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광장에서 만난 큐피드

빌 셴하이트 드림

주말 오후의 거리는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모두 제 갈 길 가느라 바쁜 행인들 사이.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지만 세련된 옷차림을 한 빌은 테가 얇은 선글라스와 모자로 최대한 자신을 숨긴 채, 함께 외출한 후배를 데리고 능숙하게 인파를 빠져나갔다.

“아이렌, 뭘 그렇게 힐끔힐끔 보니?”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광장을 가로질러 가던 중. 앞장서서 나가던 그는 제 조금 뒤쪽에서 딱 붙어 걷는 동행의 고개가 자꾸만 돌아가는 걸 눈치채고 말을 걸었다. 자신이야 혹 파파라치가 붙지 않을까 싶어 주변을 살펴야 하지만, 같이 다니는 후배까지 눈치를 보는 건 원치 않았던 그는 혹 상대가 자신과 같은 걱정으로 불안해하는 건 아닐지 신경이 쓰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우려와 달리, 아이렌은 저 멀리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리키며 물었다.

“선배,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아.’ 작게 탄식한 그는 황당함에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걱정한 게 무색하게도, 이 어른스러운 건지 아이 같은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엉뚱한 녀석은 생각지도 못한 것에 시선을 빼앗겨 있었다.

“설마 저게 먹고 싶어서 계속 보고 있었던 거니?”

“헤헤.”

“……하아. 어린애도 아니고.”

하지만 차라리 다행이다. 평소에는 주변 시끄러운 것에 민감해서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예민해지는 아이렌이지 않은가. 모처럼 같이 외출했는데 잔뜩 예민해져 긴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언가 엉뚱한 것에 한눈 팔리는 게 더 낫겠지. 아니, 어쩌면 일부러 무언가 다른 것에 집중해서 주변의 소란스러움을 잊어보려다가 아이스크림에 눈이 간 걸지도 모르기도 하고.

상대의 사정을 이해한 후 금방 표정을 편 빌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괜찮으니까, 네 것만 사자.”

“정말요?”

“그래. 지금 체중 관리 중이라 간식은 못 먹거든.”

빌은 그저 제 사정을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아이렌에겐 그게 단순한 정보로 인식되지 않은 걸까. 그의 말을 듣고 멈칫한 아이렌의 시선이 한 바퀴 핑 돌았다.

아마도 남은 먹을 수 없는데 저 혼자 먹는 게 마음에 걸려 그러는 거겠지. 제 욕구보다는 타인의 기분부터 살피는 아이렌이니, 그 정도는 굳이 캐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빌은 그런 배려는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난 괜찮으니, 먹고싶으면 먹어. 별로 간절히 먹고싶은 것도 아니니 너 혼자 먹는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하지 않으니까.”

“정말이죠?”

“내가 왜 너에게 이런 거짓말을 하겠니?”

‘으음.’ 단호한 빌의 말에 설득된 걸까. 망설임을 거둔 아이렌은 주머니를 뒤적여 지갑을 찾아 꺼냈다.

“그럼 다녀올게요. 금방 사 올게요!”

“뭐? 잠깐, 아이렌?”

아무리 자신은 먹지 않을 거라 해도 아이스크림 정도는 사줄 수 있는데. 무엇보다 제가 사주지 않더라도, 이렇게 동행을 두고 덩그러니 가버리는 게 어디 있는가.

황당함에 잠깐 발이 굳은 빌은 금방 아이렌을 쫓아가려 했지만,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아이렌은 이미 인파 사이를 빠져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뭐가 저렇게 급한지.’

평소엔 그렇게 재빠른 아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자신을 기다리게 하기 싫은 건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서두르는 건지, 오늘은 누구보다도 발 빠른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상, 괜히 쫓아가기보다는 가만히 기다려주는 게 낫겠지. 제 딴에는 먹지도 않을 사람을 끌고 가게까지 가는 게 미안해 두고 간 건데. 쫓아가면 곤란하지 않겠나. 빌은 그리 생각하고 근처의 벤치에 앉아 시계만 바라보았다.

“저기, 오빠.”

“응?”

그때. 작은 그림자 하나가 기척도 내지 않고 그의 옆에 다가왔다.

혹시 자신을 알아보고 사인 요청이라도 하려는 건가. 빌은 긴장을 놓지 않고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1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한 손에는 꽃이 잔뜩 든 바구니를, 다른 쪽 손에는 포장된 튤립 한 송이를 들고 있는 소녀는 대뜸 튤립을 빌에게 내밀었다.

‘아, 영업인가.’ 이런 장사방식을 이미 알고 있는 빌은 내민 꽃을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주었다. 이토록 날씨 좋은 주말. 어린 소녀가 또래 아이들과 놀지도 못하고 광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얼마 하지도 않는 꽃 한 송이를 사주지 못할 정도로 야박한 이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쁘구나, 얼마니?”

“괜찮아요.”

“응?”

“아까 그 언니에게 주세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더니, 그대로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소녀와 손에 쥔 튤립을 번갈아 보던 빌은 눈만 깜빡이다가 짧게 탄식했다.

‘대체…….’

만약 돈을 받지 않고 그냥 가버리기만 했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팬의 마음으로 팔던 꽃을 하나 공짜로 줬다고 생각했겠지만……. 대놓고 아이렌에게 주라고 하고 가다니. 만약 아이렌에게 주고 싶었다면, 조금 있다가 당사자가 돌아오면 직접 건네주면 되지 않는가.

아니면, 이건 제가 줘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아이라고 칭찬해 주고 싶다.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아이에게 답을 물을 수도 없는 빌은 새하얀 종이 포장지를 감싼 새빨간 튤립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고 보니, 튤립을 좋아했지.’

물론 굳이 튤립을 골라 준 건 우연이겠지만 마침 잘 되었다. 제가 굳이 잘 보일 기회를 놓칠 이유가 무엇이 있겠나. 안 그래도 오늘 함께 나온 것도, 아이렌이 관심 있던 전시회의 표를 연예계 지인을 통해 얻어낸 덕분에 같이 보러 가자고 꼬셔서 나온 거였는데 말이다.

“선배, 저 왔어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리 붐벼 보이지 않아 보였지만 가게 안에는 사람이 꽤 있었던 걸까. 최대한 빨리 다녀온다던 아이렌은 그제야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빌은 아이스크림 컵을 들고 제 앞에 선 아이렌에게 옆에 앉아 보라는 듯 손짓하더니, 슬그머니 튤립을 내밀었다.

“이거 받으렴.”

“네?”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은 아이렌은 갑작스러운 꽃 선물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선물을 준비했다는 자체에도 놀란 모양이었지만, 평소보다 더 동요하는 모습을 보아 그 선물이 제가 좋아하는 꽃인 점에서 더 놀란 듯 보였다.

“웬 꽃이에요? 정말 저 가져도 되는 거예요?”

“물론이지. 네게 주려고 준비한 거니까.”

정확히는 제가 준비한 건 아니지만, 소녀도 이렇게 말하라고 제게 넘겨준 걸 테니 그게 그거이지 않겠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한정된 진실을 말하는 빌과 달리,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아이렌은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완전히 꽃에 시선이 사로잡혀 버렸다.

“감사합니다, 선배. 정말 기뻐요.”

아. 습관적인 사양도 하지 않고 저렇게 기뻐하는 꼴이란. 언제나 애늙은이 같이 굴고 아무 욕심도 없는 듯 살아가지만, 결국 이 애도 좋아하는 것 앞에선 16살짜리 애라는 거겠지.

감출 수 없는 기쁨에 히죽거리는 아이렌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빌은 아이렌이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눈치챌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을 지킬 뿐이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커플링
#드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