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빙]수용성 익애 주의보
뱀의 입맞춤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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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수인✕고양이 수인 AU 설정
습한 공기가 비늘에 엉기는 감각이 선연했다. 단테는 고개를 들어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넓게 드리운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빗방울을 쏟아낼 것처럼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단테를 찾아오는 손님 중에서는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직업이 장의사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꼭 오늘처럼 흐린 날 식을 진행할 때면 우울의 원인을 괜스레 날씨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흔했으므로. 정작 그들을 상대하는 입장에 선 단테는 비 오는 날에 아무런 유감도 없었지만. 다만 최근 만난 한 고양이의 말이 기억에 남아서, 괜스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신한테서는 항상 비 냄새가 나.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은 어딜 가든 꼭 제게 안긴 것만 같아 좋다고. 그런 말을 하며 샐쭉 웃던 고양이는 사실상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불쑥 찾아와서는 자신의 식을 부탁하고 싶다며 세상 물정 모르는 얼굴로 꼬리를 살랑대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뱀을 향한 멸시의 눈총을 피하듯 단테의 거처는 차라리 미로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숲속에 있었는데, 그 고양이에게서는 어째서인지 길을 헤맨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꼭 그렇게 이야기했다. 비 냄새를 따라왔다, 라고. 파충류 특유의 비린내를 비 냄새라고 일컫는 얼빠진 녀석은 또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커져 갔다.
고양이 수인, 히마와리는 제 장례식을 부탁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근시일 내에 죽을 계획은 없다고도 했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누군가가 목숨을 노리는 것도 아닌 데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조차 없었다. 죽지도 않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라는 말인가? 그것도 눈앞에서 멀쩡히 히히덕거리는 사람의 장례를? 단테가 미간을 구기며 설명하라는 듯 노려봐도 히마와리는 주눅 드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마냥 태연한 표정으로 “해줄 거지?” 하며 슬쩍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날 단테는 히마와리를 내쫓지 않았다. 다만 거처의 일부를 내어주고 함께 생활하는 쪽을 택했다. 내쫓는다 한들 금방 돌아와 같은 의뢰를 반복하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을뿐더러, 순수하게 알고 싶었다. 자기 자신의 식을 부탁하는 말 속의 진의에 대하여.
그렇게 몇 달, 단테가 알아낸 것이라곤 히마와리가 제 생각 이상으로 얼빠진 고양이라는 점과, 그녀 자신의 속을 감추는 데에 영 소질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니까 히마와리는, 하잘것없는 구석에서는 제 속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주제에 장례를 의뢰한 이유 따위의 중요한 일에서만큼은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감추려는 본능과도 닮아 있어서, 단테는 히마와리가 그간 의지할 수 있는 존재 하나 없이 외로이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타인의 손을 탄 적이 없어서인지 히마와리는 함께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단테의 손에도 쉬이 길드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타인에게 곁을 공유하는 게 익숙지 않은 것은 불온한 존재라며 기피의 대상으로서 손가락질받아 왔던 뱀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단테 역시 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또 깊게 히마와리를 제 일상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늘이 흐리다는 이유로 히마와리의 행방을 헤아리는 지금처럼.
집안은 조용했다. 히마와리는 종종 기척을 죽이는 게 익숙한 것처럼 행동하곤 했으니 드문 일은 아니었다. 밖에 나간 줄 알았더니 소리 없이 침대 위에서 자고 있거나, 안에 있는 줄 알았더니 창밖에서 풀꽃을 꺾어 들고 히히덕거리는 일이 빈번하지 않던가. 단테는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히마와리.” 크지 않되 분명한 음성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
그러나, 여전히 조용했다. 깊게 잠든 탓에 듣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헤드셋을 쓰고 노래를 듣다 잠들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여기며 단테는 몸을 일으켰다. 침실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닫으려다 만 것 같은 문틈 사이로 침대 모서리가 얼핏 보였다. 그 위에 누군가가 누웠는지는 보이지 않아, 단테는 괜히 손잡이를 힘주어 쥐고 문을 활짝 열었다. 침대 위에는 널브러진 이불과 베개뿐. 거실에 단정하게 정돈된 단테의 침구와는 대조적이었다. 별나지 않은 풍경임에도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그는 망연히 그 공백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에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툭, 투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사선을 남기고 스쳐 간다.
……기어이 비가 오고 있었다…….
단테는 텅 빈 침실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급한 걸음을 옮겨 현관으로 향했다. 단테에게는 신발을 수집하는 취미가 없었다. 또한 이곳은 그 혼자만의 거처였으므로, 현관에 놓인 신발은 기껏해야 서너 켤레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히마와리가 들이닥친 이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신발 한 켤레가 늘었더랬다. 그 어떤 짐도 없이 빈 몸으로 온 고양이의 몇 안 되는 흔적.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달구경을 하겠다며 밤늦게 나갔다 돌아온 만큼 신발코가 현관문을 등진 채 놓여 있어야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시선은 자연스레 그 옆의 우산꽂이로 기울었다. 우산의 개수는 셋. 그가 기억하는 숫자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음이 틀림없었다.
단테는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듯 검은색 장우산을 하나 집어 들고 현관문을 부수듯 열어젖혔다. 빗줄기가 생각보다 거셌다. 이런 날씨에 우산도 없이 어딜 간 건지. 당최 어디부터 찾아봐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단테는 입술을 짓씹었다. 생각해 보면 히마와리는 돌연 사라졌다가 홀연히 나타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단테는 그녀의 외출에 궁금증을 표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다 돌아오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제게 의뢰한 바가 있는 이상, 히마와리는 분명 제게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혼자만의 믿음일 뿐이었다. 한 번이라도 히마와리 본인이 그렇노라고 응한 적이 있던가, 자신은 한 번이라도 물은 적이 있던가. 어째서인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둠을 머금고 차갑게 가라앉은 숲속 너머를 바라보면서, 단테는 문득 첫 만남 때 히마와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고양이는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모습을 감춘다고 하잖아?’
당시에는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죽을 생각도 없는 주제에 죽을 날을 받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꼴이 우스워서. 그러나 그날의 웃음 섞인 목소리를 곱씹을수록, 단테의 머릿속에는 히마와리가 또다시 자신을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장례’를 치러줄 사람을 찾아서 떠났는가. 처음 제 영역을 침범했을 때처럼 예고 하나 없이, 감히 이런 방식으로? 짓씹은 입술 아래에서 으득, 이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나 장례를 바랐거든 네가 네 입으로 털어놨어야지. 아니면, 내가 기어코 너를 끝맺어야 했나? 그런 의미의 ‘장례’를 바랐나? 무수한 의문이 빗방울과 함께 내렸다가 사그라든다. 그 모든 것에 답할 인물은 단테의 눈앞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저 무상할 뿐이었다.
빗소리가 이어진다. 종아리까지 닿아오는 척척한 감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히마와리의 흔적을 찾아 서성이던 단테는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떠날 생각이었다면 적어도 볕이 밝은 날을 고를 것이지. 갈 곳 잃은 원망과 일말의 후회가 손끝에 감돌 즈음이었다.
“……에취!”
빗소리에 비하면 턱없이 가늘고 애처로운 소리가 귓바퀴에 감겨든다. 단 둘뿐인 공간에서 제 것이 아닌 소리가 들려온다면, 그 주인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단테는 멀찍이서 튀어 오른 재채기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뛰쳐나온 바로 그 방향에서 들려온 그것은 조금 높은 곳으로부터 추락한 감이 있었다. 발걸음이 두 사람의 거처에 가까워지고, 지붕 위를 보기 위해 검은 우산을 기울인 순간. 단테는 그토록 애타게 찾던 고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흘러가는 먹구름을 엿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제게 향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아래로 기울였다.
“어디 나가는 줄 알았는데, 왜 다시 돌아와?”
“……이 날씨에 우산도 없이 나간 얼간이를 찾았을 뿐이다.”
“아하~…… 나 얼간이 아닌데요.”
“그럼 왜 거기서 물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있지?”
“그냥, 오늘은 왠지 비 맞고 싶어서. 이 정도 비는 맞아도 돼…… 헷치, 푸에취!”
그 뒤로 몇 번이고 이어지는 재채기 소리는 좀처럼 멎을 줄을 몰랐다. 하기야, 적어도 십여 분을 젖은 채로 있었을 테니 감기에 걸릴 법도 했다. 변함없이 얼빠진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배어났다. 그 모습을 보다 선명히 망막에 담기 위해 우산을 뒤로 젖힌 단테는, 어느새 누그러진 입매가 하릴없이 말려 올라간다는 자각도 없이 입을 열었다.
“슬슬 내려오지 그래.”
“킁…… 당신이 받아주면 내려가고.”
뚱한 음성이 고민한 흔적도 없이 돌아온다. 쓸데없는 조건을 내세우며 고집을 부리는 걸 보니 순순히 내려올 생각은 없는 듯했다. 어쩌면 단순히 응석을 피우고 싶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허탈할 만큼 단순한 요구사항에 단테는 곧바로 양팔을 넓게 벌렸다. 멀찍이 뻗은 팔과 함께 기울어진 우산이 빗방울을 막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듯, 머리 위에서 저를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마냥 턱을 까딱이면서. 그 모습은 마치 네 어리광을 받아줄 준비는 얼마든지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바보야? 다 젖잖아.”
“어차피 널 받아내면서 젖을 테니 상관없다만.”
큭큭거리는 웃음과 함께 돌아온 대답에 히마와리는 제 신세를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빗물이 스미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그 말대로 이런 자신이 단테에게 안겨드는 순간 그 역시 쫄딱 젖어버릴 게 분명할 것이었다. ……그럼 안 받아주겠다고 하면 될 걸. 괜한 투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아득해졌다. 이곳에 와야만 한다고 생각한 최초의 순간 느꼈던 감상과 현재의 상황이 벅차도록 완벽하게 맞물린 탓이었다.
처음, 뱀의 진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순간 히마와리는 그 뱀의 성정에 대해 가늠했다. 아니, 진혼제라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깎여나간 실체 없는 혼 대신, 그 혼을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실재하는 슬픔을 위로하는 행위는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그 이름 모를 행위를 몇 번이고 이어가는 그는 분명 다정한 사람이리라고, 마세 히마와리는 그 생각을 끝내 떨쳐내지 못했다.
누구도 제게 뱀이 그러하다고 이야기한 적 없음에도 빠르게 퍼져나간 확신은 걸음을 딛기에 충분한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다다른 숲의 변두리에서, 히마와리는 기어코 ‘다정’의 주인을 목도할 수 있었다. 뱀이라는 이유로 온갖 불온한 소문의 중심에 선 남자는 정말이지 외로운 사람이었고, 동시에 생각 이상으로 다정한 사람이었다. 꼭 지금처럼, 없어져도 상관없을 이 한 몸을 찾기 위해 기꺼이 거센 빗속을 헤맬 만큼. 또 그런 와중에 자신의 괜한 고집 섞인 응석까지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받아줄 만큼이나. 단테와 마찬가지로 평생을 외톨이로 지내온 히마와리에게 그런, 어둠 속에서 비쳐오는 따스하고 선명한 불빛 같은 다정함은 정말이지 낯설어서. 그 비색緋色의 눈동자가 제게 꽂혀올 때마다 문득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끝에 다다른 게 이곳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러니 이제 더는 도망칠 수 없겠구나. 탄식과도 같은 마음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의 온도만큼이나 또렷이 와닿았다.
히마와리는 단테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몸을 던졌다. 차게 식은 몸은 물먹은 솜처럼 먹먹하고, 동시에 무거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당신이 받아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중력이 이렇게나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또 없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두렵지 않았다. 그저 눈을 꾹 감고 몸을 둥글게 말면, 단단한 팔이 중력에게서 저를 가로채고 익숙한 체온으로 어깨를 감싸안았으니까. 순식간에 저지당한 추락의 끝은 고요했다. 단테의 손에서 우산이 미끄러지며 어떠한 소리를 물방울처럼 튕겨 올린 것도 같다. 그 적막과 아주 조금의 잡음을 맛보길 몇 초, 뺨에 들러붙은 심장 소리가 조금은 빠른 것 같다고 느낀 뒤에야 고양이는 눈을 떴다. 그리고 긴장으로 웅크린 몸에서 찬찬히 힘을 풀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우산이 꼬리 끝에 채였다.
“……추워.”
“그러게 누가 그리 청승을 떨고 있으라고 했나.”
퉁명스러운 말과는 달리 히마와리의 몸을 들쳐 안은 단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봤자 뱀의 체온, 몸을 녹이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도 그랬다. 그 사소한 움직임이 마치 저를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어 하는 것만 같다고, 히마와리는 문득 생각하고 말았다.
조심스레 어깨를 끌어안는 미지근한 온도, 온기를 나누는 대신 한기를 털어내는 쪽을 택하기라도 한 듯 빗물을 훑어 미끄러트리는 손아귀, 그리고 착각할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뜀박질하는 심장 소리. 그 모든 것이 꼭, 당신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 같아서……. 히마와리가 찬찬히 팔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단테의 목을 둘러 감쌌다. 고개는 품에 파묻힌 꼴을 흉내 내며 숨긴 지 오래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울 것만 같았으므로.
“있지, 단테.”
“그래, 듣고 있다.”
“처음에 내가, 당신한테 내 장례식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잖아.”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아니, 그저 빗소리가 아득히 멀어질 뿐이던가. 단테의 귀에는 오직 히마와리의 작디작은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빗소리 따위에 신경을 분산시키는 순간 그대로 땅으로 꺼져버릴 것처럼 속삭이다시피 하는 그 음성을, 단테는 놓치지 않기 위해 걸음을 늦췄다. 진창이 된 바닥을 딛는 발소리조차도 방해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당신이 치르는 장례는 죽은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게 꼭……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놓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단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당신은 엄청 다정한 사람이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랬는데 다정한 데에도 정도가 있지. 나처럼 영문도 모를 소리나 하는 손님을 내쫓지도 않고, 오히려 객식구로 들이기나 하고…… 이러면 기대하게 되잖아.
꿍얼거리는 목소리는 그 내용만큼이나 낯설었다. 히마와리가 속내를 이토록 정직히 터놓은 적이 있던가?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저를 형용하는 평가야말로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은 다정 따위의 표현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히마와리가 다정하다 일컬은 모든 구석은 제 욕심에 뿌리를 둔 것들이었고, 그녀의 눈앞에 있는 뱀은 그저 탐스러운 것에 아가리를 벌리고 집어삼키는 데에만 급급한 탐욕가일 뿐이었다. 네 진의를 알고 싶다, 왜 많고 많은 장의사 중 나를 택했는지 알고 싶다, 네가 이야기하는 장례란 무엇인지 알고 싶다. 히마와리, 너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고…….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만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해부하는 데에 물린 뱀의 내장에는 불가해를 향한 탐구심이 그득 들어차 있었으므로. 그러니 이건 오롯이 나의 욕심이다, 다정 따위가 아니라. 다만 고해는 입밖에 나지 않았다. 히마와리의 울음이 다시금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나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
“…….”
“그래서 당신한테 왔어.”
“……히마와리,”
“당신이 날 기억해 줘…….”
나 같은 걸 기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막연한 부탁이라도 외면하지 않을 다정한 사람을 찾아왔어…… 자신의 의뢰한 ‘장례’는 그런 것이라고 히마와리는 고백한다. 여전히 쏟아지는 빗소리에 울먹이는 소리를 감춰가면서. 다만 그녀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단테의 귀에는 그 울음마저 적나라하게 파고들고 말았다. 빗물에 식은 손바닥이 히마와리의 등을 도닥였다. 이제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고양이는 죽지 않기 위한 장례를 치르고 싶었던 것이다. 한평생을 외톨이로 살다가는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할 것이므로. 자신을 기억하는 이 하나 없는 생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으므로. 그런 의미로써의 죽음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찾아왔을 테다. 생각해 보면, 장례는 누군가가 한때나마 분명히 존재했노라는 증명이 되어주지 않던가.
단테는 현관문 앞에 다다른 발길을 멈추고 품속의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히마와리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제 이마만 그의 가슴팍에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젖은 옷을 사이에 두고 맞닿는 체온이 덥다. 그제야 단테는 자신의 걸음이 지나치게 더뎠다는 것을 깨달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의 빠른 박자 위로 짧은 기침 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었다.
“……수건을 가져다 주마.”
어차피 뱀의 체온으로는 차게 식은 몸을 데워줄 수 없다. 단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물기를 닦을 수건이나 따듯하게 데운 차 따위를 내어오는 정도가 다였다. 히마와리를 거실의 소파 위에 내려놓은 단테는 곧장 부엌 찬장에서 작은 잔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레몬청을 두 스푼 덜고 그 위로 더운물을 부었다. 언젠가 히마와리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가 사 온 것이었다.
찻잔을 받아 든 고양이는 차를 한 모금 맛보더니 뚱한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질질 끄는 듯한 걸음으로 부엌에 다다라서는 기어코 레몬청 두 스푼을 더 넣고 나서야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로 거실에 돌아온 고양이의 홀짝이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지고, 찻잔 속의 내용물이 절반 아래로 줄어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단테는 마른 수건으로 히마와리의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에서는 강물 따위에서 흔하게 배어나는 비린내가 났다. 그녀가 그토록 종알대던 비 냄새였다. 이게 뱀의 체취와 닮았다고. 등 뒤에서 비식거리는 단테의 헛웃음은 히마와리에게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히마와리가 초조한 듯 찻잔의 손잡이 끝을 둥글게 매만지는 모습은 단테에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지만 말이다.
“……있잖아, 아까 했던 얘기 말인데……”
“다 마시고 나면 먼저 씻도록 해라.”
“어, 으응. 아니, 이게 아니라——”
“왜, 이제 와서 열 기운에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다고 변명할 셈인가?”
이죽거리는 목소리를 내뱉은 직후 단테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렇게 쏘아붙이듯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조급했던 탓에 차마 다듬지 못한 문장이 앞섰다. 히마와리가 제 속내를 터놓은 걸 후회하는 것만 같아서, 혹여 제게 못 들은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할까 신경이 곤두선 탓이었다. 그녀의 본심을 알고도 모르는 척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으므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손에 힘이 들어가자, 그걸 느꼈는지 히마와리의 어깨가 작게 튀었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냥, 뭐지?”
“……내 말,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궁금해서.”
나를 당신의 좋은 기억으로 남겨달라고 했잖아. 그게 무슨 뜻인지, 내가 당신한테 뭘 바라는지 이해했어? 그걸 다 알고서 여전히 날 품어주는 거야? 말을 마친 히마와리가 몸을 틀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단테와 눈을 맞추며 입을 삐죽였다. 마치 답을 재촉하듯, 이왕이면 긍정의 답을 해달라고 투정이라도 부리는 듯한 얼굴에, 단테는 제 손에서 힘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순간 웃음이라도 터트릴 뻔한 감각이 제 심장을 스치고 지나갔음을 알았다. 히마와리 역시 그 응석과도 같은 발언을 철회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단테로서는 정말이지 다행이게도. 그는 대답을 위해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참을 수 없이 간지러운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도 낯설 만큼 부드러운 감각이 입꼬리를 타고 올랐다. 단테는 히마와리의 눈을 통해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볼 수 있었으나,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더라도 필시 고약하게 허물어졌을 것이므로.
“우선은 네 감기가 다 떨어지고 나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뭣……!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앓는 모습을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단테의 말이 끝난 직후 재채기가 다시금 튀어나왔다. 에츄, 흐엣취! 한바탕 어깨를 들썩이던 히마와리가 턱을 들자 붉게 물든 코끝이 드러났다. 기침과 함께 열이 다시 올랐는지 눈을 글썽이던 고양이는 이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꼬리를 잡을 기력이 동나서인지, 혹은 단테의 말에 동의해서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나 씻을래.”
한풀 꺾인 목소리로 웅얼거린 히마와리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일어날 때부터 불안하더라니, 욕실의 문턱에 어깨를 퉁 소리 나게 부딪치고는 기어코 아야 하는 외마디를 토해냈다. 그 뒤로는 슬리퍼가 바닥에 미끄러지는 소리와 세면대를 다급하게 붙잡는 소리가 이어진다. 진작에 닫힌 문 너머의 상황이 훤히 그려지는 것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단테의 엷은 웃음소리는 욕실 안쪽의 물소리에 쓸려 사라졌다.
히마와리에 대한 단테의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그녀 자체가 변하지 않았으므로. 단테는 히마와리를 한결같이 미련하고 얼빠진 존재로 여겨왔다. 다만 그렇기에 비로소 곁을 내어줄 수 있었다.
단테에게는 타인과 공유할 만한 마음의 여백이 넉넉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세상과의 단절을 택했고, 필연적으로 단테는 외로워졌다. 어쩌면 스스로도 알지 못하게,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사무치게. 그렇기에 그는 외로움만을 타인과 나눌 수 있었다. 고독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단테는 히마와리가 곁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자신과 동일한 결핍을 앓는 고양이 하나쯤이야 품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공통된 정서 위를 헤매다 같은 처지의 타인을 마주했다 한들 서로를 품어줄 의무는 없다. 그러나 마침 고양이는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을 필요로 했고, 마침 뱀은 자신이 줄곧 이어져 온 고독에 지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금의 관계는 우연히 그 두 사건이 교차한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은 우연이었을지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서로인 이상, 이제는 응당 서로여야만 했다.
“단테, 있잖아.”
목욕을 마친 히마와리가 젖은 수건을 목에 걸친 채 단테의 곁을 기웃거린다. 다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완전히 그친 빗소리를 대신하듯이, 가볍고 경쾌한 박자로.
“더 할 말이 남았나?”
“오늘은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돼?”
아직 좀 춥단 말이야, 응? 고양이는 샐쭉 웃는 얼굴로 꼬리를 살랑거린다. 희게 질린 꼬리 끄트머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단테는 소리 없이 한숨을 들이켰다. 춥다는 이유로 동침을 조른다, 라. 상대가 뱀이지만 않았다면 썩 그럴듯한 명분이 되었으리라. 히마와리 역시 턱없이 허술한 핑계를 대었다는 자각이 있는지 괜히 손가락을 꼼질대고 있었다.
“이제 눈치 보지 않고 응석을 부리기로 했나 보군.”
“……왜, 그럼 안 돼?”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다만.”
“불만이면 당신도 나 편하게 대하든가.”
논리 없는 말을 우물거리더니 끝내는 아예 뻗대기까지. 몰염치하게도 히죽이는 고양이를 잠시 바라보던 단테는 이내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요구에 응하기 위함이었다. 히마와리가 들이닥친 이래로 쫓겨났던 침구가 침실로 돌아가는 건 간만의 일이다. 말인즉 단테가 거실이 아닌 침실에서, 그것도 침대 위에서 잠드는 것 역시 오랜만이라는 의미였다. 본래 그의 소유였던 침대는 히마와리 혼자서 눕기에는 제법 넓은 감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두 명 분의 너비는 되지 못했기에 그녀는 문득 이 위가 이렇게 좁았던가 하며 생각하고 말았다.
덜 마른 머리칼을 정돈할 겨를도 없이 수마가 밀려온다. 차츰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던 중, 히마와리의 눈길이 침대맡에 놓인 약과 물컵으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차라리 독이라 해도 믿을 법한 칠흑색의 환약. 단테가 자신의 독을 정제하고 약재와 함께 빻아 만든 약은 꼭 그런 색을 띠곤 했다. 그와 함께 지낸 몇 달간 그것을 취해본 적 없었던 히마와리는, 별도의 언질 없이도 그 약이 제 몫으로써 마련되었다는 걸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약을 쥐고 코끝을 가까이 해보면, 훈연한 것처럼 매캐한 향이 훅 끼쳐온다. 약을 만들고 나면 단테의 몸에서도 곧잘 묻어나는 향이었다. 비 냄새와는 상극인 것 같으면서도 묘한 조화로 맞물리는 그것을 몇 번이고 폐부 깊숙이 들이켜다가 이내 입에 던져넣었다. 물을 마셔 삼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도 혀뿌리에 걸린 쓴맛이 빠르게 퍼진 탓에, 히마와리는 꼬리를 바르르 떨어댔다. 물잔을 내려놓은 소리가 생각보다 컸는지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린 단테와 눈이 맞았다.
“신발이 다 젖었더군.”
“아~…… 그치, 그렇겠네.”
“날이 밝으면 새로 몇 켤레 사다 주마.”
“……응?”
“이제 네 짐을 늘려도 상관없지 않나.”
네 보금자리는 이곳이 될 테니. 단테의 말에 찬찬히 두 눈만 끔벅이던 히마와리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이곳에 온 뒤로 자신은 불필요한 소지품을 늘리지 않았다. 신발을 포함해 옷가지 따위까지도. 그리고 단테 역시 그것에 의문을 표하거나 관여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그가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대로 고양이가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었다. 단테가 자신을 평생의 기억으로써 추억해 줄 것, 제게 그의 일상 일부를 내어줄 것. 종내에는 자신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 그 조건을 알면서도 먼저 말을 꺼냈다는 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노라는 확언이지 않은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새삼스레 심장께가 간지러워서, 히마와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감기 때문인지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지, 엄청 기뻐. 그리고 엄청 욕심 나. 새 신발도, 이제까지 생각해 본 적 없는 새 옷도, 과일 향이 나는 바디워시나 지금 쓰는 것보다 크고 둥근 빗까지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내가 여기 있다는 흔적을 이 집 곳곳에 남기고 싶어서……. 이불 속에 파묻은 손끝이 잘게 떨려왔다.
“단테, 그럼…… 그럼 있잖아, 내일 나도 같이 나갈래. 옷도 사고 싶어.”
“……그래, 그렇게 할까.”
“응! 나간 김에 간식거리랑 책도 좀 사고…… 아, 오늘 버린 우산도 사자.”
장우산 말고 3단 우산도 사서 나중에 들고 다니기 편하게—…… 정말이지 사소한 바람을 말갛게도 종알거리는 낯은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 발갛게 물든 히마와리의 눈가에 시선이 가닿은 순간, 단테는 문득 그 자리의 온도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보다 높을 고양이의 열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은 충분할 것임에도 이유 모를 조급함이 폐부에 차올랐다. 낯설도록 선명한 충만감과, 지독하도록 막연한 갈증이 동시에 일었다. 당장이라도 거리를 좁히고, 접촉하고, 살덩이를 문질러 그 자리에 입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더운 붉음이 그녀의 얼굴에 이름 모를 들꽃처럼 만발하는 광경을 꼭 눈에 담고 싶다는, 정말이지 충동적인 날것의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다만 그것을 순순히 삼켜 감추기에는 눈앞의 고양이가 가히 사랑스러웠으므로, 단테는 찬찬히 허리를 숙였다. 그녀가 가만히 눈을 감기에도, 혹은 모른 척 고개를 돌리기에도 늦지 않을 속도로.
뱀의 입맞춤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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