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와 아이렌의 미학 예찬

아홉째 장

루크 헌트 드림

아이렌 군, 오랜만에 이 공책을 네게 전해주게 되었구나.

저번 주말은 아주 즐거웠어.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가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네가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권한 거였는데, 생각 이상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해 줘서 내가 더 행복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었어.

 

나는 옛날부터 이 오페라를 여러 번 봤지만, 너는 단 한 번 본 것뿐인데 줄거리를 대강 파악한 점이 가장 놀라웠단다. 아무리 공연 전에 평론 같은 걸 찾아보았다고 해도 연출이 난해한 부분이 많아 이해하기 힘들진 않을까 했는데, 역시 평소에도 이것저것 보고 다니며 영화연구부에서 빌에게 많은 걸 배웠기에 그런 거겠지?

특히 후반부 결투 장면에서 피아노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바이올린 소리는 점점 커지는 부분을 ‘심장 박동은 작아지다 사라지고 죽음이 가까워지는 걸 표현한 것 같다. 높고 가는 바이올린 소리가 사신의 낫의 날 선 부분같이 느껴졌다.’라고 하는 감상을 듣곤 깜짝 놀랐단다. 그 외의 다른 생각들도 정말 흥미로웠지만,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 역시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배우들이 연주 소리에 살짝 엇박자가 되도록,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움직이는 모습도 좋고 긴장감 넘치는 연주 도중 점점 커지는 대사들의 감정 변화도 참 좋아. 이미 누가 결투에서 승리하는지 다 알고 보면서도, 매번 긴장하게 된다고 할까.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묘지 앞의 꽃 중 하나만 조금 튀어나와 있는 연출을 눈치채 준 것도 괜히 기뻤단다. 언젠가 무대 관계자의 인터뷰에서 본 건데, 거기에는 주인공의 망설임과 이별의 순간을 시각화하는 장치라는 이야기가 있거든. 모두가 진심으로 애도하는 장례식에서, 혼자만 붕 뜬 주인공을 꽃다발에서 혼자 튀어나와 있는 푸른 장미로 나타낸 거지. 이 인터뷰는 꽤 오래전 거라 찾아보기도 힘들 테니 아마 모르고 한 이야기일 텐데. 이런 걸 읽어내 주다니, 정말 함께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나와 같은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한 게, 진지하게 무대를 봐준 게 어제부터 자꾸 내 마음을 설레게 해서 이렇게 글로도 남기게 되었구나. 다소 집요하게 보인다고 하여도, 귀엽게 봐주지 않겠어? 무대에 푹 빠져서 두 눈을 빛내며 앞만 보던 네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거든.

 

아이렌 군만 괜찮다면 다음에 또 공연을 보러 가자. 오페라도 연극도 뮤지컬도 다 좋단다. 네가 좋아하는 작품도 꼭 보고 싶으니 공연 선택은 네게 부탁해 보도록 할까, 후후.


집요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저, 이런 이야기 하는 거 정말 좋아하니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요. 전 원래 공연을 보고 감상을 나누는 것까지가 관람이란 행위 일부라 생각하니까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과연, 그 푸른 장미가 그런 의미였군요. 혼자만 한 뼘, 아니 반 뼘 정도 튀어나와서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 같았는데 진짜 그랬구나……. 저는 어제 잠들기 전 생각 해보다가 떠오른 건데, 모두가 검은 상복을 입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애도하는데 주인공 혼자 상복 사이에 있기엔 눈에 띄는 여행용 복장으로 나타나잖아요? (아무리 수수한 디자인과 색이라 해도 상복보단 화려하게 느껴지는 옷이었죠, 그거) 그런 복장으로 저기 무대 끝에서 나타나 묘비 앞에 꽃을 내려놓고 가는 순간까지 혼자서 튀는 그 모습이, 꼭 다른 꽃들보다 더 튀어나와서 거의 직각으로 내리꽂히는 조명에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푸른 장미랑 똑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공식이라니. 뭔가 뿌듯한 기분인걸요?

제 주변의 모든 것들을 그저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게 주인공의 힘이겠지요. 주인공이 상호작용해야만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연출 같아, 개인적으로 좋았어요. 이제 그 주인공의 세계에 중요 인물로 인식되는 게 무덤 속 연인뿐인 거 같기도 하고……. 그게 진짜 불멸의 사랑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그 결투 장면, 진짜 다시 생각해도 너무 멋있어요. 우연인지 연출일지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모자를 눌러쓴 각도가 무대 어디에 어떤 포즈로 서도 눈은 잘 보이지 않고 하관만 보이게 써둬서 오만하면서도 알 수 없는 인물로 보이는 점까지 최고였어요. 주인공은 겉보기엔 가볍고 여유로우며 기분파에 거친 남자로 나오지만, 항상 부르는 노래를 보면 가사의 단어 선택이나 선율이 굉장히 섬세하잖아요? 그런 입체적인 캐릭터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오페라에 나온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옛 작품일수록 오히려 인물이 입체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니까요? 오히려 여주인공은 알기 쉽고 굳세지만, 한 편으로 진취적이라 파악은 쉬울지언정 호락호락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까지 최고였죠. 역시 명작은 명작인 이유가 있구나 싶었어요.

어라? 쓰다 보니 느낀 건데, 그 주인공. 약간 루크 선배 닮은 것 같기도. 그래서 마음에 들었나, 하하.

 

저도 다음에 또 선배랑 공연을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번 표도 선배가 사주셨는데, 다음에도 선배가 결제할 건 아니죠……? 저, 뮤지컬 자주 보니까 다른 공연도 푯값이 얼마인지 대강은 다 안다고요. 게다가 이번에 앉은 자리, 엄청 좋던데 대체 어떻게 표를 두 장이나 구하신 거예요? 가끔 느끼지만, 선배는 선배 본인도 선배 집안도 장난 아닌 거 같아서 거리감을 느낀다고요. 전에 가본 별장들도 무슨 호텔 같았고…….

어쨌든, 뮤지컬 보러 가면 표는 제가 살게요. 작은 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은 그렇게 푯값이 비싸지 않으니까요.……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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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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