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아카

[타키아카]최강의 정의

『최강의 우마무스메』는 무엇인지 묻고 대답하는 이야기

* 해당 글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캐릭터 '아그네스 타키온'와 2차 창작 드림주 캐릭터인 '모로보시 아카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드림에 대해 잘 모르거나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 혹은 '아그네스 타키온' 트레이너 드림 연성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해당 글을 읽는 걸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해당 글에는 원작에 대한 스포일러와 개변한 서사가 존재합니다. 원작을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으며, 원작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공백 미포함 4,128자


"아카네군이 생각하는 『최강의 우마무스메』는 무엇인가?"

꿀꺽. 약물이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났다. 사레가 안 들린 게 천만다행이었다. 입에 댔던 플라스크를 타키온에게 돌려주었다. 실험일까, 사담일까. 당황한 나머지 약물이 입가로 약간 새서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며 물었다.

"꽤나 갑작스럽네. 어떤 대답이 듣고 싶은 거야?"

"무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말해주게. 최근 『최강』의 개념이 꽤 다양하다는 걸 새삼 체감해서 말이지."

"아아. 최근 최강이라는 말 자주 들려오긴 하지. 포켓도 그렇고, '트윙클 스타 클라이맥스' 발표도 있었고."

사담이었구나. 조금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이번 약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몇 분이 걸린다고 했으니 예열이 필요하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습관대로 뉴스 페이지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트윙클 스타 클라이맥스' 관련으로 가득했다. 한껏 들뜬 표정의 오토나시 기자님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를 반겼다.

트레센 학원이나 레이스 관련 단체가 아닌 언론사가 주도하는 대회, 통칭 클라이맥스. 미디어 측은 『최강』의 우마무스메를 『가장 안정적으로 강한 우마무스메』라고 정의하겠다며 리그전 레이스를 개최했다. 미디어가 주도하여 많은 주목을 이끌고 그만큼 외부 환경에 대한 영향, 레이스의 변화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우리도 처음엔 흥미가 있었다. 다만, 레이스에 다수 참가해야 하는 만큼 연구 시간과 육체에 무리가 필연적으로 뒤따라서 포기한 대회였다. 다수의 언론사가 참여하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얻을 수 있는 자료가 많기도 했고. 당장 지금도 참여 의사를 밝힌 이들의 인터뷰가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실시간 SNS도 아니고 뉴스를 따라잡기 힘든 건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와서 이런 걸 묻다니 미련이라도 있는 걸까. 금방 끓어 어느새 꺼진 전기포트를 들고 찻주전자, 찻잔 2잔에 어느 정도 뜨거운 물을 부었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 너머로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의중을 알 순 없었다. 반달처럼 접힌 눈과 호선을 그리는 입은 언제나처럼 같았다.

"그래서 자네 의견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더군. 아카네 군은 모르모트나 트레이너뿐만 아니라 나의 조수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자네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 재미있는 발상을 가져다줄 때도 있으니."

"음, 역시 '최고 속도가 제일 높은 우마무스메'일까."

"뭐야, 생각보다도 더 뻔한 답변이 왔군."

"뻔해서 미안하네."

눈썹을 찌푸리며 책상 서랍을 열었다. 덜컥 소리가 크게 나며 그 안에 것들도 같이 흔들리며 쓰러졌다. 볼펜, 가위 같은 게 아니라 찻잎만 있다 보니 요란스럽지는 않았다. 주섬주섬 정리하며 제일 앞에 있던 걸 들어 보이자 타키온은 고개를 짧게 저었다. 좋은 찻잎이 들어와서 얼른 마셔보고 싶다더니. 하여간 타키온의 말은 그대로 들으면 안 된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끌리는 대로 다즐링을 꺼내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게 있을 때엔 그냥 말해주면 안 되는 걸까. 찻잎을 올려놓고, 차 우릴 물을 다시 전기포트에 올렸다.

"흐음. 좋아. 이 경우에는 답변 자체보다는 그 이유가 더 중요하겠지. 한 번 말해보게."

"우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더니 풀이 과정도 묻는 문제였어…"

찻주전자와 찻잔에 있던 뜨거운 물을 천천히 버리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티스푼은 잠시 컵 받침에 기대어 놓고, 각설탕 통을 그 옆에 두었다. 절반 정도 남아있지만 단 한 잔에 천천히 녹아 모두 사라져 버릴 테지. 각설탕 통을 검지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잠시 말을 정리했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레이스 종류란 참 많지?"

"그렇지."

"잔디와 더트. 단거리, 마일, 중거리, 장거리. 중앙, 지방, 프리 스타일… 거기다 매일 바뀌는 날씨에 참가자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지."

그 순간 전기포트가 탁 꺼지며 물이 다 끓었음을 알렸다. 조금 식도록 입구만 열어두고 찻주전자에 찻잎을 딱 덜어냈다. 그 위로 물을 천천히 부어내자 향이 먼저 코를 간질이고 붉은 물이 시야에 올라왔다.

"같은 레이스란 이 세상에 없어. 오직 그 순간뿐이야."

뚜껑을 덮고 바로 타이머를 맞췄다. 3분. 어딘가에는 희비가 이미 엇갈리고도 남을 시간. 초조하게 줄어드는 시간을 바라보다가 타키온 쪽으로 몸을 돌렸다. 타키온은 다리를 꼰 채 한 쪽 다리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그 끝에 걸친 신발이 초침처럼 까딱였다.

"그렇다면 그 한순간에 얼마나 높은 고점을 찍는가.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물론 기왕 하는 거 1착 하는 게 좋지만."

"흐음~ 아무래도 내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긴 하다만… 나쁘지 않아! 마침 오늘 시험도 자네가 말한 최고 속도 관련이니 성심성의껏 임하도록."

"네, 네. 이따가 열심히 할게."

찻잔과 각설탕 통을 먼저 타키온 옆에 두니 타키온은 즐거운 표정으로 각설탕을 가득 쌓기 시작했다. 하나, 둘… 수를 세어 보려다가 모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나저나 우마무스메 팬들이 들으면 밤낮없이 토론할 거리를 정말 가볍게 묻는구나."

"그런가?"

"인터넷에선 툭하면 나오면 얘기거든. 거기서 미디어 측이 클라이맥스를 개막하며 아예 그들의 의견을 선전하니까 덕분에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말이 오가고 있어. 하물며 너도 물을 정도잖아."

때마침 타이머가 울렸다. 거름망을 치우고 타키온 잔부터 채우니 각설탕이 살근살근 녹아간다. 높이가 낮아질 때마다 각설탕이 더 추가되는 건 눈을 질끈 감으며 무시했다. 내 잔을 마저 채우고 천천히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 이번 약은 어쩐지 비릿했어서 차향이 입안에 감도니 한결 낫다. 따뜻한 게 들어가니 속이 편안해진다. 차가 넘실거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레이스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금물. 그렇다곤 하지만 자꾸 상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특히 보기만 하는 사람 입장에선 '만약 '이란 것에 거슬릴 것도 없고. 새로운 자극을 바란다면 나보단 그쪽이 더 나을 거야."

"흐음. 세간의 의견은 아무래도 좋다만… 참고는 되려나. 대세 의견은 무엇이지?"

"글쎄… 너무 의견이 분분해서 하나로 좁히긴 힘드네. 일단 내가 말한 '최고 속도가 제일 높은 우마무스메'는 생각보다 주류 의견은 아닐 거야. 그래봤자 골문을 제일 먼저 넘지 못한다면 진 거라는 반박이 들어올 테니까. 보통 최강이라고 한다면 어느 레이스에서, 누구와 대결했을 때 1착 했느냐를 따지는 편이지."

"나로서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의견이로군."

"나도 그래. 아무튼 그만큼 의견이 다양하다는 거지. 정 흥미가 있으면 내 주변 사람들 의견이라도 모아다 줄까? 어려운 건 아니니까."

아. 홍차를 한 모금 더 먹으려다가 탄식과 함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아니다. 내 주변은 거의 트레이너니까… 결과가 상당히 편향되겠네."

"흠. 트레이너들도 각자 지향점은 다를 거라 생각하는데 말이지. 당장 눈앞에 있는 자네도 그렇고. 예상되는 답변이라도 있나?"

"트레이너로서 모범적인 답변은 역시 『본인의 담당 우마무스메』지."

툭 대답하면서 찻잔을 살며시 기울였다. 수면 위로 내 얼굴이 비치려다 파문과 함께 사라졌다.

"레이스 성적이 어떠하든, 기록이 어떠하든 상관없어. 트레이너라면 자신의 담당 우마무스메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스카우트와 트레이닝을 하니까."

"흐음.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인가?"

홍차에서 시선을 떼고 붉은 시선을 마주했다. 입꼬리는 분명 올라가 있다. 그런데도 어쩐지 미소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른하게 반쯤 감긴 눈은 오롯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언의 압박이 느껴져 입이 저절로 열렸다.

"너…"

대답하려다 말고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태도는 고압적이지만 그 내용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거에 순순히 어울려줄 정도의 어른은 또 못 되어 일부러 눈썹을 찌푸리고 볼멘소리를 냈다.

"가장 빠른 우마무스메가 이긴다는 사츠키상을 무패로 달성한 데다 라스트 1펄롱 10초 8을 기록을 달성했으면서 그런 걸 물어? 이걸 두고 약하다고 하면 남들은 그걸 기만이라고 해."

"그런 뜻으로 물은 게 아니지 않나! 기회를 줄 테니 다시 답변해 보게."

"…혹시 처음부터 듣고 싶은 대답이 그런 거였어?"

"다 큰 어른이 그런 거 따지지 말게나! 자, 빠~알~리! 빠~알~리!"

기가 차서 헛숨을 뱉었다. 타키온이 서툴게 어리광을 부리는 건 종종 있던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대답을 촉구하는 건 또 처음이다.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나? 달그락. 우선 들고 있던 찻잔부터 손에서 놓았다. 타키온이 이럴 때마다 나도 참 유치하지만 맞받아치듯 투덜거리곤 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살짝 틀자 타키온은 손뼉까지 치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린애랑 이러는 꼴이 새삼 우스웠다. 그래, 내가 져주자. 거기다 애가 칭찬 좀 듣고 싶다는데 해줘야지. 잠시 허공을 보다가 몸을 살짝 숙여 타키온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타키온이 순간적으로 웃음을 멈추었다.

"나에게 있어 최강의 우마무스메는 아그네스 타키온, 너라고 생각해."

목소리는 생각보다 진중하게 잘 나왔다. 여기까진 좋았으나 문장을 끝맺자마자 부끄러움이 등골을 타고 목까지 올라온다. 얼굴까지 붉어지진 않았겠지? 홱 돌아서려다 시야에 잡히는 것을 다급히 붙잡았다. 원래 붉은 색이었던 머리가 어느새인가 하늘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황당하게 벌어진 입에서 부루퉁한 목소리가 흘렀다.

"그러니까 이상한 약 먹고 이렇게 머리색이 변해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있지!"

"하하하! 그것도 그렇군. 그보다 하늘색 자네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만."

"말은 고맙지만 어울린다, 뭐다 문제가 아니잖아!"

머리카락을 내던지듯이 놓아버리자 타키온이 그걸 잡아내었다. 그저 사과가 떨어지는 곳에 손을 댄 것처럼. 타키온은 내 머리카락을 잠시 얼굴 가까이 갖다 대고 한 번 싱긋 웃었다. 색이라도 살피려는 건가. 순간 저기에 입이라도 맞추는 줄 알았네.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심장을 지그시 눌렀다. 흰 손가락 사이사이로 머리카락이 흩어지더니 타키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색이 끝까지 바뀐 걸 보아하니 슬슬 약효가 나오겠군. 자! 이제 실험이다!"

"혹시 머리색 변하는 거 단순 부작용이 아니라 확인용이었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게. 아까 말했듯이 오늘 시험은 최고 속도 관련, 정확히는 최고 속도 상승 및 그 도달 시점 단축이 목표일세. 스타트 후 직선 구간의 주파 기록을 재볼 거니 모쪼록 전력으로 뛰게나."

"알겠어."

"나는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도록 하지!"

"창문으로 나가지 좀 말라니까!"

내 잔소리에도 타키온은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창문을 넘어 달아났다. 신나게 펄럭이는 흰 가운 자락을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타키온의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 쓰다간 내가 제명에 못 죽을 것 같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곤 묶은 머리를 한 번 더 조였다. 나도 얼른 가자. 한편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운동화에 발을 끼워 넣고는 문밖으로 향했다. 기분 탓인지 약효 덕분인지,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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