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가라흔
윤이 이 시점에서 통신 단말을 꺼낸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대화’를 해야 하는 상대는 교사들만이 아니었다. 대면보다 문자상에서 활발한, 같은 기숙사의 동기들도 있었다. ‘조금 이야기를 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제법 없었군… 아마 같은 반의, 같은 기숙사생에게 들었을까.’ 윤은 빠르게 메세지를 훑으며, 시간을 체크했다. 몇시부터 대식당에서 점심 먹
“…출신국의 이름은 어떻게 되지?” “으음, ‘한예’… 이쪽의 나라 이름과 같이 말하자면… 큰 물과 향초의 나라, 일까요? 이 쪽에서 정확히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히 나도 모르지. 없는 걸 어떻게 알겠어. 한예가 있는 곳은 이세계인걸. 그딴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서도 윤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의연했다. 트레인은 확실히 들어본적 없는 국명
확실히 이 교무실은 , 공통 협의나 행정 용도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였다. 이 곳에서 교과 준비같은 것이 있다기엔, 물건이 다들 적다. 아마 개인 연구실이 별도로 있거나, 적어도 과목별 교과준비실 따위가 따로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 그리 주변을 살피던 윤은, 자연스러운 모양새로 작은 잔을 건네받았다. 찻잔 안에 찰랑이는 것은, 아마 말리화茉莉花로 만든 차
스카일러-카일이라고 불리길 좀더 선호하는 그는 “어젯밤, 고마웠어.” 라는 말과 돌아온 제 태블릿을 보았다. 태블릿 위에는 (성장기의 남자에게는 확실하게 부족한) 1인분쯤으로 소분되어 판매되고 있는, 취향이고 뭐고 따질 필요 없이 심플한 컵 포장의 콘 플레이크 시리얼과 적당한 막과자가 있다. 카일은 그것을 받아들면서 느릿한 머리를 굴려 본다. 카일은 이제
윤은 실제 자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내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여섯시였다. 새로운 침대의 질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윤 본인이 문제였다. 애초에 긴장하거나 심적 압박을 받거나, 혹은 남은 일이 있거나 하면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 편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바뀐 와중에 꾸준히 기의 ‘번역’ 작업이라도 해야 그나마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는데, 그런
인생사 기구망측이라지만 그래도 정도라는게 있지 않았던가. 샤워기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을 물끄러미보면서, 윤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한숨을 푹 쉬고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윤이라고 해서, 매번 그토록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검은 마차에 올라타면서 뭐 이상한 일이 안 일어나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내용을 말로 말해보자면
─눈을 뜨면, 온통 좁고 어두웠다. 막 깨어난 참이라고는 해도, 머리가 지나치게 멍한 감이 있었다. 윤은 이 좁은 곳, 누워있는지 어디에 기대었는지도 불확실한 혼곤함 속에 눈을 끔벅였다. 감으나 뜨나 그저 익숙한 어둠 속. 그저, 밤금 전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른 눈. 묵직하니 뻐근하고, 날카롭게 아리다. 오래, 무언가를 바라
천명이라 여겼던 삶, 당연하게 평생 일궈나가리라 생각했던 업을 저주에 빼앗긴 것도 벌써 몇 해째던가. 그 와중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성마냥 무너졌건만, 이것만은─당연하지 않았던 이 일하나만은 변함이 없다. 윤은 낯선 채 익숙해진 검은 마차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여름도 잦아들까, 아직 더욱 이 계절에 홀로 있으면 꼭 검은 마차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