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와 아이렌의 미학 예찬

열째 장

루크 헌트 드림


나이팅게일.

장미를 붉게 물들이는 피.

마지막 숨까지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가

당신이 좋아하는 색으로 정원을 물들일 때.

뿌리 위 쌓인 깃털로 나의 모자를 장식하고

 

나는 어느 가시에 얽혀 당신이 좋아하는 색으로 물들까.

 

다음 생에는 나도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

당신의 정원을 붉게 물들여야지.

먼 날에 우리와 다른 말을 쓰는 아이가 내가 물들인 꽃을 들고

사랑을 고백하러 갈 때도

당신이 좋아하는 붉은 색이 선명하도록.

나이팅게일로 태어나야지.

 

그렇게 되면 내 깃털로.

당신 이불을 채워주면 좋을 텐데.

 

밤꾀꼬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아, 나의 르나르! 이 시는 혹시 네가 쓴 걸까? 혹시나 하여 최근에 나온 시집까지 전부 뒤적여봤지만, 비슷한 시도 찾을 수 없는 걸 보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네가 평소 작문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를 쓴 건 처음 보는구나! 빌에게 전달받아 구경했던 극본도 좋았지만, 시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구나. 언어란 참 신비해.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될 수도 있는 문장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수천, 수만 가지의 느낌을 줄 수 있으니 말이야.

아이렌 군의 글 또한 그렇단다. 평소 글, 그러니까 이 교환 노트에 적힌 글이나 메모 같은 걸 보면 평소의 아이렌 군과 크게 느낌이 다르지 않은데, 극본을 보면 훨씬 더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이 드니까. 그런데 시에서는, 뭐라고 할까, 가녀리고 슬픈 느낌이 드는구나. 극본 속 아이렌 군이 창과 방패를 든 전쟁의 신이라면 시 속의 아이렌 군은 새까만 예복을 갖춰 입고 누군가의 무덤가에서 구슬피 우는 소녀 같구나.

 

마지막 문구는 시가 아니라 사담이겠지?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밤꾀꼬리 소리가 시끄럽긴 했지, 후후. 새 우는 소리에 밤잠 설친 건 슬픈 일이지만, 그 덕에 네 시를 볼 수 있게 되어 기쁘구나.

모든 예술가가 특정 대상을 떠올리며 시를 쓰는 건 아니지만, 참으로 달콤한 시라서 묻는 건데……. 혹시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쓴 시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누군가’가 누구일지 조금 궁금해지는걸.

 

혹시라도 그게 나라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야, 후후.

 

좋은 시를 보여줘서 고마워. 나도 답시(答詩)를 준비해야겠는걸. 나의 르나르에게 바치는 시니까, 신중하게, 다듬고 다듬어 이 공책에 적어두도록 할게.

 

아, 그리고 말이야. 나는 아이렌 군의 노래가 좋단다. 밤꾀꼬리보다는 휘파람에 가까운 음색이라 생각하지만. 후후. 언젠가 꽃의 거리에서 불러준 그 노래가 참 좋았는데, 또 듣고 싶구나.

 


세상에.

아니 잠깐만요.

 

잠결에 아무 공책이나 꺼내서 썼는데, 깨고 나서 찾아보니 아무리 뒤져도 안 보여서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여기 써놓은 거였을 줄이야. 세상에 맙소사.

잊어달라고 해도 거절하시겠죠? 아니,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애초에 잊고 싶다고 잊히는 게 아니니 이렇게 부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겠죠…….

 

칭찬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조금의 첨삭도 못 한 초고인데 남이 봤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네요. 게다가 제 각본도 보신 거예요? 어차피 영화연구부 활동에 쓸 거니까 촬영 결과물로 다 나올 거긴 한데, 그래도 제 글을 보는 건 또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빌 선배가 먼저 보여주신 거예요? 저 이거 빌 선배에게 따져도 되나?

 

이 공책에 써서 오해를 산 모양이지만, 특정한 누굴 떠올리며 쓴 시는 아녜요. 전할 말이 있다면 직접 말할 테죠. 물론 저는 편지도 잘 안 쓰긴 하지만, 그래도 시를 써서 보내기보다는…… 솔직하게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적을 사람이죠. 전 예술은 오로지 예술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사람이 얽히는 순간 그 예술은 저주에 걸린다 생각하거든요. 사람은 변하고, 영원히 사이좋은 관계라는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상대와 사이가 나빠지는 순간 그를 뮤즈로 삼은 예술도 빠르게 부패해 버리죠.

 

저는 말이죠.

누군가를 뮤즈로 삼을 거면. 죽은 사람이나 가상의 인물인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것은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도망가지만, 시체는 도망가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배신하지도 않잖아요.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새어버렸네요. 으음. 어쨌든, 시를 적어주시겠다면 거절하지 않을게요. 제 시 보다는 루크 선배 시가 더 아름다울 거 같으니, 이 공책을 위해서라도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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