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howMustGoOn:Yun

1. 도착지가 이세계라고는 들은 적이 없는데 (1)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눈을 뜨면, 온통 좁고 어두웠다.

막 깨어난 참이라고는 해도, 머리가 지나치게 멍한 감이 있었다. 윤은 이 좁은 곳, 누워있는지 어디에 기대었는지도 불확실한 혼곤함 속에 눈을 끔벅였다. 감으나 뜨나 그저 익숙한 어둠 속. 그저, 밤금 전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른 눈. 묵직하니 뻐근하고, 날카롭게 아리다. 오래, 무언가를 바라보고야 만 듯이.

이를 그저 피곤하다고 해도 좋은 것일까, 참으로 멍하고 곤하다. 젖은 것이 심연으로 온 몸을 끌어당기는 것이 이와 같을까. 뻑뻑하기 그지없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 보아도, 보이는 것은 그저 막막한 어둠. 머리가 구르질 않는다, 이 곳은 그저 어둡고 갑갑하여.

무언가 단 것이라도 물고 싶었다. 신 것이라도 좋다. 입 속마저 버석하니 말라붙어서는. 윤은 반사적인 모양으로 제 허리춤을 더듬거렸다. 깨어 있으면 메고 있을 허릿가방을 찾는 손. 그러나 손 끝에 닿는 것은 그저 옷자락의 감촉. 결콕 잠옷은 못되는, 낯선 옷감. ‘…가방이 왜 없지.’ 멍하니 빈 허리의 옷자락을 매만지며, 윤은 느릿하게 고개를 숙인다. 어둠 속에서 보일 리 없는 눈을 또 쓰려 든다.

그러다 그만,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지만, 무언가에 이마를 부딪쳤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충돌 따위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저 강렬한 위화감이 목을 조른다. 몸을 감싸는 천의 재질이 낯설다, 몸에 들러붙는 복식이 낯설다. 괜히 옷자락을 매만지던 윤의 손끝이 멎는다. 낯선, 이 낯선, 온통 익숙지 않은 것들. 옷장에 넣은 적 없는 재질의 옷, 형식조차 모르겠고. 유사한 것은, 있던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흔들거리는 옷자락마저 하나 익숙한 구석이 없다. 그리고 이 모르는 술식의 형식, 온 몸을 틀어쥔 듯한 위화감이. …낯선, 모르는 술식, 강렬한 위화감.

버겁기 그지없는 이, .

황혼녘의 꿈昏懜을 사납게 찢어 가르는 듯한 감각. 윤은 번뜩, 낙뢰처럼 불이 들어온 정신을 붙든다. 이 찰나 번뜩인 불길에 마저 땔감을 넣듯 제 입술을 짓씹는다. 이 갑갑함이 어찌, 낯선 옷의 탓 만일까. 마치 관에 갇혀 땅에 묻힌 것 같은, 위아래도 모를 지경으로 좁고 어두운 공간도 온전한 이유가 못된다. 깨달을수록 공기가 거슬리고, 숨이 바싹 말라붙는다. ‘윤’이라는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그러니까, 그 몸에 흐르는 피부터─이를테면, 희박해진 지 오래일지언정 용의 말예로서 부여받은 감각, 쇠를 씹는 불가살이의 자손이라는 사실 같은 것들이, 분명히 성립해야 할 모든 것들이─자신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감각이다.

이 관 같은 공간의, ‘초대’받은 자를 위한 보호에도 불구하고, 곤두서는 듯한 자각에 비로소 감각이 온전한 비명을 지르는 성 싶다. 눈, 이 눈. 마기에 오염당해 뒤틀린, 실지 육안肉眼으로서의 기능은 잃어버린지 오래인 윤의 그 눈이 그 비명 지르는 것들의 필두로 선다. 이미 잃은 눈을 속여, 기氣를 공급해야 할 맥脈이 말라비틀어진다. 이대로는 몸 안에서는 아직 유지되고 있는 술식이 의미를 상실한다. 기를 갈구하다 제 숙주를 삼키려 드는 마안魔眼부터, 천명을 앗아간 저주가 또다시 발증하려 든다. 이대로는, 윤은 이 관을 나서기도 전에 형체도 없이 지독한 저주와 그 뒤에 남는 한 줌 고운 재나 되어버릴 것이다. 아득하기 그지없으나 윤 또한 결국은 용의 말예인 것, 세계의 법칙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여 그에 적응하고야 마는 오랜 본성이 그것을 윤 자신에게 고해 온다.

울렁이는, 마기의 중독 증상이 극심하여 폭주에 이르던 그때. 그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일단, 아직은 그보다는 못한 고통 속에서, 윤은 타오르는 듯한, 눈물도 차마 흘리지 못한 눈을 애써 가늘게 ‘뜬’다. 관의 보호를 업고, 이물을 거부하는 법칙에 승복을 택한다. 이지러지는 이성이었으니, 어찌 유쾌할까. 윤은 기껏 쌓아온 경력을 다 조졌다며 혀를 차 본다.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 던지는 농지거리였으며, 경력 따위는 기실 검은 마차에 제 스스로 올랐을 때부터 이미 조진 것이었다. 더욱 넓게 보자면, 저주가 천명을 뺏은 순간─ 마기에 중독된 순간 이미 어쩔 수 없는 꼬락서니였고.)

굳이 말하자면, ‘번역’이라고 불러야 옳을까. 윤은 제 피에 흐르는 용의 자질과 여태껏 자신을 버티게 한 불가살이로서의 강인함을 믿고, 제 가진 팻감을 모조리 장작으로 삼아 제가 가진 기와 술식을, 이 세계에서 쓸 수 있도록 내어 놓는다. ‘변질’에는 도가 튼 저주까지도 모조리 자원으로 삼는다. 이는 그 자신을 모조리 이 곳의 법칙에 내어 놓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위험하지 않은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먼 곳에서 윤을 불러들인 것은 이곳이다. 윤은 그에 응해서 왔다. 그런 사실까지도 모조리 연료로 삼아, 그 몸에 깃든 고향의 신비를 바쳐서 지금 그 몸뚱어리를 이 세계에 ‘적응’시킨다. 무엇이 흘러넘치는지, 무엇이 사라지는지 가릴 바도 없이 그저 아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윤은 거침이 없다. 이리 다 바쳐버려서야, 자칫하면 귀향마저도 먼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 따위, 애초에 고려할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한줌 핏물이 되면 그런 것 따윈 다 사치니. 그저 그렇게 이 세상에 맞게 윤 자식을 재편한다. 기를, 술식을─그리고 그 몸 가득히 고여있는 마魔까지도.

멀미날듯한 부정과 긍정. 윤은 흔들거리는 듯한 몸뚱이를 좁은 벽 안에 한껏 기대고, 숫제 빌 듯이 생각했다. 일단은 아주 작은, 스치는 정전기 정도라도 좋았다. 기맥이 모조리 말라비틀어지기 전에, 한 찰나 튀어 사그라드는 불똥 같은 것이라도! 숨 쉬듯이 다루던 신비를, 이적異蹟을 되찾아야만 했다. 관 속에 갇혀 시체도 못된 잿더미로 끝날 수도 없으니, 무슨 일이 기다리더라도 힘이 필요했다.

그 집념 끝에, 작은 불씨 같은 것이 간신히 자리 잡았을 때, 눈앞의 것이 달칵, 열린다. 윤은 한 차례 휘청일듯한 것을 옆을 붙들어 멈추고, 해방된 앞을 본다. 수많은 기척이 가득하다. 대개 고만고만한 나이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무언가의 의식儀式과 같이 움직인다. 윤은 조금이나마 돌아온 시야를 빠듯하니 돌리며, 어떻게든 주변과 맞춰 움직이려 들었다.

소리, 소리. 귀를 웅웅, 머리를 떨리게 하는 말들. 지금 제일로 고통스러운 것은 눈이지만,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멀찍하니, 선명하니 정신 사납다. 모르는 말이, 쓸데없을정도로 정확하게 머리를 파고든다. 윤은 머리를 덮어쓴 천 사이에 숨어 인상을 찌푸린다. 눈은 아프고, 머리는 울리는 와중에 심심풀이로 이런저런 술식을 대충 꿰어 만든 목걸이가 델 듯이 뜨거운 탓이다. 

‘벌써부터, 과열증상이라고.’

‘번역’에 힘입어 다시 기맥에 흐름이 생기기 전까지는 의미도 없었을 것, 이제야 제대로 가동을 시작했을텐데도 조만간 고장난다 싶을 정도로 뜨끈하다. 그래도 이런 과열증상이 정도까지 일어나는 것을 감안해도─ 상정하지 않은, 심심풀이로 만들어놓은 가벼운 기능 이상으로 언어의 통역이 자연스럽다. 윤은 사고를 쪼개 돌리는 ‘번역’, ‘적응’으로도 과로하고 있는 눈을 굳이 한번 데굴, 굴린다.

‘대지 자체에 통역 술법이 깔려 있나. …내 것은 어쨌거나 보조, 이미 깔린 것의 호혜가 오히려 핵심일까.’

아마 두 세계가, 서로간에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윤의 고향에서 얼추 비슷한 언어로 초대장인지 안내장인지의 내용을 추론 할 수 있던 것처럼. 이 쪽 세계 시점에서도 대충 비슷한 것이 성립하겠지. 다른 두 세계에서 비롯한 두 개의 번역 술법이 동시에 작동함으로서, 무슨 말이 들려오든 대충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들리게 된 것이리라.

물론 알아듣고는 있어도 딱 어디쯤의 언어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애초에 윤은 이과라서 모국어나 고용어정도나 알고 있었고.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아마 윤이 모국어를 쓰더라도 뜻이 자연스럽게 전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개의 술법이 같이 작동함에 따르는 마땅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윤 자신의 시점에서도, 규모의 차이에서 지나치게 과열된 이 목걸이가 아니었다면 전혀 몰랐으리라.

그러나 이런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것은, 깨닫고 난 이상 기능이 온전치 못하리라. 윤은 짧은 한숨을 뱉었다. 그렇게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이 잔뜩인데, 또 아주 다른 것들을 무시할 수도 없다. 윤은 현재 제 몸에 가장 부담이 되는 ‘번역’ 작업을 무시하지도 않았지만, 최적 효율은 아예 포기해버렸다. 

이곳이 어디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의식을─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불리는 것은 아마도 이름. 이름 불린 이들은 나서 거울 앞에 서고, 저 자신을 밝힌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일곱 개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윤이 ‘번역’의 자투리로 머리를 굴리는 사이, 수 많은 이름이 불리고, 또 불리고…….

이윽고, 윤은 묘하고 참 불길한 서늘함을 느꼈다. ‘듣자하니 성씨를, 일정한 순서로. …순서가 지났는데. 아니, 나는 성을 버렸으니 이름일까, 이름이면 아직 남았네.’ 하고, 사고를 쪼개서라도 그리 위안 삼던 것도 제법 긴 시간. 제 이름이 불려야 할 마지막 순서에도 윤의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대충의 법칙은 가늠했기에, 불려야 할 마지막 순간까지도 불리지 않는 것을 자각한 윤은 이미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각오 대로 마지막까지 덩그러니 남겨진 것은 퍽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이름을 부르던, 가면을 쓴 남자가 바라보는 시선. 그 노란색, 의문.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얽히는 침묵. 윤은 한숨을 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형태, 혹은 표정이 있는 가면이 떠 있는, 거울형의… 판정 도구. 앞서 있던 사람들이 잔뜩이다. 관찰은 이미 했으니, 흉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대의 이름을 말하라.]

“윤, 입니다.”

윤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음절 뿐인 소리는 공허했다. 윤은 옛저녁에 잃어버린 이름의 다른 조각을 붙들듯이 손을 움켜쥐었다. 그 와중, 거울이 윤, 하고 다시 발하는 소리도 어쩐지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대의 영혼의 형태는…]

그리고, 다시 침묵. 서늘하기까지한 공백의 자락. 눈의 고통과 과부하가 걸린 목걸이의 열기. 낯선 모든 것, 시선, 시선, 시선과 쑥덕거림. 그 모든 버거운 것들 사이에서 말라붙은 듯 황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의 낯은 무너지지 않았으나, 달리 보자면 이미 무너진 것과도 같아보였다. 소란과 침묵사이에서 휘청휘청 온전한 웅성거림에 도달하는 찰나.

[…이그니하이드!]

간신히 튀어나온 판정이 분위기를 일소한다. “…네.”하고 나직하게 뱉은 윤은 부러 비틀거릴 듯한 걸음으로 “이그니하이드”쪽으로 움직이며 후드를 푹 눌러썼다. 피곤하기는 했으나 느끼고 있는 부담보다 과장된 행각이었다.

영 불리지 않고 있었을 때, 윤이 가장 주의해서 살폈던 것은 판정과 그 결과, 그리고 그렇게 판정된 사람들의 행동이다. 어떤 경향의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 윤이 조금 과장스럽게 행동하는 부분은 그 경향대로 구는 것이었다. 이 쪽에 온 아이들이라면 할 법한 모습. 지켜본대로의 경향성이 맞다면, 아마도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 과장스럽고 어색한 부분도 알아서 보정하여 볼 것이었다.

윤은 과장 속의 진심으로, 마른 입으로 더운 숨을 흩듯이 뱉었다. 그나마, 잡념 따위가 들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써서 무언가를 하니, 간만에 숨을 쉬는 느낌인 것은 다행이었다.

앞에서 떠드는 소리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 일단 여력을 최대한 번역에다가 쏟아붓는다. 한번 제대로 물살을 탄 이상, 장기적으로 잡아 변환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초기치를 확보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곤란하다. 그래서 윤은 조금 넋이 나간듯한 (아마도 타인은 선정 직전의 긴장감 탓이라고 이해해줄) 모습으로 다시 주변에 맞추는 양 굴었다.

그렇게 이끄는 대로 움직여, 거울을 넘어 도달한 곳은 저승이었다.

정확히는, 그런 것을 흉내 낸 공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 나이의 아이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하기엔 꽤나 의외인 선정에, 윤은 눌러쓴 후드 아래서 눈을 굴렸다. 통로를 나서는 와중 머리 위에선 머리 셋 달린 개가 으르렁거릴 듯 하고, 사람의 뼈를 닮은 거대한 뼈가 천장을 짊어진 채 빛나는 눈으로 길을 굽어다본다. 희무끄레한 호수, 흐린 물안개. 폭이 넓은 계단이 고목같은 구조물을 느슨하게 휘감아 올라간다. 푸른 색으로 빛나는, 불이라는 개념에 따르는 마땅한 것들 대신 서늘함이 흔들리는 등불, 으스스한 분위기에 누군가는 놀라 둘러보고 누군가는 숨을 죽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 이것이 상징하는 것, 저승의 형태인 것만은 기이할정도로 잘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아마 다른 의미도, 윤이 모르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윤은 후드를 눌러 쓴 그대로 손을 모아쥐었다. 그것은 주변에 섞여 꼭 무언가에 긴장한 듯한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입매의 언저리에 사나운 기색이 이글거리고, 타는 듯한 눈은 그늘가에 숨어서 주변을 살핀다. 실로, 망량의 속삭임이 들릴 법한 길이다. 그 와중에 무언가를 알아보려 해도, 주변은 그저 온통 저승과도 같으니 잘 되지 않는다. 애초에 너무나도 기반이 없다. 윤은 경계를 올리면서도 나올 듯한 한숨을 간신히 삼켜냈다.

‘아, 정말. 초대에 응하면 법칙의 기반조차 다른 이세계라는 것은 상정한 적이 없었는데.’



관에서 나왔을 때 원작 감독생은 식전복을 입고 있었고, 1장 코믹스 감독생은 입고 있지 않았지…….

그냥 마법으로 맞추어진 복장(식전복)이 세팅되는게 일반적인 것이란 느낌, 으로 잡고 있다.

(적어도 이 글에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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