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아직 모르겠고 (1)
처음부터 고달픈 것이 보이는 첫날이었다.
스카일러-카일이라고 불리길 좀더 선호하는 그는 “어젯밤, 고마웠어.” 라는 말과 돌아온 제 태블릿을 보았다. 태블릿 위에는 (성장기의 남자에게는 확실하게 부족한) 1인분쯤으로 소분되어 판매되고 있는, 취향이고 뭐고 따질 필요 없이 심플한 컵 포장의 콘 플레이크 시리얼과 적당한 막과자가 있다. 카일은 그것을 받아들면서 느릿한 머리를 굴려 본다. 카일은 이제 막 일어나서 잠이 간신히 제대로 깨서, 세수를 하고 온 참이다. 그러나 어젯밤 꽤나 절망을 하는 듯했던 룸 메이트, 윤의 복장은 단정하고, 카일의 태블릿을 건네주고 손애 든 것은, 중저가형으로 보이지만 제대로 된 단말이다.
“…구매부 다녀왔어? 벌써?”
“단말이 없으면 심적으로 불안해서…….”
“그건, …그렇지.”
하기는, 그렇다. 카일 자신이라면 잠도 잘 안왔을 것이다. 딱히 통화나 문자 메세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냥 혼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양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기숙사별로 공통적인 기질이 있으니, 이 룸메이트가 구매부가 아침 장사를 하는 타이밍에 맞춰 나갔다 온 것도 이해가 된다. 다른쪽의 룸 메이트, 아르덴도 카일의 태블릿과 함께 돌아온 답례와 같은 것를 받고 조금 망설이듯이 보고 있다. 정작 태연스럽게 답례를 건넨다는 일을 해낸 룸메이트는, 단말을 들고 조금 씨름하는 듯한 모양이다. 어제 본 단말도, 낯선 디자인이었지만 가동의 방식에서 그다지 신식은 아니었고, 기계류에 능하지 않은 편일까? 카일은 짧은 잡생각을 하면서, 컵 시리얼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윤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다들 아침 식사는, 해?”
대식당, 혹은 기숙사 내의 부엌. 전자는 마련된 반찬이 퀄리티가 좋다지만, 이그니하이드생으로서는 아직 익숙치도 않고 섣불리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후자도 신입생으로서는 매한가지다. 아마도 선배가 제법 있을 듯한 곳을 가고 싶을 리가. 다만 그 둘중에는 그나마 후자가 나은 것이다. 이그니하이드생들 위주고, 요리도 조금 할 줄 안다면 기본 재료의 사용은 간편하고. 선배들도 막 그렇게까지 참견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하니까.
하지만 아침부터 사람을 보는게 무리인 사람들도 많다. 그나마 아는 사람들이면 나아서, 같이 먹자는 걸까? 조금 긴장하는 찰나에 붙은 말은 다른 쪽이다.
“그, 공용 냉장고에 우유 작은 거 사다 뒀으니까. 괜찮으면 시리얼이랑.”
시리얼이 컵 형인건 그런 이유였나! 깨달음을 얻은 얼굴이다. 첫 날이라 일찍 일어난 편이고, 당연 점심쯤 되면 배가 고플게 분명한 한창의 10대다. 대식당에도 항상 과일이 비치되어 있다던가. 음캐라고 그 부분이 크게 다를 것도 없으니, 당연히 뭐라도 집어먹고 가는 게 좋다. 다만 선택지가 (아싸음캐에게는) 지옥인 관계로 고민하고 있던 것일 뿐. 아르덴도 셸던도 적당한 인사를 던지고 우유를 집어 온다. 아니, 심지어 이거 락토프리네. 셸던은 무심코 다시 보았다.
다시 적당한 침묵. 윤 쪽은 확실히 말이 없는 편인 듯, 별 말 없이 제 자리에 앉아 한참 제 단말을 만지는 중이다. 그러고보니 중저가형은 중저가형이지만, 프리페이드 치고는 꽤 고성능인데. 후루룩 마시듯 넘긴 시리얼 컵을 내려두며 카일은 시선을 던진다. 처음에는 은근 헤메는 것 같았는데, 지금에 이르러선 손이 빠르다. 쓰던 기기가 아니라 헤멨던 것일까…….
“그렇지, 너희 연락처, 알 수 있을까? 별로 연락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왜, 룸메랑 연결이 되면 편하긴 하잖아.”
어라, 사실 얘 양캐인가? 인싸? 아르덴은 어제 먼저 말을 붙였던 룸메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물어 오는 것에 조금은 당혹하면서도, “아, 내 연락처는…….” 하고 입을 열었다. 김에 윤의 단말을 살피느라 조금 반응이 늦었던 카일도 휘말려서, 셋이서 연락처 교환이다. 뭐랄까, 갑작스런 청춘 이벤트에 휘말린 둘은 스스로 휘말렸음에도 조금 미묘한 낯을 한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룸 메이트의 번호. 그리고 깔끔한 노 프로필 사진의 룸메를 본다. 연락 안한다, 라는 말이 뭔 지 알것 같은 무미건조함이다. 아르덴은 조심스럽게, 인싸판별의 질문을 던졌다.
“…매지카메 해? 아님 다른 SNS라던가.”
여기서 매지카메라면 다른 종족이고, 다른 것이라면 원챤스 있다. 머뭇거림으로도 뭔가 답은 나오겠지만.
“응? 아니 SNS는 잘……. 나, 거의 집안 공방에 쳐박혀서 안 나오는 타입이고, 동네 잡다한 공방이라…….”
머쓱하니 뒷머리를 긁는 것에 아르덴은 빠르게 결론을 내린다. 아, 양캐라기보다는 완전 구석진 동네라서 오히려 대면이나 통화라던가의 응대가 되는 타입. 형에게도 가끔 들었던 아날로그한 직인이나 블랙스미스 타입이구나. 메신저의 프사가 완전 신품같이 생긴것도 완-전 이해. 애초에 필요성을 못느꼈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아르덴은 퍼뜩 무언가를 인지한다. 앗, 이렇게 문명과 먼 케이스는 의외로 영업에 도전해 볼 만한데. 아날로그한 직인은 굿즈 생산에는 달인이고. 잘 되면 대승리?? 어쩔수 없는 서브컬쳐 오타쿠인 아르덴은 아이디어 체크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라고 할까. 윤의 단말이 울린다. 알람이다.
“아, 수업시간 조금 넉넉하게 도착하려면 지금 나가야 해.”
확실히 그런 시간이었다. 셋은 문득 깨달은 시간에 제법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어제 와본 바로는 기숙사의 출구까지는 제법 계단을 내려가야 했고, 또 경험을 해본 바로는─ 어제 입학식을 했던 장소가 있던 곳이 교사였으니, 기숙사와 교사를 잇는 거울을 넘고도 제법 걸어 올라가야 교사였다.
이미 밖에 나가서 크게 돌고 온 윤은 적당히 느린 걸음으로도 충분한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은 참이었다. 그래도 굳이 그것을 설명하는 일 없이, 적당히 어울려서 필요한 짐을 들고 같이 움직였다. 거울사를 나서고서야 조용한 소리로 주고받는, 조금 드문드문 한 대화의 와중에 반의 위치를 알게 된다. 아르덴과 셸던은 같은 B반이었으나, 윤은 그 옆인 A반이었다. 아, 이건 조금 귀찮게 되나. 윤은 적당히 그것을 머릿속에 넣어 뒀다.
이윽고 도달한 교사. 윤은 룸메이트 둘이 딱 옆 교실으로 들어가는 것에 조심스럽게 손을 흔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적당히 뒷자리를 잡을수 있을 만치 넉넉하게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대로 자리가 차 있다. 시선이 몇 쏠린다. …1학년이면 그야, 윤 자신을 알 것이다. 후드를 썼다지만 낯선 인상이 보였을 것이고.
윤은 시선을 피하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이상할 정도로 비어있는, 귀로 보아 수인인 이의 쪽을 확인한다. 근처에 드문드문, 같은 교복의 아이들. 수인의 가장 근처에 있는 이는 얼굴이 다소 창백하다. 그 외에 적당한 자리는 그런대로 자리가 차 있다. 하지만 저만큼 비어 있으면. 짧은 고민 끝에 그럭저럭 수인 학생의 근처, 그러나 한 자리쯤 떨어진-옆에 같은 교복은 입은 아이가 있는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같은 교복의 아이에게 눈인사. 수인의 시선이 이 쪽을 향했다가 흩어진다.
클립보드에 종이가 끼워져 있는 것을 책상 위에 내려둔 윤은 조용히 단말을 만지작거렸다. 어제 안내받은대로 깐, 이그니하이드 전용 어플리케이션은 의외로 활발하다. 언뜻언뜻 보이는 내용으로 봐서는 같은 기숙사는 전반적으로 밖에서는 조용, 안에서는 그나마 활발, 제대로 된 기세를 내 보이는 것은 거의 익명인 학내 사이트나 이그니하이드의 전용 어플리케이션 안 정도. 응, 역시 대면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지……. 간단한 평가를 내리고는 교실 내의 무료 통신망을 잡아 이런저런 것을 검색을 해 본다.
시간은 금방. 조례의 예령이 울린다. 윤은 천천히 단말을 챙겨서 주머니에 넣는다. 녹음기능은 겸사 켜둔 채였다.어떤 선생님이 담당일지는 모르겠지만, 엄격한 선생님이 담당이라면 단말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을 보여 좋을 것은 없으니까. 그 판단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격한 인상의, 고양이를 안은 선생님이다.
“올해, 너희의 담임을 맡을 모제스 트레인이다. 담당 과목은 대표로 마법역사. 문과 과목도 일부 맡고 있다.”
그리고 시작되는, 성실할 정도의 오리엔테이션. 윤은 일부러 속기문자를 택해 적당히, 선생님의 안내 내용을 흘려썼다. 분명 알아볼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 속기 문자이기 이전에,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지난 밤, 눈의 탓도 있다지만 토지의 통역 마법과 소지의 번역 술법이 더블로 들어가고 있는데도 글자를 읽는게 어려웠다. 즉, 윤의 시점에서는 모르는 글자를 온갖 술수를 더해 간신히 읽고 있는 형편이다. 이 곳에서 공용으로 쓰이는 언어는 표음문자군이고, 문자의 발음기호는 얼추 익혔지만 거기까지다. 그리고 윤 자신이 이렇다는 건, 반대 방향으로도 마찬가지란 소리니까. 연하의 아이들과 학교, 배울만큼 배운 성인이란 자각으로, 실상 문맹이나 다름 없다. 그 오묘하게 처참한 기분을 제쳐두고서도, 그렇다는건 제 있던 곳의 언어로 써도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상한 언어를 쓴다고 애매하게 위화감을 가져버리는게 더 귀찮다. 그러니까 아예, 도무지 알아볼수없이 날려쓴다고 여겨지는 문자로 좋다.
‘수필 속기 강의를 들어두기는 했지만, 이딴 식으로 쓸 줄은 몰랐는데.’ 엄격한 인상의 선생님은 생각 이상으로 사담이나 농담이 없어서, 생략할 구석이 없었다. ‘번안할 필요까지 있었으면 밤을 또 새워야했군.’ 윤은 헛생각을 하면서도, 시큰둥해보이기까지 한 얼굴로 귀는 제대로 기울이면서 끊임없이 손을 움직였다. 장시간 필기가 있을 듯 하니, 일부러 힘도 죽이고 소리도 없이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주변에서는 보이는 듯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은 인식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문자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건 아무래도 생각 밖이고, 지금 듣는 오리엔테이션을 잘못 흘려들었다간 어디서 그르칠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1학년의 필수 과목, 선택 과목의 존재. 수업시간. 학교생활. 상담……. 데이터량이 어마어마한 오리엔테이션에 첫날부터 눈앞이 아뜩하다. 딱히 베이스 제로인 윤 뿐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윤은 결국 왼 손으로 펜을 바꿔쥐었다. 처음부터 고달픈 것이 보이는 첫날이었다. 윤의 손이 쉰 것은 기초 과목의 교과서 배부뿐이었다.
“이상, 종료하도록 하지. …그리고, 이그니하이드의 윤, 있나?”
“…예.”
“잠시 따라오도록.”
그렇겠지요~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자신이 온 과정은 자신에게도 난해했지만, 대충 짐작하건데 제 쪽 만큼이나 학교 쪽에도 특이한 점이 보였을 것이다. 이쪽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입학이 아닌 것 같기는 했다. 옷장에 있는 옷은 아마, 어느샌가 입혀져 있던 식전복 기준으로 맞추는(혹은 그에 맞는 사이즈가 자동으로 세팅되는) 일회성 마법이 걸려있던 덕이겠지. 윤은 적당히 좋은 아이 풍으로, 그러나 숨을 조금 삼킨 듯한 느낌이 나는 어조로 “네.”라고 뱉었다. 펜과 몇 장이나 종이를 소비한 클립보드를 안아들고, 윤은 교실을 나가는 선생님의 뒤를 조용한 발걸음으로 따랐다.
도달한 곳은 닫힌 문의 앞, 팻말로 보아 아마도 공통의 교무실. 분명 이 학교는 개인 연구실이 있을 만한 규모인데, 부른 곳이 개인 연구실이 아니네? 하고 윤은 잠깐 눈썹을 치켜올린다. 더군다나 일단 활성화는 되어 있는 시야에 마법의 흔적이 걸린다. 아마도, 결계.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는 이해되지만, 뭔가 금방 얹어진 것이 있다. 잘 모르겠지만, 들어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쯤에서 생각을 끊어낸 윤은 적당한 낯을 했다.
‘하긴, 이 정도는 되야 맞을까…….’
그 새에 교무실의 문이 열리고, 처음 입학식에 떨어져왔던 때보단 열린 감각에 무언가가 잡힌다. 밖에서 언뜻 봤던 것이 제대로 보인다. 이 쪽의 ‘마법’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직감에 의존하자면, 아마도 범위계의 거짓말 탐지. 윤은 일단 그것을 모른체 하며 자리에 안내되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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