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기록

쟈밀 바이퍼 드림

*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54회 주제: 기록]

 

 

 

“저기, 이 다이어리 주인?”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조용한 스카라비아의 담화실 안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갑자기 손바닥 하나 정도의 수첩을 들어 보이는 어느 2학년생의 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일제히 발화자의 손에 든 수첩으로 시선을 돌린 기숙사생들은 무슨 먹잇감이라도 찾은 사람들처럼 상대에게 다가갔다. 개구쟁이들이 가득한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 안, 그것도 꾀를 쓰는 것에 도가 튼 스카라비아 학생들 앞에 개인정보가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물건의 등장이라니. 어떤 의미로든 호기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뭐야 그건?”

“몰라. 담화실 앞 복도에서 주웠어.”

“이름은 안 쓰여있어?”

“안 쓰여있던데?”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두 모여 수첩을 살피는 광경은, 건기 중 돌발적으로 내린 비에 생긴 오아시스에 몰려드는 동물들을 연상시킨다.

 

“일기는 아닌 거 같은데?”

“뭐야, 개인정보는 거의 없네.”

“이래서야 누구 건지 모르겠구만.”

 

혹 수첩에 흠이라도 생길까 봐 조심조심 내용물을 뒤적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은 꽤 부산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방금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쟈밀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담화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소란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무슨 일이야?”

 

자신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없어서일까. 그의 등장에도 놀라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수첩을 주웠던 당사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듯 직접 상대에게 제가 주운 수첩을 내밀었다.

 

“부사감, 유실물을 주웠는데.”

“유실물?”

 

수첩을 받아든 쟈밀은 표지를 둘러본 후, 슬쩍 내용물을 살폈다.

‘아.’ 짧게 탄식한 그는 빼곡하게 적힌 글씨를 알아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아이렌 거 아냐?”

“응? 어떻게 아는 거야?”

“글씨체가 그 녀석 글씨체네.”

“와, 부사감은 감독생 글씨체도 알아봐? 진짜 친하구나~”

 

명백하게 놀리는 말투에, 쟈밀은 눈빛만으로 상대를 찔러 죽일 기세로 습득자를 노려본다.

‘이크’ 쟈밀에게 밉보여야 좋을 게 없음을 아는 상대는 얼른 입을 다물고 3학년의 뒤로 숨어버렸다.

치고 빠지는 게 능숙한 동급생의 행동에 ‘쯧’하고 혀를 찬 쟈밀은 방금까지 함께 있었던 수첩의 주인을 쫓아가기 위해, 한 소리 하는 걸 뒤로 미루고 자리를 떴다.

 

“금방 다녀올테니, 카림이 날 찾으면 곧 돌아온다고 해.”

“예, 부사감!”

 

기숙사생들의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묘하게 음흉한 구석이 있었다. 쟈밀은 그 음흉함의 이유를 알기에,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면서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좋은 놀림거리를 찾아서 기쁜 거겠지. 다들 자신과 아이렌의 관계를 아침 드라마라도 보듯 구경했으니 말이다.

 

‘하여간 조심성 없기는.’

 

물건을 막 흘리고 다닐 만큼 칠칠찮은 성격도 아니면서, 오늘은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한 걸까. 아까 ‘얼른 동아리방에 가지 않으면 빌 선배에게 혼난다’라며 서둘러 간 걸 생각하면, 서두르느라 주머니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것도 몰랐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만약 민감한 이야기라도 든 수첩을 잃어버렸다면 어쩔 뻔했나.

제 일이 아닌데도 아찔해진 그는 다시 한번 아이렌의 수첩 속 기록을 살펴보았다.

 

‘일정 기록용은 아닌 거 같은데.’

 

그는 달필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 솔직히 말해 악필에 가까운 글씨를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모두 책에 관한 기록들이었다.

 

[불타는 대저택 살인사건 / 왜 이런 책이 베스트 셀러가 아닌 건지 모르겠다. 추리소설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재미있었다. 주인공 캐릭터 성이 독특해서 좋았고 엔딩의 반전이 인상적이다. 문체도 깔끔해서 읽는 데 부담이 거의 없었던 책. 속도감이 있는 짧은 문장을 공부할 때 좋은 책이 될 거 같다.]

[벽 / 중간쯤 읽다가 관둘 뻔했다. 세상에는 글로도 사람을 화나게 만들 수 있는 악마의 재능을 가진 작가가 많다는 걸 느꼈다. 끝까지 보고 나니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만약 연재물이라면 중간에 독자 이탈이 엄청 심했을 거 같다. 그리고 난 로맨스 소설은 역시 안 맞는 거 같다. 수사물이 섞여서 볼만했지, 연애 파트는 다 그다지 재미없었다. 반면 수사물의 추리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던 작품.]

[피안의 연결자 / 여기 주인공 너무 내 취향이다. 난 이렇게 냉소적이고 똑똑하지만 그렇기에 합리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고 자기 신념대로 움직이는 남자가 좋다……. 솔직히 반전 부분에서 범인을 그런 식으로 죽였어야 했나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죽이는 것보다는 그편이 독자들의 심적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화된다고 하던데, 주인공 캐스팅이 기대된다.]

 

‘……독후감이라고 하기엔 분석 글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아마 그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단순히 독자의 시선에서 책을 읽기보단 무언가 배울 점이나 셀링 포인트를 찾기 위해 이런 걸 써본 거겠지. 아이렌의 노력이 느껴지는 기록물을 찬찬히 살펴보던 그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 짓고 말았다.

 

‘뭘 하든 대충 하는 법이 없는 녀석이라니까.’

 

하지만 그런 녀석이기에, 자신도 눈이 간 거겠지. 만사에 진지하고 성실하며, 또 자신처럼 근면한 이를 알아보고 지지해 주는 것이 아이렌이란 여자 아니던가.

제가 읽어보았다는 티는 내고 싶지 않은 쟈밀은 수첩을 고이 닫아 품속에 넣고, 영화연구부 동아리 방으로 뛰어갔다.

 

‘……마지막에 언급한 책은 나도 읽어봐야겠군.’

 

딱히 활자 속에 있는 인물이 신경 쓰이는 건 아니지만, 아이렌이 마음에 든다고 한 성격이 대체 어떤 건지는 궁금하니 읽어봐야지.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르기 위해 책 이름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하여 외는 쟈밀의 표정은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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