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잊혀진 이름

에이스 트라폴라 드림

“너, 그거 진짜 이름 아니지?”

 

주말 오후. 과제를 위해서 늘 함께 다니는 이들끼리 고물 기숙사 게스트룸에 모여 펜을 놀리던 중, 아이렌은 갑작스러운 에이스의 물음에 눈썹을 까딱였다.

 

“갑자기 그런 걸 묻는 거야?”

“아니, 뭐라고 할까. 늘 생각했는데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고 할까.”

“왜? 그냥 물어보면 될 텐데.”

 

아이렌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굴고 있지만, 에이스는 상대의 의문에 쉽게 대꾸하지 못했다.

왜, 라니. 보통 이런 건 대단히 사적인 질문이니 쉽게 툭툭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니지 않던가. 그래서 일부러 의문이 들고 나서도 곧바로 묻지 않았고, 이렇게 듀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묻는 건데.

무심한 건지 무심한 척을 하는 건지 구별되지 않는 태도에 에이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니, 아이렌은 소리 죽여 웃고 말을 이었다.

 

“뭐, 아니긴 하지만.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거야, 뭐라고 할까. 가끔 이름 쓸 때 멈칫하는 거 같기도 하고 성씨가 없는 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없을 수도 있지. 실버 선배도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에이스는 항상 아이렌에게서 그와 다른 위화감을 느꼈었다. 학기 초에는 이름을 쓰거나 입에 올릴 때마다 뭔가 생각하고 말하는 듯 몇 초 정도 뜸을 들이기도 했었고, 유독 ‘내 이름은 아이렌이다’라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보다는 ‘아이렌이라고 불러달라’는 식으로 소개하기도 했으니까.

뭐. 말하자면 구체적인 물증이 있다기보단, 이 모든 건 그저 심증에 가까웠다. 다만 에이스는 제가 직감이 꽤 좋다고 생각했기에, 제 생각을 믿고 입을 열 수 있었던 것뿐이지.

 

“그래서, 진짜 이름은 뭔데?”

 

제 예상이 맞았다는 것에 자신감이 붙은 에이스는, 듀스가 돌아오기 전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슬쩍 아이렌을 독촉했다.

묵묵히 노트 내용을 정리해 옮겨 적는 아이렌은 짓궂은 상대의 표정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비밀스러운 걸 물어보다니. 에이스는 대담하구나?”

“아, 그냥 물어 보면 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장난치지 마!”

“하하.”

 

하지만 저렇게 반응이 좋으니, 짓궂게 굴고 싶은 걸 어쩌나.

아이렌은 입을 삐죽이는 귀여운 동급생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잊어버렸어.”

“뭐?”

“원래 안 쓰면 잊게 된다잖아. 잊어버렸어.”

 

황당한 대답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거짓말을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이래서 그냥 물어보라고 한 건가.’ 이제야 상대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거 같아진 에이스는 수상하다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따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능해? 16년 동안 쓴 이름인데?”

“잊을 수도 있지. 원래 사람은 생각보다 안 쓰는 정보는 빨리 잊어버리는 동물이라고.”

 

워낙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어서, 이젠 저게 거짓말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다.

에이스는 당당하기 그지없는 아이렌의 대답에 더는 진실을 캐는 걸 관두고,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아쉽지 않아?”

“뭐가?”

“잘 쓰던 이름을 잊어버린 거잖아.”

 

‘잘 쓰던’ 그 부분이 인상 깊었던 걸까. 아이렌은 입 모양만으로 단어를 따라 읊더니, 눈동자를 가볍게 한 바퀴 굴렸다.

 

“글쎄다. 이름은 내 전부가 아닌걸. 이름이 바뀐다고 내 본질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흐음.”

“그리고 난 지금 내 이름이 마음에 들거든.”

 

아, 과연. 그런 건가. 뒤늦게 나와 따라붙는 대답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에이스가 작게 탄식했다.

이름이라는 건 정체성이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아이렌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고 미련도 없는 듯하니 본명 같은 것도 쉽게 잊을 수 있는 거겠지.

역시, 괜히 물어본 걸까. 남의 기분 같은 걸 세심하게 살피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괜히 덜컥 겁이 난 에이스가 마른침만 삼키고 있자니, 아이렌이 뜬금없는 걸 물어왔다.

 

“에이스는 내 이름이 별로야?”

“뭐?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돼?”

“아니, 그게 아니면 왜 진짜 이름이 궁금한가 싶어서. 그냥 아이렌이라고 불러주면 되잖아.”

 

그거야, 관심 있으니까 물어보지. 솔직히 관심 없는 상대라면, 이름이 뭐고 고향이 어디고 같은 건 하나도 안 궁금하지 않나.

하지만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할 정도로 에이스는 연애 감정에 익숙한 소년이 아니었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그가 입을 다물고 있자니, 아이렌은 슬쩍 에이스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난 네가 그 목소리로 ‘아이렌’이라고 불러줄 때마다 좋던데.”

 

귓가에 파고드는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달콤하다. 마치 노래를 불러 선원을 침몰시킨다는 어느 괴물의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아이렌의 귓속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에이스는 재빠르게 고개를 뒤로 빼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너……. 진짜, 하…….”

“왜? 할 말 있으면 해.”

“됐어. 과제나 마저 하자.”

 

다른 사람이 이름을 물어봐도 이러는 게 아니라면 좋을 텐데.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걱정하던 그는 얼굴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손을 치울 수 없었다.


급하게 올린다고… 복사 붙여넣기 한 게 적용이 안 된 걸 새벽에야 발견한 사람이 있다?

급하게 수정해서 올립니다.

어쨌든 썼다는 것에 의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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