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에 떨어지는 선홍빛의 핏방울은 탐욕스레 순백색을 먹어 치우고 피어난 꽃과도 같았다. 눈밭에 흩뿌려진 꽃들은 지독하게 화려해서 자꾸만 시선을 끌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 종종 그 선홍빛에 저까지 먹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끝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던 유비는 점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일, 월, 화, 수, 목, 금, 그리고 오늘 토요일. 오늘은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짙은 남색의 소파에 둥지를 튼 지 딱 7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왜 '되던' 날이냐면, 30분 전에 그 자리에서 쫓겨나 거실 바닥으로 팽개쳐졌기 때문이지. 화가 날 법도 하지만 집주인 커플의 애정 행각을 한낱 객식구인 내가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너그러이 넘어가기로 했다
옛~날 옛적,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1800년 전쯤? 아니, 아무튼 옛날에요. 산속에는 회색 털에 하늘색 동그란 눈동자를 가진 작고 귀여운 토끼가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회색 토끼에겐 부양해야 할 자기 자신이 있었기에 매일매일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혼자 살면 잔소리 할 동물이 없으니 여유를 가져도 되는 거 아니냐고요? 전혀요! 세대주이자 유일한 세
세상에서 숨길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 재채기와 사랑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조인 字 자효에 한해서는 전자 한 가지만이 해당할 뿐이라고 조조군에 속한 전부가 단언할 수 있었다. 가끔은 한술 더 떠서 "조인은 사실 커다란 바위에 일만 번 기도를 올려 태어난 인조인간이라 재채기도 하지 않는다"며 어리숙한 병사들을 놀려먹는 이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우스갯소
오전 7시. 평소라면 자몽한 만물 위로 뽀얗게 아침 햇빛이 내렸을 시간. 하지만 오늘은 솜이불마냥 두텁게 깔린 구름이 여유로운 주말 아침에 한층 나른함을 더했다. 회색빛 공기 속에서도 일찍이 눈을 뜬 전위는 자는 동안 품에서 빠져나간 연인을 찾아 옆자리를 더듬었다. "으응…." 눈을 감고서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는 중에도 저를 찾는 손길을 느꼈는지.
"……." 동그랗고 빨간 불빛 아래 멈춰 서있는 차 안.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검은 시트 위에는 민트색 종이봉투와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어색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그것을 쳐다보기를 한 번. 두 번. 셋넷다섯여섯……. 손바닥만 한 봉투 안에 폭탄이라도 든 것처럼 몇 초에 한 번씩 옆자리를 힐끔거리던 조인은 뒤늦게 바뀐