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

23:30

청명 드림_침상1

Key by 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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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우리 집 침대 위로 동양 무협풍 남자가 떨어진 것에 대하여

  • 청명 네임리스 드림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애초에 이유를 찾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어정쩡한 자세로 틀어 잡힌 몸이 슬슬 불편하고, 어깨는 아까부터 눈물로 축축이 젖어있다. 어제 꺼낸 잠옷인데⋯. 

그의 쪽을 슬쩍 곁눈질했다. 당분간 진정할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날 건덕지라도 있었는지 고민하기 위해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조금 늦잠을 자긴 했지만 무사히 시간 내에 출근했고, 늘 만나는 동료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제 자리에서 일을 했다. 퇴근 시간이 되어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따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고 해보았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하나 산 것 정도? 다만 이것은 평소와 다른 점일 뿐이지 특별한 일은 되지 않는다. 맥주를 사서 이상한 일이 생긴 거라면 내 삶은 이미 독특하고 이상한 일들로 넘쳐났어야 했다.

어쨋든. 일주일 만에 맞이하는 금요일 밤이었고, 내일이 휴일이라는 들뜬 마음으로 무사히 맥주 한 캔을 비웠으며, 내일은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겠다는 마음으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침대에 반쯤 몸을 묻었을 때. 허공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허공에서. 사람이. 내 침대 위로. 

급히 몸을 끌어올려 침대 헤드 쪽에 몸을 붙여 앉았다. 놀라 커진 눈과 얼굴을 수습할 생각도 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정신을 차린 남자가 저와 똑같이 놀란 눈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본 그의 눈동자가 더 커지고, 그의 입에서 낯선 호칭이 튀어나왔다.

"⋯부인?"

뭐요?

"네?"

남자가 덜덜 떨리는 손을 뻗는다. 벽에 딱 붙은 머리에 물러날 곳도 없이 손이 다가오는걸 보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내 볼을 톡, 건드리더니 볼을 감싸 엄지로 쓸어보았다. 낯선 손길에 목이 저절로 움츠러든다. 나의 반응을 본 남자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듯 일그러졌다.


그리고, 무어라 반응할 새 없이 끌려갔다. 나를 잡아 끌어당긴 그는 제 품에 나를 가두고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잠시 굳은 내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를 아무리 밀어내해도, 얼마나 힘이 강한 건지 전혀 물러나질 않았다. 심지어 몸은 왜 이리 단단한지. 겨우 팔을 들어 몸을 몇 대 때려보아도 오히려 내 손이 아파왔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고민하고 있으니, 귓가에 울음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듣는 내가 안쓰럽다고 느낄 정도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속에서 감정이 끌어오르는 듯 꺽꺽거리는 소리는 덤이었다. 곁눈질로 그를 슬쩍 보았다. 말을 걸어도 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다. 힘으로 밀어내는건 불가능했다.

"⋯."

에휴. 

몸에 힘을 풀었다. 초능력자인지 외계인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를 보고 이렇게 서럽게 우는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려 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놓아달라 하는 편이 낫겠지. 

그래도 20분이 넘게 지나도록 이런 상태인 건 좀 곤란한데. 울음이 조금 잦아들려다가도 다시 커지고, 진정하는 것을 보고 말을 거니 다시 울기 시작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래. 사람이 서러우면 20분은 물론이고 몇 시간은 넘게 울 수도 있지. 그렇지만 끌어당겨지며 이상하게 접힌 다리며 앞으로 꺾인 허리가 슬슬 통증을 호소하고, 축축이 젖은 지 오래인 어깨도 찝찝해서 빨리 갈아입고 싶었다. 오늘 종일 일하고 퇴근한 몸뚱이가 피곤해 슬슬 자고 싶기도 했다.

다시 울음소리가 잦아든 틈을 타 말을 걸었다. 

"저기⋯."

그가 다시 끅끅거리기 시작했다. 또 울면 안 돼!

"그만! 그만 울어요. 진정해야 대화를 하죠!"

팔을 그의 등 뒤로 뻗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무슨 사람이 이리 돌덩이 같아? 조금 떨어지라는 의미였는데 꿈쩍도 안 한다니. 내 힘이 약한 탓도 있겠지만 이건 절대로 이 사람의 힘이 과하게 센 것이다. 

나에게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나의 간절한 외침이 닿은 것인지 남자가 팔에 힘을 풀었다. 아주 느릿하게. 어지간히 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겨우 자유로워진 팔로 남자를 마저 밀어냈다. 

울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은 조금 불쌍해 보였으나, 집에 갑자기 나타난 모르는 남자가 끌어안아 곤란한 건 나였다. 내가 나쁜 게 아니라고. 몸이 완전히 떨어지자 빠르게 벽에 붙었다.

"저기, 누구세요?"

남자가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왜? 우리 모르는 사이 맞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나는 사람 모른다고 난.

"부인, 정녕 나를 모르겠소?"

"아까부터 부인이라고 부르시는데, 저는 결혼 안 했거든요. 맹세코 일평생 결혼 한 적 없어요. 대체 누구시길래 그러세요?"

"나는⋯."

무어라 말하려던 그가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을 참는 듯 눈을 꾹 감고 숨을 몇 번 쉰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청명이오."

"네, 청명씨. 저는 이름을 들어도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거든요. 아무래도 집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아요." 

"⋯잘못 찾아오다니?"

"지금 저희 집 제 침대 위로 떨어지셨거든요? 아무래도 착륙 지점을 잘못 고르신 것 같아서요. 거기에 사람도 착각하신 것 같은데. 부인분이 알면 화내시지 않을까요?"

나는 이미 그를 인외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말을 걸고 있었다. 부인이라고 했으니 아내분⋯을 찾는 거겠지. 보통 아내를 부인이라고는 잘 안 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옷이나 말투도 약간 사극, 동양풍? 옛날 사람 같은데. 요즘 외계인들은 약간 동양풍인 걸까.

"그게 무슨,"

주위를 둘러보던 그가 눈을 크게 떨었다. 

"여기가 어디⋯."

본인이 오셨는데 모르면 어떻게 해요.

"저희 집인데요. 청명씨가 오신 거잖아요."

"모르는 곳인데⋯."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썩 혼란스러워 보이는 그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자니, 그가 갑자기 제 손을 들어 스스로의 뺨을 내리쳤다. 

"뭐 하는 거예요!"

"왜 아프지⋯?"

내려쳤으니까 아프겠지! 척 봐도 근육으로만 되어있는 그 팔로 내리쳤으니까! 내가 왜 우리 집에 무단침입한 사람을 돌봐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람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남자가 방금 내리친 볼은 이미 붉어져 더 안쓰러워 보여 더 신경쓰였다.

"기다려봐요."

정신없는 것 같았는데 언제 다가온 건지. 사람 하나는 들어갈 수 있던 거리가 어느새 무릎이 닿을만큼 좁아져있었다. 눈앞에 있는 그를 밀어내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얼음찜질이라도 시켜야지 안되겠다. 냉장고로 향하려는데 팔이 뒤쪽으로 움직인다. 돌아보니 그가 내 소매를 당기고 있다. 정말 당황스럽다. 아까는 서럽게 울고, 이번에는 냉장고도 못 가게 잡고. 표정은 또 왜 저래⋯. 소매를 잡은 손을 떨어뜨리면 다시 울 기세다.

"금방 올게요."

"⋯."

"정말. 진짜."

소매에서 스르륵 손이 떨어진다. 문득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12시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 자기는 글렀군. 절로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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