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생일 연성

주인공도 외출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리들 로즈하트 드림

* 23년도 리들 생일 기념글

“리들 씨, 무슨 일 있습니까?”

“응?”

“아까부터 계속 출입문을 보고 계신 것 같아서요.”

“아…….”

 

리들은 제이드의 예리한 지적에 입을 닫았다. 상대가 말한 대로 자신은 줄곧 생일 파티장의 출입문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것도 잠깐이 아닌, 생일 파티가 시작된 이후 계속 눈길을 주고 있었지.

하지만 그 이유를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제가 누굴 기다리는지 남에게, 특히 제이드에게 굳이 알리기 싫은 리들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별일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제이드.”

“흐음.”

“……뭐지? 그 반응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예의 바른 듯 단정하게 웃는 오드아이가 수상쩍다. 마치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였다.

리들은 꼭 제 속내를 들켜버린 기분이 들어 마른침을 삼켰다.

딱히 제가 부적절한 욕망을 품은 것도, 바래선 안 되는 걸 바란 것도 아닌데도, 저 시선에 목이 타는 건 어째서일까.

당사자는 그 답을 알지 못했지만, 얄궂게도 동급생은 그 이유를 아는 모양이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생일 축하드립니다, 리들 씨.”

“그래. 조심해서 가도록 해.”

 

다행스럽게도 제이드는 리들의 속내를 추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리들의 내면은 한층 어지러워져, 아까보다 더 노골적으로 입구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렇게 티가 났나?’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걸 어쩌겠나. 제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오지 않는 것 자체도 신경 쓰이지만, 오늘 종일 모습을 보거나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이 학교의 유일한 여학생이자 감독생인 이를 기다리느라 초조함이 극에 달한 리들은, 결국 제가 찾고있는 이와 가장 가까운 후배들을 찾아갔다.

 

“에이스, 듀스. 혹시 아이렌 못 봤니?”

“예? 아이렌이요?”

 

생일 파티장 구석에서 타르트를 나눠 먹고 있던 에이스와 듀스는 동시에 대답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누가 보아도 어색한 반응에, 리들은 ‘이것 봐라?’하는 마음이 불쑥 들어 팔짱을 꼈다.

 

“왜 그러는 거지?”

“어, 그게 말이죠…….”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피하는 에이스.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 듀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어색함. 그 모든 걸 예리하게 파악한 리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긴장한 후배들을 노려보았다.

 

“시원시원하게 대답하지도 않고, 뭔가 문제라도 있나?”

 

리들 로즈하트는 집요한 남자다. 쓸데없는 것까지 고집을 피울 정도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니 아마 이 추궁은 제대로 답을 들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다. 제 기숙사 사감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아는 두 1학년은, 머리를 마주하고 속닥거렸다.

 

“야, 말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아이렌이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비밀로 못해!”

 

자기들은 열심히 목소리를 낮춘다고 낮춘 거겠지만, 코앞에 있느라 다 들리는 걸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리들은 최후통첩하듯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단호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에이스, 듀스.”

 

사실을 말할 거라면 기회는 지금뿐이다. 본능적으로 그걸 깨달은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에이스였다.

 

“어어, 그게……. 사실은 말이죠.”


 

‘아이렌, 너라는 녀석은 정말!’

 

에이스에게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생일 파티장을 뛰쳐나간 리들은 성큼성큼 고물 기숙사까지 뛰어갔다. 평소와는 다른 나풀나풀한 옷차림 때문에 전속력으로 뛰는 건 불편했지만, 그 어떤 불편함도 열받은 리들의 발을 묶을 수는 없었다.

전속력으로 뛰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화가 나서 그런 걸까.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리들은 제 모습이 어떤지는 신경도 쓰지 못한 채 고물 기숙사의 문을 두드렸고, 몇 초 뒤, 얼떨떨해하며 문을 여는 그림과 마주하게 되었다.

 

“후낫! 리들?! 뭐, 뭐냐고!”

“아이렌은 어디 있지?!”

“꼬붕? 꼬붕은……. 자, 잠깐! 어딜 가냣, 리들!”

 

어차피 지금 아이렌이 있을 장소는 한 곳뿐이지. 소매에 넣어 둔 약 봉투를 꺼내든 리들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아이렌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렌의 방은 잠겨있지 않았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리들은 제 부름에 고개 돌리는 축축한 얼굴을 보고 헛숨을 삼켰다.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 앉아있는 아이렌은 식은땀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열이 많이 나는 건지 평소보다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리들을 본 그는, 제가 헛것을 보는 건 아닌가 의심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리들 선배? 잠깐, 생일 파티는 어쩌시고…….”

“지금 그게 중요해? 왜 오질 않나 했더니, 몸살이라니!”

 

‘아.’ 다가오며 호통치는 리들의 말을 들은 아이렌이 슬쩍 시선을 돌려버렸다. 기껏 비밀로 한 사실이 들통났는데도, 그녀는 굳이 변명하거나 핑계를 찾지 않았다.

 

“저는 괜찮아요. 연락도 없이 늦어져서 죄송해요.”

 

리들은 무작정 성큼성큼 침대로 다가왔다가 고개 숙인 아이렌의 모습을 보곤 쏟아내려 한 말을 도로 삼키고 말았다.

이렇게나 순순히 사과한다면, 역시 화를 내기 민망해지지 않는가.

애초에 그가 화를 내는 건 아이렌이 걱정되어서였지, 상대가 무슨 큰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었다.

여기까지 뛰어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머리를 식힌 리들은 하츠라뷸 기숙사에서 급히 구해 온 감기약을 고쳐 쥐었다.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어서 민망하네요. 저, 꼴이 엉망인데.”

“앗.”

 

그러고 보니, 숙녀의 방에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와 버렸지 않나.

제 실수를 깨달은 리들은 다른 의미로 얼굴이 빨개지더니,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나, 나는 나가 있을 테니 조금 뒤 부르렴.”

“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복도로 나간 리들은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꼴을 정돈했다. 챙이 넓은 모자가 바람 때문에 비뚤어진 걸 바로 고쳐 쓰고, 흐트러진 옷가지를 정리한 그는 그제야 비로소 평소의 ‘단정하고 냉철한 모범생 리들 로즈하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 그렇게 따지듯 물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지만 설마 그런 이유로 오지 못한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다.

기다리던 이가 오지 않은 실망이 놀라움으로 바뀌고, 뜻밖의 사실을 알아 놀란 마음이 서운함이 되고, 상대가 말하지 않은 서운함이 미리 눈치채지 못한 자신을 향한 분노로 바뀐 이 일련의 과정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그 어느 것도 타당한 감정이긴 했지만, 아직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소년이 다스리기엔 무리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들어오셔도 돼요.”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며 생각을 정리하던 리들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방 안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잠옷의 윗단추를 꽉 잠근 아이렌은 아픈 티를 최대한 감추려는 듯 언제나처럼 웃어 보였다.

리들은 여전히 열감이 느껴지는 아이렌의 뺨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몸이 좀 괜찮아진 후엔 생일 파티장에 올 거였다고? 듣자 하니 약 먹고 푹 쉰 후 하츠라뷸로 올 예정이었다고 하던데.”

“네.”

“그리고 아직 이 모양이고?”

“이 모양이라니…….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네요.”

 

제 몸 상태를 잘 아는 아이렌은 헛웃음만 흘리더니 아까 다시 땋은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일찍 갈 걸 그랬네요.”

“아픈 사람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내가 찾아왔으니 됐어.”

“파티 주인공이 파티장을 뜨는 건 규칙 위반 아닌가요?”

“주인공도 외출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사실 마음은 얼른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 걸 어쩌겠나.

리들은 기껏 가져온 약을 건네지도 못하고 창밖과 아이렌을 번갈아 보기만 했다.

그 초조함을 마주한 아이렌은 얼른 상대를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미리 준비했던 선물을 내밀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선배. 이거 선물이에요.”

“……아, 고마워.”

 

검은 리본을 두른 붉은 상자는 꽤 작았다. 이 크기와 무게를 보면, 안에는 아마 만년필이나 브로치 같은 게 들어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아픈 덕에 조용히 선물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네요.”

 

내용물을 꺼내 볼까 고민하던 리들은 그 말을 듣고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확실히 단둘이 있을 기회를 가진 건 좋았지만, 그게 이런 방식이길 바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들은 선물을 챙겨놓고, 그제야 챙겨온 약을 아이렌에게 내밀었다. 리들의 손아귀에 꽉 쥐어졌던 흔적이 남은 약 봉투를 받아든 아이렌은 ‘고마워요’라고 속삭이듯 인사했다.

 

“아픈 건 절대 좋은 게 아니니, 그런 말은 하지 말도록 해.”

“네.”

“……또 대답만 하는 건 아니지?”

“어라. 저, 그 말 엄청나게 자주 듣네요. 제가 그렇게 진정성이 없어 보이나요?”

 

글쎄. 진정성이라.

리들은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제가 아는 아이렌이라는 사람은 꽤 진중하고 진실한 사람이었다. 거짓말을 하느니 입을 다물어 버리고, 사람을 속이기보다는 정면에서 맞부딪혀 회유하는 법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금 상대가 거짓말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이렌은 언제나 비밀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제 속내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늘 괜찮다는 말로 넘겨버리는 사람. 남의 고통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걱정하면서, 제게 일어나는 일에는 뭐든 무던한 사람. 그게 이 여자이지 않던가.

언제나 너무 많은 걸 혼자서 처리하려고 하는 아이렌을 알고 있는 리들은 제가 준 약을 확인하는 상대에게 뭐라고 조언해야 좋을지 생각하며 한숨 쉬었다. 이번 몸살도 분명, 혼자서 무리하다가 이지경이 된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렌은 리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모르는지, 능청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된 상황을 물었다.

 

“그래서, 제가 아픈 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에이스와 듀스가 밀고했나요?”

“내가 추궁한 거니 밀고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렇군요.”

 

먼저 말한 거였다면 화낼 작정이었을까. 리들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아이렌의 표정을 빤히 보다가, 약 정리를 마치고 고개를 든 상대의 제비꽃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고마움. 기쁨. 그리고 미안함이 뒤섞여 일렁이는 눈동자가 아름답다.

짙은 색이지만 투명한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자니 어쩐지 상대가 무슨 소릴 할 것 같은지 직감적으로 눈치챈 리들은, 먼저 선수를 쳐 상황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말할 거라면 얼른 낫도록 해.”

“와, 어떻게 아신 거예요?”

“나도 이제 너를 제법 잘 알게 된 모양이야. 감이 오더라고.”

 

‘후후.’ 속내를 들켰음에도 전혀 불쾌해하지 않는 아이렌은 리들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내년에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축하드리도록 할게요.”

“그래. 꼭 그랬으면 좋겠구나.”

 

그때는 오늘 하지 못한 것들을 해야지. 파티장에서 같이 단 것을 나눠 먹고, 선물을 같이 풀어보고, 아이렌이 다른 이들의 생일마다 해준 포옹도 받아야지.

미지근한 손을 꼭 잡은 리들은 손등에 입을 맞추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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