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mon étoile

레오나 킹스카라&루크 헌트 드림


* AU 드림 웹진 참여작. 스페이스 오페라 AU.

“어이 아이렌, 아직이냐?”

 

우주선의 소음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정적 속. 레오나는 조종석에 앉아 따분함을 죽이다가 옆자리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아이렌에게 물었다. 함선에 딸린 작은 드론을 원격 조종해 정거장의 출입문 보안 장치를 해제하고 있던 아이렌은 작게 한숨 쉬더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기, 이게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게 아녜요.”

“그 호칭 좀 어떻게 안 되냐.”

“하지만 선배라고 부르는 건 싫다면서요?”

 

그거야 그렇지. 파일럿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 선배 후배 거리는 건 이상하니까. 하지만 저 말투는, 꼭 어린 애를 어르는 것 같지 않나. 저렇게 부를 거라면, 그냥 옛날처럼 선배라 부르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4살이나 어린 주제에 맹랑하기도 하지. 입학 후 첫 비행 때부터 눈여겨본 녀석이긴 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여러모로 대단한 계집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됐다!”

 

그가 소음과 어둠 속에서 회상에 빠져있는 사이. 능숙하게 물리적으로 보안 장치를 망가뜨리고 게이트를 연 아이렌은 드론을 안전히 우주선에 수납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마치 중요한 과제를 해낸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옆얼굴에 헛웃음 지은 레오나는 그제야 운전대를 잡았다.

 

“얼른 가죠, 들키면 귀찮아질 테니까.”

“나도 알아. 안전띠 잘 매라. 넘어져도 안 잡아준다.”

“……전 애가 아닌데요.”

“아, 그래.”

 

본인이 아무리 애가 아니라 해봐야, 레오나의 머릿속 아이렌은 언제나 16살의 1학년 신입생 그대로였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실제로도 꽤 의젓하긴 하지만, 결국엔 제가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몸 어딘가에 자잘한 상처를 달고 오는 미덥지 못한 후배. 현명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만, 쓸데없는 정에 이끌려 망설이기도 하는 불완전한 존재. 그게 그가 생각하는 아이렌이었지.

 

‘뭐,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나.’

 

이게 다 제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덕분이 아니겠는가. 말을 잘 듣는 부하라면 러기라던가 잭 등 몇 명 더 있지만, 그래도 역시 이런 일탈에 데리고 다니기엔 이 녀석만 한 인재가 없다. 러기는 가끔 이익에 눈이 멀어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잭은 너무 고지식해서 명령을 거부할 때도 있지만, 아이렌은 안전하게 제 말을 잘 들으면서 아니다 싶은 것엔 목소리를 내는 ‘충신’이었으니까.

 

달칵. 드르륵.

 

운전대를 당기자 약간의 소음과 함께 선체가 떠오른다.

크기가 작은 만큼 상대적으로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레오나의 우주선이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광활한 우주 공간 저 너머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후우.’ 무사히 탈출했다고 느낀 두 사람이 마치 신호라도 맞춘 듯 동시에 한숨 쉬는 그 순간.

 

―삐이익!

 

귀를 찢는 요란한 경고음이 우주선의 스피커에서 울리며, 새빨간 불빛들이 주변을 둘러 썬다.

익숙한 상황에 혀를 찬 레오나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젠장, 들켰나.”

 

그래. 최근엔 너무 쉽게 빠져나갔지. 항상 성공해서 계속되는 방법은 곧 파훼 당하기 마련이다.

레오나는 포위당했음에도 여유로운 태도로 혀를 찰 뿐이었지만, 아이렌은 제가 실수라도 한 게 아닐까 하여 허둥지둥 주변을 살펴보았다.

 

“뭐가 문제였지? 분명 제대로 해제했는데……!”

“아마 보안 시스템 때문은 아닐 거다. 아마 기절했던 놈들이 깨어나 신고라도 한 거겠지.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세게 쳤을 텐데. 레오나는 아까 전 제 손으로 자빠뜨린 경비들을 떠올리며 주먹을 꾹 쥐었다.

자신들은 그냥 밖으로 나가고 싶을 뿐, 쓸데없이 책잡힐 일을 만들기 싫어 최대한 온건하게 대처한 거였는데. 이래서야 다음에는 좀 소란이 커지더라도 ‘확실히’ 처리하는 편이 좋겠다. 묶어서 창고에 가둬둔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 우주선은…….”

 

바깥 상황을 모니터로 확인하던 아이렌은 자신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우주선을 확인하곤 작게 중얼거렸다. 그 기체는 이 근처에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은하 연합 방위대의 우주선 같았지만, 날개 부분의 마크가 조금 특이했다.

같이 모니터를 확인한 레오나는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구겨진 얼굴로 한탄했다.

 

“귀찮은 게 떴군.”

“그래도 동기인데 ‘귀찮은 거’라고 해도 되는 건가요?”

“왜? 귀찮은 거 맞…….”

 

제가 겪은 지긋지긋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대꾸하던 레오나는 불평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레이더에 잡히는 이상 현상을 발견하고 아이렌의 머리를 눌렀다.

 

“어이, 엎드려!”

“예? 우왓!”

 

부웅.

포획용 장치가 자신들이 탄 기체로 날아오는 걸 미리 눈치챈 레오나는 한 손으로는 아이렌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운전대를 당겨 급히 공격을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탓에 우주선은 요란하게 흔들렸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뒤엉켜 바닥을 굴렀을 뿐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저 자식이…….”

 

자신의 품에 쏙 들어온 아이렌을 일으킨 후 도로 조종석에 앉은 그는 요란하게 울리는 수신기의 신호를 보고 무전 시스템을 켰다.

약간의 잡음 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건 경쾌하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아! 오랜만이야, 레오나 군. 그리고 몽 에투알!(mon étoile)」

 

목소리의 주인은 루크 헌트. 현 은하 연합 방위대 정찰 5부대의 부대장이자 국제연합 파일럿 아카데미 졸업자. 정확하게는 레오나와는 졸업 동기 사이이고, 아이렌에겐 선배 되는 남자였다.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들뜬 목소리에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레오나는 마이크를 켜 대꾸해 주었다.

 

“나는 하나도 안 반갑다만. 그렇게 반가우면 좀 비켜주는 게 어떤가? 부대장 나으리.”

「그럴 순 없어. 너희는 수배자니까. 나도 친우와 싸우고 싶지 않지만, 내 사명을 다해야지!」

 

그 말은 맞다. 자신들은 무법자로서 쫓기는 중이고, 생포에 성공하면 엄청난 현상금을 받을 수 있는 ‘거물’들이니까. 방위대 소속 군인이 잡으면 현상금은 안 주더라도, 훈장이랑 성과급 정도는 주지 않겠나. 어쩌면 승진을 시켜 줄지도 모르고.

하지만 적어도 레오나가 알고 있는 루크 헌트는 그런 것에 매달리는 남자는 아니었다. 돈이나 명예보다는 순수하게 제 흥미에 따라 움직이는 놈이었지. 그렇기에, 더욱 골치 아픈 존재였고 말이다.

 

“누가 친구라는 건지 모르겠군.”

“아카데미에서 같은 반이셨잖아요.”

“3년 내내 시달린 기억뿐인데.”

“하하…….”

 

아이렌은 싸늘한 레오나의 대답에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저 말은 마이크 너머의 존재에게도 재미있는 대꾸였는지, 루크는 소리죽여 웃은 후 좋게 그를 타이르려 했다.

 

「레오나 군, 그대의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어. 그만 돌아가야지.」

 

그러나 어쩌나. 루크의 말은 레오나를 회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가 드러날 정도로 으르렁거린 그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경고했다.

 

“누굴 가출한 애새끼 취급하는 거야? 그리고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 보기 쪽팔리는 게 싫은 거겠지.”

「오,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은…….」

“닥쳐. 어이, 아이렌! 처리하고 와라.”

 

‘처리해라’ 누가 보아도 공격적인 명령이다.

아이렌은 조수석에서 눈치만 보다가 갑자기 떨어진 지시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진심이세요?”

“그래.”

“……이대로라면 저만 옥살이할 거 같은데요.”

“황당한 소릴 하는군. 내게 넘치는 게 돈이랑 권력인데, 뭘 걱정하지?”

 

그건 그렇지. 레오나 킹스카라가 누구던가. 수인들의 행성인 SS-994에서도 손꼽히는 강대국의 왕족 아니던가. 덕분에 큰 범법행위도 안 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수배자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권력의 힘은 무시무시한 법이었다.

상대를 믿고 있는 아이렌은 더는 따져 묻지 않고 우주선에 붙어있는 작은 보조함으로 향했다.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보조함은 허공에 잠깐 머무르는가 싶더니, 곧장 루크의 우주선으로 향했다.

 

「아이렌 군, 난폭한 짓은 안 할 거지? 나는 너와 싸우고 싶지…….」

 

아카데미에서 아이렌과 친분이 깊었기 때문일까. 루크는 무방비한 상태로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가차 없는 공격이었으니.

 

“죄송해요, 선배. 제 밥줄이 걸린 일이라서요.”

 

쿵!

선체가 파괴되지는 않게 비스듬하게 레이저를 날리는 아이렌은 자신들을 둘러싼 우주선 사이를 날아다니며 위협 사격을 계속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공격에 닿을 것 같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방위대의 우주선들은 그 자리에서 포획용 탄환을 날렸지만, 그 어느 것도 아이렌의 보조함을 맞추진 못했다.

마치 날쌘 벌처럼 허공을 변칙적으로 비행하는 아이렌의 기체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던 루크는 부하들에게 공격을 맡겨놓고, 말로 상대를 회유하려 했다.

 

「방위대에 들어오면 월급도 많이 준단다!」

“공무원은 제 체질이 아니라서요.”

「모의 전투 성적은 늘 1등이었잖니? 이렇게 현장에서 뛰면 되는 거란다!」

“제가 윗사람 명령 들으며 싸우기엔 좀 반골이라서요.”

「레오나 군은 윗사람이 아니니?」

“일단은요!”

 

윗사람이 아니면 동료, 혹은 좀 더 사적인 사이라는 건가. 그건 좀 많이 질투 나는데.

그런 사심이 루크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릴 때. 아이렌의 보조함에서 클레이모어처럼 다수의 탄환이 우주선들을 향해 날아왔다.

 

“오, 이런.”

 

유도 기능이라도 있던 걸까. 보조함에서 발사된 탄들은 방위대 우주선 전원에 명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격용으로 만들어진 탄환이 아닌 전파를 혼란 시키고 시야를 어지럽히는 용도로 만들어진 무기라는 걸까.

먹통이 된 시스템 때문에 겨우 비행만 유지하는 우주선이 가볍게 흔들리자, 마이크 앞에 붙어있던 루크의 몸도 비틀거린다. 바닥에 구르기 전 겨우 중심을 잡은 루크는 군모를 고쳐 쓰며 쓰게 웃었다.

 

“루크 선배! 괜찮으세요?”

“음. 물론이지.”

 

넘어지진 않았어도 그가 걱정된 건지, 방금까지 공격을 담당하고 있던 에펠이 바삐 루크에게 다가온다.

후배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는 그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능숙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평소와 같은 그의 얼굴에 안도한 에펠은 더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허공을 보며 한숨 쉬었다.

 

“또 놓쳤네요. 왕가랑 본부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뭐,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없잖니.”

 

아이렌이야 연고가 없는 몸이니 그렇다 쳐도, 레오나가 다친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킹스카라 왕가는 둘째 왕자가 다치지 않은 상태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마 루크는 아이렌 쪽이 더 다치지 않길 바라고 있겠지. 아카데미 시절 아이렌과 루크가 얼마나 친했는지 알고 있는 에펠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 쉬었다.

 

“정말이지, 저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점이 매력적이지 않니? 특히 몽 에투알.”

“으음…….”

 

좋아하는 건 말리지 않을 테니, 좀 적당히 티 내어 주면 안 되는 걸까.

에펠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삼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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