러지고 여자의 뺨에선 물방울이 떨어진다.


저택의 안주인은 다시 한 번 숨을 들이 마셨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작품
#bg3
추가태그
#드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