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동급생은 산타클로스

에이스 트라폴라&듀스 스페이드 드림

* 23년도 드림 크리스마스 합작 제출작 : https://2023christmas.creatorlink.net/

크리스마스이브 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하츠라뷸 기숙사의 담화실에는 내일을 기대하는 이들의 들뜬 목소리들이 넘쳐흘렀다.

 

“저기, 들었어? 내일은 날씨 좋다더라.”

“응. 너무 춥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 눈 오면 따뜻하고 분위기 있지만, 다니기는 힘들잖아?”

“뭐, 어차피 우리는 기숙사에서 파티하니 상관없나?”

“나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내일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와 1년에 한 번뿐인 기념일에 들뜬 소년들은 얼핏 보아도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딱 두 명. 이 와중에도 심각한 얼굴로 스마트폰의 날씨 어플만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큰일 났다.”

 

의미 없는 새로고침을 12번쯤 반복한 에이스는 포기한 듯 화면을 꺼버렸다. 그 옆에서 ‘내일 날씨’를 각종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고 온 듀스 또한 모든 걸 체념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얼이 빠진 두 소년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하늘의 뜻에 한탄했다.

 

“아니, 분명 얼마 전까진 화이트 크리스마스일 거라고 하지 않았어?”

“일기예보라는 게 자주 바뀌는 건 알았지만, 설마 3일 만에 배신을 당할 줄이야.”

“하……. 어쩌냐 진짜?”

“난들 알겠어?”

 

평소라면 ‘넌 뭔 말을 그렇게 하냐’며 듀스에게 짜증을 냈을 에이스지만, 이번에는 꽤 상심이 큰지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 작지 않은 한숨 소리는, 시끄러운 담화실 안에서도 꽤 잘 들렸던 걸까.

트레이와 함께 내일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케이터는 풀 죽은 후배들을 보곤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뭐야, 둘 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도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귀엽네~!”

“아, 다이아몬드 선배. 그게 아니라…….”

 

선배에게 귀여움받는 건 상관없다. 부끄럽긴 해도 크게 불쾌한 일도 아니니까. 그러나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하는 법. 듀스는 잠깐 망설였다가, 자신들이 실망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게 몇 분 후. 자초지종을 듣게 된 케이터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아이렌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25일에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듀스가 들려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약 일주일 전쯤. 수업이 끝난 뒤 돌아가던 중 1학년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가 나왔고, 다들 은근슬쩍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하는데……. 워낙 물욕이 없는 탓인지 쉽게 원하는 선물을 입에 담지 못하던 아이렌은, 고민 끝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특별히 원하는 선물은 없지만, 눈이 오면 좋겠네. 13살 때 한 번을 빼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던 에이스와 듀스는 크리스마스까지의 날씨를 검색해보았고, 이내 25일에 눈이 올 가능성이 80%나 된다는 걸 확인한 후 안도했다고 했다. 남에게 베푸는 건 잘해도 제가 뭔가 받는 건 멋쩍어하는 아이렌이 대놓고 무언가를 원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니, 부디 친애하는 홍일점의 작은 소망이 이뤄지길 바란 것이었다.

그러나 날씨라는 건 사소한 걸로도 바뀌기 마련인 법.

80%였던 강설 확률은 날이 갈수록 점점 떨어졌고, 이윽고 24일에는 ‘내일 강설 확률 0%’에 도달하고 말았다.

 

“근데, 애초에 이건 너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게 어때?”

 

대자연 앞에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 후배들을 위로하는 케이터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강조해 보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건 그렇죠.”

“산타가 정말 있지 않은 이상, 무리인 게 당연하긴 해요.”

“저희도 뭐 굳이 들어주려는 건 아니었고, 눈이 오면 아이렌이 좋아하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한 거긴 해요.”

“휴, 아이렌이 정말 좋아했는데…….”

 

아아. 좋아하는 여자애가 바라던 일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자기들이 더 실망하는 꼴이란. 웃으면 안 되지만, 참으로 ‘청춘’ 그 자체라 귀엽지 않은가.

소리 내어 웃고 싶은 것을 꾹 참은 케이터는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트레이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 후배들, 좀 귀엽지?”

“하하……. 뭐, 아이렌이 뭔갈 원하는 건 드문 일이긴 하니까.”

 

아이렌은 취향도 확고하고 흥미나 재미를 느끼는 것도 많았지만, 특유의 초연한 성격 덕에 물욕을 보이거나 품고 있는 욕망을 입 밖으로 내뱉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 이가 뭔가 바라는 게 있다고 말했다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지 않겠나.

물론 제 후배들이 아이렌의 염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건 좀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만약 감독생이 늘 제 옆에 두고 다니는 마수 파트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욕심을 부리는 성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실망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 역시 드물게 꺼낸 소망이라는 게 제일 주목할 점 아니겠나?

 

“말레우스 정도라면 눈을 내리게 해 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일로 부탁하긴 좀 그렇지?”

“음~ 사실 말레우스 군이라면 아이렌을 좋아하니까 들어줄 수도 있다고 보는데, 우리 후배들이 가서 부탁할 배짱이 없겠지.”

 

아니, 그건 배짱이 없다고 폄훼하기엔 좀 억울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말레우스에게 편히 말을 걸고 부탁을 할 만한 사람 자체가 희귀하니까.

제가 말해놓고도 표현이 좀 심했나 하는 생각에 말을 정정하려던 케이터는, 갑자기 기억 속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탄식했다.

 

“아, 그러고 보니.”

 

눈앞의 후배들이 귀여워서 곧바로 생각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도 같다. 이 학교 안에는 수상할 정도로 모든 걸 파는 판매상이 있고, 자신은 그의 가게에서 얼마 전 흥미로운 뭔가를 보지 않았던가.

짓궂게 씩 웃은 케이터는 에이스와 듀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속삭였다.

 

“저기,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볼 사람?”

 

 


 

 

“꼬붕! 일어나라고, 꼬붕!”

 

아직 해가 다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

어젯밤 늦게 잠들었던 아이렌은 제 침대 위에서 요란하게 뛰며 소리치는 그림 때문에 비몽사몽 한 상태로 일어났다.

 

“……그림, 목소리 좀 낮춰. 고막 찢어질 거 같아.”

“흥! 이 몸이 얼마나 시끄럽다고 그러는 거냣?!”

 

충분히 아주 많이 심각하게 시끄럽다. 아마 학교서에 ‘그림은 시끄러운가?’라는 주제로 무기명 투표를 연다면 90% 이상 시끄럽다는 쪽에 투표해 줄 거다. 아이렌은 마음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베개로 귀를 막았다.

노골적으로 귀찮은 티를 내는 파트너의 모습에 뿔이 난 그림은 꼬리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투덜거렸다.

 

“뭐냐고, 정말! 기껏 눈이 와서 깨워주려고 했는데! 그럴 거라면 다시 자라고!”

“뭐?”

 

눈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오늘 날씨는 자기 전 미리 확인해 두었던 아이렌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았다. 믿기진 않지만, 유리창 너머에는 새하얀 눈이 나풀나풀 흩날리며 내리고 있었다.

 

“진짜다…….”

 

분명 눈은 안 올 거라고 했는데. 설마 몇 시간 만에 눈구름이 만들어져 현자의 섬을 뒤덮기라도 했단 말인가. 제가 꿈을 꾸는 건 아닐까 하여 눈을 비비고 볼까지 꼬집어 본 아이렌은 창가로 다가갔다.

 

‘아니, 잠깐?’

 

바깥을 둘러보던 그는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창문을 열었다. 분명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긴 한데, 자세히 보니 고물 기숙사 주변만 눈이 흩날릴 뿐 먼 거리에서는 눈이 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어둑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눈이 쌓인 것도 딱 기숙사 건물 근처 정도뿐이지 않은가.

 

“그림,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이냣?”

“왜 우리 기숙사 주변만 눈이…….”

 

그때. 아이렌이 옆에 다가온 그림에게 제가 느낀 위화감을 설명하려는 순간.

머리 바로 위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듀스! 놀지 말고 계속 돌려!”

 

이 목소리는 분명 에이스 트라폴라의 것이 아닌가. 아니, 지금 보니 들리는 건 그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기계라도 돌리는 건지 모터 소리와 기계 부품이 움직이는 특유의 소음도 들렸고, 방금 호명된 또 다른 친우의 목소리도 들려왔으니까.

 

“내가 언제 놀았다고 그래?! 한 3초 쉬었다고 놀았다니, 그러면 너도 30번쯤 논 거 아냐?”

“뭐? 내가 언제? ……에취!”

“하! 꼴 좋다! 콧물이나 흘리고…… 에취!”

 

제가 환청을 듣는 건가. 역시 이건 꿈인가. 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차가운 공기와 손끝에 닿는 눈송이의 촉촉함은 너무나도 현실적인데,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이 세계에 온 후 이상한 일을 너무 겪은 탓에 무슨 일이 생겨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다행이지만, 이대로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순 없었다.

 

“이거, 에이스랑 듀스 목소리 아냐?”

“그런 것 같다만…….”

 

그림에게도 들린다면 환청은 아닌 게 확실하다. 아이렌은 창문을 닫고, 잠옷 위에 겉옷만 걸친 채 밖으로 나섰다.

조용히 기숙사 뒷문을 열고 나가 지붕을 올려다본 아이렌은 지붕 위에서 움직이는 두 개의 존재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선풍기 정도 크기의 처음 보는 기계를 돌리고 있는 그것들은 분명, 동급생들의 뒷모습이었다.

 

“너희, 뭐 하고 있는 거야?”

 

제가 나온 줄도 모르고 분주히 움직이는 두 사람을 부르자, 화들짝 놀란 뒤통수들이 동시에 뒤돌아보았다.

 

“아이렌! 언제 깬 거야?!”

“뭐야, 왜 이렇게 일찍 깼어?”

 

대체 언제부터 지붕 위에 있었던 걸까. 코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두 사람은 아이렌을 보곤 깜짝 놀랐다. 당황한 두 사람이 기계를 작동시키던 손을 멈추자, 주변에 흩날리던 눈이 뚝 그쳤다.

 

“대체 거기서 뭐 하고 있어?”

“그게, 어…….”

“……하, 하하.”

 

어색하게 웃는 에이스와 듀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이 그친 허공만 바라보는 두 사람은 멋쩍음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다물 뿐이었다.

아, 이제 알겠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이 근처의 눈을 만들어 낸 모양이다. 방금까지 작동시키던 기계로 인공 눈을 만들어 냈다고 가정하면, 모든 게 얼추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가.

금방 상황을 파악한 아이렌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설마 내가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야기해서 이런 건 아니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아이렌은 얼른 내려오라는 듯 크게 손짓했다.

 

“일단 내려와. 둘 다 꼴이 엉망이네.”

 

에이스와 듀스는 군말 없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각자의 빗자루를 타고 내려온 두 사람은 샘에게 빌린 ‘마력으로 구동되는 조설기(造雪機)’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쭈뼛쭈뼛 기계를 등 뒤로 숨기는 두 사람은 제대로 변명하지도, 상황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웅얼거릴 뿐이었다.

 

“그, 아이렌…….”

“혹시 우리가 시끄러워서 깬 거라면…….”

 

원래는 아침 일찍 와서 눈을 쌓아놓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일찍 깰 줄은 몰랐다.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해야 하는데, 주방에서 열기를 식히고 있던 쿠키를 훔쳐 먹다가 들킨 아이처럼 발끝만 보며 아무 말도 못 하는 꼴이란.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고 본인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던 그때.

갑자기 둘 앞에 불쑥 다가선 아이렌이 양팔을 활짝 벌려 새벽 공기에 차게 식은 몸들을 끌어안았다.

 

“엑, 아이렌?”

“뭐, 뭐야? 왜 그래?”

 

당황한 두 소년은 가만히 안길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소보다 몸이 따뜻한 아이렌은 잠옷과 겉옷 두 겹만 입은 탓인지 그 체온이 더 잘 전해져왔다.

그 온기에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아버린 에이스와 듀스는, 자신들을 보며 활짝 웃는 아이렌을 보고 절로 탄식하고 말았다.

 

“고마워. 너희 덕분에 정말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됐어.”

 

아이렌은 표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기쁘면 웃고 짜증이 나면 인상도 쓰는, 대단히 평범한 사람이었지. 그러나 격렬하게 감정을 배출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아, 이렇게까지 기뻐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웃다니.’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한 소년들은 슬그머니 떨어지는 아이렌을 붙잡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제 스튜 끓여놨는데, 양이 너무 많아 곤란한 참이었거든. 어쩌면 운명적으로 너희가 올 거라서 양 조절에 실패한 걸지도 모르겠네! 밥 먹고 나선 과자도 먹자.”

 

신이 나서 그답지 않게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렌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거절할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던 인공눈 제조 콤비는 서로를 번갈아 보다가, 해냈다는 듯 씩 웃었다.

 

“뭐어, 그럴까? 마침 배고팠고!”

“잘 먹을게, 아이렌.”

 

반쪽짜리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지만, 우리의 홍일점이 웃어주었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아까까지 티격태격했던 것도 까먹은 건지, 에이스와 듀스는 입을 모아 힘차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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