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winJin ::Story::

《무도회》

커미션 신청본

ⓒ 반장

우아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옷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대화를 하는 소리가 그득한 이곳은 바로 에카미아에서 열린다는 무도회였다. 다른 지역도 아닌 수도 에글렛에서 열린 무도회였기에 그 크기는 어마무시하게 컸으며 높은 가문의 자제들 또한 그득했다. 높은 가문의 자제들은 각자 가문의 부유함과 명예를 과시하기 위한 악세서리와 옷으로 치장을 한 모습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런 자제들의 이목을 끌었던 건 바로 ‘그’ 베리트가 온다는 얘기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건 어느 정도의 얘기냐면, 8명의 영주를 모두 갈아치우고 결국 이카루스에 도전을 해, 기어코 이카루스가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시대에 산 이들과 맞먹는 관심거리였다. 심지어 그 베리트가 홀몸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왔다니. 분명 그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연인일 것이라는 얘기부터 그저 가족 같은 사람이지 않겠냐는 얘기까지 온갖 얘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얘기들이 뚝, 하고 끊어진 건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연회장으로 들어온 베리트와 엘빈이 살며시 손을 잡고 있었을 때였다.

-내가 말했지, 분명 연인이라고 했잖아...!

보석이 그득히 박힌 부채로 얼굴을 가린 여인 둘이 속닥이는 소리가 훤히 들렸음에도 진은 심드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오고 싶지 않아 했다. 그도 그럴 만도 한 것이, 진에게 있어 이러한 무도회는 필요 없는 시간 낭비나 마찬가지였다. 몸에 꽉 끼는 비싼 맞춤 정장을 입은 채, 파트너의 손을 잡고 왈츠를 춘다니. 심지어 다른 가문의 자제들과 대화도 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진은 웃고 있지만 웃고 있는 것이 아닌 상태였다. 물론, 엘빈 또한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진, 꼭 같이 와보고 싶었다.”

진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꼭, 엘빈은 진과 함께 무도회에 참석하고 싶었다. 이미 수많은 무도회를 다니고, 파트너들과 손을 맞잡아 왈츠를 추곤 했지만, 진과는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무도회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진은 엘빈에 의해 맞춤 정장 집을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진은 싫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허허실실 웃고 말았다. 엘빈과 함께하는 모든 것은 행복했고 좋았으니까.

“엘빈, 그렇지만 말야. 난 정말로 오고 싶지 않았어. 이건 오롯이 너를 위해서 온 거야.”

엘빈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주변을 슬 살펴봤다. 아뿔싸. 이미 많은 자제들이 진과 엘빈을 재밌는 먹잇감 보듯 보고 있었다. 그 중에선 영주들도 있었다. 엘빈은 슬며시 진을 바라봤다. 진의 표정은 여전히 온화하게 웃고 있었지만, 엘빈은 알 수 있었다.

‘...진, 많이 버티고 있군. 나중에 선물이라도 줘야겠는데.’

엘빈은 속으로 다짐을 하며 호기심 그득한 눈빛을 피해 진의 손을 잡아 최대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으로 걸어갔다. 영주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거나 각자의 정인을 데리고 가벼이 왈츠를 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영주들도 진을 보고는 꽤 놀랐다는 듯이 눈 동그랗게 뜨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의외라는 듯 진은 작게 고개 끄덕이며 시선을 살 돌려 엘빈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선율이 바뀌어 시작되었음을 알림과 동시에 진은 엘빈의 양 손을 잡은 채 살며시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엘빈은 조금 주춤거리다가, 숨을 느릿하게 뱉으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색에 평범 하고 고전적인 정장을 맞춰 입은 엘빈과 달리, 연미복처럼 꽤나 길고 새하얀 모닝코트를 입었기에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살랑살랑, 마치 조인들의 날개가 조금씩 움직이 는 듯 보이기도 했다. 새하얀 모닝 코트가 움직이며 갈색 머릿칼이 찰랑이는 모습에 엘빈은 잠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듯 입을 움찔움찔거렸다. 주변 영주들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곤 고개 살 숙여 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진, 진. 날 봐. 다른 이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저, 같이 한 번 즈음은... 와보고 싶었어. 이제 우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으니까, 천천히 하나하나 모든 것들을 같이 해보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다.”

진은 가만히 엘빈을 바라봤다. 엘빈의 눈동자를 보니 비치는 자기 모습에 자신이 왈츠를 추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려 엘빈의 뺨을 쓰다듬었다.

“...젠장.”

엘빈은 나지막이 욕을 지껄이고 급히 진의 손을 낚아채더니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 개의치 않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진은 갑작스러운 엘빈의 행동에 상당히 놀랐다는 듯이 눈 커다래진 채 그저 따라갔다.

“잠, 잠시만. 엘빈. 왜 그러는 거야. 혹시, 내가 뭘 잘못이라도...”

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코니에 도착 하자마자 엘빈은 진의 허리를 감싸 안아 그대로 입을 맞췄다. 엘빈은 진의 입술을 조금 더, 깊게 머금기 위해 허리를 숙여 다급히 입을 맞추어댔다. 연회장에서 들려오는 악기의 다양한 선율과 유독 맑은 하늘 사이에 뜬 달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발코니에서 입을 맞추는 진과 엘빈 을 비추고 있는 달은 마치 무대 위에 선 주인공들을 비추고 있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엘빈은 숨도 쉬지 않고 한참을 입만 맞추어대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진의 어깨를 잡아 살짝 밀어냈다. 어찌나 격정적으로 입을 맞추었으면 진의 입술은 엘빈의 타액으로 보석처럼 번들거렸다.

“...와하하하! 스미스 씨. 지금... 내가 당신의 뺨 한 번 쓰다듬었다고 이렇게까지 반응을 하면 난 정말로 곤란해. 응? 내가 먼저 입이라도 맞추는 날은...”

진이 말을 더 이으려고 하자 엘빈은 다급히 진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가 떨어졌다. 진은 으엥? 하듯이 엘빈을 바라보다 다시금 와하하하. 하고 크게 웃어댔다. 그제야 엘빈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는 듯 얼굴 조금 붉어진 채 시선을 살 돌렸다.

“...진, 그만 웃고 달이나 보지 그래. 달이, 정말로 예쁘니까.”

엘빈은 괜히 주제를 돌리기 위해 진의 손을 살 잡고 달을 가리켰다. 달은 살짝 노란 빛이 돌면서도 새하얀 빛이 돌았다. 엘빈은 여전히 달을 보고 있었지만, 진은 계속 엘빈을 바라봤다. 엘빈의 눈동자 속에 비친 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악기들의 선율, 그리고 선선한 바람이 마냥 좋은지 진은 조금 더 몸을 붙여 엘빈의 몸에 살 기댔다.다.

“...있잖아, 엘빈. 앞으로도 이런 무도회가 오고 싶다면... 뭐,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

진의 엄청난 발언에 엘빈은 놀라 진을 바라보고 연신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진은 와하하하. 웃으며 내가 그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라며 쿡쿡거렸다. 이날 이후로 에카미아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꽤나 자주 진과 엘빈이 보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드림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