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
라하브레아의 불만
라하브레아 × 빛의 전사(중원 휴런 여성) 드림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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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하브레아의 소감은 그것이었다. 베르니체가 뭍에서의 삶을 위해 떠날 때, 충동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녀를 따라나선 그는 노르브란트를 가득 채운 ‘빛’이 아닌 베르니체의 행동과 언동이 심히 거슬렸다.
빛이 잘 들지 않는 그림자 속에 앉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중간중간 자신을 보며 슬쩍 미소지어주는 이에게 가면으로 가려진 눈은 그대로 둔 채, 입꼬리만 올려 웃어주었다.
자신을 보며, 에메트셀크와 엘리디부스, 휘틀로다이우스를 보며 웃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미소. 그가 보지 못하는 면이라 불만족스럽냐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부정할 수 있었다.
‘정말로 신도화가 진행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인가…….’
어떻게 인간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인가. 웃고 있으나 그 속은 텅 비어있다. 어둠의 전사를 알아보지 못한 무뢰한들이 건네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말에도 눈살을 찌푸리긴커녕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녀가 자리를 이동할 때 뒤따르며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답일 뿐이다.
“모두가 저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것도, 예의를 갖출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거든요.”
“사람 간 예의를 지키는 것은 지성을 지킨 자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다. 하물며 적이라도 말이지.”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요.”
“그렇다 하여 네가 수모를 겪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으냐.”
“그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어질 무례들이 아닌걸요. 여기서 쉬었다가 갈까요?”
여기는 마물이 접근 못 하거든요. 라며 그림자 아래에 앉는 빛과 어둠의 전사를 내려다보던 라하브레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감각한 것인지,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무뎌진 것인지. 어둠의 존재를 피해간 바람이 푸른 머리카락을 만지고 지나갔다.
“이 세계는 더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아. 네가 영웅이란 틀에 너를 억지로 끼워 맞출 이유도 없다.”
“영웅이 필요하지 않다 해도 영웅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 그 기대에 응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어떤 안 좋은 감정을 가져다줄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제가 그 틀에 저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모험가의 모험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이것도 제 작은 모험들 중 하나예요, 라하브레아. 모험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맞닥뜨리며 그 끝에 얻는 즐거움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나름 버틸만 하다고 대답한 베르니체가 가방에서 빵을 꺼내 반으로 나누어 라하브레아에게 건넸다. 마치 솜을 뜯어내듯 뜯겨진 빵이 라하브레아에게는 그저 빵을 나누어주는 행동이 아니라 그녀에게서 자신을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혹은 그녀를 온전히 그에게 줄 수 없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영웅으로 불리는 자신을 그가 쥐고 있겠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삐 움직여야 할 영웅께서 식량을 나누면 쓰겠는가. 나는 굳이 먹을 필요도 없거니와 아직 세상에 남은 빛 에테르가 심히 거슬리는군. 이만 돌아가 볼 테니, 밤에 보자꾸나.”
“벌써요?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모르는 척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무룩해진 연인을 보던 이는 머리를 쓰다듬고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이다가 어둠 속에 몸을 떨어뜨렸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나면 귀가 먹먹할 만큼 고요한 심해에 있는 그의 안식처가 그를 받아냈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떨어뜨린 라하브레아는 잠깐동안 베르니체가 그날 보였던 표정들을 떠올렸다.
텅 비고 공허하지만 자애로운 미소. 마치 그것은 만들어진 인형과도 같았다. 아주 실력이 뛰어난 인형사가 줄을 잡고 있는 인형. 그렇다면 그 줄을 끊어버리면 인간성을 되찾을까 싶지만, 그 줄끝은 인형의 손에 달려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수를 써야 그 인형을 인형이 아닌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녀를 이 심해에 가두어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빛을, 바람을 병에 가둔다고 그것이 병 안에 남던가. 더군다나 이미 일찍이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모로트 시민으로서의 태도를 갖추라고 몇 번이고 가르친 이도 있었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이제 라하브레아에게는 어떤 수를 써도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붙잡고 있을 만한 열정이 없었다. 그의 불꽃은 사그라들었으며, 바다 밑에서 조용히 어떤 이의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죽은 자에게 그것은 너무나 어렵고 거대하며, 주어진 시간 내에 풀 수 없는 과제였다.
그는 팔로 눈을 가려 눈앞에 어렴풋한 불쾌감을 가져오는 그 표정들을 눈앞에서 치웠다.
오늘은 어떤 빛도, 어떤 어둠도 그 불쾌감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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