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바리루이] 한 명의 인간이 부르는 노래
그는 모두와 똑같이 이 땅에 발 딛은 인간이다
* 툿친 명계공규타님네 드림컾! 드렸던 조각글을 가필수정했습니다!
* 해당 글의 시점은 편하신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만약 효월 모 시점 이후라면, 왓이프-공규-세계관에서 전개됩니다.
* “인간”에 방점이 찍힌 바리루이는 최고야!
* 에오르제아백과를 적극적으로 참조하였음.
* 오탈자 및 비문 수정은 미래의 제가 해줄 겁니다.
갈레말 제국은 늘 그랬듯이 칼바람이 일고 냉기가 사방을 엔다. 제아무리 수도 갈레말드, 그것도 황제가 거하는 마도성이어도 예외는 없었다. 걸음마다 석재와 군화가 부딪히며 소리가 쩡쩡 울린다. 뒤꿈치에 찬 기운이 서렸다. 그러나 바리스는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볕은 온기가 미약할지언정 기세만큼은 잘 갈아둔 칼과 같다. 척박한 땅에서 강건하게 살아가는 자의 긍지처럼.
오래 머무는 집무실은 피부가 아릴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고 있어서다. 마도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지만 자원은 늘 부족했다. 무엇보다 바리스는 때때로 마도기술 그 자체에서 그 괴물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했으므로, 그런 날에는 이렇게 오래된 생활방식을 선택했다. 오로지 인간의 손으로 일구어낸 기술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공고하게 한다.
이 집무실은 그런 공간이었다. 갈레말의 것으로만 이뤄진. 집무실 책상이 특히나 그랬다. 식민지 곳곳에서 고급 활엽수 목재를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그는 굳이 갈레말 제국에서 나고 자란 붉은소나무 원목을 고수했다. 소나무 목재는 긁힘이 잘 생긴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전언한 신하가 있었으나, 청린수 가공 부산물로 나오는 수지를 활용하면 마감은 충분하다는 황제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명을 이행했고 그 결과가 여기 있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몇 묶음 올라와 있다. 만년필이 종이 위를 사각거리다가 멈췄다가 다시 사각거리기를 반복한다. 무심한 작업은 영원할 것처럼, 영사기 속 필름이 몇 번이고 다시 재생되듯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바리스 조스 갈부스가 좌정한 곳에 감히 윤허를 받지도 않고 들어설 이는 단 하나뿐이므로 손을 멈추는 일 없이 안건을 읽고 처리한다. 오늘 일정은 이미 언질 주었으니 루이 역시 알고도 왔을 테다. 갈레말인 특유의 뛰어난 공간 인지 능력은 의식하지 않아도 타인의 움직임을 감각했다. 카펫 위로 거리낌 없이 내딛는 걸음은 문에서 벽난로를 향한다. 거기서 한참 장작 타는 냄새와 뜨끈한 열기를 즐기는가 싶더니, 몸이 휙 돌아간다. 그러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보폭을 줄여 이쪽으로 온다.
곧 책상 한 구석에 루이가 앉았다. 서류 묶음과는 반대쪽이다. 제게 사양하나 싶어 인상을 쓸 뻔했으나 곧 그가 인기척을 죽일 생각이 없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곁눈질하지 않더라도 안다. 걸터앉은 채 간당거리는 두 다리, 은은한 허밍. 어느 쪽이고 집중력을 해칠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일을 다 마칠 때까지 곁에서 기다리겠다는 의사표명을 바리스는 곧게 받기로 한다.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밀도가 있으나 찍힘과 긁힘에 약하다는 소나무 목재는 그 ‘영웅’이 앉고서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입꼬리 한쪽이 비죽 솟는다. 천지명동하여 야만신은커녕 야만신 포획기구조차 자기 손으로 다 찢어발길 수 있을 ‘빛의 전사’에게 세상은 온갖 칭호를 붙였다.
그러나, 보라. 여기에 그 휘황한 수식에 어울리는 요소가 어디 있는가. 오로지 평범함만이 있을 뿐. 루이는 그저 모두와 똑같이 이 땅에 발 딛은 인간이다. 이 사실을 보지 못한 이들은 의도했든 아니었든 그를 옥죄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영웅은 지금 여기 있다. 그가 한 명의 인간으로 천진하게 있을 자리는 다름 아닌 여기, 제 손으로 일군 이 땅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바리스를 뿌듯하게 했다.
"곧 끝난다."
"! 응!"
짧은 대화만으로도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한층 들떴다. 그들은 영원히 모를, 한 명의 인간이 부르는 노래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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