審神者
그 사니와는
그 사니와는 본래 어느 혼마루에 정착하던 사니와가 아니었다. 그 점은 그녀를 어릴 적부터 봐 왔던 담당자인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고,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 그녀에게 병원 치료를 받아보길 요청한 것도 그였고 지금 그녀의 주치의나 다름 없는 야겐 토시로라는 개체들에게 정보를 건네준 것 또한 그였으니 모를래야 모를리가 없었다.
본래라면 한 사니와 당 하나의 혼마루일 터인데. 담당자는 그녀의 혼마루 기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혼마루보다 훨씬 많은 양의 기록들과 절대 한 혼마루에서 나왔으리라 생각되지 못하는 결과물들. 실제로 그녀의 혼마루는 하나가 아니었다. 담당자는 제 머리를 헤집었다. 윗선은 그녀를 정화직에서 빼내어 겨우 쉴 수 있게 해주는 건가, 했더니 이제는 부족한 혼마루 수를 채우겠답시고 그녀에게 초기도 두 자루와 혼마루 두 개를 밀어붙였다.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초기도를 지급하던가 혼자 던져놓고 뭐야?!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음에도 다른 이들까지 있는 회사에서 그랬다가는 민폐임이 분명했기에 담당자는 바깥으로 나왔다.
여. 하고 가볍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담당자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엘 님. 상대를 조용히 부르자 엘이라 불린 상대는 웃어보였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혼마루 두 개를 소유한 그녀의 거의 유일하다 싶은ㅡ현재는 꽤 인간관계도 넓어진 듯 했지만ㅡ친구나 다름 없었다. 그랬기에 종종 이야기를 들었고 안면도 튼 사이이기는 했었다.
"왜 이렇게 근심 가득이야. 아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
"예? 아뇨, 전혀요. 그런 놈이 나올 수가 있다는 생각이 좀 특이하신데요."
"뭐야, 그럼 왜 그 모양이냐."
"......"
차마 옛 생각에 그랬다고 제 입으로는 말 할 수 없었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몇 번 주고 받은 후 그녀는 제 할 일이 있다는 듯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손을 대충 흔들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당자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한숨을 내뱉었다. 인간이 아니라고는 들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절레, 젓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부 청사 내에는 슬프게도 아직 부모의 품에 있어야 할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 중에는 영력의 문제로 자라지 않는 이도 있다지만 인간이란 본래 외모로 판단하는 종족이 아니었던가. 아직도 담당자는 눈을 감으면 처음 그 사니와를 보았던 때가 아른거렸다.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직장, 새로운 사람들.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런 곳에 처음 발을 들이고 맡게된 일이 그녀를 담당하는 일이었다. 담당이라고 해보아도 그저 위에서 준 일을 전달하고 설명해주고 하는 등의 인수인계가 전부였기에 크게 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전임이 그만두고 다른 부서로 옮겨간 것에 대한 소문이었다. 그녀를 담당하던 전임은 더이상은 못한다며 울며불며 난리를 치다 결국 부장끼리 합의를 보고 새 부서로 옮길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전임이 그렇게 더는 못하겠다고 한 것인지 지레 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었기에 인계받을 서류를 읽었다.
오염된 혼마루를 정화하는 정화 담당의 일을 벌써 몇 년이나 해온 베테랑 중에 베테랑, 달인 중에 달인. 심지어 다른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한 듯 보였다. 그런 선배나 다름 없는 이를 자신이 담당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인계를 받은 일은 인계를 받은 것이니 다시 서류를 손에 들었다. 여태까지 정화한 혼마루의 수, 그곳의 간략한 정보들. 그리고 그곳의 남사들의 처분. 현재 사니와와 함께 다니는 팀원들의 정보. ...팀원들의 정보는 있으나 마나였지만, 어쨌든 있긴 있었다. 사니와의 연락처와 거주지가 적혀 있긴 했으나 전임이 적어둔 것인지 작게 누군가의 필적으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사니와 님을 만나러 갈 때는 정부 산하의 병원에 문의하는 것이 더 빠름.
약올리기 위해 써놓은 것이 아님을, 소문으로나마 정화 사니와는 병원에 신세지는 일이 많다는 것을 들었기에 꼭 필요한 서류들만을 챙기고 자리를 떴다.
병원의 카운터에 도착해 담당자임을 밝히고 사니와명으로 병실을 묻자 카운터의 간호사들은 아, 하고 정보를 찾지도 않은 채 호실을 알려주었다. 어쩐지 그들에게서 약간의 동정이 섞인, 그런 눈빛을 받은 것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 당시의 자신은 어째서인지 알지 못했고, 그것은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확실히 할 수 있었다. 그 동정 섞인 눈빛은 담당자인 자신이 아닌, 사니와인 그녀를 향한 것이었다는 것을.
병실은 1인실이었고, 노크를 했을 때 들려온 소리는 콘노스케의 익숙한 높은 음이었다. 안에 사니와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문을 열었을 때는 그대로 놀라 굳어버렸다.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침대에 기대어 누운 채로 익숙하다는 듯이 붕대를 잔뜩 감고, 거즈를 붙이고 느릿하게 그 붉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새 담당자? 하고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당황해있던 것을 알았는지 콘노스케는 켕, 하고 울며 사니와 님은 훌륭한 정화 사니와입니다! 이미 몇 년이나 이 일을 해오신 전문가이시라구요! 하고 말해왔으나 그 당시 어린아이였던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보호해주어야 할 것 같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간이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 그 때까지 소녀는 계속해서 콘노스케를 끌어안고 쓰다듬고 있었다.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제대로 읽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이렇게 어린 아이일 줄은 상상치도 못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고작해보아야 이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정도의 그런 아이의 모습이니, 그 충격은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을 해 보아도 상당했었다.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펼쳐, 사니와 명부터 하나하나 확인하며 천천히 훑어내려가던 중 나이에서 멈췄다.
"...10살?"
"응, 10살. 여기 온 건 7살."
"......"
아무리 생각해도 정부는 답이 없었다. 정말 답이 없는 이들의 모임이었다. 어떻게 아직 두자릿수도 안 된 어린아이를 정화 쪽에 밀어넣을 수 있었던 것인가. 아무리 인력난이라고는 한다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이래서 유명했고, 이래서 전임이 뛰쳐나간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매번 이런 어린 아이가 다쳐오는 모습을 보고, 또 그 사지로 밀어넣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정신적으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부서까지 옮겼겠지. 적어도 일반 사니와라면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혼마루 안에서 안전하게 있을테니까. 소녀였던 아이는 담당자가 바뀌는 것이 익숙한 일인 듯 새 담당자라 소개했던 저를 바라보며 "다음에 갈 혼마루는?" 하고 되물어왔다.
"일단 쉬면서 회복에 전념하는 걸로 하죠. 그 상태로 하다간 죽어요."
정색을 해가며 말하니 조금 불만스러웠던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준 아이가 그저 고마웠다. 그렇게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을 아이의 회복에 전념했고, 그 덕에 상사에게 까이기도 하도 까여서 덕분에 주변에서는 깡도 센 녀석이라는 소문이 난 듯 싶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경쓰지 않았고, 그럴 수록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사니와인 아이가 우선이라는 듯 행동하는 것 덕분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사는 진즉 포기한 상태였다. ...물론 그 덕택에 지금은 그녀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자유롭게 뭐든 허가를 내어줄 수 있는 상태라는 점에서는 매우 안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후, 하고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서서는 담배를 한 모금 물고, 내뱉었다. 텁텁한 쓴 맛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과거의 일을 기억한 탓인지, 담배의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당시의 그녀의 상태는 심각했고, 윗선은 그런 그녀를 다시 블랙 혼마루 정화에 쓰려고 했기에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어차피 자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약서에서조차 다른 공무원들보다 정년퇴직이 늦어졌고, 다른 곳으로의 이직은 불가하며 예외적으로 다른 부서로의 이직은 허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말은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공무원이고 안정적이며, 퇴직금도 꽤 나온다. 심지어 해고도 없다니 이 얼마나 이득인가. 그것에 이끌려 한 계약이었으나 지금은 그 계약 조항에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녀만큼 청량하고 광대한 영력은 인간 중에서는 없다고 하였다. 인간 중에서. 그 말은 즉, 인간이 아닌 이들 중에서는 있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힘은 가히 인간이 품고 있을 수 있는 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인외로 태어났어야 하는 이가 인간으로 태어나버린 비극일지도 모르지.'
......후. 담배 연기를 한 번 더 내뱉었다. 어찌되었든 그 당시의 어린아이였던 그녀는 순조롭게 회복해가며 정화도 착실히 해내갔다. 영력이 영력이었던 덕인지 탓인지, 그녀의 정화 속도는 가히 그 어느 인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고, 당시 신입이었던 자신이 보기에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속도여서, 이래서 윗선에서 그렇게 닥달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어렸고,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전선의 가장 더러운 부분에 뛰어들어 청소를 맡고 있었다. 그런 것은 원래, 윗선의 어른들이나 해야할 일임에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해내왔다. ...20살이 될 때까지.
그 덕분인지 그녀의 다리는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다리로 무언가를 오래 하는 것은 아예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뛰는 것은 이제 상상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성장판은 진작에 다쳐, 회복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재액에 장기간, 장시간 노출된 것에 대한 부작용인지 아무런 일이 없음에도 간혹 앓아 눕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그녀를 볼 때마다 친절히 반겨주었고 그녀의 숙소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기숙사 같은 방이 아닌 병원의 병실이었다. 짐도 고작해야 옷가지 몇 개 뿐이었으며 정화를 다닐 때 데리고 다니는 것은 정부의 여우형 식신 콘노스케 뿐이었다. 그만큼 열약한 상황에서 그녀는 아무런 반항 없이 묵묵히 일을 해왔다. 그런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이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그녀를 정부에 묶어두기 위한 혼마루 두 개와 초기도 두 개. 아무리 봐도 목적이 뻔히 보이는 일이었음에도 그녀는 얌전히 받아들였다.
대체 왜 그렇게 순순히 받아준 것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무어라 대답했던가.
"하나 뿐인 내 가족들이 생기는 거잖아, 이제."
그 때의 그녀의 표정이 어땠던가. ...아마 웃고 있었던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녀에게 두 개의 혼마루가 온전히 주어졌을리가 없었으니까.
그녀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각 도종의 첫 남사와 초기도들, 그리고 그녀의 주치의나 다름 없는 야겐 토시로 두 자루였다. 알리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며, 알리지 않는 것 또한 그들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그것에 관여하지 않았고 물어본다면 답해주었다.
먹먹해지는 감정을 꾹 억누르고 담배를 껐다. 불씨를 짖이겨 담배의 남은 불을 전부 꺼버리고 옥상에서 내려갔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녀를 정부에서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정화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 일은 늘어만 갔으나 아이 때부터 지켜봐온 아이의 모습은 이미 20살이 넘고 성인이 되었음에도 작고 소중했다. 그저 제가 담당하는 사니와의, 그녀의 행복을 조금 더 빌어주고 싶을 뿐이었다.
어여쁜 아가 사니와 님. 부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주세요.
나도 그래도 돼?
물론이죠. 사니와 님은 솔직히 열심히 일했어요..너무 열심히 했어. 그러니까 이제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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