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패러디] 나쁜 주술사의 꿈 8
“이 새끼, 거래 좀 할 줄 아는 놈이었구나?"
게토가 내민 조건은 마침 희령이 당장 필요로 하는 조건과 일치했다. 안 그래도 희령은 텐겐의 반혼술 준비를 위해 떠나는 기간 동안 메구미의 경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평소에는 희령의 주구로 결계를 두르고 있어 걱정 없지만 그 주구는 효과가 좋은 대신 사용법이 까다롭고 시전자가 멀리 떨어지면 영향이 끊긴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다. 가능하다면 짧게 다녀오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였다.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토우지가 마냥 일을 쉴 수도 없는 노릇이고(돈 보다는 신뢰성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요즘 메구미가 보호자와 함께 외출하는 걸 거부하기 시작했다. 자기 친구들은 모두 혼자 놀이터도 가고 심부름도 가고 그런다나. 토우지라면 기척 없이 따라붙을 수 있겠지만 혹시나 들킨다면 메구미의 크나큰 미움을 살 게 분명하고, 나오야는 무조건 걸린다.
최종적으로 뭣하면 고전 내 방어 주구라고 털든가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토우지를 24시간 붙여두는 쪽으로 선택지를 줄이고 있었는데…. 게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런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특급도 있어?”
“어…. 음….”
반응으로 유추하건대 없는 거 같았다. 하기야 특급 주령이 흔한 것도 아니고 희령과 토우지와 의뢰 수행 중 우연히 한 번 마주한 게 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놈 잡아서 게토 줬으면 지금 써먹을 수도 있던 거 아닌가. 주령은 죽을 때 소멸도 같이 이루어지니 육체를 구할 길도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1급 정도면 충분하다. 게토에게 물으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있단다. 이 녀석 대체 입학한지 2년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주령을 먹고 다닌 건가 싶었지만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든 희령은 꾸물꾸물 올라오는 검은 생각을 손으로 휘휘 저어 쫓아냈다.
“괜찮은 놈부터 보여줘 봐.”
게토는 방어 위주라면 가장 단단한 놈이 좋지 않겠냐며 홍룡이라는 하얀 용의 모습을 한 주령을 꺼냈다. 그 덩치가 상당해서 고개를 올려야만 했던 희령은 게토에게 사이즈를 줄일 수는 없냐고 물었고 없다고 하자 깔끔히 고개를 저었다.
“너무 크면 안 돼. 메구미는 보이는 쪽이니까 적당히 애랑 비슷한 사이즈가 좋아.”
“키가 어느 정도인가요?”
“1미터.”
게토는 당황한 듯 보였다. 아…. 좀 작네요. 인정하는 부분이었기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유전자의 힘이 있으니 크기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또래보다 많이 작은 게 사실이었다. 집 가서 키 크는 체조라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희령은 아예 자리까지 잡고 앉아 게토의 주령 꺼내기 쇼를 감상했다. 뱀 형태, 사마귀 형태, 물고기 형태 등 다양한 주령이 나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나 희령은 계속 고개만 저었다. 전부 강하고 호위로는 충분할 정도의 주령들이었는데도 무언가, 마음에 차지 않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이유가 뭘까? 종국에는 자신이 너무 까다롭게 구는 거 같아 한창 고죠와 설전을 벌이던 나오야까지 합류시켰다.
“이건 어때?”
고슴도치 형태의 주령을 본 나오야의 눈썹이 휘었다.
“음…. 나쁘진 않은데, 아! 혹시 그런 건 없나?”
“…어떤 거 말씀일까요?”
진상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디자이너의 마음에 빙의한 게토는 속은 부글부글 끓었으나, 겉으로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고객님의 요청 사항을 겸허하게 기다렸다. 나오야는 손으로 무언가를 주무르는 듯 이상한 행동을 취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복슬복슬한 거.”
“복슬복슬?”
“그래! 강새이 맹키로 복슬복슬한 털 달린 주령 말이다! 동물형이면 더 좋고!”
그래 그거다. 라며 희령이 손바닥을 쳤다. 뭔가 계속 찜찜하더라니, 지금까지 보여준 주령중에 동물형은 많았어도 털 달린 놈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메구미는 털 달린 동물을 좋아했다. 길고양이도 마주치면 사라질 때까지 빤히 보는 데다 공원에서 큰 개가 보이면 환장하고 달려들었다. 토우지와 희령에게도 자주 강아지 한 마리만 데려오면 안 되냐고 탈진할 때까지 조른 게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메구미는 개나, 늑대 이런 종류를 좋아했다.
고객님들의 요청 사항을 접수한 게토는 넋 나간 얼굴로 털...복슬복슬...개...커다란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 불현듯 거두어 놓고 잊고 있던 주령 하나가 생각났다. 왜 잊고 있었을까 의아할 정도로 딱 맞는 조건. 게다가 게토가 거둔 주령 중 유일한 특급이었다. 게토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지만 겉으로는 의연한 척 하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마침 딱 적당한 주령이 생각 났는데요. 조금 특이하긴 해도 분명 좋아할 겁니다. 게다가 특급이에요.”
게토는 뱉은 후에야 특급이 있었는데 없는 척 했던 거냐며 비난 받을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희령은 별 다른 말 없이 어서 꺼내보라며 재촉만 했다. 게토는 안도하며 속으로 주령의 이름을 불렀다.
“크아앙!”
호랑이를 닮았지만, 줄무늬는 없는 하얀 털을 지닌 짐승형 주령. 세상에 나온 주령은 우렁차기보다는 귀엽다는 감상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힘차게 내뿜더니 주인인 게토를 보자마자 털과 이를 세운 채 경계하며 하악질 하기 시작했다. 그 반항적인 태도에 게토는 기껏 특급 주령을 얻어 놓고 처박아 놓은 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떠올랐다. 이놈은 거두어진 주령 주제에 술사인 게토의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았다. 얼굴만 보면 날 세우기 바쁘고 심할 경우에는 입질도 했다. 그마저도 그나마 주인이라 봐주는 거였다. 사토루랑 같이 이놈 처리할 때 치른 고생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그러고 보니 이 주령, 한국 임무에서 잡아 온 거예요. 선생님은 아실 수도 있겠네요.”
안 그래도 주령을 바라보고 있는 희령의 눈빛이 오묘했다. 게토는 혹시 이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걱정했다. 더 이상 꺼낼 밑천도 다 털렸다. 하지만 술사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주령은 확실히 믿음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번에도 실패인가. 한숨 쉬며 주령을 집어넣으려던 게토는 주령의 몸에 손을 올리는 희령의 행동에 술식은 멈췄다.
“이거, 장산범 아니야?”
“아시네요? 전에 상대해 보셨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손길을 느끼자 돌아보는 노란색 눈동자를 보며 희령은 잠시 감상에 잠겼다. 상대한 건 아니고 놀아줬었지. 이놈이 희령을.
장산범은 희령이 살던 공가 별채 뒷산에 살던 주령이었다. 설화에서 장산범은 인간 목소리를 흉내 내며 그렇게 꾀어낸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졌지만, 이 놈은 그런 짓은 하지 않고 주로 산속에서 놀거나 길 잃은 어린아이를 놀리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잔뜩 놀다 해가 저물면 마을로 가는 입구까지 물어다 주고는 하던 특급 주령 치고 상당히 특이한 놈이었다. 겁도 없는지 주술사들이 모여 사는 공간에 밥 먹듯 오갔고, 그때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둔갑해 희령과 이런저런 놀이를 해주고 사람 기척이 들리면 홀연히 사라지고는 했다.
이번에는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오랜만이네.”
마치 오랜 친구와 재회한 듯한 반가움에 넓은 등을 두어 번 더 쓸어내리자, 장산범은 본격적으로 몸을 돌리고 희령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배를 까고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고양이 새끼마냥.
그러자 까다로운 진상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게토가 목덜미를 잡고 뒤로 넘어갔다.
주령에게 사람 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앓아누운 게토는 쇼코가 앉아 있는 벤치에 드러누워 뇌가 맛이 간 거 같으니 반전술식 좀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쇼코는 네 뇌는 항상 맛이 가 있어서 고칠 수가 없다며 거절했지만. 희령은 자신 옆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장산범을 데리고 쓰러진 게토에게 다가갔다. 어쩐지, 조금 눈치가 보였다.
“걔 그냥 선생님이 가지세요.”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눈치 없이 희령에게 치대며 애교부리기 바쁜 장산범 때문에 희령은 머뭇거리다 고민 끝에 손가락 하나로 게토의 이마 부근을 살살 어루만졌다. 아무리 봐도 화병이었지만 그래도 통하겠지 싶었다.
“원래 한국 쪽 주령들은 본능적으로 일본 관련 주력은 다 싫어해. 주술사도 포함이고. 딱히 네가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니니까 너무 상심하지는 말고.”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국가 간 상성이 맞지 않거나 종교적 차이로 주술사의 말을 듣지 않는 주구나 주물 같은 게. 주령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생겨난 주령은 본능적으로 일본 관련 주술은 모두 기피하고 경계했다.
게토는 부글부글 끓던 속과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며 왜 고죠가 그토록 희령의 술식을 찬양했는지 이해했다. 확실히 이건 반전술식과는 다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을 뒤흔드는 느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게토는 얼굴 위에 올려두었던 손수건을 끌어 내렸다. 그러나 마주 보는 정면에 바로 희령의 얼굴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희령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게토는 다시 실시간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한 얼굴을 서둘러 손수건으로 덮었다. 감사 인사는 그 채로 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 그래. 희령은 그저 요즘 애들 참 특이하구나, 하며 나오야와 장산범을 데리고 고죠가 기다리는 연무장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옷깃을 붙잡은 쇼코만 아니었다면. 분명 할 말이 있어 붙잡을 걸 텐데 입술만 달싹이던 쇼코는 희령이 자신의 손을 쳐내기 전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나중에 저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반전술식…선생님.”
쇼코가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했기에 희령은 그 상태로 그대로 결 좋은 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에 당황한 쇼코가 고개를 들자 희령이 물었다.
“너는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희령의 옆에서는 게토가 거래 조건으로 건넨 장산범이 크게 하품하며 볕을 쬐고 있다.
“…그건.”
“지금 생각 안 나면 내일까지 생각해 놔.”
희령은 쇼코의 머리를 툭툭 두드린 후 손을 떼고 이번에는 정말 연무장으로 향했다. 온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몸을 풀며 푸른 육안을 빛내고 있는 고죠 사토루가 대련 상대인 나오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
“네가 먼저 하자고 한 거다? 엉망진창으로 당해도 가문에 이르는 거 없기.”
분명 그렇게 말했던 거 같은데,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고죠 사토루는 자신과 호각으로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젠인 나오야를 상대하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혼란에 휩싸였다. 저 집안은 대체 유전자 구조가 어떻게 되먹은 건지 하나 같이 힘이 장난 아니었다. 대련 전 입고 있던 니트를 벗어 던진 나오야의 몸이 심상치 않은 점에서 흠칫한 감각이 예고했듯 주먹 한 방, 한 방이 고죠가 신체를 최대로 강화한 정도와 비슷했다. 거기다 투사주법. 젠인가 상전술식이 분명할 저 술식이 상당히 거슬렸다. 젠인 당주가 쓰는 모습을 봤던 게 마지막인데 체감상 그때 봤던 거보다 훨씬 빠른 느낌.
분명 약점이 있던 거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다시 사라져 있는 게 사람을 가장 짜증 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술식은 고조에 비해 형편없었지만, 응용력이 미성년자 수준이 아니었다. 고죠의 창을 술식으로 궤도를 바꿔버렸을 때는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특히 체술은 격이 다르다. 고죠 또한 체술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으나 나오야의 움직임은 한 수를 월등하게 뛰어넘었다. 단순히 체술 잘하는 주술사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마치 천여주박을 상대할 때와 같은 그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죠는 억울한 눈빛으로 희령이 있는 쪽을 노려봤다. 저 옆에 그림자처럼 서있던 한 남자 또한 떠올렸다.
고릴라 놈들 대체 뭘 키워 낸 거야!
“사토루군. 대련 중에 한눈팔면 다친다.”
나오야는 그 잠깐을 놓치는 법 없이 곧게 뻗은 다리로 고죠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 반대로 돌아가는 격통을 느끼며, 고죠는 곧장 뒤로 빠져 입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힘의 차이가 날 뿐 타격은 비슷하게 주고받았다. 그러나 엉망이 된 자신의 몰골과 달리 나오야의 모습은 옷이 조금 찢어진 거 빼고 멀끔하기 그지없다.
그래 반전술식 사용자다 이거지. 고죠 또한 대련 내내 반전술식의 감각을 떠올리려 애써봤으나 기껏 모인 정의 주력은 모이지 않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희령은 사기꾼이 아니다. 나오야는 그걸 증명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련 전 그의 말대로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고죠 사토루 자신이었다.
오류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느라 행동을 멈춘 건 아주 잠깐. 1초도 안 되는 순간을 파고든 나오야의 주먹이 안면 중앙부에 제대로 꽂혔다. 이번에는 코피였다. 이어지는 나오야의 말은 가관이었다.
“미안타. 힘 조절을 몬 했다.”
마치 여태까지 봐주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는 고죠 사토루의 머리를 제대로 돌아버리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사토루는 상대를 때리느라 본인 또한 상처가 난 주먹을 보란 듯이 치유하며 씨익 웃었다.
“아무리 엉망진창이 돼도 가문에 이르지 않기. 맞제?”
허. 마찬가지로 웃음을 터뜨린 고죠가 티셔츠로 흐르는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인을 맺었다.
여태까지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진짜 해보자 이거지?”
고죠 사토루 술식 무하한 발동.
제대로 된 2라운드의 시작이었다.
@_HANK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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